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의 우상에게서 답장이 왔다 | MovieLAB LAB

애니(로즈 번)는 남자친구 던컨(크리스 오다우드)에게서 한 음악가의 이야기를 지겹도록 들어왔다. 던컨에게 터커 크로우(에단 호크)의 음반은 듣고 또 들어도 새로운 의미가 나오는 …

남자친구의 우상에게서 답장이 왔다 | MovieLAB LAB

애니(로즈 번)는 남자친구 던컨(크리스 오다우드)에게서 한 음악가의 이야기를 지겹도록 들어왔다. 던컨에게 터커 크로우(에단 호크)의 음반은 듣고 또 들어도 새로운 의미가 나오는 걸작이다. 그의 소식을 모으는 팬 사이트도 운영한다. 함께 사는 애니에게는 그 열정이 남자친구와 나누는 대화를 독차지한 취미처럼 느껴진다.

〈줄리엣, 네이키드〉에서 두 사람의 의견이 부딪히는 계기는 터커의 미발표 데모 음반이다. 던컨이 반기는 음반을 애니는 좋게 듣지 못하고, 온라인에 냉정한 감상을 남긴다. 뜻밖에도 그 글에 공감한 사람은 터커 자신이다. 오랫동안 음악계를 떠나 있던 남자가 애니에게 메일을 보내온다. 열성 팬이 간절히 알고 싶었던 우상의 근황을, 정작 그 팬의 여자친구가 듣게 되는 셈이다.

혹평에서 시작된 대화

터커가 애니에게 다가가는 이유는 자신을 칭찬해주어서가 아니다. 애니는 음반을 걸작으로 받들지 않고, 터커도 과거의 음악에 관한 숭배를 편하게 여기지 않는다. 두 사람은 같은 작품을 두고 팬과 스타로 만날 때보다 솔직한 자리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때 던컨과 애니의 차이도 선명해진다. 던컨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사랑해온 음악의 가치를 지키는 일이다. 애니에게는 그 음악을 듣고 실제로 어떤 기분이었는지 말하는 일이 중요하다. 같은 음반을 함께 들어도 둘이 서로에게 기대하는 반응은 다르다. 의견이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좋아하는 음악은 대화를 열어주기보다 끝내버리는 핑계가 된다.

연출을 맡은 제시 페레츠는 던컨의 흥미로운 모순을 짚었다. 음악 속 감정에는 아주 섬세하게 반응하면서, 곁에 있는 사람의 감정에는 그만큼 반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가 음악에 쏟는 애정은 진심이다. 애니도 그만큼 관심을 받고 싶은 사람이지만, 던컨이 열심히 알아내려는 사정은 늘 터커의 것이다.

음반이 가득한 방에 서 있는 터커

터커는 자기 전설이 달갑지 않다

던컨이 오래 간직한 터커는 훌륭한 음반을 만든 뒤 사라진 음악가다. 그 빈 시간에는 팬들의 추측이 쌓일 수 있다. 반면 애니와 연락하는 터커에게는 그동안 살아온 구체적인 사정이 있다. 가족들과 잘 지내지 못했고, 아버지로서 미안한 일도 많다. 그가 음악을 만들지 않던 동안에도 생활은 계속되었다.

영화는 이 차이를 코미디의 재료로 삼는다. 팬이 엄숙하게 대하는 과거를 정작 당사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후회한다. 누가 음악을 더 잘 이해했는지 가려야만 웃을 수 있는 장면들이 아니다. 한 사람은 오래전 이야기를 지키려 하고, 다른 사람은 지금의 자기 사정을 이야기하려 한다. 둘의 대화가 어긋나는 이유가 사람에 대한 기대의 차이에 있기 때문이다.

에단 호크가 맡은 터커의 매력도 완벽한 스타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자기 잘못을 알고 있다는 태도와, 그렇다고 그 잘못을 말끔히 해결한 사람은 아니라는 처지가 함께 있다. 애니에게 그는 수수께끼 같은 은둔자가 아니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대가 되어간다. 상대의 근사한 이력보다 어설픈 현재를 알게 되는 과정에 이 로맨스의 온기가 있다.

