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마시기 전에, 좋아하는 노래부터 | MovieLAB LAB

사샤(사라 몽페티)의 부모는 딸의 앞날이 걱정이다. 남을 해치지 못하는 성격 때문이다. 인간 부모라면 기특해할 법도 하지만 이 집은 뱀파이어 가족이다. 피를 먹어야 살아가는데 매…

피를 마시기 전에, 좋아하는 노래부터 | MovieLAB LAB

사샤(사라 몽페티)의 부모는 딸의 앞날이 걱정이다. 남을 해치지 못하는 성격 때문이다. 인간 부모라면 기특해할 법도 하지만 이 집은 뱀파이어 가족이다. 피를 먹어야 살아가는데 매번 누군가를 가엾게 여기고 있으니, 언제까지 먹을 것을 챙겨주어야 할지 난감하다. 결국 부모가 피의 공급을 끊는다. 독립하라는 요구가 이렇게 끔찍한 뜻이 될 수도 있다.

〈난 엄청 창의적인 휴머니스트 뱀파이어가 될 거야〉는 타인의 고통을 지나치지 못하는 마음을 생존의 장애물로 취급하는 세계에서 시작한다. 사샤가 가족의 기대에 맞춰 성장하려면 더 능숙하게 사람을 죽여야 한다. 그에게 도움이 될 것처럼 등장하는 사람이 삶을 끝내고 싶어 하는 소년 폴(펠릭스 앙투안 베나르)이다. 하지만 상대의 죽음으로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계산은,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하면 그대로 유지하기 어렵다.

착한 딸에게 내려진 독립 명령

사샤의 난처함에는 낯익은 구석이 있다. 가족이 보기에는 할 수 있어야 마땅한 일을 혼자만 하지 못한다. 문제를 설명하려 하면 예민한 사람 취급을 받고, 모두가 해온 방식이니 자신도 따르라는 압박을 받는다. 뱀파이어 집안의 상식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면, 그 상식은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일이다. 부모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걱정과 그 걱정의 대상 사이에서 웃음이 생긴다.

영화가 사샤를 착한 사람으로 소개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 이유도 이 설정에 있다. 가족이 가져다주는 피를 마시며 계속 살 수 있다면 자기 손으로 해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기 쉽다. 그러나 공급이 끊기면서 사샤는 지금까지 누구에게 의지해왔는지까지 마주하게 된다. 착한 마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가족의 방식에 적응하는 것만을 성숙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아리안 루이스 시즈 감독은 사샤를 인간보다 천천히 나이 드는 뱀파이어로 설정했다. 오래 살아도 모든 일이 익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외형이 어린 소녀인 사샤에게 생존 방식부터 정하라는 요구가 닥치는 순간, 뱀파이어의 긴 수명과 청소년의 불안이 한 인물 안에 만난다. 중요한 것은 몇 년을 살았느냐보다 자신이 원치 않는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다. 가족과의 마찰을 단순한 반항으로만 보기 어려워진다.

촛불을 앞에 둔 어린 소녀가 웃고 그 뒤에 어른들이 앉아 있다

폴에게는 아직 물어볼 것이 많다

폴은 자신의 삶을 내놓겠다고 하지만, 영화 속에서 그가 하는 일이 그 제안 하나로 끝나지는 않는다. 사샤의 방에 들어간 그는 뱀파이어에 관해 이것저것 묻는다. 인생에 관심을 잃었다는 소개와 달리, 눈앞의 낯선 존재에게는 궁금한 것이 많다. 사샤도 누군가에게 설명해주어야 할 자기 생활이 생긴다. 둘의 처지를 한 줄의 줄거리로 정리할 때 빠져버릴 대화다.

이 질문들은 위험한 약속을 잠시 미룬다. 약속대로라면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까지 알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궁금한 것을 묻고 답을 듣는 동안 폴은 사샤에게 이름과 목소리와 성격이 있는 사람으로 남는다. 사샤 역시 피를 마셔야 하는 생물이라는 사실 외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조건이 맞는 상대를 발견했다는 이야기에서, 상대와 보내는 시간이 생겨나는 이야기로 관심이 옮겨간다.

그래서 두 사람의 만남을 서로에게 유용한 거래라고 부르는 것은 이 영화의 출발점을 설명할 뿐이다. 폴의 고통이 사샤에게 쓸모 있다는 이유로 정당해지지는 않는다. 가까워질수록 어려워지는 것은 그가 내놓은 제안을 실행하는 일이다. 영화는 그 난처함을 외면하지 않은 채 둘을 밤거리로 내보낸다.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해보는 시간이, 처음 만났을 때 생각한 목적보다 중요해질 수 있을지 지켜보게 한다.

한 곡이 끝날 때까지 함께 있기

사샤의 방에서 흐르는 브렌다 리의 노래는 이 관계를 알아보는 좋은 자리다. 질문을 주고받던 두 사람은 음악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대화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하지 않아도, 상대를 의식하며 같은 공간에 있는 일이 남는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는 순간에도 노래는 계속된다.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둘을 곧 헤어질 관계로만 생각하기 어려워진다.

