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레논(에런 테일러존슨)에게 처음 연주를 가르치는 사람은 엄마 줄리아(앤마리 더프)다. 악기는 기타가 아니라 밴조다. 그를 키운 이모 미미(크리스틴 스콧 토머스)는 첫 기타를 …
존 레논(에런 테일러존슨)에게 처음 연주를 가르치는 사람은 엄마 줄리아(앤마리 더프)다. 악기는 기타가 아니라 밴조다. 그를 키운 이모 미미(크리스틴 스콧 토머스)는 첫 기타를 사준다. 한 여성이 열어준 세계로 다른 여성이 물건을 건네는 셈이다. 집에서는 좀처럼 같은 뜻을 갖기 어려운 두 사람이 소년의 음악 안에 함께 들어온다.
〈존 레논 비긴즈-노웨어 보이〉는 비틀스가 세상을 휩쓸기 전, 이 두 여성 사이에 놓인 십 대 존을 만난다. 이미 그의 노래를 아는 관객이라도 당장 소년이 풀어야 할 문제에는 쉽게 답할 수 없다. 엄마는 왜 자신과 살지 않았고, 다시 만난 엄마와 가까워지는 일은 자신을 키운 이모에게 어떤 의미인가. 기타를 손에 넣는 기쁨과 집으로 돌아갈 때의 복잡한 마음이 동시에 자란다.
미미의 집에서 자란 존에게 줄리아는 낯설 만큼 매혹적이다. 단정하고 엄격한 이모와 달리 엄마는 음악과 즐거움을 가까이 둔다. 다시 만난 가족이면서 자신이 모르던 세계를 아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녀에게 악기를 배우는 시간에는 놓쳤던 친밀함을 이제라도 얻고 싶은 마음이 겹쳐 보인다.
밴조를 가르친다는 행동이 그래서 좋다. 엄마가 음악을 좋아한다는 소개만으로는 알 수 없는 시간이 그 안에 있다. 소리를 내보는 아들과 그것을 아는 엄마가 함께할 일이 생긴다. 왜 곁에 없었는지 따지는 말과 달리, 연주를 배우는 동안에는 지금 둘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집중할 수 있다. 음악이 두 사람의 관계에 실제로 할 일을 만들어준다.
하지만 함께 신나게 노는 일과 함께 생활하는 일은 같지 않다. 줄리아에게 매력을 느낄수록 존에게는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이 더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그가 원한 것이 잠깐의 즐거움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모자가 가까워질 때의 들뜬 기분을 느끼면서도, 소년이 이제 엄마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샘 테일러존슨 감독은 존을 키운 여성과 그가 새롭게 발견한 여성의 대비에 끌렸다고 설명했다. 미미를 대신할 더 재미있는 보호자를 고르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미 함께 살아온 관계와 이제 알아가고 싶은 관계가 한 소년 안에서 충돌한다. 존은 두 사람 모두에게 사랑을 원하지만, 그 바람이 두 자매의 오래된 사정까지 풀어주지는 못한다.
미미는 존에게 규칙을 요구하는 사람이다. 음악을 향해 달려가는 소년의 시선에 서면 그녀의 걱정은 답답하게 보이기 쉽다. 그런데 첫 기타를 사주는 사람도 미미다. 이 행동을 기억하면 그를 억누르기만 하는 이모라는 설명은 충분하지 않다. 그녀가 받아줄 수 있는 것과 걱정하는 것 사이에 선이 있는 것이다.
감독은 영화를 준비하며 오노 요코에게서 존과 미미가 서로 깊이 사랑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미미가 시와 그림을 알려주던 교양 있는 사람이었다는 설명도 받았다. 엄격한 말투가 그녀가 준 것의 전부는 아니라는 뜻이다. 영화가 소년의 불만을 따라가면서도 그를 키워온 사람을 쉽게 지워버리지 않게 하는 배경이다.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가 미미를 준비할 때는 실제 라디오 인터뷰가 참고가 됐다. 감독은 그 녹음에서 단호한 태도와 함께 유머와 날카로운 재치를 들었다고 설명했다. 표정이 굳어 있다고 해서 감정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배우가 보여주는 엄격함 안에서도 말의 속도와 반응을 살펴볼 이유가 생긴다.
줄리아의 매력은 금방 알아볼 수 있지만, 미미가 해온 일은 이미 존의 일상이 되어 있다. 매일 이어져온 돌봄과 새롭게 찾아온 흥분을 똑같은 방식으로 느끼기는 어렵다. 영화의 긴장에는 그 불균형이 있다. 존의 답답함을 이해하는 일과 미미의 애정을 알아보는 일은 함께 가능하다. 한쪽을 사랑하면 다른 쪽이 가짜였다고 판정할 필요는 없다.
