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싱을 가르쳐주는 형이 있다. 동생에게 필요한 기술을 알고, 실력을 끌어올려줄 수도 있다. 다만 그 형은 경기 도중 상대 선수를 죽인 일로 7년을 소년원에서 보냈다. 〈피어스〉의…
펜싱을 가르쳐주는 형이 있다. 동생에게 필요한 기술을 알고, 실력을 끌어올려줄 수도 있다. 다만 그 형은 경기 도중 상대 선수를 죽인 일로 7년을 소년원에서 보냈다. 〈피어스〉의 고교 펜싱 선수 즈지에(류수보)는 돌아온 형 즈한(조유녕)을 다시 만나고 싶다. 어머니(정녕)는 두 아들을 떼어놓으려 하지만, 동생은 형이 일부러 그런 일을 저질렀을 리 없다고 믿는다.
형이 다정하게 굴 때마다 마음이 놓여야 할 텐데, 이 영화에서는 오히려 긴장이 생긴다. 즈지에가 원하던 형의 모습을 우리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연출을 맡은 넬리시아 로우는 동생이 형을 좋아할 이유를 충분히 보여준다. 그래서 불길한 기색이 느껴져도 관계를 끝내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즈지에는 위험한 사람을 피하는 일만큼, 이제야 가까워진 형을 다시 잃는 일이 두렵다.
즈한의 도움을 받으며 즈지에는 실력이 늘고 전국 대회에 출전할 기회까지 얻는다. 형의 말을 믿어서 얻는 것은 위안만이 아니다. 칼을 다루는 솜씨가 늘고, 혼자 훈련할 때보다 좋은 성과를 낸다. 형을 만나는 일을 막으려는 어머니의 뜻과, 형 덕분에 좋아진 자기 생활을 즈지에는 함께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런 훈련 장면이 없다면 즈지에의 믿음은 철없는 고집으로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자기에게 시간을 내어주고, 부족한 부분을 알아보고, 더 나아지도록 도와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것은 자연스럽다.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형이 바로 그런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즈지에가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은 어릴 때의 추억뿐 아니라 지금 눈앞에서 생겨나는 좋은 일들이다.
물론 훌륭한 코치라는 사실이 형의 과거를 해명해주지는 않는다. 영화의 긴장은 그 점을 잊지 않으면서도 훈련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데서 나온다. 실력이 나아지는 동생을 응원하는 동안, 관객도 잠시 형이 계속 곁에 있기를 바라게 된다. 의심해야 할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이 드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로우는 싱가포르 국가대표로 활동했던 펜싱 선수 출신이다. 그는 경기에 임할 때 눈에 들어오는 것은 경기장 전체보다 앞에 선 상대와 서로의 거리라고 설명했다. 〈피어스〉가 펜싱을 보여주는 방식에도 그 경험이 들어 있다. 누가 점수를 얻는지만큼, 앞에 선 사람이 언제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기다리는 시간이 중요하다.
즈지에는 훈련할 때 형의 움직임을 배운다. 일상에서는 형의 말을 듣고 표정을 살핀다. 하지만 경기의 기술을 익힌다고 해서 형의 속마음까지 잘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펜싱에는 공격이 닿았는지 판정할 수 있는 규칙이 있다. 형이 자신을 아끼는지, 무엇을 감추는지에는 그런 확실한 신호가 없다. 둘이 함께 펜싱을 하는 모습이 친밀하면서도 불편한 이유다.
형제가 어린 시절의 일을 이야기할 때 카메라는 얼굴 가까이 다가간다. 로우는 배우들이 렌즈를 바라보게 해, 동생이 형의 진심을 알아보려 애쓰는 느낌을 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눈앞의 얼굴이 크게 보이면 작은 표정에도 뜻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가까이 찍혔다고 마음이 투명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표정을 오래 볼수록 그 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답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망설이게 된다.
류수보와 조유녕이 만드는 긴장은 이런 가까움에서 살아난다. 동생은 형을 이해하려고 애쓰지만, 형은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형의 말을 믿을지 말지 결정하는 장면에서도 두 사람 사이에 쌓인 애정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같은 얼굴이 잠깐 든든해 보였다가 다시 불안해질 수 있다.
형이 학교로 찾아와 동생을 훈련시키는 대목에는 어두운 운동장과 물을 뿌리는 스프링클러가 등장한다. 로우와 촬영진은 이 만남을 길게 이어지는 화면으로 설계했다. 형이 멀어지고 동생의 얼굴을 거쳐 빈 운동장으로 넘어갈 때에는, 형이 다녀갔다는 일이 잠시 꿈처럼 느껴지도록 편집했다.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더하는 이유가 그저 형을 수상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즈지에에게 이 방문은 바라던 일이 이루어진 순간이기도 하다. 집에서는 만나지 말라는 형이 자기 학교에 와서, 자기만을 위해 시간을 쓴다. 아름다운 화면은 그 반가움을 담으면서도, 동생이 이 만남에 얼마나 많은 기대를 걸었는지 느끼게 한다.
형을 보여주던 화면이 비고 나면 그 만남을 받아들이는 일은 동생에게 남는다. 방금 함께 있던 사람의 마음까지 확인한 것은 아니다. 긴 장면 뒤에 짧게 들어오는 빈 운동장이, 형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불확실함을 돌려준다. 아름다운 만남의 인상을 지우지 않고 그 안에 불안을 남기는 편집이다.
어머니는 두 아들의 재회를 막으려 하고, 동생은 형을 자기 생활로 불러들인다. 같은 가족이면서도 원하는 일이 정반대다. 영화가 동생의 편에 가까이 있다고 해서 어머니의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형의 행동이 달라질 때마다, 관객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의 바람을 함께 떠올리게 된다.
〈피어스〉의 여운은 형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판정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믿음을 거두기 어려운 동생에게도 이유가 있었다는 데 남는다. 펜싱을 가르치는 두 형제의 가까운 거리를 보고 나면, 즈지에가 한 발 물러나는 일이 얼마나 힘들지 짐작하게 된다.
◆ 〈버닝〉 (2018, 이창동) — 종수는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관찰하지만, 많이 보았다는 사실만으로 확신을 얻지는 못한다. 〈피어스〉가 가족에게 기대하는 마음을 건드린다면, 이 영화에서는 욕망과 생활 형편의 차이가 상대를 바라보는 눈에 끼어든다. 두 작품을 이어 보면 의심이 생기는 과정만큼 믿고 싶은 이유도 눈에 들어온다.
◆ 〈피터 본 칸트〉 (2022, 프랑수아 오종) — 젊은 배우에게 일과 거처를 제공하는 영화감독의 연애를 다룬다. 도움을 주고받는 일이 친밀함을 만들면서도 관계를 기울게 한다는 점에서 이어볼 수 있다. 가족과 연인이라는 차이 속에서,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 어떤 행동을 부르는지 비교하게 된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