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살아남았다는 말 뒤에는 딸이 다 알지 못하는 세월이 있다. 〈그날의 딸들〉이 만나는 양경인과 파치스는 서로 다른 나라에서 그런 시간을 물려받았다. 양경인은 제주 4·3을…
어머니가 살아남았다는 말 뒤에는 딸이 다 알지 못하는 세월이 있다. 〈그날의 딸들〉이 만나는 양경인과 파치스는 서로 다른 나라에서 그런 시간을 물려받았다. 양경인은 제주 4·3을 구술로 기록해온 작가이고, 파치스는 르완다에서 한국으로 유학 온 여성이다. 양경인의 어머니 김연심과 파치스의 어머니 마리 크리스틴은 각각 제주 4·3과 르완다 대학살의 생존자다. 두 딸은 어린 시절부터 가족에게 남은 비극의 여파를 겪으며 자랐다.
이들을 마주 앉히는 순간 영화의 크기가 달라진다. 제주와 르완다라는 먼 지명 사이에 두 사람의 가족 이야기가 놓인다.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에게 가족이 겪은 일을 어디서부터 들려줄 수 있을까. 살아남은 사람의 자녀라는 공통점은 서로를 다 안다는 보장이 되지는 않는다. 다만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게 하는 이유는 된다. 영화는 그 마음을 따라 두 사람과 여행을 떠난다.
양경인은 다른 사람의 증언을 기록하는 작가이면서 자신의 가족사를 가진 딸이다. 이야기를 듣는 일과 자기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 겹친다. 파치스 역시 낯선 나라의 역사를 배우는 방문객으로만 머물 수 없다. 두 사람이 만날 때는 누가 설명하고 누가 배우는지 역할을 간단히 나누기 어렵다.
이 점이 그들의 대화를 궁금하게 만든다. 고통을 말하는 사람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어디까지 물어도 될지 듣는 쪽도 판단해야 한다. 같은 종류의 상실을 안다고 해서 상대가 그 이야기를 지금 하고 싶은지까지 알 수는 없다. 친밀해지는 데에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기쁨뿐 아니라 그 차이를 알아가는 시간도 필요하다.
영화에서 두 사람은 함께 이동한다. 제주에서 르완다로 건너가면 자신에게 익숙한 역사를 설명하던 사람도 다른 이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한쪽만 계속 묻고 한쪽만 대답하는 만남보다, 서로의 고향을 찾아가는 여정에는 자리가 바뀔 기회가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땅에서 들려준 이야기를 상대가 자기 땅의 이야기로 돌려준다. 먼 곳까지 함께 가는 수고가 말만으로는 만들기 어려운 관계를 만든다.
여정에서 만나는 사연 가운데에는 모르는 세 살 아이를 거두어 키운 할머니의 이야기가 있다. 누군가 살아남았다는 사실 뒤에 다른 누군가가 맡은 돌봄이 있었다. 아이를 살려두는 것과 그 아이가 자라는 날들을 책임지는 것은 다른 무게의 일이다. 가족을 잃은 사람을 헤아리던 마음이, 새로 가족이 되어준 사람의 생활까지 향한다.
아이를 품은 결정은 과거의 비극을 지우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 결정이 없었다면 이어지지 못했을 삶이 있다. 영화의 제목에 ‘딸들’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여기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살아남은 사람에게는 이후에도 누군가를 먹이고 재우고 키워야 하는 날들이 있었다. 딸들은 그 시간이 실제로 계속됐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런 사연을 듣고 나면 생존을 사건 직후의 결과로만 받아들이기 어렵다. 살아남은 사람은 그 뒤에도 생활을 해내야 했고, 자녀는 부모가 감당한 것을 모두 모른 채 함께 자랐을 수 있다. 가족의 과거를 알아가는 일에는 뒤늦게 고마워지는 마음과 일찍 묻지 못한 안타까움이 함께 생긴다. 영화는 역사의 규모를 줄이지 않으면서 한 집 안에서 이어진 세월을 생각하게 한다.
르완다에서 만나는 마리아는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가해자를 용서해야 했다고 이야기한다. 같은 여정에는 그에게 참회하는 가해자 프랑코도 등장한다. 용서라는 말만 들으면 지나간 일을 정리한 뒤 새롭게 출발하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다. 그런데 아이들을 키워야 했다는 사정이 붙으면, 그 결정을 감정만으로 설명할 수 없게 된다.
