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구해준 사람의 외로움은 왜 몰랐을까 | MovieLAB LAB

키코(스기사키 하나)는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도움받았다는 기억과 그 사람을 충분히 안다는 것은 같지 않다. 〈52헤르츠 고래들〉에서 키코가 바닷가 마을…

나를 구해준 사람의 외로움은 왜 몰랐을까 | MovieLAB LAB

키코(스기사키 하나)는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도움받았다는 기억과 그 사람을 충분히 안다는 것은 같지 않다. 〈52헤르츠 고래들〉에서 키코가 바닷가 마을의 한 소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이유에는 자신의 과거가 있다. 소년(쿠와나 토리)은 학대를 당하고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키코 역시 가족에게 삶을 빼앗기다시피 했고, 누군가가 알아봐주기 전에는 거기서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았다.

영화는 키코가 아이를 돕는 현재와, 안고(시손 준)가 키코를 도왔던 과거를 오간다. 이 두 관계를 겹쳐 놓으면 선의를 이어받는 따뜻한 이야기가 먼저 보인다. 그러나 안고에게도 키코가 미처 듣지 못한 마음이 있었다.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기억할 때 가려졌던 한 사람의 사정. 영화의 제목에 고래가 여럿인 이유를 여기서 생각하게 된다.

소년이 먼저 설명할 수 없는 일

키코는 도쿄를 떠나 바닷가 마을의 집에서 혼자 지낸다. 새로운 장소로 왔다고 과거의 기억까지 정리된 것은 아니다. 그곳에서 만난 아이는 엄마에게 벌레라는 모욕적인 이름으로 불린다. 아이를 돌봐야 할 사람이 아이를 그렇게 부른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관계가 얼마나 뒤틀렸는지 전해진다.

자신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 말해달라고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소년에게 다가가기 어렵다. 말할 수 없고, 자신을 대하는 어른의 방식 말고는 다른 관계를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아이이기 때문이다. 키코는 설명이 끝난 뒤에야 움직일 수 있는 위치에 머무르지 않는다. 아이가 겪는 일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생활하기 시작한다.

이 설정에서 마음을 붙드는 것은 키코가 모든 사정을 다 안다는 자신감이 아니다. 자신도 학대를 겪었다는 기억이 소년을 지나치지 못하게 한다는 점이다. 같은 경험이 있다고 서로의 마음을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아이가 아무렇지 않을 거라고 넘길 수는 없다. 키코가 움직이는 이유와 소년을 완전히 이해하기까지 필요한 시간은 구별해야 한다.

함께 산다는 일은 한 번 위로하고 헤어지는 일보다 오래 이어진다. 엄마에게 모욕적인 이름으로 불리던 소년이 다른 어른과 생활하게 된다. 키코가 먼저 들여다보는 것은 아이가 얼마나 분명하게 도움을 요청하는지가 아니라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다.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아이에게도 이미 살펴야 할 일이 있다는 것. 두 사람이 만나기 시작하는 이 조건을 기억할 만하다.

모자를 쓴 여성과 회색 옷을 입은 여성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웃는다

보살피던 딸에게는 누가 필요했을까

키코의 과거에는 가족을 돌보는 시간이 있다. 어머니에게 학대받으면서 의붓아버지의 간병까지 떠맡았다. 집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면서도 정작 자신을 위해 살아갈 여지는 줄어든다. 가족을 돌보는 일이라는 익숙한 말만으로는 그 불균형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요구할 수 있는지, 키코에게 거절할 여지가 있는지를 보게 된다.

이런 키코를 안고와 오랜 친구 미하루(오노 카린)가 돕는다. 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키코의 문제를 집안 사정으로만 묶어두지 못하게 한다. 가족 바깥에도 자신의 처지를 알아보고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 집에서 견디는 것만이 선택의 전부라고 느끼던 사람에게는, 그 존재 자체가 이전과 다른 생활을 상상할 이유가 된다.

도움을 받는다는 말은 수동적으로 들리지만, 키코에게는 자신이 다르게 살아도 되는지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돌보느라 소진되어온 사람이 이제 돌봄을 받는다. 두 위치가 바뀌면 익숙했던 자기 모습도 달라진다. 가족에게 필요한 일을 해주는 사람으로만 살던 키코를, 가족 밖의 사람들이 한 사람으로 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 속 현재에서 키코가 소년에게 다가갈 때 이 기억이 따라온다. 자신의 과거를 아이에게 그대로 겹쳐놓는 일이 정답은 아니다. 다만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자신도 누군가에게 배웠다는 점은 중요하다. 키코의 선의가 혼자 만들어낸 특별한 재능처럼 보이지 않는다. 받은 도움을 떠올릴 때, 지금의 행동에도 함께 움직였던 사람들의 자리가 생긴다.

안고도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안고는 키코의 절박함을 알아본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키코의 시선을 따라가는 관객도 그를 든든한 도움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하지만 사람을 자신에게 해준 일로만 기억하면 그가 겪는 어려움은 뒤로 밀린다. 언제나 상대의 상태를 살피는 사람에게는 정작 누가 안부를 묻는지 생각하게 된다.

영화는 트랜스젠더 남성인 안고를 키코를 구하는 역할에만 남겨두지 않는다. 나루시마 이즈루는 각색하면서 안고가 겪는 고통을 관객에게 더 일찍 드러내는 쪽을 택했다. 인물에 관한 정보를 뒤늦은 놀라움으로 사용하는 대신, 그가 관계 안에서 어떤 마음으로 버티는지 함께 지켜보게 하는 선택이다.

