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익준에게서 오래전의 순박함을 꺼냈다 | MovieLAB LAB

김양희 감독이 〈시인의 사랑〉의 주연으로 양익준을 떠올렸을 때, 기억한 것은 그의 강렬한 인상이 아니었다. 영화학교 시절 단편을 함께 만들었던 배우가, 예전에 연기하곤 했던 순박…

양익준에게서 오래전의 순박함을 꺼냈다 | MovieLAB LAB

김양희 감독이 〈시인의 사랑〉의 주연으로 양익준을 떠올렸을 때, 기억한 것은 그의 강렬한 인상이 아니었다. 영화학교 시절 단편을 함께 만들었던 배우가, 예전에 연기하곤 했던 순박하고 숫기 없는 청년의 모습이었다. 감독은 배우에게 굳어진 이미지보다 자신이 알고 있던 다른 얼굴을 믿었다. 그렇게 시인 택기(양익준)의 어리숙함을 맡길 사람을 정했다.

택기는 제주에서 아내와 살아가다 도넛 가게에서 일하는 소년 세윤(정가람)에게 마음이 기운다. 시를 쓰는 남자가 감정에 서툴러지는 이야기다. 김양희는 이 인물을 위해 배우의 옛 모습을 불러오는 한편, 자신이 사는 집을 촬영 장소로 내놓고 시까지 썼다. 생활에서 가져온 재료들을 인물의 것으로 바꾸는 과정에 감독의 선택이 담겨 있다.

익숙한 배우에게 낯선 마음을 맡기다

양익준의 캐스팅에는 김양희가 실제로 만난 시인에게서 받은 인상도 작용했다. 제주에서 알게 된 현택훈 시인의 모습으로부터, 안정된 생활을 해온 사람이 강렬한 감정을 처음 겪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타인의 삶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 아니라 첫인상에서 허구의 인물을 만든 것이다.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길 수 있을지 상상하면서 택기가 태어났다.

택기는 자신의 마음을 선뜻 설명하거나 관계를 능숙하게 이끌 만한 사람이 아니다. 김양희가 배우의 순박한 모습을 기억했다는 사실은, 이 남자의 당혹스러움을 볼 때 유용하다. 좋아하는 마음이 생겨도 그 마음을 어떻게 행동으로 옮길지 모를 수 있다. 택기의 몸과 말이 어긋나 보이는 순간에는 감정을 표현하는 솜씨보다 감정 자체가 처음이라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감독이 어린 인물을 만드는 방식은 달랐다. 세윤을 시인의 변화를 돕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사람으로 두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김양희는 자신이 그 나이에 겪은 답답함을 떠올렸다. 무엇을 잘하는지 스스로도 모르고, 남에게도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던 시간이 소년을 만드는 재료가 됐다.

이렇게 준비한 두 인물에게 만남의 의미가 똑같을 수는 없다. 택기에게는 낯선 감정이 시작되는 일이지만, 세윤에게는 자신을 눈여겨보는 어른이 나타나는 일이다. 한 사람의 설렘만 따라가면 다른 사람의 처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 세윤이 말을 받아주는 방식, 함께 시를 나누는 시간이 각자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를 함께 살피게 된다.

가게 앞에서 제복과 모자를 쓴 젊은 남성이 다른 남성을 보며 손을 내민다

시인의 집에 감독이 살고 있었다

택기가 생활하는 집은 김양희의 실제 집이다. 영화 속 제주도 감독이 자주 다니던 동네와 장소들로 구성했다. 낯선 지역을 돌아다니며 눈에 띄는 풍광을 모으는 과정과 달리, 이미 생활의 일부인 공간을 인물에게 내준 셈이다. 집과 동네는 택기에게 매일 돌아갈 자리가 된다.

이 선택은 인물의 마음이 흔들릴 때에도 배경이 계속 생활의 공간으로 남게 한다. 바다를 바라보는 여행자의 감탄과 그곳에서 매일 지내는 사람의 시선은 다르다. 택기에게는 시를 쓰고 아내와 대화를 나누는 하루가 있고, 세윤에게는 일하는 가게가 있다. 이들의 관계를 따라가는 동안에도 장소마다 누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눈여겨볼 수 있다.

