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수의 의심을 어디까지 믿어도 될까 | MovieLAB LAB

벤(스티븐 연)에게는 좋은 집과 차가 있다. 종수(유아인)는 그가 무슨 일을 해서 그렇게 사는지 알지 못한다. 자기 앞가림도 버거운 종수에게 벤의 여유는 부럽고도 불편하다. 해미…

종수의 의심을 어디까지 믿어도 될까 | MovieLAB LAB

벤(스티븐 연)에게는 좋은 집과 차가 있다. 종수(유아인)는 그가 무슨 일을 해서 그렇게 사는지 알지 못한다. 자기 앞가림도 버거운 종수에게 벤의 여유는 부럽고도 불편하다. 해미(전종서)와 가까워진 남자이니, 그저 남의 사정으로 넘기기도 어렵다.

〈버닝〉에서 유아인이 연기하는 종수는 소설가가 되고 싶은 청년이다. 어린 시절 알던 해미를 우연히 만나 가까워지지만, 해미가 아프리카 여행에서 돌아오며 벤을 소개하면서 둘만의 관계가 달라진다. 스티븐 연이 연기하는 벤을 지켜보는 종수에게는 궁금한 것이 많다. 해미와는 어떤 사이인지, 자신과 비슷한 또래인데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는지. 종수의 의심을 이해하려면, 사건에 관한 단서와 함께 그가 이 남자를 어떤 마음으로 보고 있었는지도 살펴야 한다.

두 사람이 사는 곳

이창동은 종수의 집이 있는 곳을 파주로 정하면서, 개발로 사라져가는 농촌을 염두에 뒀다고 설명했다. 벤은 서울에서도 부유한 동네인 강남에 산다. 파주에서 강남으로 장소가 바뀌면 집과 주변 풍경도 크게 달라진다. 두 사람을 각각의 생활 공간에서 보고 나면, 종수가 벤을 낯설어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벤의 풍요로움은 집과 차처럼 구체적인 물건으로 보이는데, 그것을 얻기까지의 과정은 보이지 않는다. 종수에게 벤은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인 동시에, 자신이 아는 생활의 방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이다. 상대의 사정을 모르니 종수는 눈에 보이는 것부터 자기 처지와 비교하게 된다. 벤과 함께 있는 동안 종수가 의식하는 것은 벤의 풍요만이 아니라 자기에게 없는 것들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 차이가 벤에 대한 의심을 전부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영화에는 종수가 실제로 마음에 걸려 할 만한 말도 나온다. 형편이 다른 두 남자의 어색한 만남은 그 말 때문에 더 불편해진다.

어스름한 농촌의 길을 걷는 종수

벤이 말한 것과 종수가 본 것

벤은 버려진 비닐하우스에 불을 지르는 취미가 있다고 말한다. 내용은 섬뜩한데 말하는 태도는 태연하다. 종수는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벤의 생활을 잘 모르던 것과는 다른 문제다. 이제는 눈앞의 사람이 위험한 일을 한다고 직접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종수가 확인한 것은 벤이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이다. 벤이 실제로 불을 붙이는 장면을 본 것은 아니다. 그런데 종수가 주변의 비닐하우스를 살피기 시작하면, 관객도 그곳에서 벤의 말이 사실이라는 흔적을 찾게 된다. 같은 비닐하우스라도 누군가 태울지 모른다는 말을 듣기 전과 후에는 다르게 보인다. 벤은 이야기를 꺼냈을 뿐인데, 종수가 매일 보는 풍경까지 바꿔놓은 셈이다.

종수와 함께 의심하게 되는 이유는 이렇게 구체적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대화를 듣고 같은 곳을 살폈다고 해서, 그의 추측을 이미 확인된 일처럼 받아들일 수는 없다. 의심할 만한 말을 들었다는 것과 그 말대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 둘을 선뜻 하나로 묶어주지 않는다. 벤의 말이 진지했는지부터 고민하던 종수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자신도 그 말이 사실일 것이라고 기대하며 단서를 찾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반투명한 비닐 너머를 바라보는 종수

해미가 말하고 싶었던 것

두 남자가 서로를 의식하는 사이에도 해미에게는 자기 이야기가 있다. 전종서가 연기하는 해미는 아프리카 여행에서 배운 두 종류의 배고픔을 이야기한다. 먹고 싶어서 느끼는 배고픔과, 왜 사는지 알고 싶어서 느끼는 배고픔이다. 해미가 말하는 부족함은 끼니를 해결하는 것만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과는 다르게 살고 싶지만 무엇이 달라져야 할지 모르는 마음에 가깝다.

파주의 저녁, 해미는 그 배고픔을 춤으로 표현한다. 하늘이 어두워지는 동안 몸짓은 이어지고 재즈가 흐른다. 감독은 이 춤에 자유로운 느낌의 음악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분명하지 않은 듯한 재즈의 흐름이 좋았다는 것이다. 춤은 해미가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마음과 잘 어울린다. 그런데 춤추던 해미는 눈물을 흘린다. 음악에서 느껴지는 자유로움과 그 얼굴의 쓸쓸함이 한 장면 안에 함께 있다.

이 장면의 해미를 보면 아프리카까지 다녀왔다는 말이 다르게 들린다. 여행은 그의 엉뚱한 면을 소개하는 이력에 그치지 않는다. 자기 삶에 없는 무언가를 찾으러 실제로 멀리 다녀온 사람의 이야기다.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말은 거창해도, 춤추는 해미에게서 느껴지는 소망은 더 가까이 있다. 지금보다 조금 덜 막막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다. 벤이 무슨 일을 했는지 궁금해하는 동안에도, 해미가 어떤 삶을 바라고 있었는지는 잊고 싶지 않다.

왜 지금 이 영화를 볼까

〈버닝〉은 벤을 의심하는 종수의 마음을 이해하게 하면서도, 그가 내리는 판단에는 계속 망설이게 한다. 종수는 이유 없이 벤을 의심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의 불편함을 이해한다는 이유로 벤이 한 일을 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이처럼 한 사람의 사정을 따라가면서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을 멈춰보는 데서 영화의 긴장이 생긴다.

해미의 춤은 그 긴장 속에서 오래 마음에 남는 장면이다. 종수에게 해미와의 만남은 벤을 향한 질투와 의심으로 번져가지만, 해미에게는 자기 삶의 의미를 찾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 두 남자의 관계에만 몰두하면 놓치기 쉬운 마음이다. 자유롭게 춤추는 해미가 좋으면서도, 그 자유가 춤이 끝난 뒤의 생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걱정스럽다.

관련 작품

◆ 〈시〉 (2010, 이창동) — 미자(윤정희)는 시를 배우기 시작하며 주변의 아름다움과 고통을 새롭게 마주한다.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이 인물의 삶을 편안하게만 해주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해미의 춤과 함께 생각해볼 만하다.

◆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1962, 아녜스 바르다) — 노래를 듣던 관객이 그 노래를 견디기 어려워하는 가수의 얼굴을 보게 된다. 공연의 아름다움과 그 순간을 살아가는 사람의 사정을 함께 살핀다는 점에서 이어서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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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