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그 몸을 씻기고 수의를 입히는 일을 한다. 〈물비늘〉의 예분(김자영)은 염습사다. 다른 가족의 마지막 인사를 도우며 살아왔지만, 정작 자기 손녀에게는 작별을…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그 몸을 씻기고 수의를 입히는 일을 한다. 〈물비늘〉의 예분(김자영)은 염습사다. 다른 가족의 마지막 인사를 도우며 살아왔지만, 정작 자기 손녀에게는 작별을 고하지 못했다. 손녀 수정(설시연)이 래프팅 사고로 실종된 지 일 년. 예분은 금속 탐지기를 들고 매일 강으로 간다. 무엇이라도 찾아야 이곳에 온 보람이 있을 텐데, 그 무엇을 찾아내는 일은 손녀의 죽음을 더 분명하게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던 예분에게 다른 아이를 돌봐달라는 부탁이 온다. 오랜 친구 옥임(정애화)은 자신이 죽으면 손녀 지윤(홍예서)을 맡아달라고 한다. 지윤은 수정의 친구다. 임승현 감독은 이 부탁으로 두 사람을 한집에 들인다. 같은 아이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니 금세 의지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함께 슬프다는 사실만으로 함께 살기가 쉬워지지는 않는다. 예분에게 지윤은 보살펴야 할 아이이면서, 가장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아이이기도 하다.
강에 들어가는 예분에게는 장비가 있다. 금속 탐지기와 헤드폰, 물속을 살필 수 있는 수경. 이 차림은 한 번 울고 돌아갈 사람의 차림이 아니다. 오늘도 무언가를 해보려고 나온 사람이다. 슬픔을 설명하는 말을 듣기 전에, 그 슬픔 때문에 되풀이하는 일을 보게 된다. 집에 돌아온 뒤에도 내일 다시 강으로 나올 것 같은 모습이 마음에 걸린다.
누군가에게는 수색을 멈춰야 한다는 판단이 합리적일 수 있다. 하지만 예분에게는 강에 가지 않는 하루를 견디는 일부터 어려울 것이다. 몸을 움직이고 뭔가를 찾는 동안에는 손녀를 위해 할 일이 남아 있다. 찾는 일을 그만두라는 말이 그만 사랑하라는 말은 아닌데도, 남은 사람이 둘을 쉽게 구별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예분의 행동을 지켜보면, 좋은 뜻으로 건넨 위로도 상대가 당장 따라 할 수 있는 조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예분의 직업은 이 사정을 더 아프게 만든다. 죽음을 낯설어해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다. 다른 이의 죽음 앞에서 해야 할 일을 알고, 실제로 해온 사람이다. 그 경험이 자기 가족의 죽음까지 감당하게 해주지는 않는다. 감독은 여러 죽음을 겪어온 염습사도 손녀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서 예분의 직업을 정했다고 밝혔다. 익숙한 일을 하던 손으로 강물 속을 더듬는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지윤은 수영을 하는 아이다. 수정은 물에서 사고를 당했다. 자신이 잘하는 일, 익숙하게 머물던 장소가 친구의 죽음과 겹쳐 있다. 예분에게 강이 손녀를 찾으러 가는 곳이라면, 지윤에게 물은 앞으로도 자기 삶에서 떼어내기 어려운 것이다. 같은 사고를 겪은 뒤에도 두 사람이 물 앞에 서는 사정은 다르다.
임승현은 지윤이 수영 선수라는 설정에도 그 어려움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물을 잘 안다는 것이 그곳에서 친구를 잃은 마음까지 다룰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예분이 염습사라는 직업 덕분에 슬픔을 해결하지 못하듯, 지윤도 수영을 잘한다고 사고를 납득할 수는 없다. 자기에게 익숙한 일을 계속하면서도, 그 일과 얽힌 기억 앞에서는 자꾸 흔들리는 사람들이다.
두 인물에게는 각자 자기 탓으로 돌리는 마음도 있다. 죄책감을 느낀다고 해서 실제 책임이 그만큼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데 남은 사람의 생각은 그 구별만으로 멈추지 않는다. 그날 자신이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지, 하지 않았어야 할 말이나 행동은 없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물비늘〉을 따라가며 조심해야 할 것도 이 부분이다. 인물이 자신을 탓하는 말을 곧바로 사건의 정답처럼 받아들이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범위가 오히려 좁아진다.
