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미야(다나카 케이)는 딸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이다. 우선 제대로 먹이는 것. 〈그리고 바통은 넘겨졌다〉에서 그가 차리는 식탁에는 만두와 수프, 오므라이스 같은…
모리미야(다나카 케이)는 딸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이다. 우선 제대로 먹이는 것. 〈그리고 바통은 넘겨졌다〉에서 그가 차리는 식탁에는 만두와 수프, 오므라이스 같은 음식들이 올라온다. 유코(나가노 메이)와 그는 피가 이어진 부녀가 아니다. 그렇지만 누구의 자녀인지 설명하는 말보다 식탁을 준비하는 손길이 먼저 이 집을 가족의 집으로 느끼게 한다.
유코는 자라는 동안 성이 여러 번 바뀌었다. 그 이력만 들으면 불행을 예상하기 쉽지만, 영화 속 유코의 일상을 그 예상 하나로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졸업을 앞둔 학교생활과 피아노, 마음이 가는 친구가 있고 집에는 밥을 차려주는 모리미야가 있다. 〈그리고 바통은 넘겨졌다〉는 부모가 몇 번 바뀌었는지에서 출발해, 그 부모들이 아이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로 시선을 옮긴다. 복잡한 가족관계를 외우는 것보다 한 끼의 의미를 알아보는 일이 중요해지는 영화다.
모리미야의 요리는 특별한 날의 선물에 그치지 않는다. 잘 먹고 지내게 하는 것이 자신이 맡은 일이라는 태도가 음식에 담긴다. 누군가의 보호자가 된다는 것은 커다란 결정만 내리는 일이 아니다. 오늘 무엇을 먹을지 생각하고, 준비하고, 먹는 모습을 보는 일도 포함된다. 영화가 식탁을 거듭 보여주면 두 사람이 함께 지낸 시간이 조금씩 실감난다.
유코가 마음을 두는 하야세(미즈카미 코시)까지 식사에 초대되어 셋이 만두를 먹는 장면이 있다. 부녀만의 자리였던 식탁에 딸의 학교 친구가 들어온다. 모리미야에게는 아이의 새로운 관계를 만나는 시간이고, 유코에게는 집과 학교의 두 세계가 한자리에 놓이는 순간이다. 같은 음식을 먹는 동안 서로에게 낯선 면이 드러날 여지가 생긴다. 설명으로 가족을 소개하는 것보다 훨씬 생활에 가까운 방법이다.
음식의 풍성함은 모리미야가 부자라는 증명도, 그의 양육이 완벽하다는 보증도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그가 딸의 하루에 들이는 관심이다.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종종 식탁처럼 평범한 모양으로 확인된다. 이 영화가 가족의 다정함을 설득하는 대목도 그런 데 있다. 혈연에 대한 선언을 먼저 이해하지 않아도, 유코에게 이 집이 어떤 곳인지 조금씩 느낄 수 있다.
유코와 모리미야가 처음 다투는 장면을 다나카 케이는 특별하게 기억했다. 이전까지는 다툼조차 하기 어려운 관계였기에, 마침내 싸울 수 있게 된 데서 변화가 느껴졌다는 것이다. 다툼의 내용이 슬프더라도 관계가 달라졌다는 감정은 함께 있을 수 있다. 배우가 짚은 이 대목을 떠올리면 두 사람이 평소 얼마나 조심스럽게 서로를 대하는지도 새롭게 보인다.
화목한 장면만으로 가족을 판단하면 다툼은 관계가 나빠졌다는 표시가 된다. 그러나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언제나 말을 삼키는 사이도 편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특히 이미 여러 번 가족의 형태가 바뀐 사람에게는 지금의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중요할 수 있다. 유코가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하지 않는지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다.
이 영화의 다정함은 서로에게 서운한 마음이 없어서 생기지 않는다. 서운함을 드러내도 관계가 곧바로 끝나지 않는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식탁을 사이에 두고 익숙하게 나누던 말과 감정이 부딪히는 순간의 말을 함께 들으면, 부모와 자녀가 된다는 일이 얼마나 세밀한 조정을 요구하는지 보인다. 잘 돌보려는 마음만큼 그 마음을 받는 사람의 말도 중요해진다.
유코는 졸업식 합창의 피아노 반주를 맡아 연습한다. 하야세의 연주에 마음이 끌리는 한편, 자기 손으로 곡을 해내야 하는 과제도 생긴다. 피아노는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계기이면서 유코가 준비하고 연습한 시간이 드러나는 대상이다. 좋아하는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과 자신이 직접 연주하는 것은 서로 다른 긴장을 만든다.
나가노 메이는 촬영 전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연주하면서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어려웠다고 밝혔다.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배우의 노력을 칭찬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연주하는 손과 표정이 함께 있을 때 관객은 유코의 긴장을 따로 떼어 듣지 않게 된다. 잘 치고 싶은 마음과 그 순간 느끼는 감정이 한 사람에게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모리미야는 그 시간을 지켜보는 쪽에 있다. 집에서 음식을 챙기는 어른도 아이 대신 연주해줄 수는 없다. 할 수 있는 일을 충분히 한 뒤, 아이가 해내는 것을 보아야 하는 순간이 온다. 졸업식이 이 부녀에게 특별한 까닭을 여기서 생각해볼 수 있다. 부모의 사랑은 언제나 앞에서 이끄는 모습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조금 떨어져 보고 있는 얼굴에도, 아이가 자기 일을 하게 두는 마음이 담길 수 있다.
