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데라스에게 표정을 지워달라고 한 감독 | MovieLAB LAB

〈내가 사는 피부〉를 준비하며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안토니오 반데라스에게 〈암흑가의 세사람〉을 보라고 권했다. 장 피에르 멜빌의 범죄영화에서 참고할 것은 인물의 사연보다 표정…

반데라스에게 표정을 지워달라고 한 감독 | MovieLAB LAB

〈내가 사는 피부〉를 준비하며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안토니오 반데라스에게 〈암흑가의 세사람〉을 보라고 권했다. 장 피에르 멜빌의 범죄영화에서 참고할 것은 인물의 사연보다 표정을 최소한으로 드러내는 얼굴이었다. 알모도바르는 특히 잔혹한 장면에서 반데라스가 얼굴의 표현을 비우기를 원했다. 로버트(안토니오 반데라스)의 행동이 심해질수록 얼굴은 크게 변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베라(엘레나 아나야)를 준비하는 과정에는 다른 이미지가 쓰였다. 감독은 아나야에게 갇힌 동물이 탈출의 작은 기회를 기다리는 문학 작품의 대목을 건넸다. 한 배우에게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얼굴을, 다른 배우에게는 기다리는 동물을 보여주었다. 로버트가 베라를 가두고 관찰하는 영화에서 두 사람은 모두 속을 읽기 어렵지만, 그 고요함을 만드는 출발점은 달랐다.

얼굴에 보이지 않는 것

알모도바르가 반데라스에게 요구한 것은 로버트의 잔인함을 표정으로 강조하는 연기가 아니었다.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상대가 느낄 감정에 반응하지 못하는 상태를 보이려는 선택이었다. 분노가 커져 행동이 격해진다는 익숙한 순서와는 다르다. 인물이 하는 일과 얼굴이 보내는 신호가 어긋나면, 다음 행동을 표정에서 미리 알아차리기도 어려워진다.

이 선택은 베라를 바라보는 로버트의 얼굴을 볼 때 유용하다. 그가 무언가를 알아내려 할수록 관객 역시 그 얼굴에서 의도를 읽고 싶어진다. 그러나 표정이 적으면 눈앞의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판단할 단서가 줄어든다. 시선이 향하는 곳과 실제로 취하는 행동을 더 오래 살피게 된다. 얼굴을 가까이 보여준다는 것과 마음을 자세히 알려준다는 것이 늘 같은 일은 아닌 셈이다.

다른 영화를 배우에게 권하는 방식에도 알모도바르의 구체적인 판단이 있다. 멜빌의 범죄자와 로버트는 같은 인물이 아니다. 그가 옮겨오려 한 것은 줄거리나 성격 전체가 아니라 얼굴을 사용하는 정도였다. 익숙한 배우의 표정을 덜어내는 데 다른 배우들의 얼굴을 참고로 삼은 것이다. 반데라스가 얼마나 적게 움직이는지에 주목하면, 로버트를 둘러싼 불안이 대사 밖에서도 생긴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노란빛 아래 나란히 서서 다른 곳을 보는 두 여성

기다림을 배우의 몸에 주기

아나야는 각본을 읽기 전에 알모도바르의 설명을 듣고 많은 메모를 했다. 감독은 영화를 만들려는 이유와 그녀의 연기에서 원하는 것을 먼저 이야기했다. 갇힌 동물의 이미지는 배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아나야는 그것을 오랫동안 기회를 기다리는 베라의 처지와 연결했다고 회고했다.

이 준비를 생각하면 베라가 조용히 있는 시간을 다르게 볼 수 있다. 움직임이 적어도 주변을 살피는 주의까지 사라진 것은 아닐 수 있다. 방 안에서 베라가 어디를 보고 무엇을 듣는지 따라가면,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는 동안에도 상대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려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감정을 얼굴에 모두 드러내지 않는 두 인물이 마주할 때, 한 사람은 통제하고 다른 사람은 그 통제 안에서 기회를 찾는다.

