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많이 속였다 | MovieLAB LAB

옆에 있어주는 남자를 믿어보고 싶다. 그런데 그 남자가 곁에 머무는 이유부터 거짓이라면 어떨까. 〈무뢰한〉의 형사 정재곤(김남길)은 살인 용의자 박준길(박성웅)을 잡으려고 그의 …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많이 속였다 | MovieLAB LAB

옆에 있어주는 남자를 믿어보고 싶다. 그런데 그 남자가 곁에 머무는 이유부터 거짓이라면 어떨까. 〈무뢰한〉의 형사 정재곤(김남길)은 살인 용의자 박준길(박성웅)을 잡으려고 그의 애인 김혜경(전도연)에게 접근한다. 준길과 감방을 함께 썼던 사람인 척, 혜경이 일하는 술집의 영업상무로 들어간다. 혜경에게는 새로 알게 된 동료다. 관객에게는 누군가를 잡으러 온 경찰이다. 같은 남자를 보고 있어도 그가 건네는 말은 전혀 다르게 들린다.

재곤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사정은 더 복잡해진다. 가까이 있을 이유를 꾸며낸 사람이 정말 가까이 있고 싶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처음의 목적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승욱 감독은 두 사람의 감정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쉽게 판정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는다.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도 안심할 수 없어서, 이 멜로는 좀처럼 편해지지 않는다.

내 얘기를 잘 들어주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잠입 수사는 상대가 경계를 풀어야 가능하다. 재곤에게는 혜경의 생활 가까이 들어가야 할 업무상 이유가 있다. 함께 일하고 말을 듣는 일이 수사에 도움이 된다. 혜경이 마음을 열수록 재곤은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누군가와 친해지는 과정이 다른 누군가를 붙잡을 방법으로 쓰이는 셈이다.

관객은 재곤이 형사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안다. 그래서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 친밀함에 다른 용도가 있다는 사실도 떠올리게 된다. 혜경에게는 어렵게 꺼낸 사정일 수 있는 말이, 재곤에게는 단서가 될 수 있다. 진심을 말하는 사람과 그것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 사이의 차이다. 말투가 다정해졌다고 해서 그 차이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혜경에게는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애인이 있다. 준길을 찾아내려는 형사와 준길의 연락을 기다리는 여자는 같은 사람을 생각하면서도 서로 다른 일을 원한다. 재곤이 곁에 머물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 사람이라는 사실도 지워지지 않는다. 이 관계를 두 남자 사이에서 여자가 누구를 고를 것인가로만 보면, 선택하기 전에 알아야 할 정보를 한쪽이 감추고 있다는 문제가 빠진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상대를 안다는 말은 조심스럽다. 재곤은 혜경의 약한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처음에 혜경은 그가 누구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관객이 남자의 동요를 본다고 해서 여자가 같은 사실을 아는 것도 아니다. 두 배우의 표정을 번갈아 살피게 되는 것은 감정의 크기를 재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지금 이 사람은 어디까지 알고 마음을 내주고 있는지 궁금해서다.

울다가도 손님을 배웅해야 하는 사람

혜경에게 술집은 하루를 버티는 일터다. 슬픈 일이 있다고 일을 잠시 멈출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오승욱은 울던 여자가 손님이 떠나자 눈물을 거두고 웃으며 배웅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모습을 영화에 넣었다고 밝혔다. 감정이 바뀐 것이 아니라 손님 앞에 내놓을 얼굴을 바꾼 것이다. 울음이 끝났다고 슬픔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이런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표정 하나로 마음을 다 알았다고 말하기 어려워진다. 혜경은 거칠게 말을 할 수 있고, 손님 앞에서는 웃을 수 있고, 아무도 보지 않았으면 하는 순간에는 울 수도 있다. 어느 하나가 진짜이고 나머지는 전부 가면이라고 가를 필요는 없다. 같은 사람이 상대와 상황에 맞춰 자신을 추스르는 모습이다. 전도연은 그 변화 사이에 사람이 계속 남아 있게 한다.

재곤은 그 틈을 가까이에서 본다. 수사의 실마리였던 여자가 자기 앞에서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 된다. 관객에게도 혜경은 용의자의 애인이라는 설명에서 조금씩 멀어진다.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지만큼이나, 기다리는 동안 어떻게 먹고살고 어떤 얼굴로 사람을 대하는지가 중요해진다. 사건의 결말을 빨리 알고 싶은 마음 옆에 이 사람의 오늘이 조금 덜 힘들었으면 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 마음이 생겼을 때도 영화는 혜경을 누군가가 구해주어야 할 사람으로만 두지 않는다. 감독은 남자들 이야기의 장식처럼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여성 인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혜경의 생활이 보일수록 재곤의 망설임을 보는 기준도 달라진다. 남자가 얼마나 괴로운지만 살필 수는 없다. 그가 망설이며 곁에 머무는 동안 상대에게는 어떤 기대가 생기고 있는지도 보게 된다.

