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가 죽은 뒤, 형부는 누구인가 | MovieLAB LAB

은모(서우)는 고향에 돌아와 형부를 의심한다. 언니의 죽음에 자신이 모르는 사정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 형부 중식(이선균)은 언니를 잃은 뒤 은모와 함께 살았던 사람이기도 …

언니가 죽은 뒤, 형부는 누구인가 | MovieLAB LAB

은모(서우)는 고향에 돌아와 형부를 의심한다. 언니의 죽음에 자신이 모르는 사정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 형부 중식(이선균)은 언니를 잃은 뒤 은모와 함께 살았던 사람이기도 하다. 〈파주〉에서 진실을 알아내는 일은 수상한 남자를 멀리서 조사하는 일과 다르다. 그를 의심할수록 자신이 의지했던 시간까지 돌아봐야 한다.

형부와 처제라는 관계만으로 두 사람을 설명하려 하면 중요한 것들이 빠진다. 언니 은수(심이영)가 살아 있을 때와 죽은 뒤, 어린 은모에게 보호가 필요했던 때와 스스로 집을 떠났던 때의 관계는 같지 않다. 가족이라는 이름은 그대로인데 함께 사는 마음은 달라진다. 박찬옥은 그 변화를 한 번의 고백으로 정리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가까웠던 시간을 지나서야 왜 멀어졌는지 조금씩 알아보게 한다.

같은 집을 떠났다가 돌아온 사람

은모는 처음부터 중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온 그가 언니와 가까워지고 결혼하는 동안에도 마음을 주지 않는다. 그러다 언니가 사고로 죽고, 은모는 중식의 보호를 받으며 함께 살아간다. 마음에 들지 않던 사람이 어느새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 남은 것이다.

이런 관계에는 좋아해서 함께 있는 시간과 필요해서 함께 있는 시간이 겹친다. 은모가 어른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출발부터 대등한 두 사람의 연애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며 마음이 달라지더라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돌보았던 사정, 그 사이에 죽은 언니가 있었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은모는 집을 떠났다가 몇 년 뒤 다시 돌아온다. 영화는 돌아온 은모를 먼저 보여주고 지난 시간을 오간다. 덕분에 중식을 의심하는 지금의 모습만으로 어린 시절의 마음까지 짐작할 수 없게 된다. 뒤늦게 알게 된 과거 때문에 처음 본 은모가 달라 보인다. 무작정 냉정하거나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여겼던 행동에도 견뎌온 시간이 붙는다.

이 순서를 사건을 복잡하게 만드는 장치로만 볼 필요는 없다. 실제로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을 생각할 때도 처음 만난 날부터 차례로 떠올리지는 않는다. 지금의 서운함 때문에 예전의 친절을 의심하기도 하고, 그 친절이 생각나서 의심을 끝내지 못하기도 한다. 〈파주〉는 과거가 끝난 일이 되지 못하는 관계를 시간의 배열로 전한다.

밖에서는 필요한 사람, 집에서는 알 수 없는 사람

중식은 철거에 맞서는 사람들과 함께한다. 남의 삶이 무너지는 현장을 외면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러나 은모에게는 언니의 죽음에 관해 충분히 말해주지 않는 사람이다. 사람들 앞에서 하는 일과 가족 안에서 감춘 일을 한꺼번에 마주하면 그를 쉽게 평가하기 어렵다.

철거 현장의 중식을 본다고 은모의 의심이 부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은모에게 말하지 않은 사정이 있다고 그가 남을 위해 하는 일이 모두 거짓이 되는 것도 아니다. 한 사람의 선의를 알게 되었는데도 여전히 그에게 묻고 싶은 일이 남는다. 중식의 무거운 침묵에는 그 두 모습이 함께 걸려 있다.

박찬옥은 함께하는 일의 중심에 선 남자가 개인적인 관계 때문에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철거투쟁은 그 고민에서 고른 일이었다. 따라서 집이 무너지는 풍경을 두 사람의 사랑을 꾸며주는 배경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중식이 지키려는 것에는 함께 싸우는 사람들의 삶도 들어 있다. 은모와의 관계만을 위해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없는 이유가 생긴다.

이런 중식 앞에서 은모의 말은 단지 감정을 고백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를 믿고 어디에 머물지 정해야 하는 사람의 말이다. 그에게 돌아가는 일이 곧 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은 아니며, 그를 의심한다고 함께 살아온 시간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은모는 한 가지 감정으로 정리되지 않는 사정들 사이에서 자기 선택을 해야 한다.

