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집에서 누군가 노래한다고 모두가 귀를 기울이는 것은 아니다. 〈비긴 어게인〉의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도 그런 무대에 선다. 그런데 객석의 한 남자는 제대로 듣고 있다. 음반사…
술집에서 누군가 노래한다고 모두가 귀를 기울이는 것은 아니다. 〈비긴 어게인〉의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도 그런 무대에 선다. 그런데 객석의 한 남자는 제대로 듣고 있다. 음반사에서 밀려나 술을 마시던 댄(마크 러팔로)이다. 제 앞가림도 못 하는 것처럼 보였던 사람이 노래 앞에서는 달라진다. 엉망이 된 하루에도 아직 좋아하는 소리를 알아듣는 귀는 남아 있었다.
누군가 내 노래를 좋아해준다면 기쁠 것이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함께 녹음해보자고 한다면, 다음 날 할 일까지 생긴다. 그레타는 남자친구 데이브(애덤 리바인)와 헤어진 뒤 뉴욕에 혼자 남았고, 댄은 음악을 발견하는 자신의 능력을 다시 증명하고 싶다. 두 사람이 만나 얻는 것은 막연한 격려보다 구체적이다. 좋은 노래가 있으니, 같이 앨범을 만들어보자는 약속이다.
영화는 첫 만남을 보여준 뒤 곧장 앨범 작업으로 달려가지 않는다. 시간을 되돌려 댄이 어떻게 그 술집에 왔는지, 그레타는 어떤 일을 겪었는지 들려준다. 그들의 사정을 알고 다시 돌아온 무대에서는 처음 들었던 노래도 다르게 들린다. 댄이 왜 그 목소리에 붙잡혔는지, 그레타가 왜 노래를 부르면서도 선뜻 신나 하지 못하는지 알게 된다.
이때 관객이 얻는 재미는 감춰둔 비밀을 맞히는 것과 조금 다르다. 처음에는 좋은 곡 하나를 들었다면, 다시 들을 때는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함께 눈에 들어온다. 가사는 그대로여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달라졌다. 막연히 쓸쓸하게 들리던 목소리에서 이제는 그레타가 겪은 시간이 떠오른다.
존 카니 감독은 그레타를 대단한 스타나 천재의 발견담 속 주인공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노래를 쓰고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큰 관객 앞에 나서는 일에는 편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래서 댄의 관심도 차츰 새 스타를 골라낸 안목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이 목소리를 지금보다 많은 사람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그와 다시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을 움직인다.
그레타의 노래를 듣는 동안에는 객석의 반응이 조용하다고 공연이 실패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한 사람이 제대로 듣고 있다. 영화는 그 한 사람의 반응을 함께 보여주며, 박수의 크기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 만남을 기다리게 한다. 노래가 끝나면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진다.
두 사람은 뉴욕의 여러 장소에서 노래를 녹음하기로 한다. 전문 녹음실을 마련하는 대신 도시 안으로 악기와 장비를 들고 나가는 것이다. 주변의 소리를 완전히 막을 수 없으니 곡 안에 받아들이겠다는 발상이다.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음악을 시작할 수 있다.
이 계획이 즐거운 것은 돈이 부족해도 할 수 있다는 격려에만 있지 않다. 노래마다 연주하는 장소가 달라지고, 사람들은 그곳에 모여 서로의 소리를 듣고 맞춘다. 댄의 머릿속에 있던 앨범이 이제 여러 사람의 손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레타 혼자 기타를 들고 서 있던 첫 무대를 떠올리면, 함께 음악을 만들 사람이 이렇게 많아졌다는 사실도 반갑다.
야외 녹음이라는 발상에는 카니가 친구들과 집 뒤뜰에서 녹음하던 경험이 들어 있다. 다만 영화에서 들리는 음원이 전부 그 거리에서 즉석으로 녹음된 것은 아니다. 감독은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소리를 야외 녹음처럼 들리게 섞었다고 밝혔다. 화면 안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과, 화면 밖에서 소리를 다듬은 사람들이 함께 뉴욕의 여름을 만들었다.
그 사실을 알고 봐도 장면의 흥겨움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이 노래에 왜 이런 장소가 어울리는지, 주변의 소리가 들어오면 분위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더 듣게 된다. 잘 녹음된 음악을 들려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곡을 녹음하느라 함께 보낸 하루까지 좋아하게 만드는 장면들이다. 앨범에 실릴 것은 노래지만 관객의 기억에는 연주하던 사람들도 남는다.