키코는 안고에게 연애 감정을 품지만 안고는 그 마음을 연인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신 키코가 행복해지기를 바란다고 답한다. 키코에게는 거절로 받아들여지는 말이다. 관객은 두 사람이 서로를 아끼면서도 관계를 같은 방식으로 바라보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마주한다. 도움을 받으며 생긴 친밀함이 자동으로 같은 사랑이 되지는 않는다.

나루시마는 이 관계를 각색할 때 특히 고민했다고 밝혔다. 원작에서 키코가 안고에게 품는 애정과 영화 속 배우들이 주고받을 감정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의 문제였다. 결과적으로 영화에는 키코의 기대와 안고의 응답 사이에 어긋남이 생겼다. 상대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공통점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차이다.

이 대화를 생각하면 상대의 말을 듣는다는 일도 단순한 위로 이상이 된다. 상대의 말을 내 바람과 분리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지가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키코에게 안고는 자신을 구한 사람이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지만, 그 두 역할이 안고라는 사람의 전부는 아니다. 그에게도 자신의 고통과 관계를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가 있다.

그래서 키코가 안고를 기억하는 동안 관객은 그 기억의 바깥을 생각하게 된다. 자신에게 해준 일을 고마워하는 마음과 상대가 필요로 한 것을 알아차리는 일 사이에는 빈틈이 있을 수 있다. 영화가 안고를 키코의 은인으로만 소개하지 않는 덕분에, 관객도 키코와 같은 자리에서만 그를 바라보지 않게 된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난간 앞에 세 사람이 함께 있다

고래의 비유를 사람에게 돌려주면

제목은 다른 고래에게 닿지 않는 목소리를 가졌다는 52헤르츠 고래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이 영화에서는 자신의 절박함을 누군가에게 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는 비유다. 과학적 설명을 기대하기보다, 무엇 때문에 이 사람의 목소리가 주위에 닿지 못하는지 생각하는 편이 인물들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소년에게는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고, 키코에게는 가족 안에서 감당해야 했던 시간이 있고, 안고에게는 자신을 대하는 사회와 가까운 사람들의 문제가 있다. 이들은 모두 외롭지만 외로워진 이유까지 같지는 않다. 같은 고래의 이름으로 묶인 사람들의 서로 다른 처지를 놓치지 않을 때, 도움 역시 누구에게나 같은 방식으로 주면 되는 것이 아님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영화의 관계를 따라가다 보면 잘 들어주겠다는 마음 다음에 무엇이 필요한지 궁금해진다. 상대가 원하는 일을 알아가는 것, 자신이 짐작한 모습으로 상대를 고정하지 않는 것, 도움을 준 사람의 생활도 살피는 것. 키코와 소년, 안고를 차례로 바라보며 생기는 구체적인 관심들이다. 누군가의 선행을 멀찍이 칭찬하고 끝내기에는 관계의 양쪽에 사람이 너무 선명하게 남는다.

〈52헤르츠 고래들〉의 슬픔은 도움을 주고받는 일이 헛되다는 데 있지 않다. 도움이 분명 한 사람의 삶을 바꾸었는데도, 그 관계 안에서 놓친 마음이 있다는 데 있다. 키코가 아이를 향해 다시 움직이는 모습을 따라가면서 안고를 잊을 수 없는 까닭이다. 좋은 사람을 기억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사람에게도 누가 필요했을지를 생각하게 된다.

감상 포인트

◆ 아이를 부르는 이름 — 엄마가 소년을 벌레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키코와의 만남을 보자. 한 어른이 아이를 어떻게 대하는지가 호칭에서부터 드러난다. 아이가 먼저 피해를 설명하지 못해도, 주변 사람이 살펴야 할 것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키코의 현재와 과거 — 아이와 있는 키코, 도움을 받던 키코를 이어서 보자. 같은 배우가 서로 다른 관계 속에 놓인다. 과거가 현재 행동의 모든 답이라고 단정하기보다, 도움받은 기억이 지금의 선택에 어떻게 따라오는지 살필 만하다.

◆ 안고를 바라보는 시간 — 키코에게 무엇을 해주는지에만 관심을 두지 말고 안고 자신의 처지도 놓치지 말자. 상대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이 그 사람에게 도움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영화가 안고를 일찍 알아보게 하는 선택을 느낄 수 있다.

◆ 가족 밖에서 생기는 관계 — 미하루와 안고가 키코에게 어떤 존재가 되는지 따라가보자. 키코를 집안 역할만으로 규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고립을 벗어나는 과정에서 한 명의 구원자뿐 아니라 주변의 관계가 하는 몫도 보인다.

관련 작품

◆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2023, 장건재) — 악성 종양 가능성을 들은 교수가 연구실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난다.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정작 자기 불안을 어떻게 감당하는지, 안고와 키코의 관계에서 생긴 관심을 다른 상황으로 옮겨볼 수 있다.

◆ 〈맨체스터 바이 더 씨〉 (2016, 케네스 로너건) — 형의 죽음 뒤 조카를 돌봐야 하는 남자를 따라간다. 자신에게 남은 고통과 다른 사람을 책임지는 일이 함께 놓인다. 누군가를 돕는다고 자신의 상처까지 말끔히 정리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이어볼 만하다.

──────────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