김양희는 영화에 쓰인 시도 대부분 직접 지었다. 시나리오를 쓸 때 장면에 필요한 느낌이나 표현을 메모하고, 그것을 시로 다듬었다고 한다. 시가 먼저 있고 이야기를 거기에 맞춘 경우와는 작업의 방향이 다르다. 인물이 놓인 상황을 생각하면서 그 순간에 들릴 말의 형태를 마련한 것이다.

택기의 시를 들을 때는 표현의 아름다움과 그가 살아가는 모습을 함께 볼 만하다. 시에서는 섬세한 말을 찾는 사람이 눈앞의 관계에서는 서투를 수 있다. 김양희가 시의 언어와 일상의 언어가 부딪치는 데 관심을 두었다고 설명한 이유도 이 차이에서 이해할 수 있다. 택기가 말로 품은 감정이 다른 사람에게 건너갈 때, 그 말만으로 충분한지는 별개의 문제가 된다.

키 큰 나무들이 늘어선 좁은 길 안쪽으로 두 사람이 걸어간다

연인이라고 정했다가 다시 고쳤다

김양희는 각본을 쓰는 도중 택기와 세윤의 관계를 연인으로 명확히 한 판본도 만들었다. 그러나 자신이 처음 하고 싶던 이야기인지 다시 생각한 뒤, 관계의 모호함을 남기는 쪽으로 돌아갔다. 완성본의 불분명함은 두 사람의 관계를 결정하지 못한 채 방치한 결과가 아니다. 한번 분명하게 써본 뒤 다른 가능성을 선택했다.

이 결정 때문에 관객은 택기의 마음을 한 단어로 정리하기보다 그가 하는 일을 보게 된다. 끌리는 마음과 돌보고 싶은 마음이 함께 있을 수 있고, 상대를 위하는 행동에도 자신의 바람이 섞일 수 있다. 시인이 스스로 이해하는 감정과 소년에게 필요한 것이 같은지, 만남이 이어질수록 살필 거리가 생긴다.

택기의 아내(전혜진)도 두 사람의 관계 바깥에서 기다리기만 하는 인물은 아니다. 김양희는 아내에게도 자기중심적인 면과 쓸쓸함이 있다고 설명했다. 남편을 향해 자기 뜻을 분명히 말하는 사람을 두면서, 시인의 마음만으로 집 안의 분위기가 정해지지 않게 한다. 누군가에게 새로 생긴 감정은 이미 함께 살던 사람의 하루에도 들어온다.

감독은 웃음과 슬픔이 같은 장면 안에 있도록 쓰는 편이라고 했다. 택기가 서투르게 마음을 드러낼 때, 그 모습이 우습다가도 곁에 있는 사람의 반응 때문에 편히 웃기 어려워질 수 있다. 한 사람의 말만 듣다가 대화를 받는 사람에게 눈을 돌려보자. 아내와 소년이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시인의 표정도 다시 읽힌다.

감상 포인트

◆ 택기가 마음을 표현하는 순간 보기. 시를 낭독할 때의 말과 다른 사람 앞에서 자기 뜻을 전할 때의 말을 비교하자. 언어를 다루는 직업과 관계를 풀어가는 솜씨 사이의 차이가 보인다.

◆ 시를 나누는 두 사람의 반응 살피기. 택기가 무엇을 느끼는지와 함께 세윤이 그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보자. 나이와 처지가 다른 두 사람에게 같은 만남이 다른 의미가 될 수 있다.

◆ 집과 도넛 가게에서 하는 일 보기. 누가 머물고 누가 일하는 장소인지 살피면 제주가 여행 풍경보다 생활의 배경으로 다가온다. 인물이 장소를 오가는 이유도 함께 생각할 만하다.

◆ 아내가 택기의 말을 받아주는 방식 듣기. 남편의 표현과 아내의 대답을 이어서 보자. 택기의 입장에서는 낭만적으로 느껴질 말이 함께 사는 사람에게도 그렇게 들리는지 비교할 수 있다.

관련 작품

◆ 〈시〉(2010, 이창동) — 시를 쓰려는 여성이 아름다운 것을 찾는 동안 외면하기 어려운 현실과 마주한다. 언어를 찾는 일이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어떻게 얽히는지 비교할 만하다.

◆ 〈아무도 없는 곳〉(2019, 김종관) — 소설가가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만남들로 이루어진 영화다. 창작하는 인물이 말을 만드는 순간과 다른 사람의 말을 받는 순간을 나란히 살필 수 있다.

이 글은 AI의 도움을 받아 자료를 조사하고 작성했으며, 별도의 편집 검수를 거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