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 역 배우에게, 선원을 뽑게 했다 | MovieLAB LAB

선장처럼 보이게 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콘티키: 위대한 항해〉를 공동 연출한 요아킴 뢰닝과 에스펜 잔드베르크는 주연 배우에게 오디션 일부를 맡겼다. 토르 헤이에르달을 연기…

선장 역 배우에게, 선원을 뽑게 했다 | MovieLAB LAB

선장처럼 보이게 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콘티키: 위대한 항해〉를 공동 연출한 요아킴 뢰닝과 에스펜 잔드베르크는 주연 배우에게 오디션 일부를 맡겼다. 토르 헤이에르달을 연기할 팔 스베르 하겐이 다른 출연자들을 만나게 한 것이다. 대장을 연기하기 전에 실제로 사람을 고르는 자리에 앉혀보았다. 두 감독은 그 경험이 배우에게 선장다운 권위를 만드는 준비였다고 설명했다.

영화 속 토르는 다섯 동료와 뗏목을 타고 태평양으로 나간다. 모터도 없는 나무배에 다른 사람들을 태우려면 계획을 설명하는 말 이상의 힘이 필요하다. 그를 믿고 따라가도 될 것 같은 인상이다. 뢰닝과 잔드베르크는 모험의 규모를 바다에서만 찾지 않았다. 여섯 사람이 같은 배에 탈 만한 관계를 만드는 일은 오디션 때부터 시작됐다.

주연 배우 한 사람을 넘어, 대장 한 사람

하겐에게 오디션을 맡겼다는 말이 최종 출연진을 혼자 결정했다는 뜻은 아니다. 감독들이 마련한 일부 과정에 배우가 직접 참여했다. 중요한 것은 그가 그 자리에서 이미 다른 배우를 만나는 주체였다는 점이다. 촬영 첫날에 선장 역이라는 이름표만 받는 것과는 다른 준비다.

이 선택은 토르의 확신을 볼 때 흥미롭다. 그는 자기 계획이 가능하다고 믿고 그 믿음으로 사람들을 움직인다. 동료들이 두려움을 드러내면 믿음을 더 강하게 내세울 수도 있다. 관객이 그를 설득력 있는 대장으로 받아들여야, 이후 그 확신 때문에 생기는 곤란함도 단순한 억지로 보이지 않는다. 처음부터 아무도 따를 것 같지 않은 사람이었다면 이 모험은 출항 전에 끝났을 것이다.

두 감독은 실제 헤이에르달이 남긴 항해 기록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잔드베르크는 탐험가를 한 사람으로 보여주는 영화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무엇을 입증했는지만큼 누구와 어떤 시간을 견뎠는지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유명한 업적의 주인공을 사람들 사이에 놓으면, 그를 돋보이게 하던 성격이 주변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도 살펴야 한다.

〈콘티키: 위대한 항해〉의 인물 관계는 이 관심에서 읽을 수 있다. 대장이 결정을 내릴 때 옆 사람은 자기 목숨을 맡겨야 한다. 같은 말을 해도 육지에서 계획을 듣던 때와 물 위에서 위험을 겪는 때에는 무게가 달라진다. 감독들이 오디션 단계부터 준비한 권위는 바다에 나온 뒤에도 계속 시험받는다.

같은 장면을 두 언어로 찍으면 생기는 일

이 영화에는 노르웨이어판과 영어판이 있다. 완성된 영상에 목소리만 바꿔 넣은 것이 아니라 같은 장면을 두 언어로 촬영했다. 노르웨이어로 여러 차례 연기한 뒤 영어로 다시 찍는 방식이었다. 언어가 바뀌니 배우들은 같은 상황에 한 번 더 들어가야 했다.

뢰닝은 그 과정에서 뜻밖의 발견이 생겼다고 말했다. 영어로 찍다가 흥미로운 연기나 반응이 나오면 다시 노르웨이어 촬영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한 언어로 완성한 장면을 다른 언어로 복사하는 것만이 목적은 아니었다. 반복해서 연기하는 동안 새로 나온 것을 두 판본에 가져갈 수 있었다.

감독들이 마련한 이 과정은 모험영화의 규모와는 다른 종류의 수고를 보여준다. 같은 정보를 전하는 문장이라도 어느 단어에 힘이 실리고 얼마나 빨리 말을 잇는지는 달라질 수 있다. 대장의 주문과 동료의 반응이 맞물리는 장면이라면 그 작은 차이가 관계의 느낌을 바꾼다. 배우들은 외국어를 정확히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언어로도 상대를 설득해야 했다.

두 언어판의 존재를 안다고 감상 전에 판본을 모두 찾아볼 필요는 없다. 지금 보고 있는 영화에서 누가 어떤 말로 다른 사람을 움직이는지 들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바다 위 사람들의 관계는 통나무를 묶는 밧줄만큼 서로에게 건네는 말에 기대어 있다. 두 감독에게 언어는 배급을 위한 조건이면서 배우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통로였다.

흰 돛 앞에서 젖은 머리와 수염의 남성이 고개를 들어 바라본다

스무 명이 올라탄 촬영용 뗏목

뢰닝과 잔드베르크는 배우들과 실제 바다로 나갔다. 뗏목 위에서 촬영한 기간은 약 네 주였다. 배우와 스태프를 합해 스무 명가량이 함께 있었고, 배우들은 뗏목을 다루는 법도 익혀야 했다. 촬영용으로 빌린 뗏목은 헤이에르달의 손자가 참여한 재현 항해에 사용했던 배였다.

