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에 다녀온 엠마가 금빛 커튼을 산다. 바깥에서 겪은 일이 집 안의 물건을 바꾸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마담 보바리〉의 엠마(미아 바시코프스카)는 지금과 다른 삶을 원한다. 그…
사냥에 다녀온 엠마가 금빛 커튼을 산다. 바깥에서 겪은 일이 집 안의 물건을 바꾸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마담 보바리〉의 엠마(미아 바시코프스카)는 지금과 다른 삶을 원한다. 그런데 그 삶의 모습은 종종 새로운 옷과 직물로 먼저 나타난다. 원하는 세계에 들어갈 수 없다면 그 세계의 물건을 들여놓을 수는 있다. 커튼 하나로 방의 분위기는 바뀌겠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하루도 달라질까.
시골 의사 샤를(헨리 로이드휴스)과 결혼한 엠마에게 일상은 기대한 만큼 빛나지 않는다. 구스타브 플로베르의 소설을 옮긴 소피 바르트 감독은 젊은 엠마의 시간을 약 일 년으로 압축했다. 결혼 생활을 충분히 알아갈 틈도 없이 기대와 실망, 연애와 소비가 빠르게 뒤엉킨다. 이 영화의 아름다운 옷을 보게 되는 이유는 엠마가 멋져 보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무엇을 얻으려고 그 옷을 골랐고, 그것을 입은 뒤에도 무엇이 부족한지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처음 엠마의 옷은 빛바랜 듯한 색에 무늬가 적다. 이후 새로운 만남이 생기면서 더 선명한 색과 도시적인 차림이 등장한다. 의상 디자이너들은 시골의 수수한 옷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 만큼 대담한 옷으로 변하도록 설계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보기를 바라는지가 외양에 드러난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지금의 생활에 어울리는 사람이기를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을 읽게 된다.
그 옷을 받쳐주는 실내의 벽은 회색과 푸른색 계열로 정해졌다. 의상이 배경에서 두드러지도록 미술과 의상이 함께 조율한 결과다. 방 안에 있는 엠마는 자신의 공간과 조화롭게 섞이기보다 눈에 들어온다. 그만큼 달라 보이려는 시도도 선명해진다. 자신이 사는 곳을 떠나지 못한 채 자기 모습부터 바꾸는 일이 화면의 색으로 나타난다.
옷감의 질감도 그 욕망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 감독은 엠마가 비단과 드레스를 사다가 파산하는 이야기인 만큼 그 물건이 실제로 탐스러워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의상에 천연 비단을 고집했다. 관객에게 먼저 천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 뒤, 엠마가 왜 그런 것을 원했는지 생각하게 하는 순서다. 낭비라고 이름 붙이기 전에 그가 붙들고 싶어 하는 감각을 잠시 나누게 된다.
그러나 아름다움이 구매 능력을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옷을 입으면 당장은 다른 삶에 가까워진 것 같아도 대금은 사라지지 않는다. 물건을 갖는 순간의 기쁨과 나중에 값을 치러야 하는 시간이 어긋난다. 의상의 변화는 엠마의 감정이 풍부해지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앞으로 감당할 일이 늘어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판본은 원작의 무도회 대신 사냥 장면을 택한다. 엠마가 바라던 상류사회의 자리에 들어서는 일이 실내의 우아한 춤이 아니라 동물을 뒤쫓는 야외의 움직임으로 바뀐다. 그곳에서 엠마는 후작(로건 마셜그린)과 가까워진다. 초대받았다는 들뜸 속에 누군가를 쫓고 몰아가는 광경이 함께 놓인다.
감독은 사냥을 통해 주변 남성들에게 쫓기는 엠마의 처지를 드러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이 장면에서 엠마의 기분을 두려움 하나로 정리하기는 어렵다. 바라던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고, 후작의 관심에도 끌린다. 들어가고 싶은 세계가 자신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두 가지 가능성이 한꺼번에 열린다. 사냥은 그녀가 원하던 삶을 가까이서 보는 기회이면서 그 안의 힘 관계를 보여주는 자리다.
사냥복의 비대칭 선도 시선을 붙든다. 당시 옷을 그대로 복제한 디자인이 아니라, 엠마의 흔들리는 내면을 나타내려고 만든 의상이다. 옷차림은 그 사회에 속하고 싶은 사람의 단정함만 보여주지 않는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기세와 고르게 정돈되지 않는 마음을 함께 드러낸다. 풍경과 몸의 움직임, 옷의 선이 엠마에게 같은 감정만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사냥 뒤에 금빛 커튼을 사는 행동을 다시 떠올리면 기대가 옮겨가는 방식이 보인다. 만남에서 충족되지 않은 것이 집을 꾸미는 일로 이어진다. 바시코프스카는 엠마가 머릿속의 이상과 실제 경험 사이의 차이를 계속 겪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무엇이 필요한지 차분히 알아볼 시간보다, 지금의 실망을 바꿔줄 다음 대상을 찾는 속도가 빠르다. 새 물건은 그 속도를 잠시 따라잡아주는 것처럼 보인다.
