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지어준 이름을 바꾸고 싶다 | MovieLAB LAB

영옥(신우빈)은 자기 이름이 싫다. 1998년 제주의 열여덟 살 남학생에게 ‘영옥’은 촌스럽고 여자 이름처럼 들린다. 좀 더 멋진 이름으로 불리면 지금의 자신도 달라질 것 같다.…

엄마가 지어준 이름을 바꾸고 싶다 | MovieLAB LAB

영옥(신우빈)은 자기 이름이 싫다. 1998년 제주의 열여덟 살 남학생에게 ‘영옥’은 촌스럽고 여자 이름처럼 들린다. 좀 더 멋진 이름으로 불리면 지금의 자신도 달라질 것 같다. 반면 어머니 정순(염혜란)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 때문에 괴롭다. 아들은 이미 가진 이름을 버리고 싶고, 어머니는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아야 한다. 〈내 이름은〉은 이 모자의 서로 다른 고민을 한집에 놓는다.

정순에게 봄은 반갑기만 한 계절이 아니다. 햇빛과 바람 속에서 발작을 겪지만 그 이유를 충분히 알지 못한다. 어린 시절의 기억에 커다란 공백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온 의사의 도움을 받아 그 기억을 더듬자, 시간은 제주 4·3의 폭력이 계속되던 194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사이 영옥의 학교에는 서울에서 전학 온 경태(박지빈)가 나타난다. 모범생 친구 민수(최준우)와 경태 사이에서 영옥이 느끼는 거리도 달라진다. 아들이 사는 교실과 어머니가 돌아보는 과거에는 모두 폭력이 있지만, 영화는 그 둘이 처음부터 같은 경험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멋진 이름보다 먼저 갖고 싶었던 것

영옥의 개명 욕구를 철없는 사춘기의 투정으로만 보면 그가 학교에서 처한 상황을 놓친다. 이름은 자기가 원하는 모습과 남들이 보는 모습이 충돌하는 자리다. 남학생들 사이에서 여성적으로 들리는 이름은 놀림의 빌미가 되고, 영옥은 그 이름 때문에 원치 않는 시선을 받는다. 이름을 바꾸고 싶다는 말에는 다른 아이들 앞에서 덜 초라해지고 싶은 마음도 섞여 있다.

경태의 등장으로 이 마음은 더 복잡해진다. 영옥은 그가 행사하는 힘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끌린다. 누군가를 괴롭히는 사람이 나쁘다는 판단과 그런 사람 곁에 있으면 내가 덜 약해질 것 같다는 기대가 함께 생기는 것이다. 민수와의 관계에서도 단순히 착한 친구를 고르면 된다고 말하기 어렵다. 공부를 잘하고 자신감 있는 친구 곁에서 소극적인 영옥이 느끼는 거리는, 친구의 선악과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때 신우빈의 얼굴이 중요해진다. 정지영 감독은 처음에는 그를 민수 역으로 고려했다가 영옥으로 바꾸었다. 배우에게서 보이는 착한 인상을 영옥에게 써보고 싶었다고 했다. 착해 보이는 사람이 늘 옳은 판단을 한다면 선택의 순간은 덜 불안할 것이다. 선뜻 미워하기 어려운 소년이 힘에 매혹되고 남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을 때, 우리는 피해를 입은 사람과 해를 끼치는 사람을 멀찍이 나누어놓기 어려워진다.

영옥의 처지를 이해하는 일은 그가 하는 일을 모두 용서하는 것과 다르다. 부당한 힘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지 알아야 그 힘이 커지는 과정도 보인다. 누군가는 앞장서고, 누군가는 기대며, 누군가는 관계에서 밀려난다. 영화의 교실은 폭력을 휘두르는 한 아이만 쳐다보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 공간이다. 영옥이 누구의 옆에 서고 싶어 하는지 지켜보면 이름을 바꾸고 싶다는 소망의 무게도 달라진다.

차의 거울에 붕대를 감은 젊은 남성의 얼굴이 비친다

어머니의 과거는 아들의 교과서 밖에 있다

영옥에게 정순은 우선 자기 엄마다. 잊어버린 어린 시절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아들이 그 고통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순 자신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아들에게 모두 설명할 수 없다. 한집에서 가장 가까이 사는 사이에 모르는 시간이 놓여 있다. 영화가 어머니의 기억을 한꺼번에 들려주지 않는 까닭도 이 공백과 관계가 있다. 관객 역시 정순을 처음부터 다 안다고 생각할 수 없다.

염혜란은 정순을 아픈 과거에만 주저앉은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아들을 대할 때는 시원스러운 면도 있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이 점은 정순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 심한 상처를 겪은 사람이 언제나 슬픈 얼굴로 그 상처를 증명하며 사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키우고 말을 주고받는 일상 속 모습과, 자신도 이유를 알지 못하는 고통이 같은 사람 안에 있을 수 있다.

그런 정순이 기억을 되찾는 과정은 문제의 정답을 알아내는 추리만으로 볼 수 없다.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남의 비밀이 아니라 자기 삶이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밝혀질수록 잊고 있던 사람이 가까워지고, 그 사람과 얽힌 자신의 자리도 달라진다. 관객은 먼저 답을 알아내고 싶어질 수 있지만, 정순에게 그 답은 알아낸 뒤에도 안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기억을 되찾으면 모든 것이 편해진다는 약속은 이 이야기와 어울리지 않는다.

