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여자애에게 잘 보이겠다고 밴드까지 만드는 소년을 어떻게 말릴까. 〈싱 스트리트〉는 말리는 대신 그에게 친구들과 근사한 노래를 준다. 코너(퍼디아 월시필로)는 라피나(루시…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잘 보이겠다고 밴드까지 만드는 소년을 어떻게 말릴까. 〈싱 스트리트〉는 말리는 대신 그에게 친구들과 근사한 노래를 준다. 코너(퍼디아 월시필로)는 라피나(루시 보인턴) 앞에서 밴드를 하고 있다고 허풍을 떨고, 뮤직비디오 출연 약속까지 받아낸다. 친구들을 모으는 것은 그다음이다. 순서는 엉망인데, 그렇게 시작한 밴드의 노래는 자꾸 듣고 싶어진다.
1980년대 더블린에서 코너의 하루는 별로 신나지 않는다. 집안 형편 때문에 학교를 옮겼고, 집에서는 부모의 불화가, 학교에서는 괴롭힘이 기다린다. 그런 소년이 누군가에게 멋져 보이고 싶어 한다. 이 영화가 사랑스러운 것은 그 마음을 철없는 허세라며 혼내지 않는 데 있다. 지금의 내가 썩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되고 싶은 모습을 먼저 흉내 내보는 것도 방법이지 않은가. 코너는 밴드를 꾸리며 그 낯선 모습에 조금씩 익숙해진다.
코너에게 음악을 가르쳐주는 형 브렌던(잭 레이너)은 꽤 까다로운 청중이다. 동생의 밴드가 남의 곡을 연주한 녹음을 들려주자, 칭찬은커녕 카세트테이프부터 뜯어버린다. 그 위에 다시 녹음하면 되지 않느냐는 동생의 반응이 형의 비장함을 머쓱하게 만든다. 음악 앞에서는 한없이 진지한 형과 테이프가 아까운 동생. 대단한 예술론이 오가는 듯하다가도 영락없는 형제의 대화다.
브렌던의 불만은 연주가 서툴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여자의 마음을 얻고 싶다면서 남의 노래만 따라 부를 거냐는 것이다. 이제 막 친구들을 모은 동생에게는 가혹한 주문이다. 그래도 형의 말에는 코너를 초보자 자리에 오래 두지 않겠다는 기세가 있다. 아직 곡을 쓸 줄 모른다고 하면 음악을 더 들려준다. 형의 취향과 잔소리는 동생이 써볼 첫 노래의 재료가 된다.
자기 곡을 들려주는 일에는 남의 곡을 연주할 때와는 다른 민망함이 따른다. 상대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지까지 드러나기 때문이다. 코너는 라피나에게 관심을 끌려고 음악을 내세웠지만, 곡을 쓰기 시작하면 자신의 관심을 감출 수 없다. 멋진 가수의 노래에 기대던 소년이 이제 자기 마음을 노래에 담아야 한다. 영화 속 자작곡들이 유난히 간지럽고 신나는 이유도 그 서툰 고백에 있다.
코너의 들뜬 마음을 곡으로 만들어주는 데는 에이먼(마크 맥케나)의 솜씨가 큰 몫을 한다. 여러 악기를 다루는 이 친구와 마주 앉으면서 코너는 멋진 밴드가 될 거라는 말 대신 실제 노래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연애 이야기만 따라가면 에이먼은 주인공을 도와주는 친구쯤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함께 곡을 만드는 장면에서는 두 사람이 모두 필요하다. 한 사람이 바라는 것을 다른 사람이 소리로 받아주는 순간들이 쌓인다.
‘Up’을 만드는 장면에서는 그 즐거움이 방 안을 가득 채운다. 밤에 코너와 에이먼이 기타와 피아노로 시작한 곡에, 카메라가 방을 돌아오는 동안 다른 멤버들의 연주가 더해진다. 어느새 날이 밝았고 소리도 풍성해졌다. 연습한 시간을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변화가 귀에 들어온다. 둘이 주고받던 노래에 친구들이 들어설 자리가 생긴 것이다.
카니는 관객에게 이 밴드가 얼마나 훌륭한지 설득하기 전에 곡부터 좋아하게 만든다. 악기가 하나씩 들어오는 순간을 기다리고, 방금 들은 후렴을 조금 더 듣고 싶게 한다. 그래서 코너가 다음에 무엇을 할지 궁금해지는 마음에는 그의 연애를 응원하는 마음과 다음 곡을 기다리는 마음이 섞인다. 라피나에게 잘 보이려던 계획이 여기까지 데려왔다면, 처음의 허풍도 꽤 쓸 만한 시작이었다.
새 음악을 발견하면 옷과 머리 모양까지 바뀐다. 소년들에게 좋아하는 가수는 귀로만 듣는 대상이 아니다. 저렇게 입고, 저렇게 서 있고, 저만큼 자신만만해지고 싶다. 〈싱 스트리트〉의 재미 중 하나는 취향을 찾는 일이 아직 자기 모습을 바꿔볼 여지와 붙어 있다는 데 있다. 하나의 멋에 정착하기 전에 이것저것 해보는 모습이 부산하고도 반갑다.
