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소설을 읽고도 영화로 만들기는 어렵겠다고 말하는 감독이 있다. 나루시마 이즈루에게 〈52헤르츠 고래들〉이 그랬다. 가족에게 학대당한 여성과 소년, 자기 고통을 말하지 못하는…
좋은 소설을 읽고도 영화로 만들기는 어렵겠다고 말하는 감독이 있다. 나루시마 이즈루에게 〈52헤르츠 고래들〉이 그랬다. 가족에게 학대당한 여성과 소년, 자기 고통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각자의 사정을 문장으로 헤아려주는 소설을 두 시간 남짓한 영화로 옮기면, 그 설명을 배우의 말과 몸이 감당해야 한다. 나루시마의 망설임에는 이야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 너무 많다는 사정이 있었다.
그가 결국 영화를 만들며 한 선택을 보면 이 걱정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린다. 누구의 사정을 먼저 알려줄지 바꾸고, 배우에게서 인물의 생명력을 찾고, 촬영 전에 함께 연습할 시간을 확보했다. 책을 덮은 뒤에도 마음에 남는 사람을 화면 속에서 다시 만나게 하는 일. 이 감독의 각색은 줄거리를 줄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영화의 중심에는 키코(스기사키 하나)가 있다. 키코는 바닷가 마을에서 학대받는 소년을 만나고, 자신을 도왔던 안고(시손 준)와의 시간을 돌아본다. 안고는 키코의 어려움을 알아차린 사람이지만, 그에게도 쉽게 말하지 못하는 사정이 있다. 나루시마는 안고가 트랜스젠더 남성이라는 사실을 관객이 일찍 알도록 했다. 원작에서 뒤늦게 드러나던 정보를 앞으로 옮긴 것이다.
원작자 마치다 소노코도 이 변경을 반겼다. 인물의 정체성이 뒤에 밝혀지는 이야기 장치로 쓰이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둘의 합의는 원작을 얼마나 그대로 옮겼느냐는 질문만으로는 평가하기 어려운 선택이다. 같은 인물이 같은 일을 하더라도, 관객이 그 사람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지에 따라 관심을 두는 곳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안고를 일찍 알게 되면 그를 키코의 은인으로만 바라보기 어렵다. 누군가를 구하려 애쓰는 사람이 자기 어려움까지 잘 해결하고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나루시마는 키코가 이해하는 범위 안에 안고를 가둬두지 않는다. 관객은 도움을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 양쪽을 살피게 된다. 누구의 과거를 언제 알려주느냐는 각색의 결정이, 누구를 얼마나 걱정하게 되느냐는 감상의 문제로 이어지는 대목이다.
나루시마가 키코에게서 읽은 것은 상처만이 아니었다. 그는 이 인물의 밑바탕에 강한 생명력이 있다고 느꼈고, 그 점을 스기사키 하나와 연결했다. 가혹한 일을 겪는 주인공을 맡길 때, 가여움을 잘 보여줄 배우부터 떠올린 것은 아니었다. 살아갈 힘이 있는 사람이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를 보여주려 했다.
키코는 안고에게 도움을 받았던 사람이면서, 지금은 소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 두 자리를 함께 생각하면 배우에게 필요한 것도 달라진다. 무너져 있는 모습만으로 인물을 설명할 수 없고, 강해진 모습만으로 과거를 지울 수도 없다. 한 사람 안에서 그 시간이 이어져야 한다. 감독이 말한 생명력은 고통을 견디는 능력을 칭찬하는 말이라기보다, 키코를 고통의 장면에만 묶어두지 않으려는 캐스팅의 기준으로 읽힌다.
관객에게도 이 기준은 유용하다. 키코가 얼마나 불행한 일을 겪었는지 세는 대신, 다른 사람 곁에서 어떤 행동을 할 수 있게 되는지 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도움을 받던 사람이 도움을 건네는 쪽에 서도 모든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소년과 함께 지내기로 하는 선택에는 지금의 키코가 있다. 스기사키에게서 감독이 찾아낸 힘을 그 변화 속에서 살펴볼 만하다.
