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척 떠나면, 가족은 괜찮을까 | MovieLAB LAB

용수(박종환)는 가족에게 돈을 남기고 어촌을 떠나려 한다. 방법이 기막히다. 자신이 바다에서 죽은 것으로 꾸며 보험금을 받게 하겠다는 것이다. 〈아침바다 갈매기는〉의 늙은 선장 …

죽은 척 떠나면, 가족은 괜찮을까 | MovieLAB LAB

용수(박종환)는 가족에게 돈을 남기고 어촌을 떠나려 한다. 방법이 기막히다. 자신이 바다에서 죽은 것으로 꾸며 보험금을 받게 하겠다는 것이다. 〈아침바다 갈매기는〉의 늙은 선장 영국(윤주상)은 함께 배를 타던 이 젊은 어부의 부탁을 들어준다. 그런데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에게, 이제 기다림을 그만두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용수의 계산에는 가족의 생활비가 들어 있다. 가족이 그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문제도 따라붙는다. 어머니 판례(양희경)와 베트남에서 온 아내 영란(카작)은 용수의 죽음을 믿지 않는다. 두 남자에게는 계획을 어렵게 하는 반응이지만, 남편과 아들을 기다리는 사람들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거짓말이 들킬까 조마조마하다가도, 그 거짓말이 끝까지 통했을 때 가족이 겪을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아들을 기다리는 엄마 앞에서

판례는 항구로 나가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용수가 세운 계획을 알고 있는 관객에게는 그 기다림이 더 괴롭다. 판례가 모르는 사정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를 설득할 말이 생기지는 않는다. 돌아오기를 바라는 아들을 이미 죽은 사람으로 받아들여야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제안은, 생활을 걱정해주는 말로만 들릴 수 없다.

마을 사람들은 영란에게 보험금 이야기를 꺼낸다. 베트남으로 가져가면 넉넉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말도 한다. 영란의 형편을 헤아리는 듯하지만, 정작 그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 묻는 일은 빠져 있다. 남편을 기다리는 사람 앞에서 주변 사람들이 먼저 돈의 쓰임새와 이후의 거처를 정하고 있는 셈이다. 누군가를 도와주겠다는 말도 상대의 대답을 듣지 않으면 이렇게 무례해질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영란은 사건 뒤에 남겨진 아내라는 설명보다 훨씬 복잡한 인물이 된다. 한국에서 살아온 관계가 있고, 남편이 사라진 뒤에도 자기 삶에 관해 결정해야 할 사람이다. 그를 베트남으로 돌아갈 사람이라고 미리 정해버리면 그 관계와 선택을 보지 못한다. 영화는 한 가족을 돕는다는 계획에서 출발해, 그 가족의 말을 누가 듣고 있는지까지 보게 한다.

이 거친 선장은 왜 부탁을 들어줬을까

영국은 다정한 말로 먼저 마음을 얻는 사람이 아니다. 성미가 거칠고 고집도 세다. 그런 그가 자기까지 곤란해질 거짓말에 가담한다. 사라질 사람의 사정을 들어주는 일과, 남은 사람들 앞에서 그 거짓말을 지키는 일은 부담이 다르다. 용수가 떠난 자리에서 영국은 가족들의 기다림과 마을 사람들의 말을 계속 마주해야 한다.

윤주상은 영국이 용수에게 오랫동안 뱃일을 가르치며 후계자로 여겼다고 설명했다. 자기 배를 이어받기를 바랄 만큼 가까운 청년이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 부탁을 들어주는 데에는 영국 자신이 원했던 미래를 포기하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이 배우의 설명을 떠올리면, 영국의 거친 태도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애착이 보인다. 붙잡고 싶은 사람의 떠남을 돕는 일이다.

판례와 영국의 관계에도 오래된 시간이 있다. 두 사람은 부딪히지만, 판례는 영국에게 밥을 내주는 이웃이기도 하다. 그러니 영국의 거짓말은 모르는 사람을 속이고 돌아서면 끝나는 일이 아니다. 밥을 얻어먹고 서로의 사정을 아는 사이에서 계속되어야 한다. 가까운 사람을 돕겠다는 결정이 또 다른 가까운 사람을 아프게 한다는 점에서, 이 소동은 점점 빠져나오기 어려워진다.

윤주상과 양희경이 함께 있는 장면은 그 불편한 친밀함을 보는 재미가 있다. 상대에게 화를 낼 수 있을 만큼 가깝고, 그래서 상대의 말에 더 상처받는 사이. 두 사람의 다툼을 누가 옳은지 가리는 장면으로만 따라가면, 다툰 뒤에도 같은 동네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정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서로를 피하기만 하며 살 수 있는 이웃이 아니다.

