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풋도 먹고살기 바쁘다 | MovieLAB LAB

먹고, 자고, 몸을 긁고, 배설한다. 〈사스콰치 선셋〉의 털복숭이 네 마리는 살아 있는 몸이 해야 할 일을 숨기지 않는다. 이들은 북미의 전설에 등장하는 사스콰치, 흔히 빅풋이라…

빅풋도 먹고살기 바쁘다 | MovieLAB LAB

먹고, 자고, 몸을 긁고, 배설한다. 〈사스콰치 선셋〉의 털복숭이 네 마리는 살아 있는 몸이 해야 할 일을 숨기지 않는다. 이들은 북미의 전설에 등장하는 사스콰치, 흔히 빅풋이라고 부르는 존재들이다. 흐릿한 목격 사진 속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어 신비롭던 것이, 가까이서 보니 좀 지저분하고 우스꽝스럽다. 그래도 함께 숲을 헤매는 동안 네 마리를 점점 구별하게 된다.

영화는 이 무리의 한 해를 따라간다. 그들이 진짜 있다는 증거를 찾는 사람도, 행동의 뜻을 친절히 설명하는 해설자도 없다. 숲에서 살아가는 당사자들만 있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먹을 것이 필요하고 혼자 있기 싫다는 사정까지 낯설지는 않다. 전설의 주인공에게도 매일 해결해야 할 일이 이렇게 많았다.

숲에서 붉은 열매를 바라보는 사스콰치

품위를 지키며 살 여유가 없다

덩치는 크지만 네 마리가 하는 일이 늘 대단하지는 않다. 먹고 쉬는 사이 서로의 털에서 벌레를 골라주고, 주변의 물건에 호기심을 보인다. 몸이 원하는 것을 뒤로 미루거나 남의 눈치를 보며 감추는 데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그들의 일상에는 인간이라면 민망해서 생략했을 순간이 고스란히 남는다.

웃음은 이 솔직한 몸에서 나온다. 숲을 누비는 거대한 존재를 멋있게 올려다보다가도,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은 지나치게 사소하고 적나라하다. 이 생물들이 지켜야 할 전설의 체면 같은 것은 없다. 배설하는 장면을 보여주고도 영화가 태연하다는 점이 더 우습다. 그들에게는 그것 역시 하루를 살아가는 일이다.

연출을 맡은 데이비드 젤너와 나단 젤너는 인간의 언어나 외부 해설이 끼어들면 이 존재들을 구경하는 거리가 생길 수 있다고 보았다. 화면 밖에서 행동을 번역해주는 목소리를 두지 않은 이유다. 덕분에 관객도 잠깐씩 기다려야 한다. 무슨 뜻인지 바로 알 수 없는 소리와 몸짓을 보고, 방금 무엇을 원했는지 짐작해본다. 영화가 마련하는 친밀함에는 이 기다리는 시간이 포함돼 있다.

털 속에 가려도 눈은 남는다

무리의 암컷(라일리 키오)과 젊은 수컷(제시 아이젠버그)을 보고 배우를 바로 알아보기는 어렵다. 온몸을 덮은 털과 두꺼운 분장 때문에 익숙한 얼굴이 거의 사라졌다. 말을 유창하게 하는 능력도 여기서는 쓸 곳이 없다. 배우들은 고개를 돌리는 속도와 몸을 움츠리는 정도, 상대에게 가까이 가는 움직임으로 마음을 전해야 한다.

눈만큼은 배우 자신의 것을 남겼다. 감독들은 콘택트렌즈로 눈까지 바꾸지 않았다. 대사가 없는 만큼 시선에 담기는 작은 차이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기괴한 얼굴에서도 어딘가를 유심히 보거나 상대의 반응을 기다리는 눈은 읽힌다. 낯선 외모와 별개로 감정을 알아볼 수 있는 틈이 생긴다.

이 틈 덕분에 네 마리는 같은 탈을 쓴 우스운 무리로만 남지 않는다. 누구와 가까이 있으려 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주춤하는지를 보다 보면 각자의 성격이 드러난다. 일일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다시 보고 싶은 얼굴이 생기는 것이다. 두꺼운 분장이 연기를 가리는 듯 보이지만, 오히려 평소에는 지나쳤을 작은 동작을 유심히 보게 한다.

몸 전체를 써야 하는 연기에는 촬영 장소도 영향을 미쳤다. 배우들은 털과 고무로 된 무거운 수트를 입고 실제 숲에서 움직였다. 평평한 바닥에서 몸짓만 흉내 내는 것과는 다른 조건이다. 우거진 풍경 속을 지나는 몸의 무게가 느껴질수록, 이들은 신기한 분장을 구경하게 하는 대상에서 그곳에 사는 생물로 가까워진다.

