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라(마리안 장 바티스트)는 오랜만에 데이트 약속을 잡았다. 이제 입고 나갈 옷이 필요하다. 〈인 패브릭: 레드 드레스〉의 주인공인 이 은행원은 남편과 헤어진 뒤 다시 누군가를 …
쉴라(마리안 장 바티스트)는 오랜만에 데이트 약속을 잡았다. 이제 입고 나갈 옷이 필요하다. 〈인 패브릭: 레드 드레스〉의 주인공인 이 은행원은 남편과 헤어진 뒤 다시 누군가를 만나보려 한다. 백화점에서 고른 빨간 드레스가 마음에 든다. 옷 한 벌로 인생을 바꿀 생각까지는 없어도, 그 옷을 입은 저녁만큼은 잘 풀렸으면 한다.
그런데 옷을 산 뒤 몸에 상처가 나고 세탁기까지 고장 난다. 아름다운 드레스에 저주가 붙어 있었던 것이다. 상점으로 돌아가면 해결될까. 물건을 팔 때는 그토록 친절하던 곳이 문제를 함께 떠맡아줄 리 없다. 피터 스트릭랜드 감독은 귀신 들린 옷이라는 황당한 소재에, 물건을 사고 되돌려주려다 겪는 곤란을 끼워 넣는다. 분명 공포영화인데 점원의 응대를 듣다 보면 웃음이 먼저 새어 나온다.
이 백화점에서는 옷을 권하는 말부터 이상하다. 판매원 럭무어(파트마 모하메드)는 간단히 대답해도 될 일을 기묘하고 장황한 표현으로 돌려 말한다. 손님을 돕고 있는 듯하면서도, 무엇을 묻든 가게가 정한 방식으로만 대화를 이어간다. 쉴라는 드레스를 한 벌 사러 왔는데 어느새 낯선 의식에 참여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웃기는 것은 럭무어가 농담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자기 말과 행동을 진지하게 수행한다. 반면 쉴라는 평범한 손님답게 옷을 고르고 질문한다. 한 사람은 일상의 속도로, 다른 사람은 혼자만 아는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 두 배우의 연기가 만날 때 매장의 우아함은 조금씩 우스꽝스러워지고, 그 우스꽝스러움은 다시 불안으로 바뀐다.
의상부터 두 사람의 차이가 선명하다. 쉴라의 외투는 거리에서 흔히 볼 법하지만 직원의 옷차림은 유난히 화려하다. 두 사람을 나란히 보면 쉴라 쪽이 오히려 매장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인다. 옷을 사러 온 손님이 직원의 격식에 맞춰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생긴다. 손님이 왕이라는 말과는 영 딴판인 쇼핑이다.
가게 밖이라고 사정이 편해지지는 않는다. 쉴라는 일터에서도 상사들의 요구를 받아내야 한다. 영화는 누군가의 사소하고 무례한 간섭을 괴상한 의식처럼 부풀려 보여준다. 드레스가 직접 움직이기 전부터 사람을 지치게 하는 일들이 충분히 많다. 초자연적인 공포가 그 일상 한가운데로 들어왔을 때, 둘 사이의 경계가 생각만큼 단단하지 않다는 데서 이 영화 특유의 웃음이 나온다.
옷은 하루 종일 피부에 닿고, 땀과 체온을 받아낸다. 같은 옷도 누가 입었는지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스트릭랜드는 패션의 유행보다 옷을 입거나 바라볼 때 생기는 감정에 관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누군가가 남긴 옷 한 벌이 그 사람을 떠올리게 하듯, 천에는 가격표로 설명할 수 없는 기억이 붙는다.
〈인 패브릭: 레드 드레스〉는 이 친밀함을 위험하게 바꾼다. 몸에 꼭 맞는 옷이 몸을 해친다면,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고른 물건이 가장 가까운 위협이 된다. 멀리서 무서운 존재가 다가오기를 기다릴 필요도 없다. 쉴라는 이미 그것을 집 안으로 들였고 입어보기까지 했다.