존은 밴드를 만들고 폴 매카트니(토머스 브로디생스터)를 만난다. 관객에게는 너무 익숙한 두 이름이지만, 이들에게는 이제 같이 음악을 해볼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훗날의 성공을 알고 만남을 바라보는 즐거움과, 서로에 대해 아직 모르는 소년들을 보는 즐거움이 함께 있다.
에런 테일러존슨이 맡아야 했던 일도 유명인의 외모를 닮는 것보다 훨씬 많았다. 감독은 존을 연기할 배우에게 지역 억양과 노래, 기타 연주를 함께 요구했다. 배우는 이미 완성된 스타의 모습을 꺼내 보여주는 대신, 음악에 뛰어드는 몸을 준비해야 했다. 첫 악기를 배우던 소년이 자기 밴드의 소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그 준비가 쓰인다.
감독은 비슷하게 생긴 후보들이 많았지만 닮은꼴만으로 캐스팅하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사진 속 얼굴과 얼마나 같은가보다, 이 소년이 왜 쉽게 들뜨고 화내며 사람을 붙잡으려 하는가가 중요해진다. 그를 매끈한 전설로 바라보기보다 가족에게 원하는 것이 많고 그것을 다루는 데 서툰 사람으로 볼 여지가 열린다.
영화의 시작에는 훗날의 비틀스를 떠올리게 하는 「A Hard Day’s Night」의 첫 화음이 들린다. 감독은 편집 중 그 소리를 더해 관객이 아는 미래를 잠깐 비추고 싶었다고 했다. 곧 세계적인 스타가 될 것이라는 지식은 관객에게 남지만, 화면 속 존에게 당장의 답을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유명해질 사람도 자기 집의 문제를 먼저 겪어야 한다.
마지막에 들리는 「Mother」는 이 소년의 시간을 지나 훗날 레논이 부른 노래다. 십 대의 사건들을 따라온 뒤 성인이 된 목소리를 듣게 되면, 지난 일이 단순히 끝나서 과거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는 일과 그 노래에 담긴 마음에서 벗어나는 일도 다르다.
감독은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부터 이 곡이 꼭 필요하다고 느꼈지만, 촬영 당시에는 아직 사용 허락을 받지 못했다. 완성된 영화를 본 오노 요코가 허락하면서 마지막에 그 목소리를 둘 수 있었다. 이 선택은 음악가의 성공을 증명하는 히트곡을 듣는 것과 다른 울림을 만든다. 영화 내내 묻고 있던 가족에 대한 바람이 노래를 통해 다시 들려온다.
밴조와 기타로 시작한 음악에는 그래서 두 가지 시간이 남는다. 엄마와 이모에게 무엇인가를 받던 시간, 그것을 자기 목소리로 바꾸어가는 시간이다. 소년이 성장했다는 이유만으로 두 여성과의 관계가 간단해지지는 않는다. 이 영화는 기타를 든 존을 보여주면서도, 그 손에 악기가 오기까지 누가 곁에 있었는지 잊지 않는다.
◆ 두 악기를 누가 건네는지 기억하자. 줄리아의 밴조 수업과 미미가 사주는 기타에는 서로 다른 관계가 담긴다. 음악을 막는 사람과 북돋우는 사람으로 쉽게 나누기 전에, 두 여성이 실제로 해주는 일을 살펴보자.
◆ 줄리아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존이 무엇을 원하는지 보자. 엄마와 음악을 나누는 흥분이 생활과 가족에 대한 기대에 어떻게 이어지는지 따라가면 들뜬 장면 안의 간절함도 느낄 수 있다.
◆ 미미의 단호함 안에서 반응의 차이를 살피자. 목소리와 표정이 엄격하다는 사실만으로 애정의 크기까지 정해지지는 않는다. 존과 부딪히는 순간, 받아주는 순간에 배우의 말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주목해보자.
◆ 첫 화음과 마지막 목소리를 이어 들어보자. 시작의 「A Hard Day’s Night」는 관객이 아는 미래를, 끝의 「Mother」는 그 미래에도 남은 마음을 떠올리게 한다. 그 사이에 놓인 소년의 시간이 두 소리를 어떻게 다르게 들리게 하는지 생각해보자.
◆ 〈싱 스트리트〉(2016), 존 카니 감독. 가족의 불화 속에 있는 소년이 밴드를 만들며 다른 생활을 꿈꾼다. 음악이 당장의 문제를 모두 없애주지는 않아도 함께할 사람과 할 일을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이어진다.
◆ 〈러덜리스〉(2014), 윌리엄 H. 메이시 감독. 아들이 남긴 노래를 부르는 아버지가 중심에 있다. 가족에게서 받은 음악을 자기 목소리로 내보내는 일이 위로와 불편함을 함께 가져올 수 있음을 비교해볼 만하다.
──────────
이 글은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하고 편집 검수를 거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