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를 만나지 않고 미야자키에게 다가가는 법 | MovieLAB LAB

레오 파비에는 미야자키 하야오를 인터뷰하지 못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독의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정작 그에게 새 질문을 던질 수 없었다. 대신 남아 있는 방송 자료를 보고, 그…

미야자키를 만나지 않고 미야자키에게 다가가는 법 | MovieLAB LAB

레오 파비에는 미야자키 하야오를 인터뷰하지 못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독의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정작 그에게 새 질문을 던질 수 없었다. 대신 남아 있는 방송 자료를 보고, 그가 쓴 책과 글을 읽고, 영화를 다시 보았다. 파비에는 인터뷰할 때보다 혼자 글을 쓸 때 미야자키의 생각이 더 잘 드러난다고 느꼈다.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은 그렇게 다른 길로 한 사람에게 다가간 영화다.

파비에는 처음부터 미야자키를 연구하던 전문가는 아니었다. 시각예술을 공부했고, 단편영화와 다큐멘터리, 팟캐스트 등 여러 형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왔다. 미야자키는 그가 십 대 때 만난 감독이었다. 〈모노노케 히메〉를 보며 느낀 놀라움은, 훗날 자신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된 뒤에도 남아 있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 — 풀숲에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

좋아하는 영화를 다시 묻는 일

파비에가 기억한 것은 〈모노노케 히메〉의 숲이었다. 아름답지만 평온하기만 한 곳은 아니었다. 생명이 자라는 한편 다른 생명은 죽고, 숲은 사람에게 위협이 되기도 한다. 그는 이 복잡한 자연의 모습에 매료됐다. 다시 본다고 처음의 의문이 모두 풀리는 영화도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 파비에는 자기 아이들에게 〈이웃집 토토로〉를 보여주는 부모가 됐다. 어린 시절 좋아했던 영화를 다음 세대와 함께 보는 일에는 반가움이 있다. 하지만 그가 다큐멘터리에서 하고 싶었던 일은 그 반가움에 머무르지 않았다. 미야자키의 삶, 그가 겪은 시대, 영화 속 세계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알아보려 했다.

이 질문을 따라가면 작품 목록의 순서도 절대적인 기준이 되지 않는다. 첫 영화를 소개한 뒤 다음 흥행작으로 넘어가기보다, 한 장면에 오래 머물 이유가 생긴다. 숲이 왜 두려운 곳으로도 그려지는지,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 안에 왜 전쟁과 파괴가 들어오는지 묻게 되는 것이다. 파비에는 좋아하는 작품을 더 잘 소개하기 위해, 자신이 좋아했던 까닭부터 다시 살폈다.

자료를 보여주려면 먼저 문을 열어야 했다

이런 영화를 만들겠다는 계획과 실제로 작품의 장면을 쓸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제작자 로이크 부셰에 따르면, 처음 지브리의 유럽 권리 담당자에게 연락했을 때 돌아온 답은 부정적이었다. 스튜디오가 작품의 사용을 엄격하게 관리하므로 기획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파비에와 제작진은 기획을 발전시켜 지브리에 보냈고, 도쿄에서도 직접 설명했다. 결국 영화의 장면들을 활용할 수 있는 협의를 이끌어냈다. 제작진은 미야자키의 작품을 새롭게 해석하려는 구체적인 기획을 제시했다. 어떤 장면을 왜 필요한 자료로 삼는지 설명하는 일이 사용 협의에 앞서 있었다.

다큐멘터리에서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누군가 숲을 어떻게 그렸는지 설명할 때, 관객도 그 숲의 움직임을 보고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해설자의 말에 동의하기 전에 화면에서 무엇을 느끼는지 스스로 살필 여지가 생긴다. 작품에 대한 주장을 작품 자체와 나란히 놓는 방식이다.

