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쿠엔틴 타란티노는 장고의 새 모험을 쓰다가 장고를 빼기로 했다. 〈장고: 분노의 추적자〉의 주인공 장고(제이미 폭스)를 다시 만날 수 있는 소설을 구상하던 중이었다. 눈보라…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는 장고의 새 모험을 쓰다가 장고를 빼기로 했다. 〈장고: 분노의 추적자〉의 주인공 장고(제이미 폭스)를 다시 만날 수 있는 소설을 구상하던 중이었다. 눈보라 속 역마차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영화로 만들 만했다. 하지만 이미 잘 아는 영웅이 그 안에 있으면 관객은 처음부터 누구 편을 들지 결정할 수 있었다. 타란티노가 새 이야기에서 원한 것은 바로 그 확신이 없는 상태였다.
그렇게 〈헤이트풀8〉에는 마음 놓고 믿을 사람이 사라졌다. 눈 때문에 한 건물에 갇힌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와 직업을 말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타란티노는 관객에게 줄 정보를 고르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배우에게도 자기 판단을 감독에게 말하지 말라고 부탁했고, 촬영에서는 익숙하게 쓰던 방법을 포기해야 했다. 무엇을 모르게 둘지, 무엇을 화면에 남길지 정하는 일이 각본부터 카메라까지 이어진 영화다.
관객은 장고가 어떤 일을 겪었고 무엇을 원하는지 이미 안다. 다른 인물이 수상한 말을 하면 장고를 기준 삼아 판단할 수 있다. 타란티노는 그런 중심이 없는 영화를 생각했다. 누가 옳은지 미리 알려주는 인물을 빼면, 관객도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판단할 근거를 찾아야 한다. 한 영웅의 다음 모험이 여러 사람의 의심스러운 만남으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각본에서 영웅을 뺐다고 배우의 매력까지 사라지지는 않았다. 마커스 워런(사무엘 L. 잭슨)이 말을 시작하면 그를 응원하고 싶어질 수 있다. 타란티노도 공개 낭독을 하며 잭슨의 인물 쪽으로 관객의 마음이 기울리리라는 것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감독이 설계한 불신과 배우가 얻어내는 호감은 같은 방향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이 어긋남이 〈헤이트풀8〉을 보는 재미다. 믿지 말라는 경고를 알아들었어도 누군가의 재치나 당당함에 끌린다.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된 뒤에는 같은 말도 조금 더 그럴듯하게 들릴 수 있다. 타란티노는 그 호감을 전부 없애려 하기보다, 호감만으로 상대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을 유지한다. 방 안의 대화가 길어질수록 정보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가는 사람도 생긴다.
크리스 매닉스(월튼 고긴스)는 자신이 새 보안관이라고 주장한다. 타란티노는 그 말이 사실인지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고긴스에게는 직접 판단하되 자신에게 그 답을 말하지 말라고 했다. 어느 장면에서도 그 진위를 확정한 상태에서 배우와 작업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우에게는 말을 해야 하는 사람의 확신이 필요하다. 관객에게는 그 확신을 믿어도 되는지 의심할 여지가 필요하다. 둘을 동시에 만들기 위해 감독은 배우가 정한 답을 듣지 않았다. 인물의 말을 불확실하게 남기는 것과 배우가 아무 준비 없이 모호하게 연기하는 것은 다르다. 고긴스에게 판단을 맡긴 주문은 그 차이를 보여준다.
타란티노는 집필 중 매닉스가 진짜 보안관인 것을 밝히는 장면도, 아니라는 것을 밝히는 장면도 시도했다고 말했다. 둘 다 만족스럽지 않았다. 답을 내놓으면 관객이 인물의 다음 말을 판단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수상한 주장 하나가 곧바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같은 사람을 보면서도 생각을 고칠 가능성이 남는다.
이 대화를 알고 보면 매닉스의 자신만만함을 확인된 신분과 곧바로 연결하지 않게 된다. 누군가 큰 소리로 말하는 모습을 보는 일과 그 말을 증명할 자료를 얻는 일은 다르다. 타란티노는 관객이 두 가지를 얼마나 쉽게 붙여 받아들이는지, 인물들이 말을 주고받는 동안 시험한다.