교실과 1949년을 나란히 놓는 이유

정지영은 학교폭력을 통해 집단의 폭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관객이 짐작하게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4·3의 구체적인 역사와 영옥의 학교생활은 같은 규모의 사건이 아니다. 국가가 행사한 폭력을 교실의 다툼 정도로 줄여 이해해서도 안 된다. 영화가 두 시간을 함께 다루는 이유는 닮은 사건을 찾아내는 퀴즈보다, 폭력 앞에 놓인 사람들의 선택을 가까이 살피는 데 있다.

힘을 가진 쪽이 정한 질서 속에서 살아남으려 할 때 사람은 어디까지 밀려나는가. 자기 자신이 다치지 않으려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선택도 할 수 있는가. 영화는 영옥의 흔들림을 먼저 보여주며 관객이 이런 질문을 피하기 어렵게 한다. 부당함을 알았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을 지킬 수 있는지, 알고도 동조하는 순간에는 어떤 책임이 남는지 묻게 된다. 어머니의 과거로 돌아갈 때도 피해를 입은 사람의 행동을 너무 손쉽게 재단하지 않도록 만드는 준비다.

감독은 두 시대에 따귀를 때리는 장면이 있다고 짚었다. 같은 몸짓이 되풀이된다는 사실은 세월이 흘렀음을 지워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다른 때와 장소에서 누가 누구를 때리고, 주위 사람들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비교하게 한다. 손을 든 개인의 폭력 뒤에 그 행동을 허용하는 관계가 있는지 보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영옥의 이야기는 역사 설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곁가지가 아니다. 지금의 사람도 폭력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불편함을 맡는다.

녹색 덧문과 그림 안내가 붙은 건물 앞에 여성이 서 있다

술잔과 붕대가 알려주는 사정

모자의 관계를 보여주는 장면 가운데에는 두 사람이 각자의 고통을 겪고 집으로 돌아오는 대목이 있다. 영옥은 어머니가 비운 술잔을 보고, 정순은 잠든 아들의 머리에 감긴 붕대를 본다. 관객이 이미 알고 있는 일을 두 사람이 다시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알아내기 전에, 상대가 아팠다는 사실부터 알아챈다.

둘이 같은 집에 산다는 사실이 이 장면에서는 새롭게 느껴질 수 있다. 함께 산다고 자동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까이 있기 때문에 남은 흔적을 보게 된다. 자신에게 닥친 일만으로도 벅찬 날에 어머니의 잔이나 아들의 상처가 눈에 들어온다. 말하지 못하는 사정이 있다는 것을 알아보는 일은, 상대의 과거를 전부 설명받는 것과 다른 종류의 가까움이다.

이 영화의 이름 찾기도 그런 관계 속에서 생각할 만하다. 이름은 혼자 정리하는 자기소개인 동시에 누군가에게 불리는 말이다. 영옥에게는 벗어나고 싶은 이름이지만, 그 이름을 지어준 어머니에게는 아들이 모르는 시간이 있다. 이름의 사연을 알아야만 아들을 존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사연을 따라가는 동안, 아들은 자신의 불만만으로 어머니의 선택을 다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만나게 된다.

영옥이 처음 바라는 것은 다른 이름으로 새롭게 보이는 일이다. 영화는 그 소망을 출발점으로 삼아, 자신이 지우고 싶던 말에 누구의 기억이 담겨 있는지까지 다가간다. 한 사람의 이름을 듣는 일이 그 사람을 둘러싼 역사를 듣는 일로 넓어지는 것이다. 정순에게 있었던 일을 안다고 해서 영옥의 교실이 저절로 바뀌지는 않는다. 그래서 두 이야기를 끝까지 함께 따라갈 이유가 있다. 지난 폭력을 기억하는 사람과 오늘의 폭력 앞에서 선택해야 하는 사람은 같은 집에서 다시 만난다.

감상 포인트

◆ 영옥이 힘에 끌리는 순간 — 경태의 행동이 부당하다고 판단하는 것과 그 곁에 서고 싶어 하는 마음을 구별해보자. 영옥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 따라가면 교실의 폭력이 한 사람만의 문제로 보이지 않는다.

◆ 아들을 대하는 정순의 태도 — 잃어버린 기억을 추적하는 모습뿐 아니라 평소 아들과 말을 나누는 모습도 함께 보자. 정순을 역사의 상처로만 설명하지 않고, 아이를 키우며 살아온 한 사람으로 만날 수 있다.

◆ 두 시대의 따귀 — 같은 몸짓이 서로 다른 상황에서 등장할 때 누가 때리고 누가 지켜보는지 살펴보자. 두 사건의 차이를 지우지 않으면서도 폭력이 관계 속에서 어떻게 허용되는지 비교할 수 있다.

◆ 집에 남은 술잔과 붕대 — 모자가 서로의 사정을 길게 묻지 않는 장면에서 무엇을 보고 고통을 알아채는지 보자. 가까운 사람에게도 말로 옮기지 못하는 일이 있음을 생활의 흔적이 전한다.

관련 작품

◆ 〈공동경비구역 JSA〉 (2000, 박찬욱) — 총격 사건을 조사하는 동안 남북 병사들이 함께한 시간이 드러난다. 개인이 맺은 관계가 더 큰 적대의 질서 속에서 어떻게 위협받는지 살펴볼 수 있다. 진상을 아는 일이 살아남은 사람을 단순히 재단하는 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도 함께 생각할 만하다.

◆ 〈꼬마 철학자들〉 (2021, 네사 니 치아나인·데클란 맥그래스) — 분쟁의 상처가 남은 벨파스트의 학교에서 아이들이 다툼 뒤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는 다큐멘터리다. 지역의 역사가 다음 세대의 생활에 남는다는 문제를, 매일 질문하고 듣는 교육의 현장으로 이어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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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