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아름답고 무서운 지브리의 숲 | MovieLAB LAB

미야자키 하야오의 숲에 들어가면 마음이 편안해질 것 같지만, 〈모노노케 히메〉를 떠올리면 선뜻 발을 들이기 어렵다. 인간을 향해 분노하는 짐승들이 있고, 살기 위해 숲을 파괴하는…

이토록 아름답고 무서운 지브리의 숲 | MovieLAB LAB

미야자키 하야오의 숲에 들어가면 마음이 편안해질 것 같지만, 〈모노노케 히메〉를 떠올리면 선뜻 발을 들이기 어렵다. 인간을 향해 분노하는 짐승들이 있고, 살기 위해 숲을 파괴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편도 다른 쪽을 위해 순순히 물러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숲을 더 보고 싶다. 아름다움과 두려움이 한곳에 있기 때문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의 감독 레오 파비에도 그 숲에 매혹되었다. 그는 미야자키의 영화 장면과 오래된 방송 자료, 함께 일한 사람들의 증언을 모아 이 세계를 다시 들여다본다. 전작을 줄줄이 소개하기보다, 왜 이 감독의 자연에는 이토록 많은 생명과 위험이 함께 있는지 묻는 다큐멘터리다. 친숙한 그림을 보러 들어갔다가 그 그림을 만든 사람의 걱정과 분노도 만나게 된다.

풍경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애니메이션에서는 바람에 흔들리는 풀 한 포기도 누군가 움직이게 해야 한다. 무엇이 얼마나 흔들릴지, 언제 멈출지까지 정해야 화면이 살아난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미야자키가 그림의 움직임과 리듬을 고치는 작업 모습이 담겨 있다. 완성된 영화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생명감이, 그렇게 세밀하게 살피고 손보는 노동에서 나온다.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부분을 배경이라고 부르면 그 역할이 작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숲의 움직임이 인물의 행동만큼 눈에 들어온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사람이 오기 전부터 이곳에 다른 생명이 있었고, 사람이 떠나도 계속 살아갈 것처럼 보인다. 미야자키의 그림을 다시 볼 때 눈길을 조금 옆으로 옮겨볼 만한 이유다. 주인공이 무엇을 하는지 따라가는 동안에도 주변에서는 많은 일이 벌어진다.

〈벼랑 위의 포뇨〉의 거대한 파도처럼, 자연의 움직임은 감탄과 불안을 동시에 일으킨다. 역동적인 그림을 보는 즐거움이 크지만 그 물결이 사람 사는 곳으로 밀려온다는 사실도 안다. 이 두 감정을 함께 느끼게 하는 것이 애니메이션의 힘이다. 위험을 설명하는 말이 없어도, 화면을 채운 움직임만으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크기를 훌쩍 넘어선 세계를 느끼게 한다.

풀과 나무 사이의 미야자키 하야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무엇을 겪었을까

다큐멘터리는 작품 속 자연을 미야자키가 살아온 시대와 함께 읽는다. 전쟁 중 태어나 공습을 겪은 어린 시절, 급격한 개발과 환경 파괴를 목격한 세월이 있다. 그의 영화에서 아름다운 장소가 위협받는 모습은 현실과 멀리 떨어진 상상만은 아니다. 영화 밖에서 보아온 것이 그림 속 걱정에도 남아 있다.

〈이웃집 토토로〉의 두 자매가 시골로 이사하는 데에는 어머니의 투병이라는 사정이 있다. 미야자키 역시 어린 시절 어머니가 아파 형제와 함께 시골로 옮겨 살았다. 그 경험을 알고 두 자매의 시간을 떠올리면, 들판과 숲에서 노는 즐거움 곁에 어머니를 기다리는 마음도 있다. 아이들에게 낯선 곳은 신기한 생물을 만날 수 있는 장소이자, 가족의 걱정을 안고 적응해야 하는 새집이다. 다큐멘터리는 밝은 장면에 남아 있던 그런 사정을 다시 짚어준다.

