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잘못을 알게 된 아버지가 자수를 시킨다. 청렴한 정치인으로 이름을 얻은 구명회(한석규)의 선택만 떼어놓으면, 가족에게도 원칙을 지키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상〉에서…
아들의 잘못을 알게 된 아버지가 자수를 시킨다. 청렴한 정치인으로 이름을 얻은 구명회(한석규)의 선택만 떼어놓으면, 가족에게도 원칙을 지키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상〉에서 그가 먼저 걱정하는 것은 자신의 정치 인생이다. 아들이 낸 교통사고와 은폐 시도가 앞으로의 출세를 무너뜨릴 수 있다. 자수는 그 위험을 줄이는 방법이다. 법 앞에 아들을 데려다 놓고도 명회가 안심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찰에게 넘긴 사건과 자신이 감춰야 할 사건은 아직 같지 않다.
그 사고로 아들을 잃은 유중식(설경구)은 사라진 며느리 최련화(천우희)를 찾는다. 사고 당시 아들과 함께 있었던 사람이다. 명회도 련화의 행방을 알아야 한다. 한쪽에게는 아들의 마지막을 설명해줄 사람이고, 다른 쪽에게는 이미 정리했다고 여긴 일을 뒤집을 수 있는 사람이다. 같은 여성을 찾는다는 사실만으로 이 두 아버지는 동료가 될 수 없다. 련화에게는 두 사람이 자신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위협일 수 있다.
명회는 아들의 일을 직접 수습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에게는 사회적 신망도, 돈도, 사람을 동원할 방법도 있다. 그런데 수습에 나설수록 자신이 관여해야 하는 일은 늘어난다. 남에게 시켜서 끝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무너지고, 자신의 손으로 감당해야 할 위험이 생긴다. 지위를 보전하려던 사람이 그 지위를 걸고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
이수진 감독은 명회를 구상할 때 정치인이라는 직업보다 선택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먼저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 말을 따라가면 명회를 보는 초점도 달라진다. 그가 얼마나 힘 있는 사람인지뿐 아니라, 힘을 쓸 수 있을 때 무엇부터 지키려 하는지를 보게 된다. 아들을 자수시키는 일에도 분명한 우선순위가 있다. 피해자의 죽음을 밝히는 것과 자신의 평판을 지키는 것이 충돌할 때, 그가 어느 쪽의 손실을 더 크게 여기는지가 이후 행동을 결정한다.
이 때문에 명회의 판단이 능숙할수록 불안해진다. 위기를 빠르게 파악하고 대책을 세우는 능력이 진실을 밝히는 데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수습에 직접 관여하면서 그가 숨겨야 할 일도 늘어난다. 이후의 판단에는 앞으로 얻을 것뿐 아니라 이미 벌인 일을 들키지 않을 방법까지 끼어든다. 자수로 사건을 정리하려던 도입은 이후의 행동을 볼 때마다 다시 떠오르는 출발점이다.
중식의 노란 머리에는 아들이 있다. 설경구의 설명에 따르면, 아들과 같은 색으로 염색한 것은 아이를 잃어버렸을 때 아버지를 알아볼 수 있게 하려는 설정이었다. 떨어져도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자기 몸에 표시를 해놓은 셈이다. 머리 색깔 하나에도 아들을 돌보며 살아온 시간이 들어 있다. 중식에게 사고는 가족 한 사람을 잃는 일인 동시에, 아들을 중심으로 짜온 하루가 통째로 멈추는 일이다.
그런데 그렇게 가까웠던 아들의 마지막 행적을 아버지는 설명할 수 없다. 며느리를 찾아야 하지만 경찰은 그의 요청에 제대로 응하지 않는다. 명회가 어떤 정보를 드러내고 감출지 판단하는 동안, 중식은 자신에게 돌아오는 정보를 기다리고 그것에 매달려야 한다. 둘 다 아버지라는 공통점보다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의 차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설경구는 명회와 련화가 상황을 돌파하는 인물인 데 비해 중식은 다른 사람의 행동에 반응하는 인물이라고 이해했다. 이는 중식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가 절박하게 움직여도 다음 방향을 정하는 단서는 다른 사람에게서 온다. 무엇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사람은 남의 말에 기대야 하고, 그 말이 자신이 원하는 답인지도 따져야 한다. 중식의 다급함을 볼 때는 감정의 크기뿐 아니라 누가 그에게 정보를 주는지도 함께 보게 된다.
