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아 세이두 앞에서는 감독이 먼저 연기하지 않았다 | MovieLAB LAB

아르노 데플레솅은 배우 앞에서 직접 연기를 해보이는 감독이다. 그런데 〈디셉션〉의 영국인 연인을 맡은 레아 세이두에게는 그러지 않았다. 자신의 시범을 보여주는 대신 배우가 어떤 …

레아 세이두 앞에서는 감독이 먼저 연기하지 않았다 | MovieLAB LAB

아르노 데플레솅은 배우 앞에서 직접 연기를 해보이는 감독이다. 그런데 〈디셉션〉의 영국인 연인을 맡은 레아 세이두에게는 그러지 않았다. 자신의 시범을 보여주는 대신 배우가 어떤 목소리를 낼지 듣고 싶었다. 오래 읽어온 필립 로스의 소설을 영화로 옮기면서도, 그 말을 할 사람의 반응까지 미리 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 영화의 중심에는 작가 필립(드니 포달리데스)과 그를 찾아오는 여성들의 대화가 있다. 작가는 타인의 말을 듣고 글을 쓰지만, 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에게도 자기 삶을 설명할 목소리가 있다. 데플레솅이 세이두와 일하는 방식을 바꾼 선택은 이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자기 작품에 담을 때, 상대가 예상 밖의 말을 할 자리를 얼마나 남겨둘 수 있을까.

외운 말에도 처음 듣는 표정이 있다

데플레솅은 〈디셉션〉을 준비하며 두 주연과 각각 대본 전체를 읽었다. 두 배우가 함께 읽은 장면도 있었지만, 모든 대화를 한 가지 호흡으로 미리 맞추지는 않았다. 감독이 원한 것은 로스의 문장을 지키면서 배우가 자기 리듬으로 말하는 일이었다. 정확하게 쓸 말이 정해져 있어도, 그 말을 꺼내는 순간의 태도는 배우에게서 나올 수 있었다.

데플레솅은 세이두가 어떻게 반응할지 자신도, 상대 배우도 예측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러면 포달리데스는 눈앞의 반응에 응답해야 했다. 대화를 많이 나누는 영화에서 이 차이는 작지 않다. 준비한 대사를 차례로 꺼내는 동안에도 상대의 얼굴 때문에 다음 말의 무게가 바뀔 수 있다. 소설의 문장은 이미 쓰여 있지만 두 사람이 그것을 주고받는 시간은 촬영장에서 생긴다.

〈디셉션〉을 볼 때는 누가 더 날카로운 말을 하는지만큼, 그 말을 듣던 얼굴이 언제 달라지는지도 눈여겨볼 만하다. 같은 고백도 담담하게 이어갈 때와 감정이 차오른 뒤에 꺼낼 때 다르게 들린다. 작가가 상대를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상대의 반응은 그 설명 안에 얌전히 머물지 않을 수 있다. 감독이 배우의 목소리를 기다린다는 것은 그 어긋남까지 장면에 받아들이는 일이다.

세이두를 향한 주문이 모든 인물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연기 원칙은 아니었다. 데플레솅에게는 평소 직접 해보이며 장면을 함께 찾는 방식이 있었다. 이번에는 자신이 먼저 답을 내면 놓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본 셈이다. 익숙한 연출법을 멈춘 자리에서 배우가 자기 판단을 내린다.

책장이 있는 방에서 남성은 앉아 있고 여성은 바닥에 누워 다리를 들고 있다

글을 쓰는 배우에게 작가를 맡기다

필립 역을 맡길 때 데플레솅이 관심을 둔 것은 포달리데스가 실제로 글을 쓴다는 점이었다. 무대 연출 경험도 있었다. 문장을 만드는 사람의 일과, 그것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사람의 일을 함께 아는 배우였다. 감독이 필요로 한 것은 책 속의 작가를 그럴듯하게 소개하는 외양에 그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자기 작업으로 가져오는 인물의 일상이었다.

