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비늘〉의 오디션을 앞둔 홍예서는 전체 시나리오를 받지 못했다. 지윤이 친구, 친구의 할머니, 자신의 할머니와 각각 나누는 대사만 있었다. 배우는 그 조각들로 서로 어떤 사이인…
〈물비늘〉의 오디션을 앞둔 홍예서는 전체 시나리오를 받지 못했다. 지윤이 친구, 친구의 할머니, 자신의 할머니와 각각 나누는 대사만 있었다. 배우는 그 조각들로 서로 어떤 사이인지 짐작해야 했다. 임승현 감독이 오디션에서 먼저 물은 것도 그 관계였다. 홍예서는 자신이 분석한 답이 맞아떨어져 작품에 합류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슬픔을 표현할 배우를 찾으면서 감독이 먼저 살핀 것은 누가 누구를 잃었고, 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였다. 영화 속 지윤(홍예서)은 죽은 친구 수정(설시연)의 할머니 예분(김자영)과 한집에 살게 된다. 두 사람은 같은 이를 잃었지만 서로에게 위로만 되는 사이는 아니다. 임승현은 이들이 함께 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인물 사이의 거리를 배우가 스스로 읽어보게 했다.
김자영에게도 이해가 필요한 설정이 있었다. 예분은 죽은 이의 몸을 돌보는 염습사다. 배우가 왜 이 직업을 택했는지 묻자 임승현은 사별한 남편이 하던 일을 이어받았다고 설명했다. 영화에 그 과거를 보여주는 회상 장면은 없다. 김자영은 관객에게 설명되지 않는 사정까지 생각하며 연기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 준비는 예분을 한 가지 감정으로 정리하기 어렵게 한다. 일을 하며 죽음을 거듭 접하는 사람이 손녀의 실종 앞에서는 매일 강가로 간다. 다른 이의 죽음을 대하는 직업적 경험과 자신의 상실을 받아들이는 능력 사이에 간격이 있다. 직업을 알면 인물이 설명될 듯하다가도, 그 사람이 자기 삶에서는 다르게 움직인다는 점이 보인다.
예분이 강에서 쓰는 물안경과 헤드셋, 금속 탐지기는 그 간격을 눈앞의 행동으로 만든다. 임승현과 공동각본가 김승현은 첫 장면의 차림이 낯설고 조금 우스워 보일 수도 있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무엇을 찾는지 알기 전에는 기이한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손녀를 찾는 사정을 알게 되면 같은 도구가 집요함과 절박함을 함께 품는다. 감독은 시작부터 애도의 표정을 요구하는 대신, 이 사람이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보게 한다.
홍예서 역시 지윤의 수영에 이유를 붙였다. 죽은 친구가 이루려던 일을 자신이 해내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고 해석했고 감독도 동의했다. 이는 영화 속에서 인물이 직접 설명한 정답과는 구별된다. 배우와 감독이 연습하고 경쟁하는 행동에 어떤 마음을 담을지 공유한 것이다. 관객은 그 행동을 보며, 물이 한 사람을 빼앗은 장소이면서 다른 사람이 계속 몸을 움직여야 하는 곳이라는 불편한 겹침을 경험한다.
임승현은 자신과 김승현의 영화 취향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한국 상업영화에 더 끌리는 감독과 외국 예술영화를 즐겨 보는 공동작가가 함께 이야기를 썼다. 감독은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김승현은 각본을 쓰는 데서 그치지 않고 배우 오디션과 마지막 리딩에도 참여했다.
두 사람이 함께 만든 예분의 첫인상에는 이런 대화의 자리가 남아 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을 다룬다고 해서 첫 모습부터 관객이 슬퍼해야 하는 인물로 내놓지는 않는다. 강물 속에서 장비를 다루는 모습은 의아하고, 그 행동이 날마다 반복된다는 사실은 고통스럽다. 한 장면에 대한 반응이 인물의 사정을 알아가며 달라질 여지가 생긴다.
