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의 여자를 다 볼 수 있다는 착각 | MovieLAB LAB

베라(엘레나 아나야)는 방 안에서 요가를 한다. 몸에 밀착된 옷은 피부색이고, 창문에는 창살이 있다. 식사는 작은 승강기로 올라온다. 몸을 돌보고 끼니를 챙기는 일상인데, 그 방…

방 안의 여자를 다 볼 수 있다는 착각 | MovieLAB LAB

베라(엘레나 아나야)는 방 안에서 요가를 한다. 몸에 밀착된 옷은 피부색이고, 창문에는 창살이 있다. 식사는 작은 승강기로 올라온다. 몸을 돌보고 끼니를 챙기는 일상인데, 그 방에서 나갈 자유만 빠져 있다. 〈내가 사는 피부〉는 이 기묘하게 정돈된 생활부터 보여준다. 베라를 가둔 성형외과 의사 로버트(안토니오 반데라스)는 카메라를 통해 방 안을 들여다본다. 그녀의 모습은 언제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마음까지 알아볼 수 있을까.

피부를 지키겠다는 사람

로버트는 아내가 심한 화상을 입은 뒤 새로운 피부를 연구해왔다. 상처에 강한 피부를 만들려는 목적만 들으면 고통을 줄이는 연구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의 저택에는 동의 없이 실험 대상이 된 베라가 있다. 한 사람을 구하지 못한 과거와 다른 사람을 가둬놓은 현재가 한 의사의 삶 안에 함께 놓인다. 전자의 슬픔이 후자의 행동을 설명할 수는 있어도 허락해주지는 않는다.

저택의 생활을 유지하는 가정부 마릴리아(마리사 파레데스)도 이 관계에서 빠질 수 없다. 아침을 준비하고 음식이 방에 도착하도록 하는 사람은 감금이 지속되는 데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 베라가 굶지 않는 것과 베라에게 자유가 있는 것은 전혀 다른 조건이다. 식사가 규칙적으로 전달되는 첫 장면부터, 누군가를 돌보는 행동이 그 사람을 붙잡아두는 일에 쓰일 수 있다는 불편함이 생긴다.

피부는 몸의 바깥을 보호한다. 로버트는 그 보호 기능을 개선하려고 하지만, 베라에게 가장 큰 위협은 피부를 연구하는 바로 그 사람이다. 저택 안의 위험을 이해하는 데 실험의 기술적 성과를 판정할 필요는 없다. 누가 실험을 결정하고, 누가 그 결정을 거절할 수 없는지를 보면 된다. 베라에게 필요한 안전은 상처를 덜 입는 몸만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노란빛 아래 나란히 서서 다른 곳을 보는 두 여성

같은 방을 보는 두 종류의 화면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저택의 감시 화면을 모두 같은 모양으로 만들지 않았다. 부엌의 화면에는 베라의 방 전체가 흑백으로 잡힌다. 로버트의 방에는 커다란 컬러 화면이 있고, 그는 베라의 얼굴을 확대해 볼 수 있다. 방 안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점검하는 화면과, 한 사람의 모습을 가까이 끌어당기는 화면이 갈린다.

로버트가 베라의 얼굴을 크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두 사람이 가까워졌다는 뜻이 아니다. 화면의 크기는 그가 조절한다. 베라는 그곳을 벗어날 수 없는데, 로버트는 자신의 방에서 보고 싶은 만큼 확대할 수 있다. 서로 마주 앉아 거리를 줄이는 일과는 권한이 다르다. 아름다운 얼굴이 크게 보일수록, 그 얼굴을 보고 있는 남자가 허락받지 않은 자리에 있다는 사실도 선명해진다.

관객에게도 베라의 모습은 먼저 주어지고 사연은 늦게 주어진다. 얼굴을 오래 보았다는 이유로 그녀를 안다고 생각하면, 로버트의 확신과 비슷한 자리에 서게 된다. 이 영화의 미스터리는 감춰진 과거에만 있지 않다. 눈앞에 충분히 드러나 있는 사람에게도 내가 모르는 생각이 있다는 데 있다. 방 전체를 찍는 카메라와 얼굴을 확대하는 카메라 모두, 그 생각을 그대로 보여주지는 못한다.

가만히 기다리기 위해 몸을 움직인다

베라의 요가는 감금된 생활을 보기 좋게 꾸미는 동작이 아니다. 아나야는 촬영을 준비하며 처음 요가를 배웠고, 호흡을 익히는 과정이 인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사람이 자기 몸을 움직이고 숨을 고르는 일. 로버트가 몸에 가하는 변화와는 달리, 이 동작에서는 베라가 자신이 할 일을 정한다.