영화는 유코와 모리미야의 생활과 함께 리카(이시하라 사토미), 어린 딸 미탄(이나가키 쿠루미)의 이야기를 펼친다. 리카는 모리미야처럼 차분한 방식으로만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다. 화려한 옷을 입고 아이의 방도 자기 취향으로 꾸민다. 같은 양육이라는 이름 안에도 이렇게 서로 다른 성격과 방식이 있다.
두 집을 번갈아 보는 동안 관객은 어른들의 모습을 비교하게 된다. 누가 더 안정적으로 보이는지, 누구의 선택이 더 쉽게 이해되는지 첫인상이 생긴다. 그러나 영화는 그 첫인상으로 사람을 다 판단하기 전에 시간을 조금 더 함께 보내게 한다. 밝은 태도나 화려한 겉모습만으로는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와 어른이 같은 일을 이해하는 방식은 다를 수 있다. 아이에게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변화에도 어른의 사정이 있지만, 어른에게 이유가 있다고 해서 아이의 당혹감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바통은 넘겨졌다〉를 볼 때는 어른이 숨겨둔 사정만 찾느라 아이의 현재를 지나치지 않는 것이 좋다. 유코와 미탄에게 지금 누가 곁에 있고, 그 사람과 어떻게 지내는지가 먼저 이야기의 온도를 만든다.
두 이야기의 관계를 서둘러 정리하지 않고 따라가면, 서로 다른 집에서 반복되는 돌봄이 눈에 들어온다. 먹이고, 배우게 하고, 아이의 말을 듣거나 미처 다 듣지 못한다. 어느 한 사람의 성격을 정답으로 삼기보다 실제로 건넨 행동을 보게 된다. 제목의 바통도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다. 아이를 누군가의 소유물처럼 넘기는 일이 아니라, 아이가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어른들이 맡아온 책임을 생각하게 하는 말이다.
유코가 앞으로 자기 생활을 꾸려가면 어른들이 대신해줄 수 있는 일은 줄어든다. 그렇다고 함께한 시간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누군가의 관심을 받으며 지냈던 경험은 그 집을 떠난 뒤에도 자기 삶을 이해하는 일부가 될 수 있다. 이 영화의 감동은 어른의 헌신을 얼마나 크게 밝히느냐에만 달려 있지 않다. 아이가 그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는가에도 달려 있다.
밥을 차리고 연주를 듣는 모리미야의 모습을 돌아보면, 대단한 아버지가 되겠다는 선언보다 매일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태도가 남는다. 가족을 설명하는 한 줄은 바뀔 수 있어도 그 사람이 해준 일은 없던 일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바통은 넘겨졌다〉는 그 작은 행동들을 충분히 보게 한 뒤에야 가족이라는 말의 뜻을 넓힌다. 이름이 몇 번 달라졌는지보다, 그 이름으로 불리는 동안 누가 나를 돌보았는지를 기억하게 한다.
◆ 모리미야가 준비하는 음식 — 메뉴뿐 아니라 누구와 함께 먹는 자리인지 보자. 둘의 식탁에 하야세가 더해지면 딸의 관계를 아버지도 만나게 된다. 돌봄이 두 사람만의 친밀함을 지키는 일과 바깥의 사람을 받아들이는 일로 넓어진다.
◆ 처음 부딪히는 말 — 유코와 모리미야가 다툴 때, 평소와 달리 무엇을 말할 수 있게 되었는지 들어보자. 조용했던 관계가 항상 편안했던 것은 아닐 수 있다. 다툼의 내용과 별개로, 서로에게 감정을 드러내는 데 필요한 믿음을 생각할 수 있다.
◆ 연주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 졸업식에서 유코의 연주뿐 아니라 그것을 지켜보는 모리미야도 보자. 아이를 위해 직접 하는 일과 아이가 직접 하도록 기다리는 일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식탁에서의 돌봄과 비교할 만하다.
◆ 각 집에 놓인 물건 — 방과 옷, 식탁을 통해 어른들의 취향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살펴보자. 인물 소개를 듣기 전에도 생활 공간이 성격을 알려준다. 겉으로 보이는 취향과 아이에게 실제로 하는 행동을 함께 읽으면 첫인상이 더 입체적으로 바뀐다.
◆ 〈당신의 부탁〉 (2017, 이동은) — 죽은 남편의 아들을 맡게 된 여성이 낯선 가족관계를 시작한다. 혈연 밖에서 부모가 된다는 일이 현실의 생활 속에서는 어떤 어려움과 책임을 갖는지, 다른 분위기의 영화로 이어볼 수 있다.
◆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2013, 고레에다 히로카즈) — 출생 때 아이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두 가족의 이야기다. 피가 이어진 관계와 함께 지낸 시간의 무게를 묻는다는 점에서, 유코를 돌본 어른들의 선택과 비교할 만하다.
──────────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