〈헤이트풀8〉의 넓은 화면은 설경뿐 아니라 좁은 실내의 여러 사람을 함께 보기 위한 선택이었다. 타란티노는 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서 뒤에 있는 사람도 살필 수 있다는 점을 중요하게 여겼다. 누가 말하는지와 누가 그 말을 듣고 있는지가 한 화면 안에 남는다. 대화의 주인공이 바뀌어도 방 안의 다른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촬영감독 로버트 리처드슨과의 작업에는 구체적인 제약이 있었다. 사용한 울트라 파나비전 렌즈 구성에는 줌 렌즈가 없었다. 타란티노는 자신이 익숙해진 촬영 방법을 쓸 수 없다는 점을 처음에는 크게 아쉬워했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너무 편하게 쓰던 방법에서 벗어나는 도전으로 받아들였다고 회고했다.
리처드슨은 렌즈로 당겨 보는 대신 카메라 자체를 움직였다고 설명했다. 크레인이나 이동 장치를 이용해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식이었다. 원하는 얼굴을 화면에서 크게 만드는 결과는 비슷해 보여도, 카메라가 공간을 통과하는 움직임은 다르다. 인물 한 사람에게 다가가면서 그가 다른 사람들과 어떤 거리에 있는지도 느끼게 된다.
넓은 화면이라고 방 안의 모두를 언제나 보여준 것도 아니다. 리처드슨은 특정 순간에는 배경의 사람을 감추기 위해 렌즈와 각도를 조정했다고 밝혔다. 관객에게 다른 사람의 위치를 살필 여지를 주다가, 필요할 때는 그 정보를 거두어들인 것이다. 무엇을 보여주느냐만큼 어디를 보지 못하게 하느냐도 이 촬영의 일이었다.
말하는 사람의 얼굴에 집중하다 화면 뒤쪽으로 눈이 가는 순간이 있다. 다른 사람이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진다. 타란티노가 여러 인물을 한 방에 모은 뒤 카메라로 마련한 재미는 그처럼 시선이 움직이는 데도 있다. 대사를 다 들었다고 그 방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두 본 것은 아닐 수 있다.
◆ 워런에게 마음이 기우는 순간 — 워런의 말을 얼마나 믿는지와 그의 말솜씨를 얼마나 즐기는지 구별해보자. 자신 있게 말하는 배우에게 끌리는 동안 아직 확인하지 못한 사실도 있다. 각본에서 영웅을 뺀 뒤에도 남는 배우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 매닉스가 자신을 소개하는 방식 — 보안관이라는 주장에 다른 인물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보자. 인물이 내세우는 확신과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근거는 같지 않다. 감독이 배우의 답을 듣지 않기로 한 선택이 장면의 불확실함을 어떻게 남기는지 생각할 수 있다.
◆ 대화 뒤쪽에 있는 사람 — 앞에서 말하는 인물뿐 아니라 같은 화면 뒤에 있는 사람도 보자. 대사에 집중하던 눈을 조금 옮겼을 때 새로운 반응이나 위치가 눈에 들어올 수 있다. 넓은 화면이 풍경을 담는 크기 이상의 역할을 한다.
◆ 카메라가 가까워질 때 남는 공간 — 인물에게 다가가는 화면에서 얼굴 크기만 보지 말고 주변과의 거리도 살펴보자. 카메라가 움직이면 앞뒤 사람들의 관계가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익숙한 줌을 포기하고 찾은 촬영 방식이 실내의 긴장에 어떻게 쓰이는지 볼 만하다.
◆ 〈헤이트풀8〉 (2015, 쿠엔틴 타란티노) — 인물의 주장과 그것을 믿을 근거가 계속 어긋나는 영화다. 대화에서 얻는 정보와 넓은 화면에서 살필 수 있는 정보를 함께 따라가면, 감독이 관객에게 남겨놓은 판단의 빈자리가 보인다.
◆ 〈장고: 분노의 추적자〉 (2012, 쿠엔틴 타란티노) — 장고가 무엇을 원하고 누구에게 맞서는지 알고 따라가는 서부극이다. 이 영웅을 빼기로 한 선택을 〈헤이트풀8〉과 비교하면, 관객이 누구를 응원하게 되는지에 따라 이야기의 재미가 어떻게 바뀌는지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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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