그레타와 댄은 새 곡만 함께 만들지 않는다. 헤드폰 두 개를 같은 기기에 연결하고 뉴욕을 걸으며 다른 사람의 노래도 나눠 듣는다. 각자 귀를 가렸는데도 둘 사이가 멀어지지 않는다. 바로 지금, 같은 부분을 듣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혼자 좋아하던 곡을 곁에 있는 사람도 듣는다는 작은 변화가 산책의 기분을 바꾼다.
좋아하는 음악을 소개할 때는 취향을 설명하는 말보다 곡부터 들려주고 싶어진다. 긴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이 소리를 좋아한다는 사실 하나는 건넬 수 있다. 이 장면의 두 사람도 음악에 대한 의견만 교환하는 동료의 모습에서 조금 벗어난다.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어떤 노래에서 표정이 달라지는지 서로 알아갈 시간이 생긴다.
음악을 듣는 둘을 보는 관객도 그 시간에 끼어들 수 있다. 아는 곡이 나오면 반갑고, 몰랐던 곡이라도 화면의 사람들과 함께 좋아해볼 수 있다. 연애가 시작되는지 지켜보는 마음과는 별개로, 저렇게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누군가와 걷고 싶어진다. 영화를 보고 나서 자기 재생목록을 다시 열게 되는 것은 새로 들은 곡을 찾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Lost Stars’는 영화 안에서 여러 모습으로 들린다. 그레타의 목소리와 데이브의 목소리도 다르고, 편곡과 공연의 분위기도 달라진다. 같은 곡의 어느 버전을 더 좋아하는지 고르는 즐거움이 있지만, 영화는 듣는 사람의 자리까지 함께 보여준다. 자신이 만든 노래를 남이 부르는 모습을 바라보는 그레타에게 그 공연은 관객석의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시간이 될 수 없다.
데이브의 노래가 매력적으로 들릴수록 그레타의 마음도 간단하게 정리하기 어렵다. 노래를 잘한다는 것과 둘의 관계가 잘 이어졌다는 것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한때 가까웠던 사람의 공연에 마음이 움직인다고, 그동안의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카니는 음악이 인물의 감정을 전하도록 두면서도 그 감정을 하나로 단정하지 않는다.
그레타에게 귀를 기울였던 댄, 함께 녹음하는 연주자들, 자신이 만든 노래를 듣는 그레타. 이 영화에는 잘 부르는 사람만큼 잘 듣는 사람들의 모습이 남는다. 영화가 끝난 뒤 좋아하는 곡 하나를 다시 틀고 싶어진다면, 누구에게 들려줄지도 생각해볼 만하다. 어쩌면 지금 그 노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 첫 노래로 돌아오는 순간 — 댄과 그레타의 사정을 알게 된 뒤 같은 무대가 어떻게 달라 보이는지 느껴보자. 새로운 사건이 생기지 않아도, 인물을 더 알고 들으면 목소리와 표정에서 받는 인상이 달라진다. 영화가 첫 만남에 시간을 들이는 이유를 알 수 있다.
◆ 연주하는 사람 옆의 도시 — 야외 녹음 장면에서는 노래와 함께 주변 장소에도 눈길을 줘보자. 어디에 모여 누구와 연주하는지가 곡의 분위기를 만든다. 스튜디오 음원을 야외처럼 다듬었다는 제작 과정을 알고 보면, 화면과 소리를 맞춘 솜씨도 귀에 들어온다.
◆ 둘이 듣는 재생목록 — 헤드폰을 쓰고 걷는 장면에서 음악이 대화 사이를 어떻게 채우는지 보자. 같은 곡을 듣는다는 사실만으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달라진다. 노래 취향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 외에도, 서로를 알아가는 즐거움이 담겨 있다.
◆ ‘Lost Stars’를 듣는 얼굴 — 가수의 목소리만 비교하지 말고 그 노래를 듣는 그레타도 살펴보자. 누가 부르고 누가 듣느냐에 따라 같은 곡의 의미가 달라진다.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 기쁨과 그 노래에 얽힌 사정이 함께 남는 장면이다.
◆ 〈싱 스트리트〉 (2016, 존 카니) — 소년들이 밴드를 만들고 자기 곡과 뮤직비디오를 준비한다. 〈비긴 어게인〉의 어른들과 달리 처음 해보는 일이 많지만, 누군가와 음악을 만들면서 하루가 달라진다는 즐거움은 이어진다. 노래마다 바뀌는 소년들의 모습도 함께 볼 만하다.
◆ 〈원스〉 (2007, 존 카니) — 더블린의 거리 음악가와 체코에서 온 여성이 만나 연주하고 녹음한다. 상대의 노래에 자기 연주를 보태는 일이 두 사람을 가까이 데려간다. 큰 앨범의 성공보다 함께 곡을 완성하는 시간에 관심이 갔다면, 이 영화의 작은 만남도 오래 남을 것이다.
──────────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