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뢰한〉을 준비하던 오승욱 감독은 이야기의 배경을 강남으로 바꾸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이 살아보지 않은 부유한 사람들의 생활과 말을 안다고 할 수 없…
〈무뢰한〉을 준비하던 오승욱 감독은 이야기의 배경을 강남으로 바꾸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이 살아보지 않은 부유한 사람들의 생활과 말을 안다고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어릴 때부터 보고 겪어온 세계에 남았다. 이 결정은 영화 속 형사와 술집 여자가 어느 동네에 사는지만 정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을 감독 자신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가의 문제이기도 했다.
오승욱이 찾아다닌 것은 오래되어 쇠락한 장소와 개발 중인 장소였다. 낡은 동네가 새로 바뀌는 도시를 한 영화 안에 담으려 했다. 정체를 숨기고 수사하는 형사 정재곤(김남길)과 그를 곁에 두게 되는 김혜경(전도연)의 관계는, 그렇게 찾아낸 공간에서 시작한다. 서로에게 하는 말이 어디까지 진심인지 알기 어려운 두 사람을 찍으면서도, 그들이 딛고 있는 땅만큼은 감독이 아는 곳이어야 했다.
장소를 정하는 일은 의도대로만 되지 않았다. 점찍어둔 아파트가 철거되거나 촬영 허가를 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영화에 담으려던 변화가 촬영 준비에도 영향을 준 셈이다. 오승욱에게 도시의 쇠락은 인물 뒤에 세워둘 분위기만은 아니었다. 사라지는 건물과 개발되는 땅을 함께 보여주려면, 실제로 그 공간이 남아 있는 때를 찾아야 했다.
낡은 장소와 새로 바뀌는 장소를 같이 보는 일은 인물을 이해하는 데도 다른 단서를 준다. 재곤이 누군가를 뒤쫓으며 지나가는 곳을 수사 동선으로만 보면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가 먼저 궁금하다. 그 주변을 함께 보면, 이 사람이 어떤 도시를 통과하며 살아가는지도 눈에 들어온다. 범인을 잡는 목적과 그 목적에 포함되지 않는 풍경이 한 화면에 머무는 것이다. 오승욱이 장소에 공을 들인 이유를 여기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다고 익숙한 동네를 있는 그대로 옮기는 데 그치지는 않았다. 촬영감독은 밤에는 노란 기운을 품은 붉은색을, 다른 장면들에는 푸른색을 강하게 쓰자고 제안했다. 오승욱은 동의했고, 푸른색에도 검은 기운이 섞이기를 원했다. 두 사람은 거칠고 어두운 화면을 만들기로 뜻을 모았다. 장소를 고를 때의 구체성과 색을 조절할 때의 과감함이 함께 간다.
이 색의 선택은 밤과 낮을 단순히 밝기로 구분하지 않게 한다. 붉은빛과 푸른빛 아래에서는 같은 사람의 얼굴도 다르게 보인다. 인물의 말을 따라가다가 얼굴과 주변의 빛으로 시선을 옮기면, 대사가 알려주는 정보 외에 그 자리에 머무는 감각이 생긴다. 어둡다는 말로 한데 묶기 쉬운 화면에도 서로 다른 온도와 표면이 있다.
혜경을 연기하는 전도연은 자신의 배역을 준비하는 데서 더 나아가 상대 배우를 찾는 과정에도 참여했다. 원래 출연하려던 배우가 하차한 뒤, 감독과 함께 캐스팅 회의에 들어갔다. 김남길은 국수란 프로듀서가 제안한 배우였다. 오승욱은 그의 출연작과 사진을 살펴봤고, 특히 입대할 때 찍힌 사진의 얼굴에 눈길이 갔다고 했다. 이후 만남에서는 김남길이 각본을 어떻게 읽었는지도 확인했다.
배우의 이름을 정하기 전에 얼굴과 해석을 함께 보는 과정이 있었다. 영화 속 재곤은 형사이면서 혜경 앞에서는 다른 사람처럼 행동한다. 보는 이가 그의 말을 그대로 믿기 어려운 역할이다. 이런 인물을 맡을 사람에게는 무엇을 말하는지뿐 아니라, 말을 하지 않을 때 무엇이 남는지도 중요해진다. 사진에서 받은 인상은 그 가능성을 탐색하는 출발점이었고, 배우와 각본을 이야기하는 자리는 그 인상을 실제 역할과 맞춰보는 과정이었다.
