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잊어가는데, 내 기억은 자꾸 되살아난다 | MovieLAB LAB

엄마는 절반짜리 불꽃놀이를 보고 싶다고 한다. 불꽃놀이면 불꽃놀이지, 절반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백화〉의 이즈미(스다 마사키)는 어머니 유리코(하라다 미에코)의 말을 이해하…

엄마는 잊어가는데, 내 기억은 자꾸 되살아난다 | MovieLAB LAB

엄마는 절반짜리 불꽃놀이를 보고 싶다고 한다. 불꽃놀이면 불꽃놀이지, 절반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백화〉의 이즈미(스다 마사키)는 어머니 유리코(하라다 미에코)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가 반복하는 말이니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다. 그런데 영화는 그 말을 오래 붙잡는다. 아들이 모르는 것이 어머니에게는 남아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즈미와 유리코 사이에는 오래된 상처가 있다. 어머니에게 도움이 필요해졌다고 해서 아들의 서운함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곁에서 돌봐야 할 사람이 과거의 아픔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은 단순해지지 않는다. 카와무라 겐키는 자신이 쓴 소설을 영화로 옮기며, 어머니의 기억이 사라질수록 아들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모순을 따라간다. 이 영화에서 기억을 다시 살펴야 하는 사람은 둘이다.

장을 보다가 같은 자리에 돌아온다

슈퍼마켓에서 유리코는 같은 물건을 카트에 담고, 통로에서 뛰는 쌍둥이에게 주의를 준다. 그 행동이 반복된다. 익숙한 일상의 동작인데도 보는 사람은 점차 어디쯤 와 있는지 헷갈린다. 앞으로 흘러가던 시간이 다시 같은 곳으로 돌아온 듯하다. 유리코의 상황을 설명으로 듣는 것과, 같은 움직임이 거듭되는 화면을 따라가는 것은 다른 경험이다.

이 장면에서 슈퍼마켓은 낯선 장소가 아니다. 물건을 고르고 카트를 미는 순서는 우리가 쉽게 이해하는 일이다. 그래서 반복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진다. 처음에는 아무 문제 없이 따라가던 행동에 걸리는 부분이 생긴다. 지금 본 것이 이미 본 것인지, 유리코에게는 새로 일어나는 일인지 생각하게 된다. 인물의 혼란을 바깥에서 판단하던 관객도 자기 위치를 확인해야 한다.

영화는 이런 감각을 긴 촬영과 짧게 끼어드는 기억으로 만든다. 한 장면 안에서 시간이 이어지는 듯하다가 다른 순간이 들어온다. 감독은 현재의 대화를 하면서도 조금 전의 일을 떠올리는 일상적 경험에 관심을 두었다고 설명했다. 화면은 유리코의 병을 진단하는 도표보다, 한 사람에게 지금과 과거가 어떻게 겹쳐오는지를 상상하게 하는 쪽에 가깝다.

관객이 모든 순간을 바로 정리하지 못해도 그 혼란 자체를 따라가볼 만하다. 유리코가 무엇을 잊었는지 목록을 만들 때와 달리,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어떤 식으로 돌아오는지 보게 되기 때문이다. 상실은 빈칸이 늘어나는 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익숙한 행동이 되풀이되거나, 다른 시간의 기억이 현재에 들어오며 지금 눈앞의 세계를 바꾸기도 한다. 영화는 그 변화를 보고 듣는 경험으로 전달한다.

붉은 옷과 목도리를 두른 여성이 앞에 선 사람을 보며 웃는다

잊지 않은 아들의 기억도 완전할까

이즈미는 어머니에 관해 자신이 기억하는 일이 분명하다. 특히 상처가 된 과거는 현재까지 따라온다. 유리코에게 생기는 변화는 새로 걱정해야 할 일이지만, 그를 대하는 아들의 마음에는 예전의 감정도 남아 있다. 지금 도움이 필요한 어머니와 과거 자신을 아프게 한 어머니가 같은 사람이라는 점이 돌봄을 어렵게 한다.

영화는 아들이 기억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시선을 최종적인 설명으로 삼지 않는다. 어머니의 방에서 발견한 일기는 이즈미가 알고 있던 과거에 다른 면이 있음을 알린다. 그가 겪은 고통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고통으로 이해해온 어머니의 삶이 전부는 아닐 수 있다. 어떤 일이 나에게 어떻게 느껴졌는지와, 그때 상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같지 않다.

이 차이가 드러날 때 영화의 질문도 넓어진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얼마나 잊어버렸는지가 걱정스럽지만, 이제는 아들이 무엇을 모르고 있었는지도 궁금해진다. 감독은 어머니를 통해 아들 역시 자기 기억이 달라지거나 사라졌음을 깨닫는 데 관심이 있었다고 했다. 정확한 기억을 가진 사람과 잘못 기억하는 사람을 나누기보다 두 사람의 시선이 서로를 바꾸게 한 것이다.

그래서 과거를 보여주는 장면은 줄거리의 빈칸만 채우지 않는다. 같은 인물을 전과 조금 다른 마음으로 보게 한다. 아들에게 엄마였던 사람은 아들이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자기 선택을 하며 살았다. 이즈미가 그 시간을 알아가는 동안 관객 역시 유리코를 병을 앓는 어머니라는 현재의 모습 밖에서 만나게 된다. 불편한 과거가 밝혀지는 일과 한 사람의 삶이 넓어지는 일이 함께 일어난다.

