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에게도 청춘은 있다 | MovieLAB LAB

헤어진 연인이 두고 간 매트리스에서 새로운 생명이 자란다. 사람의 척추뼈를 빼앗아 자기 몸을 만드는 생명체다. 〈다섯 번째 흉추〉에서 결(문혜인)과 윤(함석영)의 이별은 이 기묘…

곰팡이에게도 청춘은 있다 | MovieLAB LAB

헤어진 연인이 두고 간 매트리스에서 새로운 생명이 자란다. 사람의 척추뼈를 빼앗아 자기 몸을 만드는 생명체다. 〈다섯 번째 흉추〉에서 결(문혜인)과 윤(함석영)의 이별은 이 기묘한 탄생의 시작이 된다. 두 사람이 끝내 함께 살지 못한 방에서, 곰팡이는 이제 막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매트리스를 쓰는 다음 사람이 걱정될 법하다. 그러나 영화는 위험에 처한 사람만 따라가지 않는다. 이곳저곳으로 옮겨지는 매트리스와 그 안에서 자라는 생명체 곁에 더 오래 머문다. 사람의 뼈를 탐하는 존재가 주인공이라니. 무서워해야 할 대상을 계속 지켜보다 보면, 어느새 그것이 어디로 가고 얼마나 더 자랄지 궁금해진다.

매트리스 곁에 누운 인물의 얼굴

사람이 떠나도 이야기는 계속된다

매트리스가 옮겨갈 때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자취방의 연인들에서 모텔과 병실의 사람들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각자에게는 지금 겪는 사랑과 이별, 쉽게 해결되지 않는 사정이 있다. 그들은 잠시 같은 물건을 쓰지만 서로를 모른다. 이 짧은 만남들을 모두 지나오는 쪽은 매트리스 속 생명체다.

영화는 자막으로 그 생명체가 태어나기 전후의 날짜를 센다. 사람이 바뀌고 장소가 달라져도 한 존재의 삶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려준다. 어느 인물에게는 괴상한 일을 겪은 며칠이, 생명체에게는 태어나고 자라는 중요한 시간이 된다. 처음엔 사람들의 방에 곰팡이가 끼어든 것 같았는데, 계속 보다 보면 곰팡이의 삶에 사람들이 잠시 들렀다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박세영 감독은 척추뼈를 빼앗긴 사람들의 후일담도 촬영했지만 편집에서 덜어냈다고 밝혔다. 생명체를 따라가던 이야기가 다른 데로 흐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벌어진 피해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끝까지 가지 않는 선택이다. 덕분에 관객은 조금 불편한 자리에 남는다. 생명체가 자라는 일이 궁금하면서도, 그 성장이 누군가의 몸을 해쳐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잊을 수 없다.

자취방 벽에서 만난 주인공

이 곰팡이는 감독이 살던 방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습기가 많은 자취방 벽에 곰팡이가 피자 포스터로 가려두었는데, 이사할 무렵 떼어보니 그 뒤에서 한참 자라 있었다. 지저분하고 징그러운 모습에 생명력까지 느꼈다고 한다. 당시 넉넉하지 않았던 자신의 처지도 겹쳐 보였다. 없애야 할 것을 바라보다가, 이렇게까지 살아남는 것이 애처로워진 것이다.

그 출발을 알고 나면 영화가 생명체를 좀처럼 버려두지 않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좋은 집에서 환영받으며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낡고 축축한 곳에 들러붙어 있다가, 사람들이 버리거나 옮기는 물건과 함께 돌아다닌다. 제 몸 하나를 갖추려는 과정부터 힘겹다. 사람들이 불편하게 여기던 방과 물건이 이 생명체에게는 살아갈 곳이었다.

왜 하필 척추일까. 감독은 누워 있는 곰팡이가 일어서려면 몸을 지탱할 뼈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기괴한 범행의 재료인 줄 알았던 뼈에, 혼자 서려는 목적이 생긴다. 생명체가 다음 사람을 만날 때 느끼는 긴장에도 두 가지 마음이 섞인다. 누군가 다칠까 걱정하다가도, 매트리스 안에만 머물던 존재가 어디까지 달라질 수 있을지 보고 싶어진다.

