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관이라는데, 믿어도 될까 | MovieLAB LAB

눈보라 속에서 마차를 세운 남자가 자신을 새 보안관이라고 소개한다. 크리스 매닉스(월튼 고긴스)의 말이다. 마차에 타고 있는 현상금 사냥꾼 존 루스(커트 러셀)는 그 말을 곧이곧…

보안관이라는데, 믿어도 될까 | MovieLAB LAB

눈보라 속에서 마차를 세운 남자가 자신을 새 보안관이라고 소개한다. 크리스 매닉스(월튼 고긴스)의 말이다. 마차에 타고 있는 현상금 사냥꾼 존 루스(커트 러셀)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루스에게는 레드록까지 데려가야 할 죄수 데이지 도머그(제니퍼 제이슨 리)가 있고, 이미 다른 현상금 사냥꾼 마퀴스 워런(사무엘 L. 잭슨)도 마차에 합류했다. 누군가를 태워야 하는데, 그가 누구인지는 본인의 말에 기대어 판단해야 한다.

〈헤이트풀8〉의 곤란함은 이 마차 안에서 시작된다. 낯선 사람의 도움 요청을 거절하기에는 날씨가 너무 나쁘고, 받아들이기에는 서로가 미덥지 않다. 일행이 눈보라를 피해 미니의 잡화점에 들어간 뒤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는다. 몸을 녹일 장소에는 먼저 온 손님들이 있다. 이제 위험을 피하려면 안으로 들어가야 하고, 안에서 살아남으려면 함께 들어온 사람을 계속 살펴야 한다.

직함을 말하는 사람들

잡화점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각자 자신을 설명한다. 밥(데미안 비치르)은 자리를 비운 미니 대신 가게를 맡았다고 말한다. 오스왈도 모브레이(팀 로스)는 교수형 집행인이라고 소개한다. 직업과 방문 목적을 알면 처음 만난 사람을 어느 정도 이해한 듯하지만, 여기서는 그 설명을 바로 확인해 줄 사람이 없다.

매닉스의 보안관 주장도 그런 말 가운데 하나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배우에게 실제로 보안관인지 스스로 답을 정하되, 그 답을 자신에게 알려 주지는 말라고 했다. 감독이 어느 쪽이 진실인지 확정하는 장면도 써 보았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관객이 궁금해하는 질문을 제작진이 깜빡 빠뜨린 것이 아니다. 이 남자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그때그때 판단해야 하는 상태를 남겨 둔 것이다.

이 설정 덕분에 ‘보안관’은 단순한 인물 소개가 되지 않는다. 남을 제지하거나 자신의 판단을 따르게 만들 때 힘을 얻는 말이기도 하다. 매닉스가 무엇을 주장하는지만큼, 상대가 그 주장을 언제 받아들이고 언제 무시하는지도 중요해진다. 직함이 신분을 알려 주는 정보인 동시에 관계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관객 역시 누군가를 믿고 싶어진다. 말을 잘하는 인물, 이미 눈에 익은 배우, 더 위험한 상대에게 맞서는 사람에게 마음이 갈 수 있다. 그러나 한순간의 설득력이 다른 순간의 진실까지 보증하지는 않는다. 영화의 대화는 새 사실을 알려 주면서 동시에, 그 말을 믿게 된 이유도 돌아보게 한다.

장작과 의자가 많은 산장 안에서 두 남성이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아 있다

말하는 사람 뒤에 남은 얼굴

이런 방을 아주 넓은 화면으로 찍었다. 설경을 펼쳐 보이는 서부극에 어울리는 선택처럼 보이지만, 화면의 넓이는 실내에 들어온 뒤에도 제 역할을 한다. 타란티노는 앞쪽 인물의 대화를 보면서 뒤쪽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계속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 명이 말할 때 방 안의 나머지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그 덕분에 관객의 관심은 대사의 주인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누가 누구 근처에 있는지, 누가 대화에서 빠져 있는지, 상대의 말을 듣는 동안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살피게 된다. 화면 안에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단순한 풍성함이 아니라 감시할 대상의 많음으로 느껴진다. 믿을 사람을 고르려는 마음이 시선을 계속 움직인다.

촬영감독 로버트 리처드슨은 인물들의 위치를 치밀하게 연습했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어느 순간에는 관객이 모두의 위치를 알지 못하도록 렌즈와 각도를 조정했다고도 밝혔다. 넓게 찍는다고 방 안의 모든 정보를 공평하게 주는 것은 아니다. 보여 주는 범위 안에서도 시선은 유도되고, 일부는 가려진다.

