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5분〉을 만들 때 일본 그룹 글로브의 노래를 다른 곡으로 대신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음악 사용에 관한 권리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슷한 분위기의 음악을…
〈너와 나의 5분〉을 만들 때 일본 그룹 글로브의 노래를 다른 곡으로 대신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음악 사용에 관한 권리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슷한 분위기의 음악을 새로 만들 수도 있었다. 엄하늘 감독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시나리오를 쓰며 거듭 들었던 ‘Departures’와 ‘Faces Places’가 이미 장면 속에 들어와 있었다.
좋아하는 노래를 영화에 꼭 넣고 싶다는 고집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이 영화에서는 음악을 나누는 일이 곧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일이다. 2001년 대구의 학교로 전학 온 경환(심현서)은 일본 음악과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놀림을 받는다. 그러다 비슷한 취향을 가진 재민(현우석)을 만난다. 혼자 듣던 노래를 아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두 소년 사이의 대화를 시작하게 한다.
엄하늘에게 이 음악은 당시의 분위기를 재현하는 소품 이상이었다. 어떤 사람을 좋아했고 그 사람과 무엇을 나눴는지 기억할 때, 노래는 배경으로 물러나지 않는다. 그 곡이 나오면 함께 듣던 사람도 따라 떠오른다. 감독이 곡을 바꾸고 싶지 않았던 이유를 두 소년의 시간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엄하늘도 대구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고 일본 대중문화를 좋아했다. 그가 기억하는 교실에서는 그 취향을 드러내는 일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너와 나의 5분〉의 경환이 혼자 간직하던 세계에는 감독의 경험이 스며 있다. 다만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는 말이 두 소년의 모든 사건이 실제로 있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경환에게 재민은 단지 말을 걸어준 친절한 친구가 아니다. 남들에게 설명하기 어려웠던 취향을 알아듣는 사람이다. 무엇이 좋은지 길게 변명할 필요 없이 함께 듣고 이야기할 수 있다. 평소에는 별일 아닌 취향의 일치가, 혼자였던 사람에게는 크게 다가온다.
이 만남에는 기쁨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은 음악을 좋아한다고 두 사람의 감정까지 같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엄하늘은 이 이야기를 경환의 짝사랑으로 설명했다. 재민의 마음을 분명한 답으로 내놓지는 않았다. 관객은 경환과 함께 기대하면서도 재민의 말과 행동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여기서 취향은 상대의 마음을 푸는 암호처럼 쓰이지 않는다. 노래를 같이 들었다는 사실은 분명해도 그 시간을 각자 어떻게 기억할지는 다를 수 있다. 엄하늘은 두 소년이 나눈 것을 소중하게 찍으면서 그 차이까지 없애지는 않는다. 같이 좋아하는 것이 있다는 기쁨과, 좋아하는 사람을 다 알 수는 없다는 서운함이 한 관계에 남는다.
엄하늘이 당시의 대구를 만드는 데 공을 들인 곳은 학교였다. 공간의 작은 부분을 미술팀과 의논했고, 학생 역 배우들도 사투리를 할 수 있는지 보며 골랐다. 배경이 옛날처럼 보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 공간에서 오가는 말이 인물의 생활처럼 들려야 했다.
주연 배우들과도 사투리를 익히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 낯선 말투를 의식하느라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면 교실과 친구 사이가 자연스러워지기 어렵다. 반복한 리딩과 리허설은 단지 발음을 맞추는 준비가 아니라, 배우가 그 말로 상대를 대할 수 있게 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반면 현장에서의 감정 표현에는 비교적 여지를 두었다. 엄하늘은 준비 과정에서 자신이 구상한 장면을 자세히 전하되, 크게 다른 해석이 아니면 배우가 그 순간 느낀 표현을 지켜보려 했다고 말했다. 모든 표정과 반응을 감독의 기억에 맞춰 재현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 덕분에 과거를 그리는 영화에도 현재의 만남이 생길 수 있다. 감독이 기억하는 교실을 준비해두면, 그 안에서 경환과 재민으로 마주 서는 것은 두 배우다. 엄하늘의 학창 시절을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의 말을 듣고 대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투리를 세심하게 준비하면서 감정에는 여지를 둔 선택은 이 두 가지를 함께 가능하게 한다.
