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도 못하는 남자가 태평양에 띄운 고집 | MovieLAB LAB

태평양을 건너겠다는 탐험가가 수영을 못한다. 탈 것은 배도 아니다. 나무를 묶어 만든 뗏목이다. 〈콘티키: 위대한 항해〉의 토르 헤이에르달(팔 스베르 하겐)은 이 계획에 목숨을 …

수영도 못하는 남자가 태평양에 띄운 고집 | MovieLAB LAB

태평양을 건너겠다는 탐험가가 수영을 못한다. 탈 것은 배도 아니다. 나무를 묶어 만든 뗏목이다. 〈콘티키: 위대한 항해〉의 토르 헤이에르달(팔 스베르 하겐)은 이 계획에 목숨을 걸 만큼 확신이 있다. 더 놀라운 것은 함께 타겠다는 사람이 다섯 명이나 모인다는 점이다. 육지에서라면 호기심으로 들어줄 이야기가, 바다에서는 여섯 사람의 생존 문제가 된다.

1947년에 이루어진 실제 항해를 옮긴 이 영화에는 폭풍과 상어,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이 있다. 모험영화가 약속하는 풍경을 넉넉하게 펼쳐놓지만, 사람을 긴장시키는 것은 파도의 크기만이 아니다. 이 여행을 시작한 남자가 좀처럼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출발 전에는 사람을 모으던 확신이, 돌아갈 수 없는 바다 위에서도 똑같이 든든할까.

모터를 달면 실험이 끝나버린다

토르는 남아메리카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태평양을 건너 폴리네시아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그 가능성을 보이려면 옛사람들이 만들 수 있었을 법한 뗏목으로 건너야 한다. 튼튼한 현대식 선박을 구해 같은 항로를 여행하는 것으로는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없다. 모험의 목적이 장비의 제약을 만드는 셈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밧줄과 통나무가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파도를 견뎌야 할 것은 결의에 찬 표정이 아니라 물에 젖는 재료들이다. 나무들이 떨어지지 않고 묶여 있을지 걱정하기 시작하면, 토르의 가설보다 바로 발밑에 있는 뗏목이 더 중요해진다. 화면에서 사람이 서 있는 면적이 작다는 사실만으로도 안전에 관한 감각이 달라진다.

모터가 없는 항해에는 기다림도 따라온다. 출항할 때 세운 계획이 아무리 분명해도 바람과 해류를 마음대로 재촉할 수 없다. 바다는 넓게 열려 있는데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은 오히려 적다. 이 때문에 〈콘티키: 위대한 항해〉의 풍경은 해방감과 불안을 번갈아 준다. 탁 트인 수평선이 어느 순간에는 도움을 청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리로 보인다.

실제 원정대는 페루에서 출발해 101일 뒤 폴리네시아의 라로이아에 닿았다. 그 성공이 헤이에르달의 이주 학설 전체를 입증한 것은 아니다. 뗏목으로 갈 수 있다는 실험과 고대에 누가 먼저 정착했는지를 밝히는 연구는 서로 다른 증거를 요구한다. 영화 속 목표를 응원하더라도 이 둘은 구별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탐험의 성취를 즐기면서도 인류의 이동사를 한 사람의 승부로 단순화하지 않을 수 있다.

흰 돛 앞에서 젖은 머리와 수염의 남성이 고개를 들어 바라본다

대장을 의심하는 사람이 필요한 이유

동료 헤르만(안데르스 바스모 크리스티안센)은 뗏목의 안전을 걱정한다. 배 위에서 누군가 불안을 드러내면 대장의 의지를 시험하는 방해물처럼 보이기 쉽다. 그러나 관객이 그 자리에 탔다면 토르의 확신보다 헤르만의 의문이 먼저 떠오를 수도 있다. 왜 더 안전하게 묶지 않는가. 실험을 지키는 것과 사람을 지키는 것 가운데 무엇이 먼저인가.

두 사람의 차이는 위험을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토르에게는 이 방법으로 건너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헤르만에게는 그 방법으로 정말 끝까지 버틸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같은 뗏목 위에서 서로 다른 문제를 풀고 있으니, 파도를 한 번 넘겼다고 갈등까지 해결되지는 않는다. 두려움을 말할수록 동료의 기운을 꺾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는 점도 불편하다.

이 관계를 볼 때 알아둘 사실이 있다. 영화의 헤르만은 실제 인물을 크게 각색한 배역이다. 공동 연출한 요아킴 뢰닝과 에스펜 잔드베르크는 흔들리지 않는 토르와 맞설 인물이 필요해서 헤르만의 의심을 키웠다고 밝혔다. 실제 헤르만이 겁이 많고 동료를 불신한 사람이었다는 증거로 이 영화를 볼 수는 없다.

그 각색은 모험의 긴장을 만드는 한편, 영웅담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도 드러낸다. 한 사람을 흔들림 없는 대장으로 세우려면 불안과 의문을 다른 사람이 맡게 된다. 팔 스베르 하겐의 토르에게 마음이 기울면서도 헤르만의 걱정을 무시하기 어려운 이유다. 어느 쪽이 멋있어 보이는지와 어느 쪽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는 꼭 같지 않다.