파비에는 미야자키의 아들이자 감독인 미야자키 고로, 오랜 제작 동료인 스즈키 토시오의 이야기도 담았다. 함께 살아온 사람과 함께 영화를 만든 사람은 같은 감독을 서로 다른 자리에서 기억한다. 여기에 생물학자와 철학자, 인류학자의 해석을 보탰다. 개인적인 기억만으로 작품을 설명하거나, 작품만 보고 사람의 모든 생각을 추측하지 않기 위한 여러 입구가 생겼다.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 — 책상 앞의 미야자키 하야오

그림을 고치는 사람에게 돌아가다

학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미야자키의 영화가 거대한 사상의 사례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때 그림을 고치고 움직임을 조절하는 미야자키의 모습은 관객을 작업 현장으로 돌려놓는다. 자연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그가 무엇을 그리는가뿐 아니라, 그 그림을 어떻게 움직이게 하는가에도 들어 있다.

파비에는 애니메이션 속 식물과 생물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을 이야기했다. 그 움직임을 논리적인 설명으로 모두 바꿀 필요는 없다. 나무를 생명체로 생각해야 한다는 말을 듣는 것과, 화면에서 나무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끼는 경험은 다르다. 다큐멘터리는 그 둘을 함께 제공할 수 있다.

파비에는 미야자키가 이야기의 결말과 스토리보드를 모두 정하기 전에도 제작을 시작한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감독 자신도 답을 찾지 못한 채 작업을 이어가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세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선명하게 말하는 사람도, 다음 장면을 어떻게 만들지는 다시 고민해야 한다. 그림을 고치는 손길과 그런 망설임을 함께 보면 미야자키의 작업이 더 가까워진다.

파비에가 원한 것은 유명한 천재의 홍보 영상이 아니었다. 그는 애니메이션을 보며 매료됐던 관객에서, 그 장면들이 만들어진 과정을 묻는 감독이 됐다. 숲을 아름답게 그렸다는 찬사만으로는 생략되는 시간이 있다. 움직임을 조정하고, 아직 찾지 못한 결말을 고민하며 다음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다. 파비에는 좋아하는 영화의 장면들과 함께, 그 장면을 만들던 사람의 작업도 오래 보게 한다.

감상 포인트

◆ 과거의 목소리를 듣는 방식 — 자료 화면 속 미야자키의 말과, 지금 그를 회고하는 사람들의 말은 나온 시점이 다르다. 영화가 어떤 발언 옆에 어떤 장면을 놓았는지 살펴보면 한 사람을 설명하는 방식이 보인다. 기록을 모으는 일과 기록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일의 차이도 여기서 생긴다.

◆ 해설과 함께 돌아오는 애니메이션 — 설명을 들은 뒤 익숙한 장면이 전과 다르게 느껴지는 순간을 찾아보자. 반대로 말보다 화면의 움직임이 먼저 와닿을 수도 있다. 직접 장면을 볼 수 있기에 해설과 조금 다른 감상을 품을 여지도 있다.

◆ 누가 기억하는 미야자키인가 — 가족과 제작 동료, 연구자는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각각 무엇을 보았고 무엇에 관심을 두는지 구별하면 여러 목소리가 섞여 한 사람을 만드는 과정을 따라가기 쉽다. 누구 한 사람의 설명이 미야자키의 전부가 되지는 않는다.

◆ 그림을 고치는 손 — 이미 완성된 영화의 명성에서 잠시 벗어나, 움직임을 다시 조정하는 작업에 눈을 두자. 미야자키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큰 주제뿐 아니라 장면 속 작은 동작이기도 하다. 파비에의 해석을 듣다가 애니메이션 그 자체의 즐거움으로 돌아가는 대목이다.

관련 작품

◆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 (2024, 레오 파비에) — 자료 영상, 작품의 장면, 여러 사람의 증언으로 한 창작자에게 접근한다. 미야자키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동시에, 파비에가 어떤 자료를 골라 연결했는지 살피면 인물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선택도 보인다.

◆ 〈모노노케 히메〉 (1997, 미야자키 하야오) — 파비에가 십 대 때 강한 인상을 받은 작품이다. 숲을 지키려는 사람과 숲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충돌을 따라가면서, 아름다움과 두려움이 한 풍경 안에 있다는 점에 머물러보자. 다큐멘터리의 질문을 직접 장면과 만나게 하는 다음 영화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