같은 얼굴에 서로 다른 시간이 남는다

하라다 미에코는 지금의 유리코와 젊은 시절의 유리코를 함께 연기한다. 과거를 별개의 인물처럼 떼어놓기 어려워지는 선택이다. 현재의 얼굴을 보며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고, 과거의 행동을 보며 이후의 시간을 생각하게 된다. 한 사람이 달라졌다는 것과 그래도 같은 사람이라는 감각이 동시에 남는다.

유리코는 피아노를 가르치던 사람이지만 점차 연주를 하기 어려워진다. 이 변화는 어떤 기능을 잃었다는 설명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오랫동안 해온 일이 몸과 생활에서 차지했던 자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보면, 지금 하지 못하는 일 뒤에 그가 익숙하게 보내왔을 시간이 떠오른다. 현재의 어려움만으로 인물을 다 알았다고 할 수 없게 된다.

이즈미의 아내 카오리(나가사와 마사미)는 출산을 앞두고 있다. 아들이 부모가 될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어머니에게는 아들과 함께한 시간이 흐려진다. 한 가족 안에 새로 시작되는 일과 잃어가는 일이 함께 놓인다. 앞으로 생길 추억을 기대하는 마음과 이미 함께한 추억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 같은 현재에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시기를 함께 보여주는 영화에서는 세대의 역할도 고정돼 있지 않다. 누군가의 아들인 사람이 곧 다른 아이의 부모가 된다. 그렇다고 부모가 된다는 사실이 자기 어머니를 이해하는 빠른 해답이 되지는 않는다. 이즈미에게 필요한 것은 엄마라는 역할의 뜻을 아는 일뿐 아니라, 유리코라는 사람이 지나온 구체적인 시간을 다시 보는 일이다.

머리를 뒤로 묶은 남성이 실내에서 옆얼굴을 보인다

절반이라는 말에 귀를 기울이면

유리코가 원하는 불꽃놀이는 이즈미에게 수수께끼다. 관객도 그 말의 뜻이 궁금해진다. 그러나 답을 맞히려는 호기심만 따라가면 엄마와 아들이 함께 보러 간다는 사실을 놓치기 쉽다. 상대의 말이 이해되지 않아도 그가 보고 싶어 하는 것에 관심을 두는 행동이 먼저 필요하다.

이 점에서 절반이라는 말은 부족한 것을 가리키는 표현으로만 남지 않는다. 이즈미가 이미 안다고 생각한 기억에도 아직 보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어머니가 이상한 말을 한다고 여기던 자리에서,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말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자리로 옮겨가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마음에는 불꽃놀이의 모양뿐 아니라 두 사람이 같은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궁금증이 섞인다.

〈백화〉가 남기는 아픔은 좋은 추억을 떠올리기만 하면 해소되는 종류가 아니다. 유리코의 상태도, 이즈미의 상처도 한 번의 이해로 없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다만 함께한 시간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조차 우리는 서로 다른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남는다. 그 차이를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모르는 말을 다시 듣고 함께 길을 나서는 이유가 된다.

감상 포인트

◆ 슈퍼마켓의 반복 — 같은 물건과 행동을 언제 다시 알아보게 되는지 살펴보자. 유리코가 혼란스럽다는 설명을 넘어 관객 자신의 시간 감각도 흔들린다. 익숙한 일상이 낯설어지는 순간에 관심을 둘 만하다.

◆ 길게 이어지는 현재와 짧은 기억 — 화면이 계속될 것 같을 때 다른 시간이 어떻게 끼어드는지 보자. 회상이 과거를 정리해주는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앞에 있는 사람을 보는 마음까지 바뀌는지 느껴볼 수 있다.

◆ 두 시절을 연기하는 같은 배우 — 젊은 유리코와 현재의 유리코를 별개의 인물로 나누지 않고 바라보자. 지금의 모습만으로 알 수 없는 시간이 같은 얼굴에 겹쳐진다. 아들이 기억하는 엄마와 엄마 자신의 삶 사이에 거리가 드러난다.

◆ 뜻을 모르는 소원 — 절반 불꽃놀이의 정체를 추측하되, 그 말을 듣는 이즈미의 입장에도 관심을 두자. 이해하지 못한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관계를 바꾼다. 해답을 알기 전부터 함께 보러 가는 행동에 의미가 생긴다.

관련 작품

◆ 〈더 파더〉 (2020, 플로리앙 젤레르) — 기억과 현실의 경계가 흔들리는 아버지와 그를 돌보는 딸을 다룬다. 인물이 겪는 혼란을 관객의 경험으로 만드는 형식을 비교할 만하다. 가족을 바깥에서 보는 자리와 당사자의 불안 속으로 들어가는 자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필 수 있다.

◆ 〈시〉 (2010, 이창동) — 기억의 변화를 겪는 미자(윤정희)가 시 쓰기를 배우며 주변의 삶을 새로 바라본다. 잊는다는 소재뿐 아니라 무엇을 보고 기억하려 하는지가 인물의 선택과 이어진다는 점에서 비교할 수 있다. 두 영화가 기억을 가족의 추억과 타인의 고통으로 각각 넓히는 방식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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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