가족과 동료의 말도 그 일을 돕는다. 아들인 미야자키 고로, 오랫동안 영화를 함께 만든 제작자 스즈키 도시오 등은 각자 다른 자리에서 감독을 기억한다. 가까운 사람의 증언과 생물학·철학의 관점이 한 다큐멘터리에 모인다. 한 사람을 칭찬하는 말만 이어 듣는 대신, 그가 만든 세계가 사람마다 어떻게 읽히는지 비교할 수 있다.

책상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미야자키 하야오

아름다운 그림을 계속 그리는 이유

파비에는 이 영화를 위해 미야자키를 새로 인터뷰하지 못했다. 대신 기존 방송 기록과 글, 작품을 오래 살폈다. 그래서 관객이 만나는 미야자키의 말은 서로 다른 시기에 남겨진 말들이다. 영화 장면도 그때그때 만들어진 기록으로 보게 된다. 한때의 발언 하나로 감독을 규정하기보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거듭 붙들고 있던 관심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는 구성이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눈여겨볼 만한 것은 세상을 걱정하는 말과 그림을 만드는 손이 함께 있다는 점이다. 전쟁과 파괴를 생각하면 아이들에게 밝은 미래를 약속하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감독은 계속 움직임을 살피고 그림을 고친다. 살아 있는 것들을 더 잘 그리려는 그 집요함에는, 세상이 어떻게 될지에 대한 전망과 별개로 눈앞의 생명을 소홀히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느껴진다.

이렇게 그림을 고치는 손을 보고 나면 숲의 아름다움도 조금 달리 느껴진다. 미야자키는 인간이 겁낼 만한 힘까지 살아 움직이도록 그린다. 그 안에서 인물이 다치고 길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계속 숲에 머물고 싶다. 사람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세계를 이토록 자세히, 매혹적으로 그려놓았기 때문이다. 그 그림을 사랑해온 마음 속에는 편안한 곳으로 도망가고 싶은 소망뿐 아니라, 나와 다른 생명을 더 만나보고 싶은 호기심도 있었겠다.

감상 포인트

◆ 움직임을 고치는 손 — 작업 자료에서 미야자키가 그림을 어떻게 검토하는지 보자. 한 장의 예쁜 이미지와 움직이는 장면 사이에는 속도와 리듬을 정하는 과정이 있다. 완성된 영화의 생명감이 어떤 세심함에서 오는지 생각하며 보면 작업실 모습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 인물 주변의 생명 — 삽입된 애니메이션 장면에서 사람 외에 무엇이 움직이고 있는지 찾아보자. 풀과 물, 동물의 움직임에 주의를 돌리면 숲이나 바다가 인물을 위해 마련된 장소 이상으로 보인다. 평소 줄거리를 따라가느라 지나쳤던 화면을 다시 볼 기회다.

◆ 말과 작품이 만나는 대목 — 감독의 생애와 발언에 관한 설명 뒤에 영화 장면을 볼 때, 전과 달리 눈에 들어오는 부분을 살펴보자. 전쟁이나 자연에 대한 생각이 장면을 해석할 단서는 된다. 다만 한 장면이 일대일로 어떤 사건을 재현한 것이라고 성급히 연결할 필요는 없다.

◆ 서로 다른 사람의 미야자키 — 가족, 제작자, 연구자가 감독의 어떤 면에 주목하는지 비교해보자. 함께 생활하거나 일해본 사람이 아는 모습과 작품을 오래 연구한 사람이 읽는 모습에는 차이가 있다. 그 여러 설명 사이에서 자신이 좋아했던 영화의 자리를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관련 작품

◆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 (2000, 아녜스 바르다) — 수확 뒤 남겨진 농작물과 도시의 버려진 물건을 줍는 사람들을 만난다. 바르다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무엇을 쓸모 있다고 보는지, 무엇을 쉽게 버리는지 돌아본다. 거대한 환경 문제를 말하기 전에 가까운 사물과 생명을 자세히 보는 태도로 이어볼 수 있다.

◆ 〈히치콕 트뤼포〉 (2015, 켄트 존스) — 감독의 말과 영화 장면을 함께 보며 익숙한 작품을 다시 읽게 하는 다큐멘터리다. 한 사람이 영화를 만드는 데 품었던 생각이 화면에서 어떻게 실현되는지 살핀다. 서로 다른 감독의 작업을 비교하며,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장면의 선택들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