지윤은 친구를 잃은 뒤 할머니마저 떠나보내야 한다. 예분에게는 수정의 친구로 먼저 보이지만, 이 아이에게도 따로 견디는 이별이 있다. 누구의 친구이고 누구의 손녀인지에 앞서, 지금 의지할 사람이 필요한 소녀다. 예분의 그리움에 마음이 기울어 있을 때 지윤의 처지를 함께 생각하면, 한 사람의 슬픔만으로 집 안의 분위기를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옥임의 부탁이 간절하다고 해서 예분이 바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예분은 처음에 거절한다. 손녀를 잃은 사람이 다른 아이를 돌보게 되는 일을 따뜻한 인연으로만 기대했다면, 이 머뭇거림을 오래 생각해볼 만하다. 누군가를 아낄 수 있는 마음과 그 사람을 책임질 수 있는 상태가 늘 함께 준비되는 것은 아니다. 예분에게도 견뎌야 할 하루가 이미 있다.
예분에게 지윤은 손녀를 떠올리게 하는 아이지만, 지윤 자신에게도 예분과 새로 겪게 될 하루가 있다. 수정과 얼마나 닮았는지, 그 빈자리를 얼마나 채워주는지만 살피면 지윤이 어떤 사람인지는 놓치기 쉽다. 이 동거에서 궁금한 것은 두 사람이 얼마 만에 식구처럼 가까워질지보다, 서로에게서 세상을 떠난 사람 외에 무엇을 알아가게 될지다.
영화의 강변도 한 모습으로만 남아 있지 않는다. 처음에는 넓게 펼쳐진 강가가 보이고, 뒤로 갈수록 공사의 흔적이 들어온다. 감독은 이런 변화를 화면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예분이 어제와 같은 마음으로 찾아와도 장소는 달라질 수 있다. 세상이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큰 사건 없이도 느끼게 하는 변화다. 그러니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괜찮아진다는 말보다, 변해가는 하루를 누구와 보낼 수 있는지가 더 궁금해진다.
〈물비늘〉의 두 사람에게 바라는 것도 거창한 회복은 아니다. 예분이 손녀를 잊어버리는 일도, 지윤이 아무렇지 않게 물로 돌아가는 일도 아니다. 슬픈 기억을 가진 채 집에 돌아왔을 때, 그 마음을 처음부터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함께 있는 것이 괴로운 날에도 관계를 곧바로 포기하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떠나보낸 자리에 새 사람이 온다는 것은, 옛사람을 덜 사랑하겠다는 약속일 필요가 없다.
◆ 수색하러 나온 사람의 차림 — 금속 탐지기와 헤드폰, 수경을 갖춘 예분을 보자. 막연히 그리워하는 마음이 매일 반복하는 행동으로 드러난다. 강에 가는 일을 중단하는 것이 이 사람에게 어떤 의미일지 생각하면, 주변에서 건네는 말도 조금 다르게 들릴 수 있다.
◆ 물을 대하는 두 사람의 사정 — 예분은 강에서 손녀의 흔적을 찾고 지윤은 수영을 하는 아이다. 물과 익숙한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 아픈 기억까지 없애주지는 않는다. 같은 장소를 보면서도 서로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바라는지 구별해보자.
◆ 돌봐달라는 부탁 앞의 망설임 — 옥임의 부탁을 예분이 곧바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를 살펴보자. 도움이 필요한 아이가 있다는 사실과 어른 역시 지쳐 있다는 사실은 함께 성립한다. 그 망설임을 냉정함 하나로 설명하지 않을 때 동거의 어려움도 더 가까이 느껴진다.
◆ 조금씩 달라지는 강변 — 강물뿐 아니라 그 주변의 땅과 공사의 흔적에도 눈을 두자. 예분은 같은 사람을 찾지만 그가 돌아오는 장소는 변하고 있다. 기다리는 사람의 시간과 바깥의 시간이 어떻게 다르게 흐르는지 볼 수 있다.
◆ 〈맨체스터 바이 더 씨〉 (2016, 케네스 로너건) — 큰 상실을 겪은 남자가 조카를 돌볼 책임을 맡는다. 누군가를 아끼는 마음만으로 함께 살 준비가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어 볼 만하다.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거리를 찾는 일 역시 관계를 지키는 방법일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 〈당신의 부탁〉 (2018, 이동은) — 남편을 잃은 여자가 남편의 아들과 한집에서 살게 된다. 먼저 떠난 사람이 맺어준 관계를 살아 있는 두 사람이 새로 만들어가야 한다. 이미 정해진 가족 역할보다, 함께 지내며 서로에게 무엇을 부탁할 수 있는지에 관심을 두고 보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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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