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오아시스에 열광했던 이유 | MovieLAB LAB

거대한 야외 공연장에서 노래하던 오아시스가 비좁은 지하 연습실로 돌아간다. 〈슈퍼소닉〉의 초반, 넵워스 공연과 맨체스터의 연습 영상을 잇는 곡은 「Columbia」다. 같은 밴드…

우리가 오아시스에 열광했던 이유 | MovieLAB LAB

거대한 야외 공연장에서 노래하던 오아시스가 비좁은 지하 연습실로 돌아간다. 〈슈퍼소닉〉의 초반, 넵워스 공연과 맨체스터의 연습 영상을 잇는 곡은 「Columbia」다. 같은 밴드가 같은 노래를 연주하는데 주위 풍경은 딴판이다. 그 사이에 흐른 시간은 고작 3년. 이름을 알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던 이들이 어느새 수많은 사람을 한곳에 불러 모았다.

그 밴드의 중심에는 형 노엘 갤러거와 동생 리암 갤러거가 있다. 노엘이 쓴 노래를 리암이 부른다. 음악에서는 더없이 잘 맞는 두 사람이지만, 함께 지내는 일에는 영 소질이 없어 보인다. 서로를 놀리고 깎아내리는 말만 듣고 있으면 다음 공연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그러다 노래가 시작되면 이 조합을 조금 더 보고 싶어진다. 둘의 말다툼에 질릴 때마다, 영화에는 다시 귀를 기울이게 하는 음악이 있다.

녹음실에서 노래하고 연주하는 오아시스

노엘의 노래에 리암의 목소리가 들어오면

1995년의 녹음 영상에서 리암은 「Champagne Supernova」를 부른다. 음반으로 듣던 곡을 녹음하는 모습을 보니 새삼 그의 목소리에 귀가 간다. 형과의 말다툼은 잠시 잊고, 이 노래를 조금 더 듣고 싶어진다.

노래는 형제의 싸움 이야기를 들려줄 때도 흐른다. 두 번째 앨범을 녹음하던 무렵 형제가 다툰 일을 전하면서, 리암이 부른 「Sad Song」을 들려준다. 이 녹음은 제작진이 옛 자료를 찾다가 발견했다. 시끄러운 싸움 이야기에 리암의 노래가 겹치니, 방금까지 못마땅하던 사람의 목소리를 계속 듣고 싶어지는 묘한 순간이 생긴다. 형제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음악을 멈출 필요가 없는 영화다.

따로 앉은 형제를 대화하게 하는 편집

연출을 맡은 매트 화이트크로스는 노엘과 리암의 회고를 각각 따로 녹음했다. 한자리에 모아 대화를 나눈 것이 아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두 사람이 서로의 말에 응수하는 것처럼 들린다. 감독이 같은 질문을 던지고, 한쪽의 이야기를 다른 쪽에 전하며 얻은 답변을 편집으로 이어 붙였기 때문이다.

노엘의 말을 듣다 보면 리암은 같은 일을 어떻게 기억할지 궁금해진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설명하는 데는 둘 다 거침이 없다. 다만 상대가 기억하는 모습까지 마음대로 정할 수는 없다. 오아시스의 역사는 그렇게 두 사람의 자랑과 핀잔을 오가며 만들어진다.

화면을 채우는 것은 당시의 공연과 연습, 무대 뒤에서 찍힌 영상들이다. 지금은 능숙하게 풀어내는 성공담이지만, 영상에 담긴 당시 모습은 어설프고 부산스럽다. 훗날의 회고와 젊은 시절의 모습이 겹치면서 웃음이 난다. 이미 전설이 된 밴드를 소개받기보다, 아직 자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이들과 어울리는 쪽에 가깝다.

큰소리 뒤에 남아 있는 가족

형제의 거친 말을 마냥 재치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지는 대목도 있다. 어머니 페기와 노엘이 어린 시절을 이야기할 때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노엘에게 폭력을 가했다. 노엘은 그런 집안에서 기타를 연주하며 고통스러운 상황을 견뎠다고 회고한다. 성공한 뒤의 거만함만 보고 있던 관객에게, 그가 자라온 집이 비로소 보인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노엘이 기타를 들고 무대에 선 모습도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집에서 힘들 때 기타를 치던 노엘이 이제는 자기 노래를 들으러 온 사람들 앞에 선다. 음반 판매량이나 공연 규모만으로 성공을 설명할 때는 빠지기 쉬운 변화다.

축구 유니폼 차림으로 함께 서 있는 갤러거 형제

넵워스에서 영화를 끝낸 까닭

〈슈퍼소닉〉은 오아시스의 모든 앨범과 이후의 갈등을 훑지 않는다. 주요 이야기는 1993년 음반 계약 무렵부터 1996년 넵워스 공연까지 이어진다. 이틀에 걸친 공연에 모인 관객은 약 25만 명이었다. 감독은 밴드의 긴 역사를 한 편에 담으면 지나치게 피상적이 될 것이라고 보고, 급격히 성장하던 초기의 시간에 집중했다.

넵워스 공연을 보면 영화 초반의 지하 연습실이 떠오른다. 그곳에서 연주하던 노래를 들으러 이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다. 함께 연습하던 몇 사람이 그 짧은 사이에 이렇게 큰 무대에 섰다는 게 놀랍다.

물론 영화의 시선은 오아시스를 사랑하는 쪽에 가깝다. 당사자와 가족, 가까운 이들의 기억이 중심이고, 당시 영국 음악계 전체를 두루 설명하지도 않는다. 대신 왜 사람들이 이 밴드를 좋아했는지에 시간을 쓴다. 그들의 무례한 말에는 눈살이 찌푸려져도, 노래는 여전히 좋다. 〈슈퍼소닉〉을 보는 동안에는 그런 상반된 마음이 자꾸 든다.

넵워스에 이르러 형제의 문제가 모두 풀리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함께 무대에 설 때 만들어지는 즐거움은 분명하다. 〈슈퍼소닉〉을 보고 나면 오아시스를 설명할 말을 고르기보다 노래 한 곡을 더 틀고 싶어진다. 지하 연습실에서 시작한 소리가 얼마나 멀리 갔는지 알고 나면, 익숙한 노래도 조금 더 크게 듣게 된다.

관련 작품

◆ 〈싱 스트리트〉 (2016, 존 카니) — 더블린의 소년들이 밴드를 만들며 옷차림과 말투, 미래까지 바꾸어간다. 〈슈퍼소닉〉에서 음악이 실제로 삶을 바꾼 사람들을 만났다면, 여기서는 아직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은 채 밴드에 기대를 거는 마음을 볼 수 있다. 잘하고 싶은 마음과 잘할 수 있다는 허세가 뒤섞인 출발점이 반갑다.

◆ 〈너와 나의 5분〉 (2024, 엄하늘) — 음악 취향을 나누며 가까워지는 두 고등학생의 이야기다. 공연장을 가득 채운 군중에서 두 사람의 작은 세계로 규모는 달라지지만, 좋아하는 음악이 서로를 알아보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이어진다. 오아시스의 열기 뒤에, 누군가에게 노래를 들려주던 개인적인 기억을 겹쳐볼 수 있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