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차지원)는 낯선 도시에서 자기 얼굴을 발견한다. 반가운 발견은 아니다. 춘천에서 눈을 뜬 그가 마주한 것은 오래된 실종 전단이다. 사진 속 여자는 자신과 똑같이 생겼지만, …
한나(차지원)는 낯선 도시에서 자기 얼굴을 발견한다. 반가운 발견은 아니다. 춘천에서 눈을 뜬 그가 마주한 것은 오래된 실종 전단이다. 사진 속 여자는 자신과 똑같이 생겼지만, 그 여자를 둘러싼 사건은 50년 전에 일어났다. 미국으로 입양되어 자란 한나에게 자기 과거를 찾는 일은 이미 어려운 과제다. 그런데 〈빛과 몸〉은 자신이 살아온 시간보다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가라고 한다. 얼굴은 닮았는데, 그 얼굴이 살았다는 세월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장권호 감독은 이 질문을 한 사람의 몸에 맡긴다. 차지원은 한나와 실종된 여자 아다다를 함께 연기한다. 관객에게도 같은 얼굴이 주어진다. 얼굴만으로 구별할 수 없는 두 삶을 움직임과 기운으로 구분해야 한다. 누가 누구인지 알아내려는 미스터리가, 같은 배우가 어떻게 다른 사람으로 존재하는지 살피는 즐거움과 겹친다.
차지원이 두 인물을 준비하며 가장 고민한 것은 각자가 가진 힘의 차이였다. 배우는 신내림을 받기 전 아다다를 운명에 밀리는 인물로 이해했지만, 그를 계속 힘들고 패배적인 모습으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 한나와 비슷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다다에게서는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는, 제어하기 어려운 힘을 찾으려 했다.
이 설명은 두 인물을 구별하는 데 유용하다. 한 사람이 더 강하고 다른 사람이 더 약하다는 순위를 매기기보다, 각자가 자기에게 닥친 일을 어떤 힘으로 견디는지 보게 한다. 한나의 혼란을 아다다에게 그대로 옮겨 놓으면 두 삶은 닮은 사연이 된다. 같은 얼굴 안에서 서로 다른 기운이 드러나면, 닮았다는 사실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생긴다. 배우가 바꾸려 한 것은 외모보다 그 부분이었다.
한나를 이해하는 출발점도 초자연적 체험의 묘사에 있지는 않았다. 차지원은 어릴 때부터 죽음을 생각하곤 했고, 어디에 가도 이방인처럼 느껴지는 마음을 한나에게 투영했다고 말했다. 모르는 도시에서 깨어나는 설정이 그에게는 낯선 곳에 속하지 못하는 감각과 연결된 셈이다. 전생을 다루는 이야기라도 지금 이 인물이 불편하고 불안한 이유부터 따라갈 수 있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세계의 비밀 전부가 아니라, 그 비밀을 알아내야 하는 사람의 처지다.
진규(유진규)는 50년 동안 한 사람을 기다려 왔다. 한나에게는 자신도 모르는 과거가, 진규에게는 잊지 못하는 시간이 있다. 같은 만남을 향해 움직여도 두 사람의 출발점은 크게 다르다. 누군가를 알아보고 싶은 사람과, 자신이 누구인지부터 알아야 하는 사람이 만나는 것이다.
이 차이는 재회를 마냥 반가운 사건으로만 받아들이기 어렵게 한다.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사실은 기다린 사람의 간절함을 알려준다. 그러나 찾아온 사람이 그 시간을 함께 기억한다는 보장은 없다. 영화가 제시한 두 사람의 사정을 나란히 놓으면, 과거가 밝혀지는 순간의 의미도 둘로 갈린다. 한 사람에게는 기다림의 답일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새로 감당해야 할 삶이 될 수 있다.
