이 저택에서는 고용인이 메뉴가 된다 | MovieLAB LAB

사람을 잡아먹는 부부가 거리의 범죄를 걱정한다. 〈카니발 클럽〉의 오타비오(타빈호 테익세이라)와 길다(아나 루이자 리오스)는 브라질의 부유층이다. 바닷가 저택에서 남의 시중을 받…

이 저택에서는 고용인이 메뉴가 된다 | MovieLAB LAB

사람을 잡아먹는 부부가 거리의 범죄를 걱정한다. 〈카니발 클럽〉의 오타비오(타빈호 테익세이라)와 길다(아나 루이자 리오스)는 브라질의 부유층이다. 바닷가 저택에서 남의 시중을 받으며 살고, 집에서 일하는 고용인들을 죽여 먹는다. 그런데 이들이 안전한 생활을 논할 때 자기들의 잔혹함은 문제에 들어가지 않는다. 위험한 사람은 늘 집 밖에 있다는 듯 행동한다.

구토 파렌테 감독은 이 모순을 피비린내 나는 블랙코미디로 밀어붙인다. 집주인이 노동자를 착취한다는 말은 여기서 끔찍할 만큼 직접적인 사건이 된다. 부부는 다른 사람의 노동으로 편하게 살다가, 그 사람의 몸까지 자기 욕망을 채우는 데 쓴다. 더 섬뜩한 것은 이들에게 그런 생활을 함께 즐기는 부유층의 모임까지 있다는 사실이다.

일하러 온 사람이 사라지는 집

이 부부에게는 좋은 집과 한가로운 시간이 있다. 길다는 수영장 옆에서 칵테일을 마시고, 오타비오는 구운 고기를 접시에 담는다. 고기가 무엇인지 알고 보는 관객에게는 소름 끼치는 풍경인데, 두 사람은 자기 생활을 즐기고 있다. 충격적인 사건을 겪는 사람과 별일 없이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 같은 집 안에 있는 셈이다.

영화의 불편한 웃음은 이 태도에서 나온다. 부부는 사람을 해친 일 때문에 일상의 질서가 무너졌다고 여기지 않는다. 잔혹한 행동이 그들의 식사와 부부 생활에 자연스럽게 끼어 있다. 괴상한 취향을 가진 남녀의 기행으로 보기에는, 그 생활을 유지해주는 돈과 집, 고용 관계가 너무 구체적이다.

고용인은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온다. 집을 관리하고 주인의 지시를 따르는 사람이 자신을 고용한 이들의 살인 대상이 된다. 이 관계에서는 누가 공간을 소유하고 누가 허락을 받아 머무는지가 곧 생존의 차이로 이어진다. 부부에게 저택은 사생활을 즐기는 곳이고, 일하는 사람에게는 그 사생활 때문에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곳이다.

새로운 사람이 고용되면 관객은 그가 무엇을 하러 왔는지와 주인들이 무엇을 하려는지 동시에 안다. 그래서 평범한 일자리도 불안하게 보인다. 범인의 정체를 맞히는 추리보다, 부부가 사람을 자기 소유물처럼 다루는 모습을 지켜보는 시간이 영화의 긴장을 만든다. 고용인의 사정을 모르면서도 주인들의 계획부터 알게 된 관객은 그들의 한가로움에 함께 안심할 수 없다.

집 안의 오타비오와 뒤쪽에 앉은 길다

경비회사 사장이 두려워하는 범죄

오타비오의 직업은 민간 경비회사 운영자다. 다른 사람에게 안전을 제공하는 일을 하면서, 자기 집에서는 고용인의 안전을 짓밟는다. 그의 직업을 알고 나면 범죄를 걱정하는 말이 더욱 기묘하게 들린다. 밖에서 누군가 자기 재산을 위협할까 봐 경계하면서, 집 안에서는 다른 사람의 몸까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여긴다.

클럽의 모임에서도 이들은 점잖은 말을 골라 쓴다. 가족과 신앙, 노동의 가치를 내세우고, 자신들을 충성심으로 뭉친 훌륭한 사람들로 소개한다. 오타비오는 자신들이 살인자가 아니라고까지 항변한다.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이미 본 관객에게는 어처구니없는 말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행동을 고치는 것보다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부르는 편이 간단하다.

파렌테 감독은 돈과 권력이 있다는 이유로 자신을 남보다 위에 놓는 사람들의 말과 생각에 주목했다고 밝혔다. 식인이라는 설정은 황당하지만, 이들이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는 말까지 낯설지는 않다. 사회를 지킨다는 사람이 누군가를 함부로 대하고, 가족을 중시한다는 사람이 남의 가족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 영화의 웃음이 불편해지는 지점도 여기다. 도무지 현실에 있을 것 같지 않은 부부의 말에서 익숙한 핑계가 들린다.

