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 이야기를 오래 들어준다면 마음을 열기 쉽다. 그런데 그 사람이 소설가이고, 우리가 나눈 말을 노트에 적고 있다면 사정이 조금 달라진다. 내 말을 소중히 여기는 것일까,…
누군가 내 이야기를 오래 들어준다면 마음을 열기 쉽다. 그런데 그 사람이 소설가이고, 우리가 나눈 말을 노트에 적고 있다면 사정이 조금 달라진다. 내 말을 소중히 여기는 것일까, 좋은 재료를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디셉션〉의 필립(드니 포달리데스)은 두 태도가 선명하게 갈리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여성들의 말을 열심히 듣고, 그들의 이야기를 쓴다. 아내가 노트를 발견하자 그 안의 여자는 자신이 만들어낸 인물이라고 말한다.
영화는 1987년 런던에 사는 미국 작가의 작업실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영국인 연인(레아 세이두)이 찾아와 오랫동안 대화하고, 서로 욕망하고 다투기도 한다. 두 사람 모두 결혼한 상태다. 필립 로스의 소설을 옮긴 아르노 데플레솅 감독은 그 은밀한 만남에 다른 여성들의 목소리를 겹쳐놓는다. 자신에게 사적인 이야기를 맡긴 사람을 작가는 어떻게 대하는가. 사랑의 대화가 글이 될 때, 누가 그 말의 주인이 되는가.
연인은 불행한 결혼과 생활의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이곳에서는 그 사정이 사소하다는 이유로 잘리지 않는다. 필립은 그녀가 설명하는 것을 듣고, 두 사람은 긴 시간을 함께 보낸다. 바깥의 관계에서는 충분히 말하지 못했던 사람이 자기 말을 계속 이어갈 수 있다는 것. 작업실이 연인에게 매력적인 이유에는 그런 시간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그 방은 필립의 작업실이다. 그가 글을 쓰고, 듣고, 들은 말을 정리하는 곳이다. 연인은 그곳을 찾아왔다가 다시 자기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 함께 있을 때 만들어지는 친밀함과 각자가 돌아갈 삶 사이에는 차이가 남는다. 대화가 편안하고 사랑이 깊어지는 것처럼 느껴져도, 그것만으로 작업실 밖의 문제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데플레솅은 필립이 세심하게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라는 점과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점을 함께 강조했다. 타인의 작은 사정을 받아주는 재능이 있다고 해서 그의 모든 행동이 관대해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죽음과 책, 자아를 염려하는 마음도 크다. 영화는 잘 들어주는 사람을 만났다는 기쁨을 전하면서, 그 경청을 곧바로 훌륭한 인격의 증명으로 바꾸지는 않는다.
이 두 면을 함께 보면 필립의 침묵도 다르게 읽힌다. 그는 상대의 말을 기다리고 있지만, 작가로서 그 말을 붙잡는 사람이기도 하다. 듣는 얼굴이 다정하게 보이는 순간에도 관객은 나중에 그것이 어떤 문장으로 남을지 생각하게 된다. 연인이 된다는 것과 작가의 인물이 된다는 것이 같은 자리에서 진행되는 관계다.
말이 많은 영화지만 감정의 변화가 대사에만 실려 있지는 않다. 연인이 옷을 다시 입는 장면에서 방이 어두워지고, 그녀는 혼자 있고 싶다는 뜻을 전한다. 즐거운 오후를 보낸 뒤에도 슬픔이 찾아온다. 상대와 가까웠다는 사실이 지금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을 없애주지는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도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생긴다.
빛이 달라지는 순간은 그 변화를 길게 해설하지 않고도 느끼게 한다. 방금까지 함께 있던 공간이 더는 같은 기분을 주지 않는다. 대화의 내용만 요약하면 놓치기 쉬운 부분이다. 무슨 말을 했는지와 그 말이 나올 때 얼굴 주변에 어떤 빛이 남아 있는지를 같이 보아야, 두 사람의 시간이 갑자기 낯설어지는 감각을 따라갈 수 있다.
레아 세이두는 사랑에 빠진 인물을 연기할 때 상대에게도 사랑받고 싶다는 기대 때문에 연약해지는 느낌이 있었다고 말했다. 웃는 표정으로 괴로움과 감정을 감추기도 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므로 연인의 미소를 곧장 행복의 표시로 읽기보다, 그 미소가 어느 말 앞뒤에 놓이는지 보는 편이 흥미롭다.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자기 감정을 언제나 똑바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감독은 두 주연 배우를 함께 오래 연습시키기보다 각자 대본을 읽었다. 현장에서 세이두가 보여주는 반응을 드니 포달리데스가 따라가도록 했다. 원작의 문장을 충실하게 가져오면서도 그 말을 미리 정해진 한 가지 표정에 묶어두지는 않은 것이다. 관객은 글로 쓰인 말의 내용을 듣는 동시에, 상대가 예상과 다르게 반응할 때 생기는 짧은 변화를 보게 된다.
필립의 아내(아누크 그랭베르)가 노트를 발견하면서 글은 다른 독자를 만난다. 작가에게는 창작의 재료이고 연인에게는 함께 나눈 시간이었던 말이, 아내에게는 자신이 모르는 남편의 삶을 가리킨다. 같은 문장이 누구의 손에 들어갔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일이 된다.