아나야는 촬영 석 달 전부터 요가를 익혔다. 이전에는 해본 적이 없는 훈련이었다. 감독이 건넨 기다림의 이미지가 연기를 생각하는 재료였다면, 이 준비는 실제 몸이 취할 수 있는 자세를 늘렸다. 영화 속 베라를 볼 때에는 몸을 얼마나 유연하게 구부리는지뿐 아니라 자세를 유지하는 시간에도 주목할 만하다. 움직임을 시작하는 것과 멈춘 상태를 버티는 것은 서로 다른 긴장을 만든다.

방을 마음대로 떠날 수 없는 인물이 자기 몸의 움직임을 정한다는 데에는 작은 차이가 있다. 갈 수 있는 장소는 제한되어도 지금 어떤 자세로 있을지는 선택할 수 있다. 요가하는 베라의 몸은 관찰의 대상이면서 스스로 무언가를 하는 몸이기도 하다. 알모도바르가 배우에게 준비시킨 동작을 따라가다 보면, 같은 방에서 반복되는 생활 안에도 인물이 정하는 시간이 있음을 보게 된다.

유리와 실험 도구 너머 장갑을 낀 남성이 보인다

옷으로 만든 형상을 방 안에 놓다

알모도바르는 미술가 루이즈 부르주아의 전시에서 옷으로 만든 형상들을 보고 베라를 떠올렸다. 오래 고쳐 쓰던 각본에 그 작업이 들어왔다. 몸에 걸쳤던 천이 다른 형태가 되는 작품은, 자기 몸과 살아가야 하는 베라의 방에 놓일 재료가 되었다. 감독은 베라에게 미술과 요가가 흘러가는 시간을 견디는 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베라가 무언가를 만드는 모습을 볼 때에는 완성된 형태와 손이 하는 일을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결과물은 방 안에 남지만, 그것을 만드는 동안에는 손의 움직임과 주의가 함께 필요하다. 관찰하는 로버트에게 보이는 것은 바깥의 형상이다. 그 일을 하며 베라가 보내는 시간까지 같은 방식으로 볼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이 방에 놓인 미술은 인물의 마음을 알아볼 정답이라기보다, 그가 계속 시간을 쓰고 있다는 흔적에 가깝다.

벽에 남기는 글씨에도 비슷한 차이가 있다. 베라는 자신이 숨을 쉰다는 말을 쓴다. 감독은 그 말을 살아 있다는 확인으로 설명했다. 글씨를 읽는 동안에는 문장의 뜻이 먼저 들어오지만, 벽을 함께 보면 제한된 공간에 사람이 표시를 남긴 행위도 보인다. 얼굴에서 읽기 어려웠던 시간을 이번에는 손이 남긴 자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감상 포인트

1. 로버트가 취하는 행동과 얼굴의 변화 폭을 함께 보자. 상황이 격해지는 정도와 표정이 움직이는 정도가 얼마나 다른지 살펴볼 수 있다. 2. 베라가 상대를 대할 때 시선이 머무는 곳을 보자. 말을 하는 순간뿐 아니라 말을 듣는 동안에도 무엇을 주의 깊게 살피는지 볼 만하다. 3. 요가하는 베라의 자세가 바뀌는 순간과 유지되는 시간을 나누어 따라가보자. 움직임과 정지가 각각 어떤 긴장을 만드는지 느낄 수 있다. 4. 베라가 벽에 남긴 글씨를 방 전체와 함께 보자. 문장의 뜻을 읽었을 때와 공간에 쌓인 표시로 보았을 때 그 시간이 어떻게 다가오는지 살펴볼 수 있다.

관련 작품

◆ 〈내가 사는 피부〉(2011, 페드로 알모도바르) — 두 배우의 적은 표정과 서로 다른 움직임을 비교하며, 감독이 통제와 기다림을 연기로 구분하는 방식을 살펴볼 수 있다.

◆ 〈암흑가의 세사람〉(1970, 장 피에르 멜빌) — 알모도바르가 반데라스에게 권한 작품으로,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 얼굴이 행동을 어떻게 낯설게 만드는지 비교할 수 있다.

이 글은 AI의 도움을 받아 자료를 조사하고 작성했으며, 별도의 검수 과정을 거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