마리아의 말에는 과거를 향한 감정과 앞으로 살아갈 문제가 함께 들어 있다. 아이들은 자라야 하고 생활은 계속돼야 한다. 그 앞에서 내린 결정은 용서라는 단어만으로 다 헤아리기 어렵다. 그가 감당해온 삶을 조금 듣고 나면, 같은 말을 다시 듣더라도 처음보다 선뜻 안다고 말하기 어려워진다.
제주에서 가족의 사정을 들려주던 두 사람이 르완다의 다른 가족을 만나는 여정에는 이런 낯섦이 있다. 생존자의 가족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한 뒤에도 새로 들어야 할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닮은 상처를 알아보는 데서 출발한 여행이, 각자가 얼마나 다른 생활을 해왔는지 배우는 시간으로 넓어진다.
영화의 여정은 르완다를 거쳐 다시 제주로 돌아온다. 떠날 때 들려주었던 가족의 이야기 옆에, 다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사정이 더해진다. 모르는 아이를 키운 사람과 자기 아이들을 위해 어려운 결정을 한 사람의 삶도 함께 남는다. 두 딸의 여행에서 마음에 걸리는 것은 누가 고통을 더 잘 이겨냈는가보다 그렇게 이어진 하루하루다.
양경인은 이야기를 기록해왔고 파치스는 낯선 나라로 건너와 공부했다. 두 사람의 현재에는 가족에게서 이어진 상처와 각자가 선택한 삶이 함께 있다. 함께 여행하는 모습을 따라가면 이들을 비극의 후손이라는 말로만 기억하고 싶지는 않다.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고, 다른 사람의 사정이 있는 곳까지 찾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손을 잡고 떠나는 여행은 같은 과거를 가졌기에 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서로 다른 과거를 더 알고 싶어서 함께 움직이는 일이기도 하다.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뒤 가족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들어줄 사람이 생긴다는 것. 이 만남에서 가장 오래 남았으면 하는 것은 그 이야기를 계속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됐다는 사실이다.
◆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자리 — 양경인과 파치스 중 누가 자신의 사정을 설명하고 누가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지 따라가보자. 둘 다 생존자의 딸이지만 같은 삶을 산 것은 아니다. 공통점 때문에 가까워지는 순간과 서로에게 배워야 하는 대목을 함께 볼 수 있다.
◆ 여행이 바꾸는 관계 — 제주에서 르완다로 장소가 바뀔 때 누가 안내하고 누가 낯선 곳을 만나는지 살펴보자. 이동은 역사적 배경을 바꾸는 일만이 아니다. 서로에게 자기 삶이 놓인 장소를 보여주는 과정이기도 하다.
◆ 생존 뒤에 이어지는 돌봄 — 아이를 거두어 키운 사연에서 구출 이후의 날들도 생각해보자. 누군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에는 그가 자랄 수 있도록 돌본 사람의 시간이 들어 있다. 사건의 희생과 함께 이후 삶을 이어준 행동에도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 용서라는 말 뒤의 사정 — 마리아가 자신의 선택을 어떤 생활의 조건과 함께 이야기하는지 들어보자. 감탄이나 의심을 먼저 보태기보다 그에게 무엇이 필요했는지 듣는 편이 중요하다. 같은 단어도 누구의 삶에서 나왔는지에 따라 무게가 달라진다.
◆ 〈파편들의 집〉 (2022, 시몬 레렝 빌몽) — 우크라이나의 아동 쉼터에서 아이들과 돌보는 어른들이 함께 지내는 시간을 담는다. 큰 사회적 비극이 가족과 돌봄의 생활 속에서 어떻게 이어지는지 살필 수 있다. 상처를 설명하는 일과 그 사람의 오늘 곁에 머무는 일의 차이를 생각하게 한다.
◆ 〈공동경비구역 JSA〉 (2000, 박찬욱) — 분단이라는 역사적 조건 속에서 병사들이 개인적인 관계를 맺는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라는 차이를 두고, 큰 역사를 한 사람과 다른 사람이 만나는 일로 받아들이게 하는 방식을 비교할 수 있다. 같은 사건의 재현으로 묶기보다 역사와 친밀함의 관계에 주목할 만하다.
──────────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