이 때문에 유혈 장면이 끝났다고 잔혹함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클럽의 점잖은 연설도 사람들이 누구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지 드러낸다. 부부의 식사를 지켜볼 때와 그들이 하는 말을 들을 때, 관객은 같은 사람에게 두 번 놀라게 된다. 처음에는 그런 짓을 한다는 사실에, 다음에는 그러고도 자신을 훌륭한 시민이라고 여긴다는 사실에.

잡아먹는 사람들 사이에도 서열이 있다

오타비오가 속한 식인 클럽에는 더 큰 권력을 가진 인물이 있다. 길다가 클럽을 이끄는 권력자의 비밀을 우연히 알게 되면서, 부부 자신도 위험에 놓인다. 자신들의 집에서는 남을 마음대로 다루던 이들이 같은 모임 안에서는 안심할 수 없다. 돈이 많고 비밀을 공유한다고 모두 같은 힘을 가진 것은 아니다.

클럽에서 내세우던 충성심도 이제 달리 들린다. 함께 어울려 식사할 때는 한편인 듯했지만, 지도자의 비밀을 안 뒤에는 자기 목숨부터 걱정해야 한다. 부부가 그동안 믿었던 것은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었을까, 남을 해치고도 무사했던 경험이었을까. 영화는 이들의 처지를 뒤집어 그 결속이 얼마나 허술했는지 드러낸다.

부부의 위기는 그들이 희생시킨 사람들을 잊고 응원하기에도 난감한 상황을 만든다. 쫓기는 처지가 됐다고 전에 한 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관객은 이들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궁금해하면서도, 무사히 돌아가 이어갈 생활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 이 블랙코미디는 살아남기를 바랄 주인공부터 쉽게 정해주지 않는다.

〈카니발 클럽〉에서 오래 기억할 만한 것은 피 묻은 식탁만이 아니다. 자신들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얼굴도 남는다. 일하러 들어온 사람이 사라지는 집에서 집주인은 여전히 바깥의 범죄를 걱정한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는 사람들이 있는 한, 부부에게는 반성할 이유보다 다음 식사를 준비할 이유가 더 많을 것이다.

감상 포인트

◆ 식사를 대하는 부부의 태도 — 관객이 경악할 일을 부부는 일상처럼 받아들인다. 무엇을 먹는지 알게 된 뒤에도 식사와 휴식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태연한지 보자. 공포의 대상과 웃음의 대상이 같은 인물 안에서 겹치는 장면들이다.

◆ 집주인의 휴식을 만드는 사람 — 바닷가 저택에서 부부가 쉬고 먹는 동안 누가 그 생활을 뒷받침하는지 살펴보자. 관객은 고용인이 일하러 왔다는 사실과 부부가 그를 어떻게 대할지 동시에 안다. 이 차이 때문에 새 일손을 들이는 일도 평범한 고용처럼 보이지 않는다.

◆ 클럽에서 오가는 점잖은 말 — 식탁에 무엇이 오르는지 아는 상태에서, 이들이 가족과 신앙 같은 가치를 내세우는 말을 들어보자. 말의 내용만 떼어놓으면 훌륭해 보일 수 있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실제로 누구를 해치는지 알고 있다는 점이 연설을 끔찍한 농담으로 만든다.

◆ 위험에 처한 부부를 바라보는 마음 — 남을 해치던 부부가 자신들의 목숨을 걱정하게 되면 영화의 긴장도 달라진다. 이들이 살아남을지 궁금한 마음과 이들의 편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같은지 생각해볼 만하다. 앞서 본 잔혹한 생활이 추격당하는 인물을 응원하는 습관을 방해한다.

관련 작품

◆ 〈인 패브릭: 레드 드레스〉 (2018, 피터 스트릭랜드) — 백화점에서 산 드레스가 일상에 불길한 사건을 가져온다. 물건을 사고파는 친숙한 말과 절차가 기괴하게 변하는 과정을 즐길 수 있다. 〈카니발 클럽〉의 저택과 식탁처럼, 평범한 생활의 형식이 얼마나 낯설고 무서운 것으로 바뀔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영화다.

◆ 〈카트〉 (2014, 부지영) — 해고에 맞서는 마트 노동자들을 따라가며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과 관계를 보여준다. 잔혹한 풍자 속 고용 관계를 보고 난 뒤, 노동자 각자의 목소리를 가까이서 듣는 방향으로 이어볼 수 있다. 같은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과 그곳에서 생계를 잇는 사람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 다른 장르에서 살피게 한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