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호준(김호원)은 자신을 오디션에서 떨어뜨린 남감독(성환)을 낚시터에서 만난다. 하필 이곳이다. 호준은 ‘호사마’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인기 낚시 유튜버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배우 호준(김호원)은 자신을 오디션에서 떨어뜨린 남감독(성환)을 낚시터에서 만난다. 하필 이곳이다. 호준은 ‘호사마’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인기 낚시 유튜버이기도 하다. 영화에서는 좀처럼 기회를 얻지 못하지만, 물고기를 잡는 일이라면 자신 있다. 촬영하러 온 낚시터에서까지 불합격한 배우로 보이고 싶지는 않다.
〈잔챙이〉의 이 난처한 만남에는 배우 희진(임채영)도 끼어든다. 남감독의 영화에 주연으로 뽑힌 그는 두 남자가 함께 시간을 보내도록 이끈다. 탈락한 배우와 그를 뽑지 않은 감독, 출연을 앞둔 배우가 한자리에 모였다. 박중하 감독은 이들에게 곧바로 속마음을 털어놓게 하지 않는다. 먼저 낚시 자리를 놓고 다투게 한다. 거창한 영화 이야기보다 지금 내 옆에서 성가시게 구는 사람이 더 큰 문제다.
남감독은 호준이 봐둔 자리를 자기가 먼저 정해뒀다며 차지하고, 호준의 방송 진행에도 끼어든다. 영화를 같이 만들겠다고 모인 자리도 아닌데 호준은 계속 그를 상대해야 한다. 제 할 일을 잘하고 있다는 자신감과 옆 사람 때문에 망가지고 있다는 짜증이 부딪힌다. 물가의 한적한 풍경과 달리 두 사람의 시간은 좀처럼 평화롭지 않다.
호준의 낚시 실력은 영화 속에서 기분 좋은 반격의 재료가 된다. 배우를 뽑을 때에는 감독의 판단을 기다려야 했지만 이곳에서 잘 모르는 쪽은 감독이다. 호준에게는 보여줄 것이 있고, 그걸 보러 오는 시청자도 있다. 낚시를 잘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에는 오디션에서 떨어졌다는 사실 하나로 이 사람을 평가할 수 없게 된다.
그렇지만 이 능숙함이 배우로서의 아쉬움을 없애주지는 않는다. 누가 호준에게 낚시를 참 잘한다고 칭찬한다면 사실에 맞는 좋은 말일 것이다. 그런데 호준이 듣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로 인정받고도 충분히 기쁘지 못하다는 점에서, 이 사람의 욕심은 조금 우습고 조금 안쓰럽다. 가진 게 없어서만 괴로운 것은 아니다. 원하는 곳에서 아직 자기 자리를 얻지 못했다.
둘이 서로의 직업을 확인한 뒤에는 말투가 달라진다. 호준은 상대에게 존칭과 경어를 쓰고, 남감독은 존대와 반말을 섞는다. 조금 전까지는 불편한 옆자리 사람이었는데, 배우와 감독이라는 관계가 생기자 대화에도 그 관계가 묻어난다. 장소는 그대로인데 오디션장에서의 불편함이 이곳까지 따라온 듯하다.
호준이 예의를 차리는 모습을 무조건 비굴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는 영화를 계속하고 싶고, 상대는 배우를 선택하는 사람이다. 괜히 사이를 더 나쁘게 만들 이유는 없다. 다만 그 마음을 알고 보면 사소한 말다툼에서도 신경이 쓰인다. 호준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와 그 화를 상대에게 얼마나 드러낼 수 있는지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크게 싸우지 않는 대화에도 자존심이 상할 자리는 충분하다.
희진이 두 사람 사이에 들어오면 이 팽팽함이 또 달라진다. 그는 남감독과 일할 배우이면서, 호준과도 함께 연기한 적이 있다. 호준은 희진 앞에서 그저 낚시를 잘하는 남자로만 있을 수 없고, 남감독도 제멋대로 구는 낚시 초보자로만 있을 수 없다. 서로의 다른 모습을 아는 사람이 합류하면서 둘이 유지하려던 체면이 더 복잡해진다. 세 사람이 나누는 말에는 누구 앞에서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지가 묻어난다.