임승현의 관심은 낯선 행동 뒤에 남아 있는 사람을 따라가는 데 있다. 서울독립영화제에 밝힌 연출 의도도 죄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유대와 결합이었다. 예분과 지윤을 한자리에 놓는다고 곧바로 가족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수정의 부재가 둘을 잇는 동시에 서로를 불편하게 한다. 함께 지낼 사람이 생기는 일과 그 사람을 받아들이는 일 사이에 영화가 머문다.
두 사람이 각자 물과 관계를 맺는 모습도 나란히 볼 만하다. 예분은 강에서 흔적을 찾고 지윤은 수영을 한다. 어느 쪽도 물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지 않다. 감독은 슬픔을 설명하는 말 외에 몸이 반복해서 향하는 장소를 두었다. 같은 상실을 겪었어도 그 몸이 하는 일은 다르다.
앞선 장편 〈홈리스〉에서도 임승현은 배우에게 각본을 그대로 재현하는 일만 맡기지 않았다. 반드시 필요한 대사 외에는 달라져도 된다고 말했고, 현장에서 리허설을 거치며 세부를 바꾸거나 보탰다. 인물이 처한 상황은 정해두되 그 안에서 움직일 여유를 주려는 작업이었다.
반면 공간의 소리에는 뚜렷한 주문이 있었다. 어린아이와 함께 떠돌던 부부가 들어간 할머니의 집을 주변 소음에서 벗어난 곳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전까지 소리에 둘러싸여 살았으니 침묵을 갈망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임승현은 사운드 디자인에서도 이 집의 고요함에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편히 쉴 수 있는 조용한 집이 생기면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홈리스〉의 부부에게는 그곳에 머무는 방식 때문에 불안과 죄책감이 따라붙는다. 바깥 소리가 줄어든다고 마음까지 고요해지는 것은 아니다. 감독이 만든 소리의 조건이 인물의 처지와 어긋나면서 집을 편안하게만 보기 어려워진다.
이 영화에서 임승현은 김치의 맛도 인물의 상태를 드러내는 데 썼다. 처음에는 맛있게 먹던 음식을 뒤에서는 시어서 버리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식사는 계속한다. 감독이 주목한 것은 바로 그 계속 먹는 행동이었다. 죄책감을 외면하며 생활을 이어가는 모습이 식탁 위에 남는다. 강가의 탐지기와 조용한 집의 밥상은 전혀 다른 물건들이지만, 임승현은 두 경우 모두 마음을 몸이 하는 일로 옮겨놓는다.
◆ 탐지기를 든 첫 모습 — 예분의 차림을 처음 보았을 때와 찾는 대상을 알게 된 뒤의 느낌을 비교해보자. 기이하게 보이던 장비와 반복 행동이 어떻게 절박함으로 다가오는지 볼 수 있다.
◆ 죽음을 다루는 일과 손녀를 찾는 일 — 염습사로 일하는 예분과 강가로 향하는 예분을 함께 보자. 남의 죽음 앞에서 해내는 일과 자기 상실 앞에서 멈추지 못하는 일 사이에 차이가 있다. 직업이 인물을 다 설명하지 못하는 지점이다.
◆ 서로 다른 물속의 두 사람 — 예분의 수색과 지윤의 수영에서 각각 무엇을 계속하려 하는지 살펴보자. 한 사람은 흔적을 찾고 한 사람은 몸을 훈련한다. 물에서 되풀이하는 다른 행동들이 같은 죽음에 묶여 있다.
◆ 조용한 집에서 이어지는 식사 — 〈홈리스〉에서는 집 안의 정적과 부부가 식사를 계속하는 모습을 함께 보자. 잠시 쉬어갈 곳의 고요함이 안도만 주는지, 인물의 사정을 알수록 어색한 침묵으로 들리는지 비교할 만하다.
◆ 〈물비늘〉 (2023, 임승현) — 사라진 한 사람을 사이에 둔 예분과 지윤의 관계를 살필 수 있다. 인물을 알아가는 데 필요한 정보와 배우의 행동으로 느끼게 되는 감정이 어떻게 다른 속도로 주어지는지 주목할 만하다.
◆ 〈홈리스〉 (2022, 임승현) — 주거 불안 속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부를 다룬다. 집과 강가라는 다른 공간에서 인물의 불안이 소리와 반복 행동으로 드러나는 방식을 비교하면 감독의 선택이 구체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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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