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지망생 은희(한예리)는 연기를 배운다. 그런데 〈최악의 하루〉에서 이 사람의 재능이 더 바쁘게 쓰이는 곳은 연습실 밖이다. 남자친구를 만나고, 옛 연인을 상대하고, 처음 보…
배우 지망생 은희(한예리)는 연기를 배운다. 그런데 〈최악의 하루〉에서 이 사람의 재능이 더 바쁘게 쓰이는 곳은 연습실 밖이다. 남자친구를 만나고, 옛 연인을 상대하고, 처음 보는 남자에게 길을 알려주는 동안 은희의 말투와 태도가 달라진다. 누구 앞에서나 똑같이 행동하면 하루가 더 편해질 것 같지만, 연애가 그렇게 간단했다면 이 영화도 없었을 것이다.
은희는 거짓말을 한다. 그렇다고 남자들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조종하는 능숙한 연애 선수는 아니다. 당장의 곤란을 피하려던 말들이 뒤엉키면서 자기 하루도 수습하기 어려워진다. 이 소동을 보는 재미는 누가 더 나쁜 사람인지 가려내는 데 있지 않다. 저런 변명을 어떻게 믿으라는 건가 싶다가도,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괜히 말을 고르던 순간이 떠오른다. 은희가 딱 한마디만 덜 했으면 싶을 때, 상대 남자는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보탠다.
은희의 남자친구 현오(권율)는 얼굴이 알려지기 시작한 배우다. 그는 모자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채 은희를 만난다. 데이트 상대의 얼굴을 마음껏 보기도 어려운 차림이다. 주목받는 직업의 사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 사정을 함께 견뎌야 하는 은희에게까지 좋은 만남일지는 다른 문제다. 두 사람의 대화에는 연인이라 서로에게 기대하는 것과 자기 입장을 먼저 챙기는 마음이 부딪힌다.
옛 연인 운철(이희준)은 또 다른 방식으로 은희를 지치게 한다. 그에게는 돌아갈 가정이 있다. 그런데 그 선택을 말하는 방식이 묘하다. 자신은 행복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남겨질 사람에게 이별을 알리면서, 정작 자신의 희생을 이해해달라고 요구하는 셈이다. 말을 아름답게 고를수록 그 안에 든 자기애가 더 선명해진다.
운철이 우스운 것은 스스로를 우스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본인은 진지하게 말하고 있다. 듣는 사람은 불편한데 말하는 사람만 자기 감정에 빠져 있으면, 대화는 엉뚱한 곳으로 흐른다. 이희준의 호소력은 여기서 난감한 웃음을 만든다. 설득을 잘할수록 멋있어지는 배역과 달리, 운철은 열심히 설명할수록 그 설명을 하는 자신에게 취해 보인다.
은희 역시 언제나 공정하고 솔직한 상대는 아니다. 다만 영화는 은희만 시험대 위에 올려놓지 않는다. 거짓말하는 여자를 둘러싼 정직한 남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 원하는 모습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만난 하루다. 상대의 허세를 알아본 사람이 자기 허세까지 알아보는 것은 훨씬 어렵다. 그래서 대화가 막힐 때도 이들에게는 할 말이 한참 남는다.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이와세 료)는 은희와 우연히 마주친다. 두 사람은 영어를 섞어 대화한다. 모국어로 속 시원히 말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니어서, 짧은 말과 몸짓으로 서로를 알아간다. 현오와 운철 앞에서는 끝없이 설명해야 할 것 같던 은희가, 이 사람과는 훨씬 적은 말로 시간을 함께 보낸다.
이 차이를 외국 남자는 다정하고 한국 남자는 형편없다는 비교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료헤이는 은희에게 이미 얽힌 사정이 없는 사람이다. 두 사람 사이에는 해명해야 할 과거도, 서로 당연히 알아야 한다고 여기는 기대도 아직 적다. 서툰 말로 만난 덕에 상대가 무슨 뜻으로 말했는지 귀 기울일 여유가 생긴다. 반면 오래 아는 사람에게는 끝까지 듣기도 전에 대답할 준비부터 해버릴 수 있다.
영화를 연출한 김종관은 인물을 일관된 성격 하나로 정리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과 어떤 상황에서 만나느냐에 따라 다른 면이 나온다고 보았다. 은희가 료헤이 앞에서 다정하다고 해서 다른 두 남자와 있었던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앞선 실수 때문에 지금의 다정함까지 가짜라고 정할 수도 없다. 한예리가 세 만남을 이어가며 보여주는 변화는 가면을 벗겨 진짜 얼굴 하나를 찾게 하기보다, 이 사람에게 이런 얼굴도 있었음을 발견하게 한다.
서촌의 골목과 남산의 산책로는 잠깐 걸어도 기분이 나아질 것 같은 곳이다. 하지만 은희의 하루는 풍경처럼 순조롭지 않다. 예쁜 길에서 만난다고 말까지 예쁘게 나오지는 않는다. 햇빛과 나무가 좋은 오후에 연인들이 구차한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은, 멋진 장소만 고르면 좋은 데이트가 될 줄 알았던 기대를 가볍게 배신한다.