붉은 드레스는 그 역할을 맡기에 너무나 눈에 잘 띈다. 옷감의 빛깔과 주름, 옷이 늘어지거나 움직이는 모양이 자꾸 시선을 붙든다.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에도 화면 속 옷은 여전히 매혹적이다. 보기 싫어서 눈을 돌리는 공포와, 보고 싶어서 더 오래 쳐다보는 공포가 한 물건에 함께 있다. 드레스가 살인마라는 설정을 알고 봐도 그 옷이 등장할 때마다 긴장하게 되는 이유다.
영화는 한 사람이 저주를 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로만 흐르지 않는다. 드레스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면서 중심인물도 달라진다. 앞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관객은 알지만 새 주인은 모른다. 옷을 건네받는 평범한 행동 하나가 그래서 불길하다. 한 사람에게는 악몽이었던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저 처음 보는 옷이다.
이 구조 덕분에 드레스는 등장인물보다 오래 영화에 남는다. 사람들이 저마다 새 출발을 바라거나 일상을 꾸리는 동안에도 옷은 다음 몸에 걸쳐진다. 쉴라가 특별히 어리석거나 탐욕스러워서 저주에 걸린 것도 아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생겨 새 옷을 샀을 뿐이다. 그 사소한 바람에 마음이 가기 때문에 이 터무니없는 재난이 남의 일처럼만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에는 옷보다 기묘한 사람들이 있고, 저주만큼 벗어나기 어려운 응대가 있다. 둘을 진지하게 찍는 솜씨가 공포와 코미디를 붙여놓는다. 보고 나면 무엇보다 쉴라에게 평범한 저녁 한 번쯤은 허락해주고 싶어진다. 새 옷을 입고 나가 누군가와 대화하고, 별일 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 그 작은 기대를 망치는 데 드레스 한 벌이면 충분하다는 사실이 이 영화의 짓궂은 상상력이다.
◆ 점원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기 — 럭무어가 옷을 권하거나 질문에 답할 때 얼마나 말을 돌리는지 들어보자. 내용뿐 아니라 그 말을 지극히 진지하게 하는 태도가 웃음을 만든다. 친절한 말투가 상대의 요구를 듣겠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도 이 장면들에서 선명해진다.
◆ 매장 안 두 사람의 옷차림 — 쉴라와 직원을 한 화면에서 볼 때 의상의 차이를 살펴보자. 평범한 외투와 과장된 매장 복식이 맞부딪친다. 손님이 낯선 공간에 들어왔다는 느낌은 대사보다 먼저 옷에서 전해진다.
◆ 드레스가 비어 있을 때 — 사람이 입었을 때뿐 아니라 몸에서 벗어난 옷도 눈여겨보자. 형태와 움직임만으로 존재감을 얻는 순간들이 있다. 배우가 없는 자리에서 물건 하나로 화면을 붙드는 공포영화의 재미를 만날 수 있다.
◆ 주인이 바뀌는 순간 — 드레스를 따라가던 영화가 새 인물의 생활로 들어설 때 무엇이 달라지는지 보자. 사람의 사정은 바뀌어도 관객에게는 앞서 본 기억이 남는다. 새 주인이 모르는 일을 우리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긴장을 이어준다.
◆ 〈행복〉 (1965, 아녜스 바르다) — 화사한 색채와 가족의 평온한 풍경이,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더 불편하게 만든다. 아름답게 보이는 화면을 보고 안심했다가 그 안의 사정을 다시 살피게 된다는 점에서 이어볼 만하다. 두 영화의 밝고 매력적인 겉모습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감상을 흔든다.
◆ 〈부화〉 (2022, 한나 베리홀름) — 완벽해 보이는 가정 안에서 소녀가 알을 품고, 낯선 생명체가 자라난다. 집 안으로 들인 작은 존재가 일상을 바꾼다는 공통점이 있다. 보기 좋은 생활과 그 안에 쌓인 불안을 어떻게 기괴한 물질로 드러내는지 비교해볼 수 있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