이 점을 알고 보면 잡화점은 단순히 인물들을 가둔 배경이 아니다. 같은 방이지만 바와 식탁, 난로 주변에 놓인 사람들의 관계가 다르다. 대화의 중심이 옮겨 갈 때 관객이 확인할 수 있는 범위도 변한다. 말로 들은 설명과 눈으로 파악한 위치를 함께 기억해야 하는 공간이다.

수갑에 묶인 여자의 노래

데이지는 루스와 수갑으로 연결되어 있다. 일행 가운데 이동의 자유가 가장 적고, 루스의 폭력을 직접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당하는 모습을 아는 것만으로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까지 알 수는 없다. 데이지가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동안 무엇을 알고 무엇을 숨기는지는 계속 관찰해야 한다.

그가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대목에서는 평소와 다른 종류의 시간이 생긴다. 줄을 짚고 소리를 내는 동안 관객은 붙잡힌 죄수에게도 익숙한 기술과 자기 호흡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다른 사람의 질문에 답하거나 욕설을 주고받을 때와 달리, 한 곡을 이어 갈 만큼의 시간을 직접 차지하는 것이다.

제니퍼 제이슨 리는 이 영화를 준비하기 전까지 기타를 쳐 본 적이 없었다. 감독이 연주를 요청한 뒤 틈이 날 때마다 연습했고, 그 과정이 데이지를 이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인물의 일기를 쓰는 것보다 실제로 손을 움직여 한 곡을 익히는 일이 자신에게 더 깊이 남았다는 것이다. 말을 하지 않는 순간이 많은 데이지에게도 돌아갈 수 있는 노래가 생겼다.

이 장면의 흥미는 노래가 인물을 선량하게 바꾸어 보이게 하는 데 있지 않다. 이미 붙인 이름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능력과 리듬이 잠깐 드러난다. 잡화점의 사람들을 관찰하는 일에는 의심스러운 행동을 찾아내는 것뿐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면을 만나는 일도 포함된다. 그리고 그 면을 보았다고 해서 의심이 모두 풀리는 것도 아니다.

눈 쌓인 비탈에서 여러 사람의 실루엣이 산장 쪽으로 이어진다

눈보라가 붙잡아 둔 대화

타란티노는 이 이야기를 처음에 장고의 또 다른 모험으로 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관객이 이미 알고 응원하는 영웅이 있으면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장고를 뺐다. 누군가의 과거와 마음을 미리 믿을 수 없는 상태가 필요했던 것이다.

남은 인물들은 폭풍이 잠잠해지기를 함께 기다리지만, 같은 이유로 기다리지는 않는다. 루스는 죄수를 데려가야 하고, 데이지는 그 목적지로 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매닉스가 말하는 미래의 직책도, 밥이 설명하는 현재의 역할도 방 안에서 끊임없이 시험받는다. 모두 같은 지붕 아래 있다는 사실이 공동의 목적을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그렇게 긴 대화가 위험한 행동이 된다.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면 상대의 판단을 움직일 수 있지만, 너무 많이 말하면 자신이 알고 있다는 사실까지 드러날 수 있다. 관객은 누가 총을 먼저 꺼낼지 기다리는 동안 이미 여러 차례의 힘겨루기를 본다. 눈보라는 이동을 멈췄지만, 사람들은 말과 시선으로 계속 서로의 자리를 바꾸려 한다.

감상 포인트

◆ 직업을 소개하는 말. 보안관, 집행인, 가게를 맡은 사람이라는 설명이 실제 행동과 어떻게 맞물리는지 보자. 무엇을 말했는지만큼 누가 그 말을 믿는지도 중요하다.

◆ 대화 뒤편의 인물들. 말을 하는 사람을 보다가 잠시 화면의 다른 자리에 눈을 돌려 보자. 넓은 화면은 한 방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반응들을 관찰할 여지를 남긴다.

◆ 데이지가 노래할 때. 대화 속에서 맡던 자리와 한 곡을 연주하는 동안의 자리를 비교해 보자. 수갑에 묶인 인물이 잠시 자기 호흡으로 시간을 사용하는 순간이다.

◆ 사람들의 위치와 보이는 범위. 대화의 중심이 옮겨 갈 때 누가 함께 보이고 누가 빠지는지 살펴보자. 방 안을 안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영화가 허용한 정보에는 한계가 있다.

관련 작품

◆ 〈용문비갑〉(2011, 서극) —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폭풍을 앞둔 객잔에 모인다. 피신처가 속내를 감춘 인물들의 대결 장소가 되는 과정을 비교해 볼 만하다.

◆ 〈무쌍〉(2018, 장문강) — 범죄자의 진술을 따라가면서 그가 어떤 모습으로 자신을 설명하는지 의심하게 한다.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과 믿을 만한 사람의 차이를 이어서 살필 수 있다.

이 글은 자료 조사와 집필 과정에서 AI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