진규의 마임은 이 만남에 관여한다. 말로 과거를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잃어버린 연인을 부르는 몸의 행위가 이야기 안으로 들어온다. 유진규는 실제로 오랫동안 마임을 해 온 예술가다. 그의 공연을 영화 밖에서 이미 아는 관객이라면, 익숙한 몸이 허구의 인물에게 어떤 간절함을 주는지 살필 수 있다. 처음 만나는 관객에게도 말과 몸의 역할을 비교할 이유가 생긴다. 어떤 사실을 알게 되는 것과, 그 사실을 기다려 온 사람의 마음을 받는 일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유진규에게는 이 영화와 같은 이름의 마임 작품이 있다. 그 공연을 만들 때 그는 공연자가 꼭 몸 전체를 보여주어야 하는지 의문을 품었다. 작은 손전등으로 몸의 일부만 비추며 표현하는 방식을 찾았다. 이는 영화의 특정 장면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출연자가 몸을 다루어 온 방식이다. 몸의 일부를 감추는 것이 표현의 부족함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흥미롭다. 눈빛이나 드러난 한 부분에 시선이 모이면, 전부 보일 때와는 다른 것을 읽을 수 있다.
그는 나이 든 몸을 대하는 태도도 바뀌었다고 이야기했다. 예전처럼 쉽게 회복되지 않고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지만, 그 몸을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한다는 것이다. 과거로 돌아가려는 이야기 속에서 이 현재의 몸을 생각해 볼 만하다. 잃어버린 사람을 부르는 진규를 연기하는 것은 세월의 흔적이 남은 유진규다. 50년이라는 설정을 숫자로 이해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금 움직이는 몸에서 기다림의 시간을 느껴볼 수 있다.
한편 한나와 아다다를 연기하는 몸은 하나다. 여기서는 같은 몸이 서로 다른 삶을 드러내야 한다. 한 배우에게서는 긴 시간이 남긴 흔적을, 다른 배우에게서는 같은 얼굴 안에 생기는 차이를 보게 되는 구성이 된다. 영화의 수수께끼를 따라가면서 두 배우가 몸을 사용하는 방식을 함께 볼 이유다. 줄거리의 과거와 현재뿐 아니라, 화면에 나오는 사람들의 실제 움직임에도 시간이 걸려 있다.
춘천은 이들이 만나는 구체적인 장소다. 청평사를 비롯한 도시의 공간에 음악과 춤, 사진과 미술이 함께 들어온다. 여러 예술을 접하는 동안에도 처음의 전단을 기억해 두면 좋겠다. 거기에는 한 사람의 얼굴이 멈춰 있지만, 영화 속 배우들은 그 얼굴에 다른 움직임과 시간을 준다. 닮은 사진을 발견한 데서 시작한 이야기가 두 사람의 삶을 얼마나 다르게 보게 하는지, 끝까지 살펴볼 수 있다.
◆ 한나와 아다다를 구별하는 힘 — 차지원은 두 역할의 기운이 비슷해지지 않도록 고민했다. 같은 얼굴을 보면서도 어느 인물인지 느끼게 되는 순간에 주목해 보자. 겉모습 외에 무엇이 차이를 만드는지 살피는 재미가 있다.
◆ 서로 다른 50년 — 진규에게는 기다려 온 세월이지만 한나에게는 새로 알아야 하는 과거다. 두 사람의 사정을 같은 무게로 놓고 보면, 재회가 각자에게 어떤 일을 요구하는지 더 궁금해진다.
◆ 말과 마임의 역할 — 사건의 비밀을 설명하는 말과, 연인을 부르는 진규의 몸을 함께 살펴보자. 정보를 얻는 순간과 인물의 간절함을 느끼는 순간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볼 수 있다.
◆ 사진과 움직이는 몸 — 실종 전단은 닮은 얼굴로 두 삶을 연결한다. 이후 배우의 움직임은 그 얼굴에 무엇을 더하는지 보자. 사진만으로는 알 수 없던 인물의 차이를 따라가는 감상이다.
◆ 〈너는 나를 불태워〉(2024), 마티아스 피녜이로 감독 — 문학 속 대화를 오늘의 배우와 사물, 바다의 이미지로 옮긴다. 오래된 이야기가 현재의 몸과 풍경을 만나 달라지는 방식으로 이어 볼 수 있다.
◆ 〈미스터 홈즈〉(2015), 빌 콘돈 감독 — 과거의 사건을 다시 알아내려는 노년의 탐정이 자기 기억의 한계와 만난다. 알아낸 사실이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바꾸는지 비교할 만하다.
이 글은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자료 확인과 편집 검수를 거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