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죽였는지보다, 어떤 아내였는지를 묻는다 | MovieLAB LAB

누군가 음악을 너무 크게 튼다. 아래층에서 인터뷰하던 두 사람은 말을 이어가기 어렵다. 〈추락의 해부〉에서 소설가 산드라(산드라 휠러)가 손님을 맞은 집은 시작부터 편안하지 않다…

남편을 죽였는지보다, 어떤 아내였는지를 묻는다 | MovieLAB LAB

누군가 음악을 너무 크게 튼다. 아래층에서 인터뷰하던 두 사람은 말을 이어가기 어렵다. 〈추락의 해부〉에서 소설가 산드라(산드라 휠러)가 손님을 맞은 집은 시작부터 편안하지 않다. 위층에 있는 남편 사뮈엘(사뮈엘 타이스)은 얼굴을 보여주기도 전에 소리로 존재를 알린다. 단순한 층간 소음이라면 짜증을 내고 말 일이다. 하지만 뒤이어 남편이 집 밖 눈밭에서 숨진 채 발견되면, 방금 들은 음악도 다르게 기억하게 된다. 그는 왜 아내의 일을 방해했을까.

사망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은 없다. 산드라는 남편을 죽였다는 의심을 받고, 재판에서는 두 사람이 나눈 말과 함께 살아온 사정이 증거로 불려 나온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다른 질문에 답하고 있게 된다. 산드라가 살인을 했는지가 아니라, 내가 이 아내를 좋아하는지. 자기 일에 몰두하고, 남편의 불만에 물러서지 않는 사람에게 느끼는 호감과 반감이 죽음의 원인을 판단하는 데 끼어든다.

음악은 신나는데, 집 안은 불편하다

첫 장면에서 반복되는 곡은 가사가 없는 ‘P.I.M.P.’의 연주 버전이다. 경쾌한 스틸드럼 소리가 대화를 덮는다. 곡 자체만 들으면 몸을 움직이고 싶어질 수도 있는데, 인터뷰를 하는 사람에게는 상대의 말이 들리지 않을 만큼 시끄럽다. 같은 음악이 어떤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 즐거움도, 방해도 된다.

감독 쥐스틴 트리에는 이 장면에서 말하지 않는 남편을 음악이 대신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부부의 관계를 자세히 알기 전부터 우리는 이미 남편의 행동을 해석하고 있다. 아내를 골탕 먹이려는 것일까, 자기 기분대로 소리를 키웠을까. 남편의 대답은 들을 수 없으니 아래층의 산드라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피게 된다.

재판은 이처럼 따로 놓으면 여러 뜻으로 읽힐 행동들을 한 방향으로 묶으려 한다. 소리 큰 음악, 소설의 문장, 다투면서 한 말이 부부 사이의 감정에 관한 단서가 된다. 기록이 남아 있다는 점은 분명 도움이 되지만, 기록마다 그것을 설명하는 사람이 붙는다. 무엇을 했는지 아는 것과 왜 그랬는지 아는 것은 다른 일이다. 영화의 긴장감은 자료가 부족해서만 생기지 않는다. 자료가 늘어날수록 누구의 설명이 더 그럴듯한지도 바뀐다.

눈 덮인 바닥에 쓰러진 사람과 곁에 선 인물

자기 인생인데, 가장 편한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산드라는 독일인이고 남편은 프랑스인이다. 두 사람은 영어로 대화한다. 어느 한쪽의 모국어에 맞추는 대신 함께 사용하는 언어를 택한 관계다. 하지만 프랑스 법정에서는 산드라가 가장 편하게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조건이 주어지지 않는다. 프랑스어로 답하다 영어로 바꾸는 순간에는, 질문 하나에 대답하는 일에도 얼마나 많은 힘이 드는지 느껴진다.