차려입은 아이들이 뮤직비디오를 찍는 곳은 화려한 스튜디오가 아니라 익숙한 골목이다. 옷은 한껏 야심찬데 배경은 그대로여서, 동경하던 가수와 지금의 소년 사이에 거리가 보인다. 영화는 그 간격을 부끄러운 것으로만 다루지 않는다. 있는 옷과 악기와 장소를 모아 어떻게든 화면을 만들어내는 모습에는 구경하는 사람까지 들뜨게 하는 힘이 있다. 완벽하게 준비한 뒤 시작했다면 얻지 못했을 활기다.
라피나도 그 서툰 제작에 함께한다. 코너가 완성된 공연을 펼치고 그녀가 객석에서 감탄하기만 하는 관계가 아니다. 카메라 앞에 서려면 같은 장소에 모여 시간을 보내야 한다. 처음에는 멋진 사람처럼 보이려고 건넨 제안이, 실제로 그 사람과 함께할 시간을 만든다. 코너의 연애가 얼마나 능숙한지보다 이 아이들이 함께 찍어낼 영상이 더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집과 학교의 사정이 답답한 채로 남아 있어도, 코너에게는 이제 먼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 곡을 쓰고 영상을 찍느라 바빠진다. 영화 속 음악이 기분 좋은 것은 좋은 노래가 흘러서이기도 하지만, 그 노래를 만드는 동안 아이들의 하루가 달라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견뎌야 할 일들만 있던 시간에 기다리는 약속이 들어선다.
〈싱 스트리트〉를 보고 있으면 첫사랑을 돌아보는 마음과 처음 무언가에 빠졌던 때를 떠올리는 마음이 함께 움직인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멋져 보이고 싶었던 마음, 새로 배운 것을 친구에게 당장 들려주고 싶었던 마음. 둘 다 남에게는 별일 아니어도 당사자에게는 하루를 통째로 차지할 만큼 큰 일이다. 이 영화의 노래는 그 호들갑을 받아줄 만큼 신난다.
그래서 코너에게 바라게 되는 것도 반드시 멋진 어른이 되는 일은 아니다. 좋아하는 곡을 들으면 또 무언가를 해보고 싶어지고, 어설픈 생각이라도 들고 찾아갈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밴드가 가져다준 가장 부러운 것은 그런 하루다. 라피나 앞에서 시작된 허세 덕분에, 코너는 자기 노래를 기다리는 사람들 곁에 서게 됐다.
◆ 형이 테이프를 듣는 순간 — 코너가 녹음한 곡에 브렌던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자. 음악을 대하는 형의 거창한 태도와 막 시작한 동생의 사정이 부딪친다. 형의 말에 전부 동의하지 않아도, 그 잔소리가 코너를 다음 시도로 밀어주는 과정은 따라갈 수 있다.
◆ ‘Up’에 더해지는 악기들 — 둘이 연주하던 소리에 다른 멤버의 악기가 들어올 때 귀를 기울여보자. 곡이 풍성해지는 것과 친구들이 한 밴드로 모이는 일이 함께 진행된다. 완성된 노래만 들을 때는 지나치기 쉬운 각자의 몫을 발견할 수 있다.
◆ 골목에서 찍는 뮤직비디오 — 차려입은 옷과 촬영 장소를 함께 보자. 소년들이 동경하는 모습과 당장 구할 수 있는 것들이 한 화면에 있다. 그 차이를 실패로만 보기보다, 부족한 조건 속에서도 무엇을 만들어내는지 살펴보면 촬영의 즐거움이 더 잘 전해진다.
◆ 새 노래 뒤의 새 모습 — 음악 취향이 달라질 때 머리와 옷차림도 어떻게 변하는지 보자. 유행을 정확히 알아야만 즐길 수 있는 장면은 아니다. 좋아하는 것을 발견한 뒤 자신도 조금 달라져보고 싶은 마음을 알아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 〈원스〉 (2007, 존 카니) — 더블린의 거리 음악가와 체코에서 온 여성이 만나 함께 곡을 연습하고 녹음한다. 같은 감독이 조금 더 어른이 된 음악가들의 관계를 다룬 영화다. 상대의 노래를 듣고 자기 연주를 보태는 동안 두 사람이 어떻게 가까워지는지 이어서 볼 만하다.
◆ 〈러덜리스〉 (2014, 윌리엄 H. 메이시) —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아들이 남긴 노래를 부르며 젊은 음악가와 밴드를 만든다. 〈싱 스트리트〉가 앞으로 만들 노래를 향해 간다면, 이 영화는 이미 남겨진 노래에서 새로운 관계를 시작한다. 함께 연주하는 즐거움이 각자의 사연과 어떻게 만나는지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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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