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불길한, 어느 가족의 밤 | MovieLAB LAB

아버지가 밤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 어머니는 고추를 널러 나간다. 〈초록밤〉의 아버지(이태훈)는 야간 경비원이고, 어머니(김민경)는 집안일을 도맡는다. 한 사람의 일이 끝날 때 다…

아름답고 불길한, 어느 가족의 밤 | MovieLAB LAB

아버지가 밤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 어머니는 고추를 널러 나간다. 〈초록밤〉의 아버지(이태훈)는 야간 경비원이고, 어머니(김민경)는 집안일을 도맡는다. 한 사람의 일이 끝날 때 다른 사람의 일이 시작된다. 카메라는 아버지가 문을 열고 들어갈 때까지 기다린다. 빨리 지나갈 법한 귀가 장면이 길어지자, 집에 들어가는 몸이 얼마나 지쳤을지 생각하게 된다.

아들 원형(강길우)도 장애인 활동지원사로 일하며 부모와 함께 산다. 윤서진 감독은 이 가족의 하루에 할아버지의 부고를 들여보낸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도 먹고 자고 돈을 써야 하는 사정은 멈추지 않는다. 영화는 가족을 대단한 비밀로 묶기보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도 좀처럼 쉬는 것 같지 않은 생활 속에 놓아둔다. 여기에 뜻밖의 초록빛이 스며들면서, 낯익은 집의 풍경이 서늘해진다.

같은 집에서 다른 하루를 끝내는 사람들

야간 경비원인 아버지에게 밤은 남들이 잠든 동안 일하는 시간이다. 남을 돌보는 원형에게도 자기 집으로 돌아온 뒤에야 혼자 쉴 시간이 생긴다. 한 가족이라고 하루의 속도까지 같지는 않다. 귀가하는 사람과 밖으로 나가는 사람을 한 화면에서 기다리게 하는 초반 귀가 장면에는 이런 차이가 있다. 가족을 소개하는 말보다 출입하는 몸이 먼저 그들의 생활을 알려준다.

집의 모습도 함께 눈에 들어온다. 넓게 잡힌 화면에서는 인물이 움직여도 뒤에 놓인 가구와 벽이 남는다. 카메라가 얼굴을 따라 빠르게 옮겨 다니지 않으니, 누가 무슨 표정을 짓는지 외에도 볼 것이 많아진다. 방 안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자리, 움직임이 멎은 뒤의 빈 곳까지 살피게 된다. 오랫동안 써온 집의 물건들은 누군가의 피곤한 하루가 오늘 처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더한다.

장례식에서도 가족은 가족이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모인다. 그러나 한 사람의 죽음 앞에 모였다고 모두 같은 마음이 되지는 않는다. 장례식에서는 고모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지고, 가족이 함께 치러야 할 일 속으로 각자의 감정이 끼어든다. 슬퍼해야 할 자리라는 이유로 살아 있는 사람들 사이의 불만까지 잠잠해지지는 않는 것이다.

이 대목을 누가 더 이기적인지 가리는 장면으로만 보면 아쉽다. 장례식이라는 장소는 평소와 다르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지만, 그곳에 온 사람들은 오랫동안 함께 지내온 가족이다. 서로에게 쌓인 감정도 따라 들어온다. 고모들의 다툼을 한 번에 길게 촬영한 화면은 말을 하는 사람과 옆에 있는 사람들을 같은 시간 안에 남겨둔다. 한 사람의 표정만 따로 떼어 강조하지 않으니, 다른 사람들은 그 소란을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도 보게 된다.

연출을 맡은 윤서진은 가까운 시기에 두 번의 장례를 치르며 서로 다른 감정을 느꼈던 경험에서 출발했다고 밝혔다. 작품 속 가족 모두에게 자신의 감정을 나누어준 셈은 아니다. 오히려 한집안의 죽음에도 사람마다 반응이 다를 수 있다는 출발점이 중요해 보인다. 누군가를 잃었을 때 어떤 표정을 짓고 얼마나 울어야 하는지, 영화는 모범 답안을 내놓지 않는다.

초록빛이 들어오는 순간

원형이 집 안의 불을 끄면 바깥의 초록빛이 들어온다. 실내가 어두워지면서 방은 익숙한 색을 잃는다. 환히 켜져 있을 때는 지나쳤던 벽과 가구가 다른 분위기를 띤다.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는데 집의 느낌이 달라지는 이 순간이 〈초록밤〉의 매력이다. 가족에게 벌어질 일을 설명하기 전에, 관객이 있는 장소부터 낯설게 느끼도록 한다.

감독은 무거운 이야기를 밝고 색이 풍부한 화면에 담고 싶어 했다. 실제로 낮의 초록과 밤의 초록은 같은 기분을 주지 않는다. 한낮의 나무와 풀은 평범한 여름 풍경이지만, 집 안을 물들이는 밤의 빛은 방의 깊이와 빈 공간을 더 의식하게 한다. 화면이 아름다워서 눈을 떼기 어려운데, 인물의 생활은 편안해 보이지 않는다. 색을 즐기면서 동시에 그 안에 있는 사람을 걱정하게 되는 것이다.

느린 화면도 여기에 한몫한다. 무슨 일이 곧 터질지 기다리다가, 별다른 변화 없이 계속되는 풍경을 보게 되는 시간이 있다. 그때 시선은 사건을 찾는 데서 조금 벗어난다. 누가 방에 들어왔는지, 어디에 앉아 있는지, 불이 꺼진 뒤 무엇이 남아 보이는지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평범한 집 안에서 이런 차이를 알아차리게 한다는 점이 이 영화의 낯선 재미다.

〈초록밤〉의 가족을 보고 나면, 집에 돌아왔다는 말만으로 하루가 편히 끝났다고 생각하기 어려워진다. 일을 마친 사람에게는 쉬어야 할 몸이 있고, 가족을 잃은 사람에게는 다음 날에도 해야 할 일이 있다. 영화는 이들이 집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모습에도 시간을 들인다. 아버지가 문을 열 때까지 기다렸던 초반 귀가 장면처럼, 가까운 사람이 하루를 마치고 돌아오는 모습을 조금 더 보게 하는 영화다.

관련 작품

◆ 〈남매의 여름밤〉 (2019, 윤단비) — 할아버지 집에서 한철을 보내는 가족의 생활을 그린다. 방과 마당, 식탁에 모였다가 흩어지는 사람들을 보며 관계를 알아간다. 〈초록밤〉의 집과 나란히 놓으면, 같은 공간을 오래 바라보는 영화가 얼마나 다른 정서를 만들 수 있는지 느낄 수 있다.

◆ 〈맨체스터 바이 더 씨〉 (2016, 케네스 로너건) — 형을 잃은 남자가 조카를 돌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다. 상실을 겪는 동안에도 장례 절차와 보호자의 역할처럼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밀려온다. 슬픈 사람에게도 일상이 계속된다는 사실을, 말끔히 회복되는 이야기로 서두르지 않고 보여준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