트리에는 산드라가 감정을 더 넓게 설명하려 할 때 영어로 넘어간다고 말했다. 말문이 막히거나 표현을 고르는 시간이 늘어났다고 해서 숨기는 것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상대의 질문을 정확히 알아들어야 하고, 답이 다른 뜻으로 들리지 않게 해야 한다. 소설을 쓰며 언어를 다뤄온 사람조차 여기서는 자기 말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한다.

산드라 휠러는 이 인물을 남들이 요구하는 수치심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으로 이해했다. 그는 자기 경력과 삶의 선택을 설명하면서 관객에게 무조건 불쌍하게 보이려 하지 않는다. 그 태도 때문에 산드라를 더 믿게 될 수도 있고, 어딘가 차갑다고 느낄 수도 있다. 영화는 이 반응을 흥미롭게 만든다. 남편을 잃은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이런 표정을 지어야 한다는 기대를 우리가 이미 갖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변호사 뱅상(스완 아를로)이 곁에 있어도 산드라의 말을 그대로 전달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변호를 위해서는 법정에서 받아들여질 설명이 필요하다. 당사자가 자기 생활을 기억하는 방식과 남을 설득하기 위해 그 생활을 말하는 방식 사이에 차이가 생긴다. 영화의 대화가 길게 이어져도 긴장이 풀리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 문장을 말할 때마다, 그것이 어떻게 들릴지도 함께 걱정하게 된다.

식탁에서 함께 웃는 남녀

녹음을 틀었을 뿐인데, 두 사람이 돌아온다

부부싸움의 녹음이 재생되면 영화는 잠시 산드라와 사뮈엘이 함께 있는 집으로 간다. 법정에서 들리던 목소리에 몸과 표정이 생긴다. 앞에서는 주로 남들의 설명을 통해 알아가던 남편이 아내를 향해 직접 말을 하고, 산드라도 그 말에 응수한다. 목소리만으로 추측하던 두 사람이 눈앞에서 다툰다.

싸움에서 쟁점이 되는 것은 거창한 부부의 철학만이 아니다. 누가 아이를 돌보았는지, 누가 자기 일을 할 시간을 더 가졌는지, 상대의 선택 때문에 무엇을 포기했다고 느끼는지가 나온다. 둘 다 같은 집에서 살았지만 그 시간을 기억하는 방식은 다르다. 한쪽이 희생이라고 생각한 일을 다른 쪽은 떠넘기는 책임으로 들을 수 있다. 상대의 말이 너무 익숙해서 다음 비난을 미리 아는 듯한 대화이기도 하다.

그런데 영화는 그 집에 끝까지 머무르지 않는다. 다툼이 폭력의 소리로 이어지는 대목에서는 다시 법정으로 돌아온다. 방금 전까지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있었기에 관객도 사건을 직접 확인한 것 같은 기분이 들 수 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보고 싶은 행동은 화면에서 주어지지 않는다. 남은 것은 소리이며, 법정의 사람들은 그 소리를 각자의 주장에 맞춰 설명한다.

이 장면은 사생활이 공개되는 불편함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살아 있을 때 둘이 벌인 싸움이, 한 사람이 죽은 뒤에는 전혀 다른 목적에 쓰인다. 그때 상대를 다그치려고 한 말이 지금은 살인의 이유로 읽힐 수 있다. 그렇다고 부부싸움이니 아무 뜻도 없었다고 지울 수도 없다. 실제 상처를 주고받은 말이다. 관계에서 잘못한 일과 범죄를 입증하는 일 사이를 분별해야 하는데, 영화를 보는 감정은 그 둘을 자꾸 가까이 붙인다.

아이는 방청객으로만 앉아 있을 수 없다

열한 살 다니엘(밀로 마차도 그라네)에게 이 재판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구경하는 시간이 아니다.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와의 관계마저 자신이 듣고 말하는 내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아버지가 추락한 순간을 본 아이도 아니다. 개와 산책을 다녀온 뒤 시신을 발견한 아이에게, 어른들은 그가 무엇을 듣고 기억하는지 묻는다.