같은 색으로 염색할 만큼 깊은 사랑은 중식을 이해하는 구체적인 단서다. 하지만 아들을 사랑한다는 사실만으로 아버지가 아들의 모든 일을 알 수는 없다. 영화는 그 간격을 남긴 채 중식에게 다음 결정을 요구한다. 아들에 관해 새롭게 듣는 말은 그를 위로하기도 전에, 자신이 알고 있던 가족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련화에 대해서는 본인의 말보다 다른 사람의 말이 먼저 쌓인다. 누구의 아내인지, 누구의 며느리인지, 그날 무엇을 봤을지가 그를 소개하는 정보가 된다. 두 남자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무엇을 알고 있는가다. 하지만 그 질문은 련화가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며 살아남으려 하는지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사건을 풀 단서를 기다리던 관객도 그를 증언의 내용만으로 판단하기 쉽다.
천우희는 련화를 연기하면서 모든 상황에 대한 확정된 답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인물이 지닌 모호함 속에서 분노와 자격지심을 상상했고, 생존을 위해 위태로운 상황을 통과하는 사람으로 접근했다. 배우의 설명은 련화의 숨겨진 과거를 대신 밝혀주는 해설은 아니다. 오히려 인물의 이력이 전부 밝혀져야만 눈앞의 행동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짚게 한다. 누군가를 피하고 자기 뜻대로 움직이려는 행동에는 지금 당장의 사정이 있다.
말투도 그런 사정을 만드는 재료였다. 천우희는 코치와 함께 말과 행동을 익히면서 왜 그렇게 하는지 이유를 물었다고 설명했다. 익숙하지 않은 억양을 흉내 내는 데서 끝내지 않고, 말하는 사람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려 한 것이다. 련화의 억양뿐 아니라 그가 말을 건네는 상대와 그때의 상황을 함께 살피게 하는 설명이다. 두 남자가 알고 싶어 하는 것을 묻는 자리에서, 그가 실제로 답하는 내용에 귀를 기울여볼 만하다.
명회와 중식이 찾는 련화와 련화 자신이 원하는 삶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그가 두 아버지 중 누구의 편인지를 묻는 것만으로는 행동을 설명하기 어렵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가까이 있는 사람도 그의 바람을 대신 말할 수는 없다. 련화가 움직일수록 두 남자가 세워둔 계산이 흔들리는 까닭은, 사건 속에서 그에게 맡겨둔 역할을 그가 그대로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련화의 행방을 알아내면 무엇이 달라질까. 사건을 풀 단서를 찾던 기대가, 그를 찾은 사람이 할 일에 대한 불안으로 바뀐다. 명회의 지위와 중식의 상실, 련화의 생존이 부딪치는 곳에서는 같은 소식이 누구에게나 반가울 수 없다. 그들이 정보를 얻는 순간만큼 그것을 손에 쥔 뒤의 행동을 지켜보게 하는 영화다.
◆ 자수를 시키는 이유. 명회가 아들을 경찰에 보내는 행동과 그가 보전하려는 정치적 미래를 함께 보자. 이후 선택이 처음의 수습을 바로잡는지, 그 수습을 지키기 위해 더 많은 일을 숨기는지 따라갈 수 있다.
◆ 중식에게 들어오는 정보. 아들과 머리 색깔을 맞출 만큼 가까웠던 아버지가 정작 사고에 대해서는 남의 설명에 기대야 한다. 그가 누구의 말에 반응하고 무엇을 확인하려 하는지 보면 절박함의 방향이 구체적으로 보인다.
◆ 련화를 설명하는 사람들. 남들이 말하는 련화와 실제로 행동하는 련화를 구별해보자. 가족 관계나 목격자라는 지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선택이 언제 나타나는지가 중요하다.
◆ 같은 소식의 다른 무게. 한 사람에게 필요한 정보가 다른 사람에게는 위협이 된다. 새로운 단서가 나왔을 때 사건의 정답만 찾기보다, 세 사람 중 누가 유리해지고 누가 움직여야 하는지 살펴보자.
◆ 〈무뢰한〉(2015, 오승욱) — 형사는 용의자를 찾기 위해 그의 연인에게 접근한다. 수사에 필요한 정보와 함께 지내며 생긴 감정이 충돌한다는 점에서, 타인을 자기 목적에 맞춰 대하는 관계를 더 살펴볼 수 있다.
◆ 〈그때 그사람들〉(2005, 임상수) — 대통령 암살이 벌어지는 하루 동안 권력 주변 사람들의 판단과 행동을 따라간다. 큰 결정을 내리는 사람과 그 결정 뒤의 일을 처리해야 하는 사람 사이의 차이에 주목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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