데플레솅은 포달리데스가 무대 뒤에서 책을 읽다가 자기 차례에 나가 연기하고, 돌아오면 다시 읽던 모습을 기억했다. 글은 배우가 특별한 역할을 준비할 때만 접하는 물건이 아니었다. 감독은 그런 사람에게 필립을 맡겨, 쓰는 일을 구체적인 노동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 선택은 앞서 세이두에게 했던 부탁과 나란히 놓을 만하다. 한 배우에게서는 작가의 생활을 이해하는 경험을 구하고, 다른 배우에게서는 감독이 대신 말할 수 없는 반응을 기다린다. 두 사람이 같은 장면에 들어오면 필립의 익숙한 공간도 그만의 뜻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상대는 그의 소설에 필요한 이야기만 해주려고 온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 속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듣는 일의 다정함과 곤란함이 함께 다가온다. 관심 있게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 말을 계속하게 되지만, 그 사람이 내 이야기를 어떤 모습으로 옮길지는 내가 정할 수 없다. 데플레솅은 작가의 작업을 이해하는 배우와 자기 목소리를 찾는 배우를 마주 앉혔다. 인물들이 서로에게 원하는 것이 같지 않다는 사실을 연기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조합이다.

흰 민소매 옷의 여성이 어깨 너머로 고개를 돌려 바라본다

작곡가에게 돌려준 자신의 음악

말을 영화의 시간으로 바꾸는 데에는 음악도 관여한다. 데플레솅은 함께 일해온 작곡가 그레구아르 에첼에게 이번에는 다른 사람의 음악을 본보기로 주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신 에첼이 앞서 자신과 만든 영화의 음악을 임시로 놓아보았다. 작곡가가 자기 작업을 다시 참조하며 새 영화의 소리를 찾아가도록 한 것이다.

임시 음악은 완성 전에 장면의 분위기와 속도를 시험하는 데 쓰인다. 감독이 이미 좋아하는 곡을 붙여놓으면 작곡가에게 그 느낌을 따라가라는 주문이 되기 쉽다. 데플레솅은 이 익숙한 준비 과정에서 참고할 대상을 바꾸었다. 다른 작곡가처럼 해달라고 말하는 대신, 함께 만든 음악 가운데 무엇이 이번 영화에서도 살아날지 물었다.

에첼은 자신의 지난 음악을 가져오는 작업을 즐겼다고 감독은 회고했다. 이미 친숙한 음악이라고 해서 영화 안에서 맡는 역할까지 같지는 않다. 다른 인물의 말과 침묵 옆에 놓이면 새 관계가 생긴다. 〈디셉션〉의 대화 사이로 음악이 들어올 때에는, 방금 들은 말의 감정이 계속 이어지는지 아니면 조금 다른 분위기가 열리는지 귀를 기울여보자. 목소리 뒤에 남는 시간을 만드는 또 한 사람의 일이 들린다.

감상 포인트

◆ 상대가 말을 마친 뒤 — 영국인 연인의 대사를 들은 필립의 표정과 응답을 보자. 배우가 상대의 반응을 받아 다음 말을 하는 순간에 대화의 긴장이 생긴다.

◆ 말하는 사람의 속도 — 세이두가 감정을 바로 드러내는 때와 말을 이어가는 때를 비교해보자. 정확한 문장과 배우의 리듬이 만나는 방식을 느낄 수 있다.

◆ 연인을 맞는 작업실 — 필립의 방에서 책상과 책, 소품을 살펴보자. 친밀한 대화를 나누는 방이면서 누군가의 삶을 글로 옮기는 작업 공간이기도 하다. 연인을 위한 관심처럼 들리던 질문이 작가의 호기심으로도 들리는지, 두 사람이 이 방에서 원하는 것이 같은지 생각하며 볼 수 있다.

◆ 대화 뒤의 음악 — 음악이 들어올 때 방금 나눈 말이 어떻게 남는지 들어보자. 말의 뜻을 이해하는 것과 그 감정에 잠시 머무는 것은 다른 경험이 된다.

관련 작품

◆ 〈디셉션〉 (2021, 아르노 데플레솅) — 작가와 타인의 대화를 두 배우의 서로 다른 경험과 목소리로 옮긴 영화. 문학을 좋아하는 감독이 배우에게 무엇을 맡기는지 볼 수 있다.

◆ 〈아무도 없는 곳〉 (2021, 김종관) — 소설가가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영화. 누군가의 말을 듣는 시간이 듣는 사람에게 무엇을 남기는지 함께 생각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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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