산등성이에 선 사스콰치들

이 숲은 그들에게도 만만하지 않다

숲은 네 마리가 마음껏 돌아다니는 집이지만 안전을 보장하는 집은 아니다. 살아가려면 먹을 것을 찾고, 달라지는 주변에 적응해야 한다. 함께 있던 무리의 관계도 가만히 유지되지 않는다. 영화가 한 해를 따라간다는 것은 아름다운 사계절을 차례로 보여준다는 뜻만은 아니다. 같은 몸으로 계절마다 다른 하루를 견뎌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커다란 나무와 무성한 풀 사이에서는 그들의 거친 몸도 잘 어울린다. 인간의 생활 공간에 세워두었다면 괴물처럼 보였을 외형이 여기서는 튀지 않는다. 숲을 잠깐 방문한 우리가 모양이 이상하다고 말하고 있을 뿐, 이들에게는 늘 살던 곳이다.

그런 숲에 포장도로가 나타나면 사정이 달라진다. 사스콰치들은 처음 접하는 바닥의 감촉을 탐색한다. 냄새를 맡고 만져보는 그들에게는 이 길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 방법이 없다. 관객은 저 위로 차가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우리에게는 평범한 도로 하나가 이들 앞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협이 된다. 숲을 가로지르는 길이 누구에게나 편리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장면이다.

영화는 이들을 자연의 지혜를 지닌 고결한 존재로 꾸미지 않는다. 충동적이고 엉뚱하며, 서로에게 늘 다정하지도 않다. 그 모습 때문에 웃다가도 위험이 닥치면 마음이 급해진다. 우스운 행동을 지우지 않고도 그 생명을 걱정하게 만드는 영화다.

말을 못 알아듣는 네 마리와 한 해를 보내고 나면 숲의 풍경에도 사정이 생긴다. 넓은 나무 사이를 걷는 것은 멋진 실루엣 하나가 아니라, 배고프고 졸리고 곁에 누가 있는지 신경 쓰는 몸이다. 영화는 그들의 일상을 거창하게 높여주지 않는다. 시시한 몸짓을 충분히 볼 시간을 준다. 살아가는 일이 저토록 우습고 어설픈데, 그래서 더 오래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

감상 포인트

◆ 설명 없이 알아듣는 몸짓 — 소리를 듣고 손짓을 살피며 네 마리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짐작해보자. 이해되는 순간마다 해설이 꼭 필요하지는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상대의 반응을 기다리는 시간까지가 이 영화의 대화다.

◆ 분장 사이로 보이는 눈 — 얼굴의 큰 윤곽보다 시선이 향하는 곳과 눈의 움직임에 주목해보자. 두꺼운 분장에도 감정을 알아볼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낯선 외모를 가까이 보는 경험이 배우의 작은 연기를 발견하는 재미로 이어진다.

◆ 웃음이 생기는 거리 — 숲을 걷는 모습을 멀리서 볼 때와 몸의 사소한 행동을 가까이 볼 때 느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자. 거대한 존재에 대한 경외와 적나라한 일상의 우스움이 같은 몸에서 나온다. 카메라가 어느 만큼 가까이 가는지도 웃음의 한 요소다.

◆ 도로를 처음 만난 몸 — 포장도로 앞에서 사스콰치들이 어떤 감각을 쓰는지 보자. 우리가 용도를 먼저 떠올리는 곳에서 이들은 낯선 표면을 탐색한다. 사람에게 너무나 익숙한 시설을 다른 생물의 입장에서 마주하게 되는 장면이다.

관련 작품

◆ 〈곤돌라〉 (2023, 파이트 헬머) — 산악 마을의 케이블카에서 일하는 두 여성이 말없이 마음을 주고받는다. 대사 대신 시선과 몸짓, 이동의 리듬으로 관계를 쌓는다. 낯선 생물의 마음을 읽는 재미에서 인간의 조용한 구애로, 말이 없어도 충분한 영화의 표현을 이어서 즐길 수 있다.

◆ 〈괴물〉 (2006, 봉준호) — 한강의 괴생명체와 맞닥뜨린 가족의 행동에는 공포와 우스움이 함께 있다. 위기의 한복판에서도 몸은 늘 멋있고 능숙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서투른 행동을 보며 웃다가 그 몸의 안위를 걱정하게 되는 감정이 두 영화에서 각기 다르게 살아난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