혜경에 대해서도 감독과 전도연은 처음부터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오승욱은 그녀가 남자를 구원하기 위해 존재하는 인물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재곤이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되는지만으로 혜경의 역할을 정하면, 정작 그녀가 그 관계에서 무엇을 기대하는지는 뒤로 밀린다. 상대 배우를 함께 고르고 각본을 논의한 전도연의 참여를 떠올리면, 혜경이 재곤에게 끼치는 영향만큼 혜경 자신의 처지도 중요했던 제작 과정을 읽을 수 있다.
오승욱은 훗날 〈무뢰한〉의 첫 촬영을 기억하며, 혜경이 출근하려고 걸어 나오는 장면을 찍으면서 자신이 쓴 글이 실제 눈앞에 나타나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감독이 머릿속에서 만든 여성이 배우의 걸음으로 들어온 순간이다. 촬영이 시작되면 걸음의 속도와 몸의 무게, 옷이 움직이는 모양까지 한 사람이 가져온다. 글로 상상한 인물과 카메라 앞에 있는 인물을 맞춰가는 일이 그때부터 이어진다.
이런 협업은 〈리볼버〉에서도 다른 형태로 계속됐다. 오승욱은 앤디를 맡은 지창욱의 얼굴과 몸짓에서 예상했던 것 이상의 표현을 발견했다고 회고했다. 배우가 각본에 있는 분량보다 인물을 더 크게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작은 역할을 크게 쓰겠다고 먼저 결정한 뒤 장면을 늘리는 것과는 출발점이 다르다. 현장에서 배우가 보여준 것에 감독이 반응한 경우다.
몸짓은 인물이 자기 자신을 얼마나 크게 보이게 하려는지도 드러낼 수 있다. 대사를 읽을 때에는 같은 문장이라도, 어떤 자세로 상대 앞에 서서 말하느냐에 따라 허세가 되거나 위협이 된다. 배우의 움직임에 주목한다는 것은 말의 뜻을 그대로 몸으로 번역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 일이다. 말과 몸이 어긋나는 순간에는 각본만 읽었을 때 예상하지 못한 인상이 생긴다.
오승욱은 편집에서도 배우의 감정을 다시 확인했다. 〈무뢰한〉을 두 번째로 편집하면서 두 주인공의 감정이 영화를 이끌어간다는 생각이 분명해졌다고 했다. 촬영 전에 찾아놓은 장소와 정해놓은 색이 있어도, 마지막에 장면을 이어 붙일 때에는 그곳을 지나온 사람의 변화가 기준이 된다. 어느 얼굴 다음에 어떤 얼굴을 놓을지 결정하는 편집실에서, 감독은 이미 촬영한 배우의 연기를 다시 읽었다.
◆ 인물 주변의 건물 보기. 재곤의 이동을 따라가면서 낡은 건물과 개발 중인 공간이 화면에 어떻게 들어오는지 보자. 사건을 쫓는 시선을 잠시 주변으로 옮기면 영화가 담은 도시의 다른 시간이 눈에 들어온다.
◆ 붉은빛과 푸른빛 비교하기. 밤의 붉은 기운과 다른 장면의 푸른 기운을 살피자. 인물의 얼굴과 옷, 벽이 각각 빛을 받는 모습까지 보면 어두운 화면 안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 재곤이 듣는 얼굴 보기. 그가 말할 때와 혜경의 말을 듣고 있을 때 표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하자. 내놓는 말과 잠깐 남는 반응 사이에서 인물을 다르게 읽게 되는 순간을 찾아볼 만하다.
◆ 〈리볼버〉에서 앤디의 다리 보기. 휠체어에 앉아 다리를 떠는 움직임과 그가 내놓는 말의 인상을 비교해보자. 몸의 작은 움직임을 함께 볼 때 인물이 얼마나 자신 있어 보이는지 다르게 느낄 수 있다.
◆ 〈리볼버〉(2024, 오승욱) — 약속한 대가를 받으러 나선 인물이 여러 사람을 만나는 이야기. 서로의 속셈을 말로 다 밝히지 않는 장면에서 배우의 자세와 몸짓이 어떤 인상을 더하는지 이어서 볼 만하다.
◆ 〈헤어질 결심〉(2022, 박찬욱) — 수사하는 사람과 수사받는 사람 사이에서 관계가 달라진다. 직업 때문에 가까워진 두 사람이 서로를 지켜보는 방식과, 감정이 수사에 끼어드는 순간을 비교할 수 있다.
이 글은 AI의 도움을 받아 자료를 조사하고 작성했으며, 별도의 편집 검수를 거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