희진에게도 자기 일이 걸려 있다. 영화에 뽑힌 사람이라고 모든 걱정이 끝난 것은 아니다. 김호원은 호준뿐 아니라 남감독과 희진도 뜻대로 풀리지 않는 꿈을 가진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한 사람은 거절당하고 다른 사람은 선택한다는 구도만으로 이 관계를 끝낼 수 없는 이유다. 낚시터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호준이 부러워하거나 미워할 만했던 사람들에게도 사정이 생긴다.
호준에게는 이미 방송을 보러 오는 시청자가 있다. 그럼에도 그는 영화 속 인물로 극장 관객을 만나고 싶다. 호준을 연기한 김호원에게도 이 바람은 낯설지 않다.
김호원 역시 연기를 하지 않을 때 낚시를 즐기고, 실제로 낚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해왔다. 그 이야기를 들은 박중하가 영화로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김호원은 처음에 낚시터를 배경으로 하면 이야기가 우울해지지 않겠느냐며 반대했다고 한다. 그렇게 걱정했던 장소에서 완성된 영화는, 사람들이 사소한 일로 티격태격하는 코미디가 됐다.
김호원은 출연 외에도 공동 각본과 제작을 맡았다. 2023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뒤에는 박중하와 함께 직접 배급을 준비해 2025년 극장에 걸었다. 이 이력은 호준의 일이 전부 배우의 실제 경험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극장에서 관객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도 있었다는 사실은 알게 된다. 배역으로 표현하던 바람을 현실에서도 오래 붙들었던 셈이다.
호준이 낚시터에서 부리는 자존심을 보고 웃다가도, 그가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낚시를 잘한다는 칭찬은 그의 실력을 정확히 알아본 말이다. 하지만 배우로 일하고 싶은 마음까지 헤아린 말은 아니다. 이번 영화에 함께하자는 말. 〈잔챙이〉의 소란스러운 낚시가 끝난 뒤에는, 호준에게 그 한마디를 건네줄 사람이 있었으면 한다.
◆ 낚시 자리를 놓고 다투는 두 남자 — 누가 더 훌륭한 영화인인지 논하기 전에, 두 사람이 옆자리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자. 자리를 차지하고 방송에 끼어드는 사소한 행동이 성격을 드러낸다. 호준의 짜증을 먼저 이해하고 나면, 배우와 감독이라는 직업이 밝혀진 뒤의 불편함도 더 가깝게 느껴진다.
◆ 호칭이 바뀐 뒤의 대화 — 서로를 배우와 감독으로 알게 된 다음 존댓말과 반말이 어떻게 나오는지 들어보자. 같은 낚시터에서도 영화 일을 할 때의 관계가 따라온다. 예의를 갖춘 말과 불쾌한 마음이 함께 있는 대목에서, 큰 소리 없이도 체면이 상하는 코미디가 생긴다.
◆ 희진이 알고 있는 두 사람 — 희진을 남자들의 다툼을 중재하는 인물로만 보지 말자. 그는 두 사람과 각기 다른 관계를 맺고 있고, 자기 연기를 할 기회도 앞두고 있다. 그가 대화에 합류했을 때 남자들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살피면 셋 사이의 관계를 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
◆ 능숙한 유튜버와 기회를 기다리는 배우 — 호준에게 낚시가 잘 풀리는 일과 영화가 잘 풀리는 일이 왜 다른지 생각해보자. 잘하는 일이 있다는 것은 위안이지만, 하고 싶은 다른 일을 자동으로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이 두 마음을 함께 볼 때 그의 자존심과 미련이 단순한 허세로만 보이지 않는다.
◆ 〈공드리의 솔루션북〉 (2023, 미셸 공드리) — 자기 영화를 완성하려는 감독의 열정이 주변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코미디다. 영화를 아낀다는 마음과 함께 일하는 사람을 잘 대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 창작자의 진지한 고민이 가까운 사람에게는 얼마나 성가신 일로 다가오는지 이어볼 수 있다.
◆ 〈생활의 발견〉 (2002, 홍상수) — 여행에 나선 배우의 만남을 따라가며 말과 행동 사이의 틈을 보여준다. 자신을 근사하게 보이려는 말이 오히려 속마음을 드러내는 순간들이 있다. 낚시터에서 체면을 다투던 호준과 남감독처럼, 평범한 대화 속에서도 자존심이 얼마나 바쁘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