그렇다고 던컨이 음악에서 받은 감동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음악을 만든 사람의 생활과 음악을 사랑한 사람의 경험은 완전히 같을 수 없다. 영화가 남기는 재미있는 어긋남이다. 노래는 누군가의 인생에 큰 의미가 되었는데, 정작 그 노래를 만든 사람은 자기 인생에서 무엇을 잘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자전거에 올라 거리를 바라보는 애니

오래된 연애 밖에서 꺼낸 이야기

작은 해변 도시에서 박물관을 맡아온 애니는 아이를 갖고 싶다. 혼자 아이를 키우는 길도 생각한다. 던컨과 오래 함께 살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가족을 꾸리는 일은 여전히 남아 있다. 새로운 연애 상대를 고르는 문제만으로는 애니의 고민을 다 설명할 수 없다.

이런 애니 앞에 나타난 터커는 여러 자녀를 두고도 좋은 아버지가 되지 못했다고 후회하는 사람이다. 한 사람은 부모가 될 기회를 바라고, 다른 사람은 부모로서 놓친 기회를 돌아본다. 가족 이야기를 나누면서 둘은 서로에게 부족했던 삶을 알게 된다. 터커가 애니의 바람을 간단히 이뤄줄 구원자처럼 보이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미 실패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자기 잘못을 숨기지 않고 말한다.

애니는 남자친구가 좋아하는 음악에 맞장구를 쳐주던 자리에서 벗어나, 자신의 미래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터커가 유명한 음악가라는 사실보다 이 대화가 더 중요해진다. 애니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묻고 듣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닉 혼비의 소설을 옮긴 이 영화는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과 연애의 곤란함을 함께 다룬다. 취향이 같으면 얼마나 좋은지보다, 취향이 다른 사람의 말을 얼마나 들을 수 있는지가 관계를 바꾼다. 애니가 남긴 감상은 누군가에게 허락을 받거나 대단한 변화를 기대하며 쓴 글이 아니었다. 자기가 들은 음악에 자기 말을 붙인 것뿐이다.

그 솔직한 혹평에서 뜻밖의 대화가 시작된다. 좋아하는 노래를 함께 듣는 장면만큼, 같은 노래를 다르게 듣고도 이야기를 계속하는 장면이 로맨틱할 수 있다. 이 영화가 주는 기분 좋은 놀라움은 그쪽에 있다.

감상 포인트

◆ 같은 음반 앞의 다른 기대 — 던컨과 애니가 음악에 대해 말할 때 상대에게 어떤 대답을 바라는지 들어보자. 감상이 다르다는 사실보다 그 차이를 대하는 태도가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준다. 음악 이야기가 언제부터 서로의 말을 듣기 어려운 대화가 되는지 살필 수 있다.

◆ 메일 속에 등장하는 현재의 삶 — 애니와 터커가 과거의 명성보다 지금의 사정을 나누는 과정을 보자. 직접 만나기 전에도 상대를 구체적으로 알아가는 시간이 있다. 유명한 사람에게 답장이 왔다는 사건이 관계로 발전하려면 무엇이 더 필요한지 드러난다.

◆ 팬의 기억과 음악가의 기억 — 던컨이 중요하게 여기는 일과 터커가 중요하게 여기는 일을 비교해보자. 같은 과거를 두고도 기억의 무게가 다르다. 이 차이는 팬을 조롱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 노래가 만든 사람과 듣는 사람에게 각기 다른 삶을 갖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 두 사람이 나누는 가족 이야기 — 아이를 갖고 싶은 애니와 아버지로서 후회가 많은 터커의 말을 함께 들어보자. 새 연애의 설렘 속에서도 애니가 원하는 삶과 터커가 감당할 수 있는 관계를 따로 생각하게 하는 대화다.

관련 작품

◆ 〈싱 스트리트〉 (2016, 존 카니) —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가가려고 시작한 밴드가 소년에게 다른 삶을 꿈꿀 기회를 준다. 〈줄리엣, 네이키드〉가 오래된 취향과 연애를 돌아보는 성인들을 다룬다면, 이 영화는 자기 취향과 목소리를 처음 만들어가는 청소년들을 따라간다. 음악을 통해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고 자기 이야기도 찾는 두 시기를 비교할 수 있다.

◆ 〈파이널 포트레이트〉 (2017, 스탠리 투치) — 유명한 화가의 모델이 된 남자가 그의 작업과 일상을 가까이서 겪는다. 존경해온 예술가를 실제로 만나면 작품만으로는 몰랐던 습관과 망설임도 알게 된다. 터커의 음반과 그의 현재 사이에 관심이 갔다면, 작품을 만든 사람 곁에 머무는 이 영화도 흥미롭게 이어진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