〈너와 나의 5분〉은 한 번에 장편으로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엄하늘은 단편으로 시작한 구상에 두 소년이 친해지는 과정과 감정을 더해 장편 시나리오로 발전시켰다. 완성하지 못할 것 같았던 시기에는 두 학생의 이야기에서 출발한 단편 〈피터팬의 꿈〉을 먼저 만들기도 했다. 같은 재료를 붙잡았어도 두 영화는 각각의 길이를 가진 작업이다.
이 과정을 알고 나면 장편에서 둘이 가까워지는 시간이 더 눈에 들어온다. 관계를 바꿀 큰 사건만 남겼다면 함께 듣고 이야기하는 일은 금세 지나갔을 것이다. 엄하늘은 소년들이 왜 서로에게 특별해졌는지 느낄 수 있을 만큼 그 시간을 넓혔다. 나중에 생길 일의 의미도 앞서 함께 보낸 시간에 달려 있다.
감독은 경환에게 재민과 보낸 시간이 힘들기만 한 기억으로 남지는 않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상처를 지우겠다는 뜻과는 다르다. 좋아하는 것을 나눌 친구가 생긴 순간까지 상처의 예고편으로 만들어버리지 않겠다는 태도로 읽을 수 있다. 경환의 외로움을 알수록 함께 음악을 듣는 기쁨도 제대로 볼 필요가 있다.
글로브의 노래가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도 들어갈 자리는 있다. 경환과 재민이 왜 그 노래를 좋아하는지 전부 알 필요는 없다. 상대에게 들려주고 싶고, 상대가 좋아하면 기쁜 마음을 따라가면 된다. 엄하늘은 자기에게 특별했던 음악을 그대로 남겨두고 그 마음을 다른 관객에게 건넨다. 모두가 알고 있는 노래로 바꾸지 않아도 함께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
◆ 노래를 아는 사람이 생겼을 때 — 재민과 취향이 통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경환의 모습을 보자. 곡의 유명세보다 혼자 좋아하던 것을 함께 말할 수 있다는 변화가 중요하다.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이유를 일상적인 대화에서 찾을 수 있다.
◆ 같은 음악, 다른 마음 — 두 사람이 노래를 나눈다는 사실을 곧바로 같은 감정의 증거로 읽지 말자. 경환이 기대하는 것과 재민이 실제로 말하는 것을 구별해보면 좋다. 그 차이 때문에 장면이 설레면서도 조심스럽게 느껴진다.
◆ 교실에서 들리는 말투 — 주인공뿐 아니라 주변 학생들의 말을 들어보자. 사투리와 말의 속도는 이들이 같은 공간에서 지내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만든다. 감독이 옛 학교를 복원하려고 준비한 것은 물건만이 아니었다.
◆ 음악이 나오기 전과 후 — 삽입곡을 따로 감상하는 재미와 함께, 그 노래가 어떤 관계의 순간에 놓이는지 살펴보자. 함께 듣는 사람에 따라 곡에 남는 기억도 달라진다. 엄하늘이 비슷한 다른 곡으로 대신할 수 없다고 느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 〈너와 나의 5분〉 (2024, 엄하늘) — 일본 음악과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두 소년이 가까워지는 이야기다. 취향을 나누는 즐거움과 짝사랑의 불확실함을 함께 따라가면, 감독이 오래 붙잡았던 시절의 여러 감정을 만날 수 있다.
◆ 〈피터팬의 꿈〉 (2020, 엄하늘) — 사귄 지 백 일이 된 두 남학생이 바닷가로 향하는 단편이다. 장편을 준비하던 감독이 먼저 완성한 작품으로, 이미 연인인 두 사람이 여행 중 상대의 낯선 면을 마주한다. 친해지는 설렘을 담은 장편과는 다른 관계의 시간을 비교해볼 만하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