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나(고아성)가 모은 돈에는 이미 다른 용도가 기다리고 있다. 가족이 더 넓은 집으로 가는 데 보태는 돈. 하지만 계나는 그 돈으로 한국을 떠나고 싶다. 〈한국이 싫어서〉에서 이…
계나(고아성)가 모은 돈에는 이미 다른 용도가 기다리고 있다. 가족이 더 넓은 집으로 가는 데 보태는 돈. 하지만 계나는 그 돈으로 한국을 떠나고 싶다. 〈한국이 싫어서〉에서 이민은 여권과 비행기표만 준비하면 되는 일이 아니다. 내가 번 돈을 내가 살고 싶은 곳에 쓰겠다는 말부터 가족에게 설명해야 한다.
계나에게는 직장이 있고 오래 사귄 남자친구도 있다. 겉으로 보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날 만큼 망가진 생활은 아니다. 그런데 바로 그 점 때문에 자신의 답답함을 말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남들이 보기엔 견딜 만한 하루를, 본인은 매일 버텨야 한다. 계나는 그 간격을 정리해서 모두에게 납득시킨 다음 떠나려 하지 않는다. 아직 더 나은 곳이 확실하지 않아도 여기서는 다른 삶을 시작하기 어렵다고 느낀다.
계나의 아버지(장유)는 더 넓은 집을 원한다. 계나는 지금보다 작은 평수에 살 수는 없겠느냐고 묻는다. 숫자만 보면 집 크기를 조정하는 말인데, 그 안에는 가족의 기대에서 조금 벗어나 자기 삶을 선택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있다. 부모가 바라는 생활과 딸이 바라는 생활이 같은 저축을 두고 갈린다.
이 장면을 계나가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그의 처지가 너무 단순해진다. 아버지와 함께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도 집을 위해 자기 계획을 접고 싶지는 않을 수 있다. 가족에게 다정한 딸과 자기 돈을 지키려는 사람이 꼭 서로 다른 얼굴은 아니다. 영화는 둘 중 하나만 골라야 계나를 이해할 수 있는 상황으로 몰아가지 않는다.
고아성은 아버지에게 작은 평수의 집을 제안하는 대사를 출연하고 싶었던 중요한 이유로 꼽았다. 자기 살 길을 찾아가겠다는 계나의 뜻이 드러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배우가 잡은 중심도 마냥 착하거나 일방적으로 억울한 여자는 아니었다. 필요한 것을 알고, 자기 판단에 따라 움직이려는 사람이다.
그렇게 보면 계나의 출발은 가족에게서 모든 감정을 거둬들이는 일이 아니다. 어디까지 함께 책임지고 어디서부터 자기 삶을 시작할지 다시 정하는 일에 가깝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가까이 산다는 이유로, 그들이 원하는 미래에 계속 돈과 시간을 보태야 하는 걸까. 이 영화의 이민 이야기는 비행기를 타기도 전에 이미 많은 사람에게 익숙한 문제를 건드린다.
남자친구 지명(김우겸)은 계나가 떠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는 한국에서 자리를 잡는 삶을 생각한다. 두 사람은 서로를 모르는 사이가 아니다. 오랫동안 만나왔기에 함께할 미래도 상상할 수 있다. 그런데 오래 사귄 만큼 같은 곳에서 살고 싶어질 거라는 기대가 어긋난다.
계나에게는 지명과 함께 버티는 것이 지금의 생활을 더 이어가는 일로 보일 수 있다. 지명에게는 둘이 함께 만들어갈 가능성을 계나가 너무 빨리 접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한쪽이 더 사랑하느냐만 물어서는 잘 풀리지 않는 갈등이다. 좋아하는 사람과 살고 싶은 곳이 서로 다른 방향에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지명을 틀린 답으로 세워 계나를 쉽게 응원하게 하지 않는다. 고아성 역시 떠나려는 계나와 말리는 지명의 입장이 모두 이해됐다고 말했다. 감독은 그 팽팽함이 관객에게도 남기를 바랐다. 누구나 떠나야 한다고 결론 내리면 지명 같은 사람의 바람은 남에게 뒤처진 선택이 된다. 모두 남아야 한다고 하면 계나가 버텨온 시간이 다시 사소한 불평으로 밀린다.
덕분에 연애 이야기는 계나의 여행을 방해하는 곁가지가 아니다. 내가 원하는 삶을 고르는 일이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계나의 선택이 이해되더라도, 그 선택으로 아쉬워질 것들까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떠남에 힘을 주면서 그 대가도 지워버리지 않는 점이 이 영화에 마음을 머물게 한다.
한국의 계나는 추위를 싫어한다. 집에서도 쉽게 따뜻해지지 않고, 긴 출퇴근은 하루의 많은 부분을 가져간다. 따뜻한 뉴질랜드로 옮겨가자 햇빛과 옷차림부터 달라진다. 장건재 감독은 두 나라의 반대되는 계절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계나가 자기 몸에 맞는 곳을 찾으려 한다는 감각을 먼저 전해준다.
