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잘 쓰고 싶은 남자에게 마음 쓰이는 사람이 생긴다. 하필 도넛 가게에서 일하는 소년이다. 〈시인의 사랑〉의 택기(양익준)는 제주에 사는 마흔 살 시인이다. 돈벌이도 시원찮고…
시를 잘 쓰고 싶은 남자에게 마음 쓰이는 사람이 생긴다. 하필 도넛 가게에서 일하는 소년이다. 〈시인의 사랑〉의 택기(양익준)는 제주에 사는 마흔 살 시인이다. 돈벌이도 시원찮고 시도 뜻대로 써지지 않는다. 곁에는 그런 남편을 구박하면서도 아끼는 아내 강순(전혜진)이 있다. 별일 없던 생활에 세윤(정가람)이 들어오자, 택기는 이제 시뿐 아니라 자기 마음까지 알 수 없어진다.
처음에는 누군가가 시적 영감을 주었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상대의 사정을 알고 더 오래 곁에 있고 싶어지면 좋은 시 한 편을 쓰는 일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김양희 감독은 이 서툰 마음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곱게 포장하지 않는다. 남자가 설레는 동안 아내는 자기 생활을 걱정하고, 소년에게는 시인의 감탄과 별개로 살아갈 문제가 있다. 세 사람이 같은 만남 안에서 서로 다른 것을 바라는 영화다.
택기는 시를 쓰는 사람이다. 아름다운 것을 찾아 말을 다듬고, 자기 시가 충분히 좋은지 고민한다. 감독은 이 인물을 시를 쓰기 위해 슬픔을 찾는 철없는 사람으로 생각했다고 밝혔다. 창작에 필요한 경험을 얻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 마음을 무조건 비웃기는 어렵지만, 슬픔이 작품의 재료가 될 만큼만 찾아오고 물러가주리라는 기대는 꽤 순진하다.
세윤을 만난 뒤에는 그 거리를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멀리서 보고 인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동안에는 택기가 그를 어떻게 쓸지 정할 수 있다. 가까워진 뒤에는 소년이 택기의 기대에 맞춰 움직여주지 않는다. 상대가 처한 형편을 알게 되고, 도와주고 싶고, 자기 곁에 있어주기를 바라게 된다. 시에 담을 감정을 얻으려던 사람이 자기 감정 때문에 다음 행동을 고민하는 처지가 된다.
양익준의 얼굴에는 이 난처함이 잘 어울린다. 시인이라는 호칭이 주는 근사함보다, 자기 마음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의 모습이 먼저 다가온다. 감독은 양익준이 강한 인물로 알려지기 전의 순박한 모습을 기억하며 출연을 제안했다고 했다. 익숙한 배우에게서 다른 표정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지만, 그 부드러운 인상 덕분에 택기의 철없음이 곧바로 미움이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그를 귀엽게 보는 마음만으로 영화를 따라갈 수는 없다. 택기에게는 아내가 있고, 세윤에게는 도움이 필요한 생활이 있다. 시인이 감정에 빠졌다는 사정은 그 주변 사람들에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뜻이 아니다. 관객은 택기가 조금 더 솔직해지기를 바라면서도, 그 솔직함이 누구에게 어떤 부담이 될지 함께 생각하게 된다. 자기 감정을 알아보는 것만으로 성장이 끝나지는 않는다.
강순은 아이를 원한다. 남편을 아끼고, 잔소리를 하고, 자기 바람도 분명하게 말한다. 시인의 섬세한 마음만 따라가면 그 말투가 거칠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강순에게는 아름다운 시와 별도로 꾸려가야 할 집이 있다. 택기가 창작의 막막함을 말하는 동안에도 부부의 생활은 이어지고, 앞으로 어떤 가족이 될지에 관한 문제도 남는다.
강순을 남편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로 정리하면 이 영화의 재미가 크게 줄어든다. 그는 택기의 시를 위해 대기하는 사람이 아니다. 택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 살 미래를 기대하고, 그 기대가 흔들릴 때 화가 난다. 남편이 누군가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꼈다는 소식이 아내에게도 똑같이 아름다운 사건일 수는 없다. 같은 일을 두고 다른 언어가 나오는 데에는 각자의 처지가 있다.
전혜진이 연기하는 강순은 남편보다 자기 욕망을 말하는 데 덜 주저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그 선명함 때문에 택기의 머뭇거림이 더 우습게 느껴지기도 한다. 남편은 마음이 무엇인지 헤아리는 중인데, 아내에게는 당장 답을 듣고 싶은 문제가 있다. 두 사람의 말이 엇갈릴 때 생기는 웃음은 누가 더 영리한지 겨루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같은 집에 살면서도 급한 일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데서 나온다.