필립은 노트 속 여자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가 만들어낸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것은 작가가 소설의 성격을 설명하는 말인 동시에, 추궁받는 남편이 자기 행동을 설명하는 말이기도 하다. 두 역할이 겹쳐 있어서 어느 쪽을 먼저 믿어야 할지 망설이게 된다. 소설은 상상으로 쓸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이, 눈앞에서 상처받은 사람에게 충분한 답이 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이때 관객은 아내보다 더 많은 것을 보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필립과 연인이 함께한 얼굴과 대화를 이미 따라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어디까지 사실로 받아들였는지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사람이 바로 필립이다. 자신이 들려준 이야기를 뒤늦게 허구라고 부르는 작가 앞에서, 관객도 그의 노트를 읽는 사람과 비슷한 처지가 된다.
이 장면을 불륜의 유무를 가리는 문제로만 읽으면 말의 다른 위험을 놓치기 쉽다. 어떤 사람의 목소리를 받아 적고 그것을 자기 작품이라고 부를 때, 작가에게는 설명할 권한이 생긴다. 작가는 이야기 속 여자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도, 자신이 만들어낸 인물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반면 그 말을 나눈 상대에게 그 경험은 마음대로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제목의 ‘기만’은 서로 다른 사람에게 서로 다른 의미가 될 수 있다.
영화는 필립을 법정에 세우는 상상의 재판도 마련한다. 여성을 다루는 그의 태도를 묻는 검사(사디아 벤타이에브) 앞에서, 남의 말을 듣고 기록하던 사람이 자신의 말과 행동을 설명해야 한다. 일상적인 대화가 갑자기 재판의 형식을 취하는 변화에는 익살이 있다. 필립이 줄곧 자기 방에서 정하던 이야기의 흐름을 잠시 빼앗기는 순간이기도 하다.
데플레솅은 이 장면을 악몽이면서 농담이라고 설명하며, 필립이 늘 옳은 사람은 아니고 검사의 지적에도 일리가 있다고 말했다. 영화가 주인공을 좋아한다고 해서 모든 항변을 받아주는 것은 아니다. 창작의 자유를 말하는 사람에게 질문을 던질 자리도 남겨놓는다. 관객 역시 그의 변론에 끌리다가 다시 반박을 듣는 사이에서 판단을 움직일 수 있다.
이 상상의 법정은 노트를 둘러싼 다툼과 다른 방식으로 필립의 말을 시험한다. 아내는 자기 삶과 관계된 상처를 묻고, 검사는 여성들을 다루는 작가의 태도를 따진다. 필립은 그때마다 말을 잘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지만, 영화에는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목소리도 있다. 대사의 풍부함은 그의 매력을 키우는 동시에 혼자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한다.
〈디셉션〉을 보고 나면 연인의 말을 받아 적은 노트가 단순한 사랑의 기념품으로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는 누군가 말할 수 있었던 시간과, 그 말을 자기 것으로 엮는 사람의 욕심이 함께 남아 있다. 영화가 길게 보여준 얼굴들은 글로 정리된 설명에 다 들어가지 않는다. 필립이 허구라고 말해도, 관객은 이미 한 사람이 웃음과 불안을 오가며 말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작가가 붙인 이름만으로 지워지지 않는 것은 그 얼굴이다.
◆ 말을 듣는 필립의 얼굴 — 연인이 이야기할 때 그의 반응을 살펴보자. 관심을 갖고 듣는 연인과 말을 붙잡아두는 작가가 한 사람 안에 있다는 점이, 이후 노트를 둘러싼 다툼을 복잡하게 만든다.
◆ 옷을 입는 연인 주변의 빛 — 즐거운 만남 뒤 방이 어두워지는 장면을 보자. 함께 보낸 시간과 지금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 어긋나는 순간을 대사뿐 아니라 빛의 변화로 전한다.
◆ 노트를 읽는 아내의 자리 — 앞서 친밀하게 들렸던 말이 아내에게는 어떻게 들릴지 생각해보자. 관객이 사랑의 대화로 받아들인 문장에 다른 사람의 고통이 들어오는 장면이다.
◆ 법정에서 답하는 작가 — 필립과 검사가 어떤 근거로 서로를 반박하는지 들어보자. 상상의 재판이라는 익살 속에서도, 창작을 말하는 사람이 타인의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 따져보게 된다.
◆ 〈아무도 없는 곳〉 (2021, 김종관) — 서울로 돌아온 소설가가 만나는 사람들의 기억과 사연을 듣는다. 타인의 말을 듣는 작가가 이야기의 중심에 놓인다는 점에서, 들은 이야기를 간직하는 방식과 듣는 사람의 변화를 이어서 볼 만하다.
◆ 〈지니어스〉 (2016, 마이클 그랜디지) — 넘쳐나는 문장을 쓰는 작가와 그것을 책으로 다듬는 편집자가 함께 일한다. 삶을 글로 만드는 열정이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 어떤 몫을 요구하는지 다른 창작자의 관계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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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