자동차 창 너머로 나란히 앉은 남녀가 보이고 유리에 바깥 풍경이 비친다

가까이 보여줄수록 더 믿기 어려운 얼굴

재곤이 혜경을 데려다준 뒤 도청기를 귀에 끼우는 모습을 카메라가 가까이 잡는다. 방금까지 사람을 대하던 남자가 수사 장비를 쓰고 있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는 행동은 같아 보여도 상대가 알고 말을 건네는 대화와 몰래 듣는 일은 다르다. 여자의 생활에 가까워진 만큼 형사가 얻는 정보도 늘어난다. 두 사람의 친밀함을 따라가던 시선이 이 장비 앞에서 잠깐 멈칫한다.

오승욱은 클로즈업을 아껴 썼다고 설명했다. 감정을 너무 강하게 요구하는 화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영화가 이 순간 재곤의 얼굴을 크게 보여준다. 얼굴이 가까워진다고 그 사람이 더 믿음직해지는 것은 아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렷하게 보일수록 우리가 바라던 관계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도 더 잘 보일 수 있다.

재곤의 얼굴에서 동요가 보이면 그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하고 싶어진다. 혜경의 얼굴로 시선을 옮기면, 이 여자는 자신에게 다가온 사람을 얼마나 믿고 있을지 걱정하게 된다. 두 사람을 함께 보고도 같은 편에서 응원하기 어려운 이유다. 재곤이 무엇을 느끼는지보다, 그 감정을 안고 혜경을 어떻게 대할지가 더 궁금해진다.

〈무뢰한〉은 쉽게 응원할 수 있는 연애를 주지는 않는다. 대신 같은 말을 듣고도 믿고 싶은 쪽으로 조금 더 기울어지는 사람의 마음을 오래 보게 한다. 그 마음이 어리석다고 말하기는 쉽다. 곁에 남아주는 사람이 필요했던 시간을 생각하면, 그렇게 빨리 평가할 수만은 없다. 혜경이 누군가의 거짓말 속에서 잠깐 기대를 품었다는 사실이 남는다. 그 기대가 웃음거리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까지 함께 남는다.

감상 포인트

◆ 재곤이 자신을 소개하는 방식 — 혜경이 알고 있는 재곤과 관객이 아는 재곤의 차이를 기억해두자. 같은 말이나 행동도 정체를 아는지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혜경이 마음을 여는 순간을 어리석음으로만 판단하기 전에, 그에게 주어지지 않은 정보가 무엇인지 살필 수 있다.

◆ 손님 앞에서 바뀌는 얼굴 — 혜경이 자신의 감정과 일터에서 해야 할 행동을 어떻게 함께 감당하는지 보자. 웃는다고 괜찮은 것은 아니고 거칠게 말한다고 상처받지 않는 것도 아니다. 표정이 달라지는 사이에도 이어지는 한 사람의 하루에 관심이 간다.

◆ 귀에 끼우는 도청기 — 재곤이 혜경을 데려다준 뒤 무엇을 하는지 눈여겨보자. 곁에 머물며 듣던 말이 수사 정보가 되는 순간이다. 가까운 얼굴을 보여주는 화면이 언제나 친밀함이나 신뢰를 높여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느낄 수 있다.

◆ 같은 사람을 기다리는 서로 다른 이유 — 혜경에게 준길은 돌아오기를 바라는 애인이고, 재곤에게는 붙잡아야 할 용의자다. 준길의 소식을 듣거나 연락을 기다릴 때 두 사람이 무엇을 기대하는지 살펴보자. 같은 자리에 함께 있어도 서로 바라는 다음 장면은 다를 수 있다.

관련 작품

◆ 〈헤어질 결심〉 (2022, 박찬욱) — 사건을 조사하는 형사와 의심받는 여자가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상대를 잘 살피는 일이 수사인지 애정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순간들을 비교해볼 만하다. 다만 정체를 감추고 접근하는 〈무뢰한〉과 달리, 처음부터 드러난 두 사람의 처지가 대화에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 보자.

◆ 〈버닝〉 (2018, 이창동) — 한 사람에게 끌리는 마음과 그 사람의 이야기를 믿는 일이 복잡하게 얽힌다. 내가 아는 정보가 상대의 삶을 얼마나 설명할 수 있는지 살펴보게 된다. 인물의 마음을 단정하는 데 앞서, 관객에게 어떤 사실이 보이고 무엇이 남겨지는지 관심을 이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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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