엠마 곁에는 연인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상인 르뢰(리스 이판)는 그녀가 바라는 생활을 물건으로 제시한다. 감독과 각본가는 이 인물의 비중을 원작보다 키웠다. 엠마의 욕망이 사랑을 향하는 순간과 상품을 향하는 순간을 함께 따라가기 위해서다. 그녀에게는 새 삶의 가능성인 것이 상인에게는 거래의 기회가 된다.
이 관계에서 돈은 감정에 나중에 덧붙는 현실적인 문제가 아니다. 원하는 물건을 지금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조건부터 엠마의 결정을 바꾼다. 당장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가능성은 포기할 이유를 약하게 만든다. 미래에 해결해야 할 일이 현재의 선택을 더 쉽게 만드는 셈이다. 상인의 호의와 물건의 아름다움을 따로 보기가 어려워진다.
영화는 새 옷을 계속 보여주기만 하지 않는다. 앞서 입었던 드레스가 다시 나타나고, 엠마는 자신이 입었던 옷을 돌려주어야 한다. 바시코프스카는 같은 의상이 반복되다가 되돌려지는 경험이 인물의 흐름을 이어주었다고 말했다. 관객도 처음 보는 물건이 아니라 이미 그녀의 몸에서 보았던 옷을 알아보게 된다. 반환은 재산의 감소인 동시에, 그 옷으로 꾸몄던 자기 모습과 헤어지는 일이 된다.
원하던 물건을 얻은 기억과 그것을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같은 드레스에 남는다. 그래서 엠마의 곤경은 숫자로 된 빚의 설명보다 가까이 느껴진다. 새 옷을 고르던 사람이 그 옷을 놓아야 한다. 앞서 아름답게 보였던 의상이 이제는 값을 치르지 못한 물건으로 보인다. 화면 속 천은 같아도 보는 마음이 달라진다.
〈마담 보바리〉에서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는 즐거움에는 이런 불편함이 따라온다. 엠마가 원한 삶을 모두 허영이라고 치부하면 그녀에게 왜 그 물건이 절실했는지 놓친다. 반대로 옷이 만들어주는 잠깐의 변화에만 빠져 있으면 그 변화가 얼마나 비싼지 보지 못한다. 금빛 커튼으로 달라진 방과, 드레스를 돌려주어야 하는 사람 사이에 이 영화가 보여주는 욕망의 시간이 있다.
1. 벽의 색과 드레스의 색 실내에 선 엠마가 배경과 얼마나 어울리거나 두드러지는지 보자. 빛바랜 색에서 선명한 옷으로 변하는 과정은 그녀가 원하는 모습의 변화다. 옷은 달라져도 생활 공간은 여전히 곁에 있다.
2. 사냥의 들뜸과 불안 초대받은 엠마의 입장과 쫓기는 동물을 함께 보자. 원하는 세계에 들어갔다는 기쁨 속에 어떤 관계가 드러나는지 살펴볼 만하다. 후작의 관심이 생기는 자리의 성격도 중요하다.
3. 커튼을 사는 시점 물건 자체뿐 아니라 그 직전에 어떤 경험을 했는지 연결해보자. 엠마는 사람에게서 느낀 기대와 실망을 방과 옷을 바꾸는 행동으로 옮긴다. 다른 것을 갖는 일이 다른 삶을 사는 일에 얼마나 가까워지는지 묻게 된다.
4. 다시 나타나는 드레스 앞서 입었던 옷을 기억해두면 반환의 의미가 달라진다. 단순히 물건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그 옷을 입고 기대했던 자기 모습까지 돌아보게 된다. 의상은 엠마가 보낸 시간의 기록이 된다.
〈레이디 맥베스〉(2016), 윌리엄 올드로이드 사랑 없는 결혼에 갇힌 젊은 여성이 저택의 노동자와 관계를 맺는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택하려는 마음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행동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비교할 수 있다. 주인공의 답답함을 이해하는 것과 그의 선택을 지지하는 일 사이를 살피게 한다.
〈하우스 오브 미스〉(2000), 테렌스 데이비스 뉴욕 상류사회의 여성이 돈과 결혼, 평판 사이에서 설 자리를 잃어간다. 아름다운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경제적 조건이 관계를 어떻게 바꾸는지 이어볼 수 있다. 꾸며진 공간과 의상이 인물에게 허용하는 삶의 범위를 함께 보게 된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