고양이 털과 먼지로 만든 낯선 몸

괴생명체의 몸에는 감독과 미술감독이 기르던 고양이의 털, 집에서 모은 먼지가 들어갔다. 왁스를 비롯한 여러 재료를 섞어 질감을 만들었다. 방 한구석에 실제로 있을 법한 것들이 낯선 생물의 몸이 된 셈이다. 멀리서 날아온 괴물보다 가까운 물건을 다시 보게 하는 상상이다. 평소라면 쓸어버렸을 먼지까지 화면 안에서 생김새를 얻는다.

소리는 그 몸에 감정을 더한다. 감독은 관객이 곰팡이에 마음을 줄 수 있도록 슬픈 느낌의 소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표정이나 긴 대사로 마음을 설명하지 못하는 존재에게, 소리는 중요한 표현 수단이다. 화면 속 물질이 그저 더러운 덩어리로 보일 때와, 힘겹게 살아가는 무엇으로 느껴질 때 사이에 귀로 받아들이는 차이가 있다.

이 영화의 손으로 만든 질감은 예산의 사정을 알려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버려진 것들로 태어난 주인공을 주변에서 모은 재료로 빚었다는 점이 잘 어울린다. 몸을 만드는 사람들의 손길과, 자기 몸을 만들어가는 생명체의 이야기가 포개진다. 기괴한 외형을 자세히 볼수록 그것을 만들어 오래 바라본 사람의 애정도 느껴진다.

처음에는 언제 사람을 덮칠지 살피던 눈이 어느 순간 생명체의 앞날을 궁금해한다. 어디에서 태어나 누구를 만나고 무엇이 되고 싶어 하는지 함께 지켜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사랑이 끝난 자리에서도 이 생명체의 삶은 계속된다. 그 끈질김을 징그럽다고만 부르기에는, 어느새 너무 오래 함께 와버렸다.

감상 포인트

◆ 생일을 기준으로 세는 날짜 — 화면에 나오는 날짜가 누구의 시간을 가리키는지 살펴보자. 사람이 바뀌는 여러 이야기를 한 생명체의 성장 과정으로 이어주는 장치다. 짧게 스치는 인간의 사정과 오래 이어지는 곰팡이의 삶이 서로 다르게 느껴진다.

◆ 매트리스가 머무는 장소 — 방과 모텔, 병실에서 사람들이 그 물건을 어떻게 쓰는지 보자. 같은 매트리스라도 주변의 사정이 달라지면 편히 쉬는 자리로만 남지 않는다. 서로 만나지 않는 사람들의 시간이 하나의 물건을 통해 이어진다.

◆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괴물 — 생명체의 표면을 이루는 털과 얼룩, 뭉친 재료의 질감을 살펴보자. 가까이에 있던 재료가 무엇인지 알아도 그 낯섦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생활에서 나온 물건을 기괴하게 바꾸는 이 영화만의 재미다.

◆ 생명체에게 마음이 가는 순간의 소리 — 무섭거나 역겹던 존재가 문득 애처롭게 느껴질 때 어떤 소리가 들리는지 귀를 기울여보자. 사람처럼 표정을 짓지 않아도 감정은 전달된다. 화면의 생김새와 소리가 꼭 같은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관련 작품

◆ 〈괴물〉 (2006, 봉준호) — 익숙한 한강변에 괴생명체가 나타나 일상을 무너뜨린다. 평범한 생활 공간과 낯선 몸이 만날 때 생기는 공포와 우스움을 함께 볼 수 있다. 피해를 입은 가족을 따라가는 이 영화와 생명체 곁에 머무는 〈다섯 번째 흉추〉의 차이도 선명하다.

◆ 〈사운드 오브 폴링〉 (2025, 마샤 실린스키) — 서로 다른 시대의 네 소녀가 같은 농장을 거쳐간다. 한 장소를 함께 썼다는 사실이,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을 영화 안에서 이어준다. 매트리스에 스친 사람들을 보고 난 뒤에는 공간과 물건이 이야기를 연결하는 방식에도 관심이 갈 만하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