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미가 빈손으로 귤을 까먹는다. 손끝으로 껍질을 벗기고 한 조각을 입에 넣는데, 귤은 처음부터 없었다. 맞은편의 종수는 그 손을 바라본다. 해미가 귤 먹는 흉내를 내는 동안 종수…
해미가 빈손으로 귤을 까먹는다. 손끝으로 껍질을 벗기고 한 조각을 입에 넣는데, 귤은 처음부터 없었다. 맞은편의 종수는 그 손을 바라본다. 해미가 귤 먹는 흉내를 내는 동안 종수의 눈길은 그에게 머문다. 종수는 해미에게 끌린다. 그렇다면 해미의 말도 믿어줄까.
〈버닝〉에서 유아인이 연기하는 종수는 소설가가 되고 싶은 청년이다. 어린 시절 알던 해미를 우연히 만나 가까워지지만, 해미가 아프리카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둘 사이에 다른 남자가 들어온다. 스티븐 연이 연기하는 벤이다. 벤은 돈이 많고 여유롭지만, 무슨 일을 해서 그렇게 사는지는 알기 어렵다. 종수는 벤의 생활부터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영화는 이 세 사람을 만나게 한 뒤, 누구의 말이 사실인지 쉽게 확인해주지 않는다.
종수와 벤이 함께 있으면 두 사람의 형편 차이가 드러난다. 종수에게는 아버지 문제가 있다.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 마음대로 떠나기도 어렵다. 벤에게는 좋은 집과 차가 있고, 종수처럼 무언가에 매여 있는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종수는 벤을 알아갈수록 자기 처지를 비교하게 된다.
이창동은 파주를 정하면서 개발 속에서 사라져가는 농촌을 염두에 뒀다고 설명했다. 종수에게 파주는 아버지 때문에 돌아와 지내야 하는 곳이다. 벤은 그곳을 잠시 방문했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 같은 집에서 시간을 보내도 한 사람에게는 떠나기 어려운 일상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잠깐의 방문이다. 돈의 차이가 두 사람의 생활을 어떻게 바꾸는지 보이는 대목이다.
벤이 비닐하우스를 태운다는 이야기를 꺼낼 때도 두 사람의 태도는 다르다. 종수에게는 흘려듣기 어려운 말인데 벤은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한다. 농담인지, 사실인지, 다른 뜻이 있는지 알 수 없다. 듣는 사람만 그 말을 거듭 생각하게 된다. 벤이 태연하게 말한다고 해서 사실이라고 믿을 수는 없다. 그런데도 종수는 그 말이 마음에 걸린다.

〈버닝〉 스틸 · TMDB
전종서가 연기하는 해미에게는 두 남자와의 관계 말고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아프리카 여행에서 돌아온 그는 삶의 의미를 찾고 싶은 마음을 배고픔에 빗대어 말한다. 당장 먹고사는 일을 해결하는 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마음이다. 해미는 그것을 말과 몸짓으로 표현한다.
파주의 저녁, 해미가 춤추는 장면은 서둘러 끝나지 않는다. 하늘은 어두워지고 음악은 흐른다. 세 사람의 대화를 따라가던 관객도 한동안 해미의 움직임을 바라보게 된다. 그가 하는 말의 뜻을 헤아리던 때와는 다르게 해미에게 집중할 수 있다. 감독은 이 장면의 음악에 자유로운 느낌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해미를 둘러싼 수수께끼에만 관심을 두면 이 장면은 길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춤추는 모습을 보고 나면 해미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도 궁금해진다.
귤을 먹는 흉내를 냈다는 사실이 해미의 다른 말까지 거짓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미의 외로움에 공감하는 것만으로 그의 말을 모두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해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같은 말도 다르게 들릴 수 있다. 종수는 해미에게 가까워지지만, 그만큼 해미를 잘 이해하게 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버닝〉 스틸 · TMDB
영화는 종수를 따라다니는 시간이 길다. 종수가 모르는 일이 생기면 관객도 한동안 알 수 없다. 이때 우리는 그와 함께 단서를 찾기 쉽다. 종수가 단서를 찾는 과정을 함께 보았다고 해서 그의 판단까지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그는 벤에게서 들은 말 때문에 의심하면서도, 벤이 어떻게 그렇게 여유롭게 사는지 몰라 불편해한다.
종수를 따라 단서를 찾다 보면 해미의 말도 증거가 될지부터 따져보게 된다. 해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던 마음은 뒤로 밀릴 수 있다. 그럴 때 앞서 보았던 춤을 떠올려보자. 수수께끼를 푸는 데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해미에게 관심을 갖게 한 장면이었다. 〈버닝〉을 보고 남는 불편함은 모든 단서를 맞추지 못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종수의 궁금증에 몰두하는 동안 해미가 하고 싶던 말은 얼마나 들었는지, 그 질문도 남는다.
우리는 말을 잘하거나 형편이 좋아 보인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더 믿기도 한다. 나와 비슷한 처지라는 이유로 쉽게 마음이 기울 때도 있다. 세 사람을 지켜보다 보면 자신은 누구의 말을 더 믿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확실한 답을 서둘러 고르지 않을수록 인물들의 말이 다르게 들린다. 해미가 귤을 먹던 처음의 장면으로 돌아가고 싶어지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