두 배우가 만드는 어색함에는 제작 과정의 재미있는 사정도 있다. 함께 오디션을 본 사라 몽페티와 펠릭스 앙투안 베나르는 서로 잘 맞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감독에게는 바로 그 서투른 만남이 필요했다. 처음부터 호흡이 척척 맞는 연인처럼 보이면 사샤와 폴이 서로에게 다가가는 과정은 덜 궁금했을 것이다. 지금의 긴장은 상대를 싫어해서 생기는 거리인지, 어떻게 가까워져야 할지 몰라 생기는 거리인지 선뜻 판단하기 어려운 데서 나온다.

음악 장면은 막연히 배우들의 감각에 맡긴 결과도 아니다. 감독과 배우들은 언제 서로를 볼지, 움직임을 어떻게 이어갈지 함께 연습했다. 촬영감독 숀 파블랭과는 한 번의 숏으로 이 시간을 담기로 했다. 작은 동작들을 세심하게 맞추어놓고 관객에게는 두 사람이 막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시간으로 건네는 것이다. 음악이 좋은 분위기를 대신 만들어준다기보다, 그 음악 안에서 둘이 어떻게 있을지를 보게 한다.

사샤에게 음악은 뱀파이어라는 설명에 다 들어가지 않는 취향이기도 하다. 가족이 그에게 묻는 것은 제대로 사냥할 수 있는지지만, 폴과 보내는 시간에는 좋아하는 노래가 끼어든다.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일은 그가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일만 듣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갈 때에도 가까워진다. 두 사람의 방에 흐르는 노래가 부모의 독립 요구보다 사샤를 더 많이 말해주는 순간이 있다.

붉은 조명을 받은 긴 머리 소녀가 병에 꽂은 빨대를 물고 있다

능숙한 뱀파이어가 되는 것 말고

이 영화에는 공포의 재료가 충분하다. 인간의 피가 필요하고, 누군가는 실제로 위험에 놓인다. 그럼에도 인물들의 무표정한 대화와 서로 맞지 않는 기대가 자주 웃음을 만든다. 뱀파이어의 생존 문제를 가족의 생활 문제처럼 말하는 동안, 관객은 무엇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웃기다는 이유로 죽음이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일상적으로 다루는 이 가족의 태도가 이상해지는 것이다.

사샤와 폴의 관계도 모든 외로움을 한 번에 치료하는 만남으로 정리할 필요는 없다. 감독은 두 사람을 반드시 연인으로 규정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이 말은 둘 사이의 끌림을 지우기보다 우리가 그 관계에 붙일 이름을 조금 늦추게 한다. 사귀게 되는지부터 궁금해하기 전에, 처음의 위험한 약속 외에 두 사람에게 무엇이 생기는지 볼 수 있다. 질문과 음악, 어색함을 견디며 보낸 시간이 먼저 있다.

한국어 제목의 ‘창의적인’이라는 말도 그런 사샤에게 어울린다. 가족이 내놓은 선택지는 단순하다. 먹이 구하는 법을 배우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샤는 그 방법을 그대로 잘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자신이 살아갈 문제를 남에게 계속 맡길 수도 없다. 이 막다른 고민에 폴이 들어오면서, 영화는 서로를 알아가는 일이 당장의 해답을 더 복잡하게 만들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노래가 끝나기 전에 누군가를 너무 쉽게 결론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샤와 폴에게는 아직 함께 보낼 밤이 남아 있다.

감상 포인트

◆ 부모가 말하는 자립 — 사샤에게 요구하는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 기억하며 가족의 대화를 들어보자. 익숙한 부모의 걱정이 뱀파이어 세계에서는 잔혹한 명령이 되는 어긋남이 웃음을 만든다.

◆ 폴의 질문들 — 사샤의 방에서 폴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살펴보자. 죽고 싶다는 말 하나로 설명하기 어려운 관심과 호기심이 드러난다. 상대를 알아가는 대화가 둘 사이의 위험한 약속을 어떻게 지연시키는지도 볼 만하다.

◆ 음악이 흐르는 동안의 시선 — 브렌다 리의 노래가 나오는 장면에서 두 사람이 언제 서로를 바라보는지 보자. 가까워졌다는 대사를 듣기 전에, 어색함과 호기심이 바뀌는 순간들을 따라갈 수 있다.

◆ 무서운 일을 담담하게 말하는 얼굴 — 가족들의 태연한 말투와 그 말의 내용을 함께 보자. 뱀파이어에게 일상인 일이 인간에게는 얼마나 끔찍한지,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두 감정이 동시에 생긴다.

관련 작품

◆ 〈52헤르츠 고래들〉 (2024, 나루시마 이즈루) — 가족에게 상처 입은 여성과 말을 잃은 소년이 만나는 드라마다. 상대를 도와주려는 마음과 상대를 충분히 안다는 생각은 같지 않다. 두 영화가 고립된 사람을 단순히 도움받을 대상으로 남겨두지 않는 방식을 비교할 수 있다.

◆ 〈싱 스트리트〉 (2016, 존 카니) —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려 밴드를 만드는 소년의 이야기다. 분위기와 설정은 크게 다르지만, 음악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처음의 계획을 바꾸어놓는다는 점에서 이어 볼 만하다. 상대의 마음을 얻는 기술보다 같이 할 일이 생기는 즐거움에 주목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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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