다니엘의 말이 중요한 증거로 다뤄질수록, 관객도 그에게서 답을 얻고 싶어진다. 법정의 어른들보다 아이가 더 솔직하게 말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다니엘은 확실한 진실을 들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증인이 아니다. 부모를 믿었던 기억과 새로 듣게 된 사정을 한꺼번에 받아들이는 중이다. 산드라에게 반론할 기회가 있다면, 다니엘에게는 그 모든 말을 듣고도 다시 가족의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생활이 있다.

이 때문에 결론이 나면 모든 것이 정리될 것이라는 기대도 달라진다. 재판에서 하나의 판단에 도달하는 일과, 남은 사람이 다음 날을 살아가는 일은 이어져 있지만 같지는 않다. 누군가의 설명을 받아들이더라도 한때 믿었던 관계를 의심해본 경험까지 없앨 수는 없다.

영화가 끝난 뒤 어떤 주장에 설득됐는지 이야기해보면, 그 대화에는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관계의 조건도 묻어날 것이다. 일에 몰두하는 태도, 함께 쓸 시간을 나누는 방식, 화가 났을 때 던져도 된다고 생각하는 말. 이 영화는 그런 판단을 남의 집 이야기로 편하게 해볼 수 있게 두지 않는다. 산드라가 어떤 배우자였는지 말하던 우리가, 어느 순간 그 사실만으로 죽음까지 설명하려 들지는 않았는지 마음에 남는다.

감상 포인트

◆ 첫 음악의 볼륨 — 곡의 경쾌함과 대화를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을 함께 들어보자. 남편의 얼굴이나 말이 없어도 소리가 그의 존재를 강하게 전한다. 뒤에서 같은 음악이 증거의 맥락으로 언급될 때, 처음의 불쾌감이 사건 판단에까지 영향을 주는지 돌아볼 만하다.

◆ 산드라가 언어를 바꾸는 순간 — 프랑스어와 영어 사이에서 말의 흐름과 표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보자. 같은 사람이 자기 감정을 설명해도 언어에 따라 필요한 시간과 힘이 다르다. 머뭇거림을 곧바로 거짓말의 징후로 읽고 있지는 않은지도 생각하게 한다.

◆ 싸움 장면에서 법정으로 돌아오는 때 — 녹음된 목소리에 영상이 더해졌다가 다시 사라지는 지점을 눈여겨보자. 직접 본 것, 소리로만 들은 것, 다른 사람이 설명한 것을 구별하면 증거를 받아들이는 경험도 달라진다. 한동안 인물의 얼굴을 보았다고 해서 그날의 모든 일을 목격한 것은 아니다.

◆ 증인의 말을 듣는 아이 — 다니엘이 직접 말할 때뿐 아니라 어른들의 말을 듣고 있을 때도 살펴보자. 누구에게 유리한 증언인지 따지는 것과 아이가 무엇을 새로 알게 되었는지 느끼는 것은 다른 관람이다. 재판의 긴장 뒤에 남은 가족의 생활이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게 한다.

관련 작품

◆ 〈버닝〉 (2018, 이창동) — 한 사람의 시선으로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해석하게 한다. 주인공이 품은 의심에 익숙해지는 동안, 관객도 확인하지 못한 사정을 그럴듯한 이야기로 이어 붙일 수 있다. 증거가 비어 있는 자리에 어떤 감정이 들어가는지 〈추락의 해부〉와 함께 살펴볼 만하다.

◆ 〈결혼 이야기〉 (2019, 노아 바움백) — 헤어지는 부부의 생활이 변호사들의 설명을 거치며 달라지는 과정을 다룬다. 관계의 어려움을 남이 이해할 언어로 바꾸는 순간, 함께한 기억도 서로를 공격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법적 절차와 그 뒤에도 이어질 가족의 시간을 함께 본다는 점에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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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