바다는 풍경이기 전에 일터다

연출을 맡은 박이웅은 어촌을 돌아다니며 함께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도 무관심과 거리감이 있다는 점을 살폈다고 말했다. 한 마을에 산다는 사실이 서로를 충분히 안다는 뜻은 아니었던 것이다. 영란의 앞날을 쉽게 말하는 주민들의 모습도 그런 거리감을 떠올리게 한다. 얼굴을 자주 보는 것과 그 사람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다를 수 있다.

영화 속 바다는 그런 사람들이 매일 일을 나가는 곳이다. 배가 흔들리고 어시장에서는 생선을 다룬다. 박이웅은 실제 바다 촬영과 어시장의 작업을 담는 일이 이 영화에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용수가 떠나고 싶어 하는 곳을 이해하려면, 바다를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안에 들어가 몸을 쓰며 생계를 이어가는 생활을 알아야 한다.

윤주상은 촬영 전 마을을 걸으며 주민들의 인사와 몸짓을 익혔다고 했다. 영국이 배 위에 서 있는 모습을 볼 때도 그런 준비를 생각해볼 만하다. 배는 이 남자의 직장이고, 오랫동안 몸으로 익힌 공간이다. 용수에게 이곳을 떠나는 일은 새 출발이지만, 영국에게는 가까운 사람과 함께 해온 생활이 줄어드는 일일 수 있다. 같은 바다를 앞에 두고 두 사람이 원하는 다음 날은 다르다.

이 영화에서 자꾸 마음이 가는 쪽은 남겨진 사람들이다. 계획이 성공하는지만 궁금해하며 보기에는 판례의 기다림과 영란의 처지가 너무 가까이 다가온다. 용수에게도 절박한 사정이 있지만, 그가 가족을 위해 세운 계획이 가족의 바람과 같지는 않다. 판례가 항구에서 기다리는 것은 돈이 도착할 날이 아니다. 그 기다림을 알고 나면, 아들이 떠날 수 있게 해주자는 말도 쉽게 나오지 않는다.

감상 포인트

◆ 판례가 기다리는 항구 — 같은 실종 사건을 두고 누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살펴보자. 관객은 죽음을 꾸민 계획을 알지만 판례는 아들을 기다린다. 정보가 많아졌다고 인물을 더 쉽게 설득하거나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이 기다림에서 드러난다.

◆ 영란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 — 주민들이 영란에게 어떤 미래를 권하는지, 그 말에 영란 자신의 바람이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지 들어보자. 친절한 조언처럼 시작한 대화가 상대의 선택을 대신하는 순간을 발견할 수 있다. 영란이 듣는 말뿐 아니라 직접 하는 말에도 귀를 기울여볼 만하다.

◆ 윤주상과 양희경의 가까운 거리 — 두 배우가 다투는 장면과 서로의 생활에 관여하는 모습을 함께 보자. 갈등이 있다고 관계가 바로 끝나는 이웃들이 아니다. 같은 동네에서 오래 살아온 사정이 말의 내용과 감정의 세기를 어떻게 바꾸는지 살필 수 있다.

◆ 배 위에서 일하는 몸 — 바다의 크기와 색뿐 아니라 배 위에 선 사람의 움직임을 보자. 흔들리는 곳에서 일을 이어가는 모습은 어촌을 관광지와 다른 장소로 느끼게 한다. 영국이 무엇에 익숙한 사람인지 알게 되면 그가 이곳에 남는 마음도 더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관련 작품

◆ 〈맨체스터 바이 더 씨〉 (2016, 케네스 로너건) — 가족의 죽음 뒤 조카를 돌보게 된 남자를 따라간다.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과 실제로 감당할 수 있는 생활 사이에 간격이 있다는 점에서 영국의 선택과 함께 생각해볼 만하다. 바닷가 마을에 남는 일이 누구에게나 같은 의미는 아니라는 것도 두 영화의 흥미로운 접점이다.

◆ 〈파주〉 (2009, 박찬옥) — 언니의 죽음을 의심하는 동생과 그 의심의 대상인 형부 사이에, 이미 함께 살아온 시간이 있다. 사건을 알아가는 동안 가까운 관계까지 다시 살펴야 하는 영화다. 누가 어떤 사실을 알고 있는지와 그 사람에게 어떤 마음을 품는지가 쉽게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어진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