김종관은 자신이 살던 서촌의 생활 반경을 촬영 장소로 삼았다. 영화 속 길은 관광 명소를 차례로 소개하기 위한 코스가 아니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야 하고, 만나고 나서는 그 자리를 벗어나야 하는 사람의 동선이다. 은희를 따라 걸으면 같은 도시 안에서도 동행에 따라 산책의 기분이 달라진다. 목적지만 연결했다면 빠져버렸을 시간이, 이 영화에서는 만남 사이에 끼어 있다.
그 시간에 한예리의 몸도 보인다. 은희는 자기 마음을 전부 말로 정리해주지 않지만 계속 움직인다. 감독은 걷는 장면에 감정이 드러나도록 했고, 재즈풍의 음악으로 그 움직임에 가벼운 리듬을 더했다. 언쟁에서 떨어져 나와 길을 걷는 동안 관객도 잠깐 숨을 돌린다. 은희가 어느 남자를 선택할지에만 관심을 두면, 그들을 상대하느라 지친 사람이 혼자 걸을 때의 매력을 놓칠 수 있다.
후반의 춤은 그 매력이 또렷해지는 순간이다. 무용을 전공한 한예리의 움직임을 보고 감독은 당초 나눠 찍으려던 계획을 바꿨다. 그때까지 말을 잘 골라 위기를 넘기려던 은희를 보아왔기에, 몸이 먼저 움직이는 시간이 반갑다. 앞선 거짓말의 정답을 제출하거나 누구에게 좋은 여자라는 인정을 받을 필요 없이, 은희가 화면을 채운다.
영화는 은희가 저지른 실수를 크게 벌해 교훈으로 만들지 않는다. 운 나쁜 하루가 그 사람의 인생 전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 앞에서 어떤 말을 했는지 꼬치꼬치 따지던 관객도, 시간이 흐르면 이 여자의 내일이 오늘보다는 덜 피곤했으면 하는 쪽으로 마음을 옮기게 된다.
그렇다고 문제를 해결해줄 멋진 연인 한 명이 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최악의 하루〉에서 반가운 것은 엉망인 만남을 겪고도 은희에게 다른 만남을 받아들일 여지가 남아 있다는 점이다. 속상한 일이 있었다고 하루의 남은 시간까지 전부 반납하지는 않는다. 사람에게 질렸다가도 다른 사람과 말을 섞어볼 수 있고, 그 사이에 잠깐 걸을 수도 있다. 연애의 성적표로는 엉망이었던 날이 한 편의 산책 영화로는 이렇게 사랑스러워진다.
◆ 운철이 자기 이야기를 설명하는 방식 — 내용뿐 아니라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보이게 하려는지 들어보자. 이별을 말하는 사람이 오히려 위로받고 싶어 할 때 대화가 어떻게 꼬이는지 드러난다. 이희준이 진지하게 연기할수록 왜 웃음이 나는지도 함께 보인다.
◆ 상대가 바뀔 때 달라지는 은희 — 현오, 운철, 료헤이와 만나는 장면을 이어서 보자. 같은 사람이 누군가 앞에서는 방어하고 다른 사람 앞에서는 편안해진다. 한예리가 말투와 태도를 바꾸는 정도를 살피면, 어느 얼굴이 진짜인지 판정하는 것보다 풍부하게 은희를 만날 수 있다.
◆ 대화 사이의 걸음 — 은희가 한 만남을 마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시간을 눈여겨보자. 걷는 장면이 빠지면 인물은 연애 사건 속에만 갇힌다. 골목과 산책로, 음악이 들어오는 동안 어떤 감정이 이어지고 잠시 가라앉는지 느껴볼 수 있다.
◆ 영어로 나누는 짧은 말들 — 은희와 료헤이가 얼마나 유창하게 말하는지보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방식에 주목하자. 뜻을 전하는 데 시간이 더 걸려도 그 시간이 반드시 불편하지만은 않다. 앞서 익숙한 언어로 나누던 실랑이와는 다른 대화의 속도가 생긴다.
◆ 〈더 테이블〉 (2016, 김종관) — 카페의 같은 탁자에서 서로 다른 관계의 사람들이 대화한다. 앉는 장소는 그대로인데 누가 만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 걸으며 달라지던 은희의 하루를 본 뒤, 작은 공간에서 말과 태도가 관계를 어떻게 바꾸는지 이어볼 만하다.
◆ 〈아무도 없는 곳〉 (2019, 김종관) — 서울에 돌아온 소설가가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 여기서 대화는 난처한 소동보다 기억과 상실에 가까워진다. 도시를 걷고 누군가를 만나는 비슷한 행동이 어떻게 전혀 다른 정서를 만들 수 있는지 비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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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