해가 낮게 떠 있는 바다에서 작은 돛배가 역광으로 보인다

바다가 예뻐 보이는 순간이 가장 얄밉다

이 영화의 바다는 계속 화를 내고 있지 않다. 맑은 물과 넓은 하늘을 보고 있으면 잠깐 저곳에 가보고 싶어진다. 그러다 물속의 커다란 생물이 뗏목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 구경하던 풍경과 몸을 맡긴 장소가 얼마나 다른지 실감하게 된다. 안전한 거리에서 바라볼 수 있다면 아름다울 광경이 이들에게는 바로 옆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상어와 폭풍이 등장하는 장면은 관객이 뗏목의 크기를 잊지 않게 한다. 큰 배라면 피해서 들어갈 선실이 있지만, 여기서는 몇 걸음만 옮겨도 물가다. 바다 전체를 보여주는 화면과 그 좁은 발판을 오가는 구성이 모험의 규모를 전한다. 배우들이 긴장한 얼굴로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과 물이 차지하는 면적의 차이가 먼저 와닿는다.

그 감각에는 실제 바다에서 촬영한 시간도 들어 있다. 제작진은 바다 위 뗏목에서 약 한 달 동안 촬영했고, 배우들은 그 배를 다루는 법을 배워야 했다. 촬영에 쓰인 뗏목은 헤이에르달의 손자가 참여한 재현 항해에 쓰였던 배였다. 요아킴 뢰닝은 배우들이 실제 물 위에 있다는 점이 연기에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모든 위험 장면을 실제로 재현했다는 뜻은 아니지만, 몸을 놓을 장소가 계속 움직이는 조건은 연기의 바탕이 되었다.

감독들이 참고한 영화 중에는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있다. 수평선을 크게 쓰는 화면과 풍경의 규모를 배우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콘티키: 위대한 항해〉는 인물의 얼굴에만 매달리지 않는다. 여행을 계속하게 만드는 매혹도 충분히 보여준다. 위험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위험을 알면서도 저 풍경을 만나러 가는 사람의 마음에 잠깐 가까워지게 한다.

돌아온 사람의 이름 뒤에 남는 다섯 사람

토르가 일찌감치 뜻을 굽혔다면 이 항해는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작하게 만든 성격이 모든 순간의 정답은 아니다.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대장의 확신에 기대다가도, 그 확신에 자기 목숨을 맡긴 동료의 입장으로 돌아오게 된다. 여섯 사람은 같은 곳에 도착해야 살아남는다. 한 사람의 명예만 완성하면 끝나는 여행이 아니다.

뗏목이 파도를 넘는 장면에서 바라는 것도 결국 간단해진다. 토르가 자신의 말을 증명하기를 바라는 마음보다, 저 위의 사람들이 모두 무사했으면 하는 마음이 앞선다. 위대한 이름으로 남은 항해를 여러 사람이 함께 견딘 시간으로 되돌려놓는 것. 그때 이 오래된 모험담은 업적의 기록보다 가까운 이야기가 된다.

감상 포인트

◆ 사람이 설 수 있는 면적 — 바다를 넓게 보여주는 화면과 뗏목 위 사람들을 함께 보자. 몇 걸음이면 끝나는 공간에 생활과 작업이 모두 들어 있다. 위험한 생물이나 파도가 등장하기 전부터, 피할 곳이 적다는 사실이 긴장을 만든다.

◆ 같은 밧줄을 보는 두 사람 — 토르가 지키려는 실험의 조건과 헤르만이 걱정하는 안전을 나란히 살펴보자. 의문을 제기하는 인물이 단순한 방해꾼으로 보이는 순간에도 그 말을 따로 들어볼 만하다. 실제 인물을 각색한 배역이라는 점도 기억해두자.

◆ 평온할 때의 바다 — 위기 장면만 기다리지 말고 여행이 매혹적으로 보이는 순간도 눈여겨보자. 그 아름다움이 있어야 이 무모한 계획에 마음이 움직인 이유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같은 풍경을 보는 기분이 상황에 따라 얼마나 달라지는지도 느껴진다.

◆ 확신을 바라보는 동료의 얼굴 — 대장이 말할 때 곁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보자. 용기와 불안은 한 사람에게만 있는 감정이 아니다. 끝까지 함께 가야 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태도에 영향을 받는 과정을 읽을 수 있다.

관련 작품

◆ 〈라이프 오브 파이〉 (2012, 이안) — 작은 배 위에서 바다를 건너는 소년을 다룬다. 생존의 위기 사이에 눈을 떼기 어려운 풍경이 펼쳐진다는 점에서 함께 보기 좋다. 아름다운 화면이 공포를 없애기보다 때로 더 크게 만드는 방식을 비교할 수 있다.

◆ 〈피츠카랄도〉 (1982, 베르너 헤어초크) — 정글에 오페라 극장을 세우려는 남자가 배를 산 너머로 옮기려 한다. 거대한 계획에 매혹되는 마음과 그 일을 실제로 수행하는 사람들의 노동이 함께 보인다. 누군가의 꿈을 응원하다가 그 비용을 누가 치르는지 돌아보게 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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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