안고를 만드는 과정에는 배우와 당사자들의 대화가 들어갔다. 나루시마와 시손 준은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이 모이는 곳을 찾아 이야기를 들었다. 감독은 배우들과 표현을 거듭 의논했다고 밝혔다. 어떤 말이 상처를 줄 수 있는지, 상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을 어떻게 다룰지처럼 대본의 표현 하나에도 검토할 문제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감독의 위치가 흥미롭다. 완성된 인물 해석을 배우에게 전달하는 사람으로만 머물 수 없기 때문이다. 직접 겪지 않은 경험을 영화 안에 들여놓으려면, 자신이 이미 이해했다고 생각한 부분부터 다시 물어야 한다. 조언을 구했다는 사실이 영화의 모든 표현을 보증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나루시마는 도움을 청하는 이야기를 만들며 작업 현장에서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들였다.
그 협업은 관객이 인물을 받아들이는 방식과 닿아 있다. 안고를 어떤 문제를 설명하는 대표자로만 보면 그가 키코를 대하는 마음은 부차적인 것이 된다. 반대로 친절한 은인으로만 보면 그의 고통을 지나치게 된다. 한쪽 설명으로 편하게 정리되지 않는 사람을 배우가 연기해야 한다. 감독이 함께 듣고 묻는 시간을 들인 까닭도 그 어려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루시마는 스승인 소마이 신지의 현장에서 한 장면을 거듭 촬영하며 배우와 소통했던 방식을 기억한다. 하지만 지금의 현장에서 과거 방식을 그대로 되풀이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52헤르츠 고래들〉에서는 일주일의 리허설 기간을 마련했다. 감독과 배우가 서로 인물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확인할 시간을 촬영 전에 둔 것이다.
이 선택에는 경험 많은 감독이 자신의 익숙한 방법을 바꾸는 모습이 있다. 배우가 언젠가 답을 찾아내기를 기다리는 것과 함께 시도할 시간을 마련하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답을 얻어야 하지만, 후자는 준비 단계부터 서로의 이해를 드러낼 수 있다. 인물의 사정이 복잡할수록 감독이 정확한 설명을 한 번 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나루시마의 영화를 따라가는 한 가지 재미는 이런 준비가 어디로 향하는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키코와 안고에게 붙은 사연을 외우기보다, 상대를 도우려는 사람이 상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살펴보자. 선의가 곧 이해는 아니고, 도움을 받는다고 모든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두 사람의 관계에 귀를 기울일수록 왜 감독이 설명을 배우에게 곧장 넘기지 못하고 함께 준비할 시간을 필요로 했는지 알 수 있다.
책 속 인물을 배우에게 건네는 데에는 소설에 없는 사람들도 필요했다. 감독과 배우, 원작자와 조언자들이 각자 다르게 알고 있는 것을 꺼내놓았다. 그렇게 만든 인물을 관객은 다시 자기 자리에서 만난다. 안고가 키코에게 해주는 일만 보다가 그 자신에게도 시선이 간다면, 나루시마가 바꾼 정보의 순서와 늘린 준비 시간이 서로 멀지 않은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 안고를 일찍 아는 관객의 자리 — 안고가 키코를 돕는 대목에서 그의 사정도 함께 떠올려보자. 은인의 행동에 고마워하는 마음에 그를 걱정하는 마음이 더해지는지 살필 수 있다.
◆ 키코가 소년을 대하는 방식 — 키코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 보자.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넘어 지금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선택하는지 보면, 감독이 캐스팅에서 중요하게 본 생명력을 생각할 수 있다.
◆ 도움을 건네는 말과 받아들이는 말 — 대화에서 누가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다 말하지 못하는지 들어보자.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있어도 이해의 정도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이 두 사람의 관계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 한 인물의 서로 다른 관계 — 키코를 안고와의 관계 안에서만 보지 말고 소년과 있을 때도 살펴보자. 같은 사람이 다른 자리에 서는 것을 따라가면 피해 경험 하나로 그를 요약하기 어려워진다.
◆ 〈52헤르츠 고래들〉 (2024, 나루시마 이즈루) — 정보를 알리는 순서와 배우의 준비가 누구에게 관심을 갖게 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연결작이다. 키코를 중심에 두면서도 안고를 따로 헤아리게 하는 각색에 주목할 만하다.
◆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2023, 장건재) — 병을 알게 된 배우이자 대학 강사의 일상을 다룬다. 한 사람에게 닥친 어려움을 그 사람의 전부로 삼지 않고, 일과 관계 속에서 바라본다는 점을 비교해볼 수 있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