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파리의 생선시장.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에서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벤 위쇼)가 태어나는 곳은 향긋함과는 거리가 멀다. 더러운 거리와 생선을 보며 냄새를 상상하게…
18세기 파리의 생선시장.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에서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벤 위쇼)가 태어나는 곳은 향긋함과는 거리가 멀다. 더러운 거리와 생선을 보며 냄새를 상상하게 된다. 화면 밖으로 실제 냄새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코를 가까이 대고 싶지는 않은 광경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자란 그르누이에게 냄새는 피하고 참아야 할 것이 아니다. 남들이 모르는 것을 알아내고, 새로운 대상을 발견하는 방법이다.
이 남자의 코는 사람들이 구별하지 못하는 향까지 가려낸다. 관객은 그의 감각을 빌려 세상을 따라다니다가 점점 더 진귀한 향을 기다리게 된다. 문제는 그르누이가 향을 얻기 위해 사람을 죽이기 시작한다는 데 있다. 재능을 구경하는 마음으로 따라왔는데, 어느 순간 그 재능이 끔찍한 일을 가능하게 한다. 영화는 범인을 감춰두지 않는다. 대신 그가 만드는 것이 얼마나 매혹적일 수 있는지 보여주며 관객을 난처하게 한다.
이 영화를 연출한 톰 티크베어 감독은 냄새를 색깔 있는 연기나 공중에 떠다니는 입자로 표현하지 않으려 했다. 대신 그르누이가 냄새를 좇아 어디에 주의를 기울이는지 따라갔다. 화면에 없는 감각을 억지로 보이게 하기보다, 그 감각을 가진 사람의 관심에 관객을 가까이 데려가는 방법이다.
그에 따라 장소를 보여주는 순서도 달라졌다. 멀리서 공간 전체를 보여준 다음 세부로 다가가는 대신, 작은 부분을 먼저 제시하고 차츰 더 넓은 모습을 드러내는 구성을 썼다. 먼저 눈에 들어온 질감과 사물들이 모여 한 장소가 된다. 새로운 곳에 들어가 냄새 하나를 알아채고, 또 다른 냄새를 맡으며 주변을 파악하는 그르누이의 경험과 닮은 순서다.
음악도 처음부터 이 감각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티크베어는 각본을 쓰는 시기부터 동료 작곡가들과 음악을 만들었고, 촬영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들려주기도 했다. 나중에 완성된 화면에 분위기를 보태기만 한 것은 아니다. 눈앞의 재료에 그르누이가 얼마나 강하게 이끌리는지를 만드는 과정에 소리가 함께 있었다.
그르누이는 남들이 좋은 냄새와 나쁜 냄새로 나누는 것에도 똑같이 호기심을 보인다. 아직 모르는 향이라면 알아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영화의 더러운 장소들도 그저 불쾌한 배경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사람들이 피해갈 법한 곳에서조차 이 남자가 무엇을 발견할지 궁금해진다. 그의 세계를 이해하는 동안 관객의 관심도 평소와 조금 달라진다.
벤 위쇼에게 이 역할은 말보다 몸으로 전달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그르누이는 자신의 경험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인물이 아니다. 무엇이 좋은지 길게 말하는 대신 그 대상에 다가가고, 얼굴과 몸의 반응으로 관심을 드러낸다. 위쇼는 표정과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 관객이 이 낯선 인물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려 했다고 말했다.
배우는 동물의 움직임을 살폈고, 의상과 현장의 환경이 몸에 미치는 영향도 받아들였다. 거친 옷과 더러운 작업장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의 모습은 머릿속에 설정해둔 성격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떤 자세가 자연스러운지, 주변의 무엇에 몸이 먼저 반응하는지가 연기에 들어간다. 냄새를 설명할 수 없는 영화에서 관객은 배우가 맡고 있는 냄새의 강도를 그의 몸을 통해 짐작한다.
그러나 그의 민감한 감각이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한 민감함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주 작은 향의 차이는 알아도, 그 향을 가진 사람이 무엇을 원하고 두려워하는지는 헤아리지 않는다. 그르누이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상대는 향기를 내는 대상으로 취급된다. 코앞까지 접근하는 일이 오히려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행동이 되는 것이다.
이 차이가 벤 위쇼의 얼굴을 계속 보게 만든다. 어떤 향을 발견했을 때의 집중은 대단하지만 그가 집중하지 않는 것도 있다. 관객은 그의 발견에 이끌리면서, 화면 속 다른 사람에게 닥칠 일을 걱정하게 된다. 한 인물의 감각에 가까이 들어가도록 만든 연기가 그 인물을 편안하게 좋아하도록 해주지는 않는다.