풍경이 바뀐 뒤에도 삶은 해야 할 일들로 이어진다. 언어를 익히고 일하며 새로운 사람들과 지내야 한다. 이민 가방을 들고 주저앉아 우는 계나의 모습도 있다. 떠났으니 행복해야 한다는 기대만 가지고 보면 이 울음은 곧바로 실패의 증거가 된다. 하지만 한국에 남은 사람은 힘든 날이 있어도 삶을 통째로 잘못 골랐다고 판정받지는 않는다. 떠난 계나에게만 매 순간 선택의 성과를 증명하라고 할 수 있을까.
새로운 친구 재인(주종혁)과의 만남은 그 생활 안에 놓여 있다.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계나가 한국에서 맡아온 역할만으로 그를 알지 않는다. 누군가의 딸이나 오래된 연인이라는 관계를 벗어나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이 생긴다. 장소가 바뀌어서 얻는 자유는 문제를 하나도 겪지 않는 상태보다, 익숙한 기대에서 잠시 떨어져 자기를 시험해보는 데 가까워 보인다.
감독도 뉴질랜드를 모든 문제의 해결책으로 보이게 하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디서 살아도 고생은 같다는 결론을 준비한 것도 아니다. 어떤 어려움은 남고, 어떤 불편함은 줄고, 미처 몰랐던 즐거움도 생길 수 있다. 계나의 삶을 두 나라의 장단점 표로 환산하기 힘든 이유다. 바뀌는 것은 주소 하나가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하루를 보내는 방식이다.
계나는 낯선 나라에 도착하자마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지 않는다. 영화는 한국과 뉴질랜드의 시간을 오가고, 고아성은 그 사이에서 조금씩 달라지는 상태를 연기한다. 뉴질랜드에 막 온 때와 여러 해를 보낸 뒤가 같은 얼굴로 남아서는 안 됐다. 배우는 머문 시간을 피부에도 드러내려 태닝을 했다.
그 변화가 흥미로운 것은 밝고 어두운 피부를 행복과 불행의 신호로 쓰기 때문이 아니다. 햇빛 아래에 오래 머문 시간이 몸에 흔적으로 남는다는 점이다. 나아졌다고 말로 선언하지 않아도, 전과 다른 하루를 보내왔다는 사실은 볼 수 있다. 한눈에 성공한 이민자의 모습으로 바꾸는 대신 생활이 조금씩 인물에게 배게 한다.
영화의 원작은 장강명의 동명 소설이다. 소설 속 계나보다 영화의 계나는 목적지를 덜 단단히 정해둔 인물이라고 감독은 설명했다. 그래서 이야기를 따라가며 얻게 되는 것은 이민의 정답보다 지금의 생활을 바꿔볼 수 있다는 감각이다. 더 좋은 직장, 더 넓은 집처럼 남에게 설명하기 쉬운 결과가 없어도 자기 몸과 마음에 맞는 하루를 찾아볼 수 있다.
계나가 행복해졌는지를 묻고 싶어진다면, 그가 앞으로 평생 행복할지까지 보증받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긴 출퇴근과 추위를 계속 견디는 대신 다른 하루를 살아보기로 한 사람이 있다. 잘못 고른 날에는 다시 생각할 수도 있다. 계나의 출발에서 반가운 것은 마침내 자기 삶의 선택에 자기 의견을 넣었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날까지 기다리지 않고.
◆ 집 크기를 두고 나누는 대화 — 가족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과 자기 계획을 지키려는 마음이 어떻게 부딪히는지 들어보자. 계나가 냉정한 딸인지 판정하기보다, 딸의 저축을 가족의 미래와 자연스럽게 묶어 생각하는 기대를 살펴볼 수 있다.
◆ 지명도 이해되는 순간 — 계나를 응원하면서도 지명의 말에 마음이 갈 수 있다. 어느 쪽이 더 성숙한 선택을 하는지 서둘러 가르지 말자. 함께 있고 싶은 마음과 어디에서 살고 싶은지가 같지 않을 때 두 사람의 대화가 왜 어려워지는지 드러난다.
◆ 날씨가 바꾸는 생활 — 한국의 겨울과 뉴질랜드의 여름을 예쁜 풍경의 차이로만 보지 말자. 옷을 입고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식부터 달라진다. 계나가 말하는 행복을 추상적인 성공보다 자기 몸이 편안한 하루에 가까이 놓아볼 수 있다.
◆ 한 얼굴에 쌓이는 시간 — 계나의 피부와 태도가 조금씩 달라지는 과정을 따라가보자. 변화는 출국과 입국 사이에서 단번에 끝나지 않는다. 영화가 여러 시기의 계나를 교차해 보여줄 때, 떠날 당시 예상한 삶과 실제 살아낸 삶의 차이도 느껴볼 만하다.
◆ 〈믿을 수 있는 사람〉 (2023, 곽은미) — 한국에 정착한 탈북 여성 한영이 일을 잃고 다음 거처를 고민한다. 계나와 같은 이유로 떠난 인물은 아니지만, 어느 곳에 살 수 있는지와 어느 곳에서 살고 싶은지가 어긋나는 문제를 함께 생각해볼 수 있다.
◆ 〈싱 스트리트〉 (2016, 존 카니) — 더블린의 소년이 밴드를 만들며 자신이 살아온 곳 바깥을 꿈꾼다. 생활의 답답함을 견디던 사람이 친구들과 무언가를 시작할 때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떠남을 완성된 계획보다 아직 만들어가는 가능성으로 바라보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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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