감독이 배우에게 건넨 인물의 단서도 기다림이었다. 갇힌 동물이 아주 짧게 찾아올 탈출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움직인다는 내용이었다. 이 설명을 알고 나면 베라의 고요함을 곧바로 체념으로 읽기 어려워진다. 가만히 있는 시간에도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서두르지 않는 것과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은 같지 않다.

몸에 붙는 옷은 이 인내를 더 이상하게 보이게 한다. 아나야는 그 의상이 자기 것이 아닌 피부 안에 갇힌 느낌을 주었다고 말했다. 옷을 입었는데도 몸의 윤곽이 훤히 드러난다. 가려주는 기능과 노출하는 효과가 함께 있어, 베라가 보호받는지 전시되는지 쉽게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베라는 그 옷을 입은 채 호흡하고 자세를 바꾼다. 로버트의 눈에 들어오는 몸과 베라 자신이 견디며 살아가는 몸이 같은 화면 안에 겹친다.

유리와 실험 도구 너머 장갑을 낀 남성이 보인다

손으로 다시 만드는 몸

베라는 루이즈 부르주아의 작업을 따라 그리며 조형물을 만든다. 알모도바르는 부르주아가 옷으로 만든 인체 형상들을 보고 베라에게 어울리는 작업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새로운 피부를 만드는 의사가 있는 집에서, 갇힌 사람도 자기 손으로 형상을 만든다. 두 행동을 나란히 두면 무엇을 만들었는지만큼 누구의 몸을 재료로 삼고 있는지가 중요해진다.

베라의 작업에는 로버트의 실험처럼 다른 사람에게 결과를 강요하는 권한이 없다. 그러나 책에서 본 형상을 옮겨보고 손으로 만들 수는 있다. 방 안에 있는 동안 그녀가 하는 일을 모두 로버트에 대한 반응으로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대목이다. 감시 대상이 된 사람에게도 집중할 일과 참고할 작품이 있다. 그 행동을 따라가면 베라는 의사가 만들어놓은 결과물이라는 설명에서 벗어난다.

알모도바르는 요가와 부르주아의 작업을 베라가 살아남는 데 필요한 요소로 설명했다. 둘 다 방의 문을 곧바로 열어주는 수단은 아니다. 대신 기다리는 동안 자신이 살아 있음을 놓치지 않도록 한다. 호흡은 계속되고, 손은 무언가를 만든다. 바깥에서 보기에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시간에도 베라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베라의 과거를 알아가는 일은 지금의 그녀를 관찰하는 일을 대신하지 못한다. 어떻게 이 방에 왔는지 알아야 할 필요와, 이 방에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볼 필요가 함께 있다. 로버트의 화면에 꽉 차는 얼굴만으로는 부족하다. 몸을 움직이고 형상을 만드는 작은 행동들까지 보아야, 감금된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 보내는 시간이 보인다.

감상 포인트

◆ 식사를 전달하는 방식 — 음식이 방으로 들어가는 경로와 베라가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조건을 함께 살펴보자. 생활을 보살피는 일이 감금을 유지하는 일과 어떻게 겹치는지 도입부터 드러난다.

◆ 부엌과 침실의 화면 — 흑백으로 방 전체를 보는 화면과 컬러로 얼굴을 확대하는 화면을 비교해보자. 감시하는 사람이 무엇을 확인하고 무엇을 보고 싶어 하는지 차이가 생긴다.

◆ 요가와 몸에 붙는 옷 — 몸의 윤곽을 드러내는 의상 안에서 베라가 스스로 선택해 움직이는 동작에 주목하자. 보이는 몸과 살아가기 위해 사용하는 몸을 함께 볼 수 있다.

◆ 그림과 조형 작업 — 베라가 방 안에서 손으로 만드는 것들을 놓치지 말자. 의사의 실험을 당하는 사람에게도 스스로 집중하고 이어가는 작업이 있다는 사실이 인물의 인상을 바꾼다.

관련 작품

◆ 오디션 (1999, 미이케 다카시) — 배우를 뽑는 자리를 배우자 선택에 이용하는 남자에게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상대를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이해하려는 시선이 어떤 불안을 만드는지 이어서 볼 수 있다.

◆ 버닝 (2018, 이창동) — 한 여성을 둘러싸고 보고도 알지 못하는 일이 쌓인다. 눈에 들어온 모습과 그 사람의 삶을 안다는 확신 사이의 간격에 주목하며 함께 볼 만하다.

이 글은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