그르누이가 향수 제조사 발디니(더스틴 호프만)를 만나는 대목에는 재능을 알아보는 재미가 있다. 발디니는 향수 제조법을 알고 가게를 운영하는 전문가다. 반면 그르누이는 그 전문가를 놀라게 할 만큼 뛰어난 후각을 지녔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의 우위가 단순하지 않다. 오래 배운 기술이 있어도 신참의 감각에 압도되는 순간이 온다.
하지만 그르누이에게 발디니는 여전히 필요하다. 향을 알아맞히는 능력과 그 향을 붙잡아두는 기술은 다르기 때문이다. 맡는 순간 사라지는 것을 어떻게 오래 남길 것인가. 영화는 향을 추출하고 조합하는 일에 시간을 들이며 그의 욕심이 구체적인 작업으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기술을 배우고 싶어 하는 마음 자체는 충분히 따라갈 수 있다.
그 욕심의 대상이 사람에게 향할 때, 익숙해진 제조 과정은 섬뜩해진다. 그르누이에게는 아직 얻지 못한 향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딸이고 자기 삶을 가진 사람이다. 로르(레이첼 허드우드)의 아버지 리시(앨런 릭먼)는 딸을 보호하려 한다. 이 아버지의 염려가 들어오면, 그르누이의 계획을 재능 있는 한 사람의 도전으로만 지켜볼 수 없어진다.
완성된 향수가 얼마나 대단할지 궁금해질수록 영화가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지 다시 돌아보게 된다. 그르누이에게 향을 모으는 일은 완성을 향해 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사라지는 사람은 대체할 수 있는 재료가 아니다. 같은 작업을 바라보는 두 시선이 끝내 합쳐질 수 없다는 데 이 영화의 공포가 있다.
티크베어는 그르누이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보았다. 향을 손에 넣는 일은 타인에게 자기 존재를 느끼게 할 방법이기도 하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던 사람이 모두를 사로잡을 수 있다면 얼마나 달라질까. 그르누이는 향수 한 병에 그런 가능성까지 기대한다.
그런데 사람을 홀리는 능력을 얻는다고 자신을 아는 사람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모두의 반응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면, 누군가 자발적으로 자신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영화의 기괴한 상상은 향수를 만드는 기술에서 그 향을 맡는 사람들의 반응으로 뻗어간다. 처음에는 한 남자의 코가 특별했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들의 감각도 믿기 어려워진다.
〈향수〉를 보고 싶게 만드는 것은 보이지 않는 냄새를 표현한 솜씨만이 아니다. 그 솜씨에 이끌려 어디까지 따라가게 되는지도 궁금하다. 아름다운 것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과 그 아름다움의 대가를 알았을 때의 불편함을 함께 감수해야 한다. 화면을 보는 동안 한 번도 실제 향을 맡지 못했는데도, 영화가 끝나면 향수병을 선뜻 열어보고 싶지만은 않다.
◆ 작은 부분에서 시작하는 화면 — 새로운 장소가 나올 때 공간 전체보다 어떤 세부가 먼저 제시되는지 살펴보자. 흩어진 질감과 사물이 나중에 하나의 장소로 묶이는 순간이 있다. 그르누이가 냄새로 주변을 파악하는 순서를 영상이 어떻게 대신하는지 볼 수 있다.
◆ 그르누이의 얼굴과 몸 — 향을 발견한 뒤 그르누이가 어디로 다가가고 무엇에 집중하는지 보자. 자신의 감각을 대사로 설명하지 않아도 관심의 강도가 전해진다. 동시에 그가 가까이 다가간 상대의 반응까지 보면 같은 행동이 누구에게는 발견이고 누구에게는 위협이라는 차이가 드러난다.
◆ 발디니와 그르누이의 주도권 — 전문가인 발디니가 제자의 후각을 접하며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보자. 기술을 가르치는 지위와 더 뛰어난 감각을 가진 위치가 어긋난다. 향을 잘 맡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무엇인지도 함께 드러나는 만남이다.
◆ 향을 원하는 사람, 딸을 지키려는 사람 — 그르누이가 로르에게 관심을 가질 때 리시의 반응도 함께 보자. 살인자의 계획을 중심으로 움직이던 이야기에 다른 사람의 절박함이 들어온다. 한 인물의 목표를 따라가는 관람이 어디에서 불편해지는지 생각해볼 만하다.
◆ 〈버닝〉 (2018, 이창동) — 한 청년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끌리고 의심을 키워가는 과정을 따른다. 한 인물의 시선을 오래 따라간다고 해서 그 판단까지 모두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눈앞의 사람을 보고 있다는 느낌과 그 사람을 알고 있다는 확신 사이를 살펴볼 수 있다.
◆ 〈달콤한 인생〉 (2005, 김지운) — 조직의 일을 능숙하게 처리하던 남자가 자신의 감정에는 서툴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병헌의 얼굴과 몸에 말하지 못한 마음이 남아 있다. 욕망을 이해하게 하는 연기와 그 욕망이 낳는 행동을 편들게 하는 연기가 같은 것인지 비교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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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