영화가 강순에게도 거친 면을 남겨둔다는 점이 좋다. 희생만 하는 아내로 만들면 택기의 행동을 판결하는 기준으로만 남기 쉽다. 강순 역시 자기 뜻대로 하고 싶고, 상대의 마음을 전부 헤아리지 못한다. 감독도 강순에게 자기중심적인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세 사람 가운데 가장 현실적인 사람이 곧 언제나 옳은 사람인 것은 아니다. 각자의 서운함이 따로 있어야 이들의 대화가 살아난다.
세윤은 택기에게 새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그 감정을 위해 만들어진 빈자리는 아니다. 병든 아버지가 있고 생활은 어렵다. 제주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있다. 택기가 한 장소에서 누군가와 더 오래 있고 싶어질 때, 세윤은 그 장소를 떠나는 일을 꿈꾼다. 같은 섬이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집이고 누군가에게는 벗어나고 싶은 곳이다.
정가람은 세윤을 연기하며 택기의 관심을 사랑만으로 이해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는 것인지, 자신에게 부모 같은 사람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생각했다고 했다. 누군가 잘해주면 반갑지만 그 호의가 무엇을 바라는지 몰라 조심스러울 수 있다. 택기의 마음이 깊다는 사실만으로 세윤이 같은 방식으로 응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소년의 표정을 볼 때는 그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따로 물어야 한다.
영화가 둘의 관계를 간단하게 이름 붙이지 않는 것도 이 차이와 닿아 있다. 감독은 끌림과 보호하고 싶은 마음, 시를 함께 나누는 감정이 섞인 상태를 남겨두려 했다고 설명했다. 모호하다는 것은 어떤 행동도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감정의 이름을 고르기 어렵더라도 상대에게 무엇을 해주고 무엇을 요구하는지는 구체적으로 볼 수 있다. 어른인 택기와 소년인 세윤이 같은 조건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잊기 어렵다.
이들의 제주에는 관광지의 풍경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감독이 실제로 생활하며 자주 오갔던 시내와 포구, 학교 같은 장소들이 들어온다. 택기의 집은 감독의 집에서 찍었다. 바다가 아름답다는 감상 옆에 누군가 이곳에서 일을 하고 다음 날도 살아야 한다는 사정이 놓인다. 세윤에게서 섬을 떠나고 싶은 마음을 읽게 되면, 관객에게 보기 좋은 곳이라는 이유만으로 그에게도 좋은 곳일 거라 짐작하기 어려워진다.
〈시인의 사랑〉을 보는 동안에는 택기가 훌륭한 시인이 되는 일보다 사람을 조금 더 잘 알아가는 일이 궁금해진다. 아내의 잔소리에 어떤 바람이 있었는지, 소년의 조용한 얼굴 뒤에는 무슨 걱정이 있었는지. 한 사람의 감정이 깊어질 때 다른 사람의 사정까지 더 잘 보이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이 영화의 사랑은 마냥 근사해지기보다 종종 민망하고 우습다.
◆ 시를 대하는 태도와 사람을 대하는 태도 — 택기가 좋은 시를 쓰고 싶어 할 때와 세윤의 사정을 듣고 반응할 때를 함께 보자. 누군가에게서 감정을 얻는 일과 그 사람을 돌보는 일에는 차이가 있다. 택기가 무엇을 바라는지에 따라 같은 관심도 다르게 느껴진다.
◆ 강순이 당장 답을 듣고 싶은 말 — 아내의 말투만큼 그가 무엇을 요구하는지도 들어보자. 남편에게는 아직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지만 강순에게는 생활이 걸린 문제다. 두 사람의 말이 왜 다른 속도로 오가는지 살필 수 있다.
◆ 세윤이 머물고 싶은지, 떠나고 싶은지 — 택기의 호의에 대한 반응만으로 소년의 마음을 정리하지 말자. 세윤에게는 집과 가족, 앞으로 살 곳의 문제가 있다. 한 사람의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이 그 문제들을 얼마나 바꾸는지 따로 생각해볼 만하다.
◆ 관광객의 눈 밖에 있는 제주 — 인물들이 실제로 생활하는 거리와 집에 관심을 두자. 같은 풍경을 보고도 떠나고 싶은 사람과 남고 싶은 사람의 마음은 다르다. 섬의 아름다움이 각자의 생활을 저절로 편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보인다.
◆ 〈시〉 (2010, 이창동) — 시를 배우기 시작한 여자가 아름다움과 외면하기 어려운 사건을 함께 마주한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바람이 다른 사람의 삶을 어떻게 바라볼지의 문제로 이어진다. 두 영화가 시인의 능숙한 문장보다 망설이는 시간을 어떻게 다루는지 비교해볼 만하다.
◆ 〈아무도 없는 곳〉 (2021, 김종관) — 소설가가 여러 사람을 만나 각자의 기억을 듣는다. 상대의 말을 내 이야기의 재료로만 듣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듣는 사람에게도, 이야기하는 사람에게도 자기 사정이 있다는 점에 관심을 이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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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