영화 속 인물은 여섯 명이지만, 그 여섯 명을 찍기 위해 배 위에는 더 많은 사람이 필요했다. 카메라 밖의 사람까지 떠올리면 탁 트인 화면이 오히려 비좁은 작업의 결과로 보인다. 배우가 발을 딛고 균형을 잡는 장소가 실제로 움직인다. 감독은 그 조건이 연기에 현실감을 더해주었다고 말했다.

물론 화면의 위험을 모두 배우 앞에서 실제로 벌이게 한 것은 아니다. 상어 장면은 배우들이 눈앞에 없는 대상을 상대하며 연기하고, 이후 컴퓨터 작업으로 완성했다. 실제 바다에서 얻는 몸의 반응과 나중에 더할 위험을 상상하는 연기가 한 영화에 섞여 있다. 어떤 장면이 더 진짜처럼 느껴지는지 따져보는 재미도 여기에 있다.

두 감독이 오래 품어온 이미지 가운데 하나는 박물관에서 본 뗏목과 그 아래 전시된 고래상어였다. 어린 시절 그 거대한 생물이 살아 움직인다면 어떨지 상상했다고 한다. 영화의 모험에는 실제 탐험의 기록뿐 아니라 그런 어린 관객의 놀라움도 들어 있다. 거대한 생물을 보고 싶었던 마음과, 그 앞에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무서울지 생각하는 마음이 함께 작동한다.

해가 낮게 떠 있는 바다에서 작은 돛배가 역광으로 보인다

함께 상상하던 두 사람이 만든 바다

뢰닝과 잔드베르크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영화를 만들었다. 오래된 친구의 눈으로 같은 장면을 상상해온 두 사람이 이제 배우와 큰 촬영팀을 이끌게 된 셈이다. 〈콘티키: 위대한 항해〉에서 두 사람의 협업을 하나의 역할 분담표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대신 그들이 어떤 준비에 시간을 들였는지 보면 함께 바라본 목표를 짐작할 수 있다. 대장을 믿을 만하게 만들고, 언어가 바뀌어도 관계를 살리고, 바다의 크기를 몸으로 느끼게 하는 일이다.

영화가 넓은 수평선을 보여줄 때는 모험의 매혹이 앞선다. 그러나 다시 뗏목 가까이 돌아오면 그 위에서 버티는 사람들이 보인다. 감독들이 보여주려던 탐험가의 인간적인 모습도 이 두 거리 사이에 있다. 멀리서 보면 대단한 여행이고, 가까이서 보면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운 하루다.

선장 역 배우가 오디션에 참여했던 일을 떠올리며 영화를 시작해보자. 그를 바라보는 동료의 얼굴도 조금 더 눈에 들어올 것이다. 계획을 믿게 만드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을 믿어보기로 한 사람들이 있다. 큰 파도가 닥치기 전부터 이미 모험은 그 사이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감상 포인트

◆ 토르의 말을 듣는 동료들 — 대장이 확신을 보일 때 다른 사람은 어떤 얼굴을 하는지 살펴보자. 믿음이 저절로 생기는 관계는 아니다. 주연 배우에게 오디션 일부를 맡겼던 준비를 떠올리면, 권위가 대사 바깥에서 만들어지는 순간도 흥미롭게 볼 수 있다.

◆ 좁은 배 위의 움직임 — 사람이 서 있는 자리와 함께 일을 해야 하는 거리를 보자. 실제 뗏목에서 촬영한 경험은 흔들리는 발판 위에서 균형을 잡는 몸에 들어 있다. 거대한 풍경을 찍기 위해 배우들이 수행한 작은 동작들을 살펴볼 만하다.

◆ 보이지 않는 상대를 보는 연기 — 바다 생물이 나타나는 장면에서 배우들의 시선과 반응을 보자. 실제 물 위에 있다는 감각과 눈앞에 없는 위험을 상상하는 연기가 함께 필요했다. 디지털로 만든 생물의 크기만큼 그것을 바라보는 얼굴이 긴장을 받쳐준다.

◆ 수평선에서 뗏목으로 돌아올 때 — 넓은 바다를 보여준 뒤 여섯 사람 곁으로 가까워지는 순간을 눈여겨보자. 풍경을 구경할 때와 인물이 버틸 공간을 볼 때의 감정이 달라진다. 두 감독이 탐험의 규모와 사람 사이의 관계를 함께 담는 방식을 느낄 수 있다.

관련 작품

◆ 〈콘티키: 위대한 항해〉 (2012, 요아킴 뢰닝·에스펜 잔드베르크) — 실제 항해를 여섯 사람의 모험으로 다시 구성한 영화다. 배를 띄운 사람의 확신뿐 아니라 그 확신을 함께 감당하는 동료들을 보면, 두 감독이 업적의 기록에 더하려 한 인간적인 이야기가 보인다.

◆ 〈피츠카랄도〉 (1982, 베르너 헤어초크) — 정글에 오페라 극장을 세우려는 남자의 계획을 따라간다. 거대한 꿈을 이루는 데에는 그 꿈을 말한 사람 외에도 많은 손이 필요하다. 계획의 매혹과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들의 몸을 어느 거리에서 보여주는지 비교하며 이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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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