안개를 서둘러 걷어내지 않고

〈파주〉의 짙은 안개는 인상적이다. 멀리 있는 것이 잘 보이지 않고 익숙한 공간도 낯설어진다. 그것을 곧바로 인물의 비밀을 뜻하는 상징으로 풀어버릴 수도 있겠지만, 감독은 이 도시에서 실제로 겪은 짙은 안개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촬영 장소에 특별한 상징을 먼저 정해둔 것은 아니었다.

그 말을 따라 화면을 보면 풍경을 해독하는 일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다. 안개가 뜻하는 정답을 찾기보다 그 안에서 사람이 얼마나 가까이 와야 보이는지, 어떤 공간에 머물고 있는지 느끼게 된다. 철거가 진행되는 동네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추상적인 불행의 풍경보다 구체적인 생활의 장소로 다가온다.

은모를 아역과 성인 배우로 나누지 않고 서우가 계속 연기한 선택도 눈여겨볼 만하다. 같은 얼굴로 여러 시기를 만나기 때문에 어린 은모와 돌아온 은모를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떼어놓기 어렵다. 과거에 품었던 감정이 지금의 얼굴에도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서우를 볼 때 사건에 관한 단서만 찾으면 이 시간이 주는 무게를 놓치기 쉽다.

영화가 모호한 부분을 남겨둔다고 해서 모든 사정이 흐릿한 것은 아니다. 은모는 언니를 잃었고, 중식과 살았으며, 그 집을 떠났다가 돌아왔다. 그 사실들 사이에서 마음이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는지 판정하는 데서 멈추기 어렵다. 사랑한다고 말하더라도 함께 지낸 날의 의문까지 모두 풀리는 것은 아니다.

은모가 중식을 믿을 만한 사람으로 확정할 수 있다면 조금 편해질지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의 마음은 그런 답보다 더 복잡한 곳에 있다. 자신을 돌보아준 사람에게도 설명을 요구하고, 한때 의지했던 집을 떠날 수도 있다는 것. 그 결정이 외롭다고 해서 잘못된 선택은 아닐 것이다. 은모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을 없던 일로 만드는 능력보다 그 마음을 안고도 자기 삶을 고를 여지처럼 보인다. 〈파주〉를 보고 나면 형부의 비밀 못지않게, 이 여성이 앞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갈지가 오래 궁금해진다.

감상 포인트

◆ 돌아온 뒤에 알게 되는 과거 — 영화가 어느 시기의 은모를 먼저 보여주는지 의식해보자. 뒤늦게 본 과거가 이미 본 행동의 의미를 바꾼다. 연도 순서만 정리하기보다 그때마다 은모를 이해하는 마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피면 좋다.

◆ 철거 현장의 중식 — 가족 안에서의 침묵과 사람들 사이에서 맡는 역할을 함께 보자. 중식이 한쪽에서 하는 일이 다른 쪽의 모든 의문을 해소해주지는 않는다. 개인에게 필요한 말과 공동체에서 필요한 행동이 어긋나는 인물이다.

◆ 풍경으로 먼저 만나는 안개 — 안개를 하나의 상징으로 확정하기 전에 그 속에서 공간과 사람이 보이는 방식을 느껴보자. 감독이 실제 파주에서 경험했다는 날씨가 인물의 생활에 들어온다. 배경의 분위기만으로 지나치지 않으면 도시의 존재감이 더 커진다.

◆ 같은 얼굴로 만나는 다른 나이 — 서우가 연기하는 은모의 어린 시절과 성인이 된 뒤를 비교해보자. 형부를 대하는 마음은 달라져도 함께 살아온 사정은 이어진다. 배우가 바뀌지 않기에 더 가까이 느껴지는 시간의 흔적이 있다.

관련 작품

◆ 〈질투는 나의 힘〉 (2002, 박찬옥) — 불편한 상대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마음을 직장과 연애의 관계 속에서 그린다. 사람에게 끌리는 이유를 한 가지 감정으로 정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연결된다. 두 영화가 같은 답답함을 서로 다른 유머와 침묵으로 다루는 과정도 흥미롭다.

◆ 〈만추〉 (2010, 김태용) — 잠시 허락된 외출에서 만난 두 사람이 서로의 사정을 조금씩 알아간다. 많은 것을 설명하지 못하는 관계에서도 친밀함이 생길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오래 함께 산 두 사람을 다룬 〈파주〉와 나란히 보면, 만남의 길이와 이해의 깊이가 꼭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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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