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를 주인공 자리에서 내려놓은 감독 | MovieLAB LAB

에밀리 블리치펠트는 신데렐라의 의붓자매에게서 자신을 보았다. 왕자의 눈에 들고 싶지만 아름다운 의붓자매 앞에서는 기회조차 얻기 어려운 여자. 남의 행복을 방해하는 심술궂은 인물로…

신데렐라를 주인공 자리에서 내려놓은 감독 | MovieLAB LAB

에밀리 블리치펠트는 신데렐라의 의붓자매에게서 자신을 보았다. 왕자의 눈에 들고 싶지만 아름다운 의붓자매 앞에서는 기회조차 얻기 어려운 여자. 남의 행복을 방해하는 심술궂은 인물로 기억하던 그 여자를, 감독은 사랑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자기 몸을 미워하는 주인공으로 바꾸었다. 첫 장편 〈어글리 시스터〉의 엘비라(레아 미렌)는 그렇게 태어났다.

엘비라는 왕자를 만나기 위해 외모를 바꾸려 한다. 예뻐지면 다른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 소녀에게, 몸을 고치는 일은 곧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겪는 통증까지 성공을 위해 참아야 할 것으로 여긴다. 블리치펠트가 붙잡은 것은 바로 이 믿음이다. 엘비라를 보고 어리석다고 말하기 전에, 왜 그토록 절박하게 변하고 싶어 하는지 알아야 한다.

공포영화에서 덜 외로웠던 사람

블리치펠트는 자기 몸을 가혹하게 대하며 외로움을 느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런 그에게 몸이 망가지고 변형되는 공포영화는 뜻밖의 위로였다. 화면 속 몸이 완벽하지 않고 상처받기 쉽다는 사실이, 자신도 몸을 조금 더 아껴야겠다고 느끼게 했다. 불쾌하고 무서운 장면을 통해 오히려 인물과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공포영화만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십 대 시절에는 〈아멜리에〉가 특별했다. 그는 외로웠던 자신에게 그 영화가 친구처럼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이후 영화학교에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영화를 만나 몸의 취약함과 유머에 끌렸다. 겉보기에는 멀리 떨어진 영화들이지만, 블리치펠트의 설명에서는 같은 관심으로 이어진다. 이상하고 외로운 사람을 화면 한가운데 놓고 오래 바라보는 일이다.

〈어글리 시스터〉의 거친 장면들도 이 관심에서 출발한다. 엘비라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관객은 눈을 돌리고 싶어진다. 동시에 그가 왜 멈추지 못하는지 궁금해진다. 감독은 놀라게 한 다음 바로 다른 장면으로 넘어가기보다, 그 몸에 벌어지는 일을 조금 더 지켜보게 한다. 몸을 바꿨다는 결과만 보아서는 지워질 고통이 화면에 남는다.

〈어글리 시스터〉 — 함께 춤을 연습하는 여성들

배우에게는 못생긴 사람이 아니었다

엘비라를 연기한 레아 미렌은 그를 못생긴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접근하지 않았다. 먼저 인물을 사랑하려 했고, 아직 어린 마음이 걸음과 행동에 드러나도록 했다. 왕자를 꿈꾸는 소녀의 책 읽는 모습과 몸짓에는 기대가 있다. 남이 보기에는 터무니없는 꿈이어도 엘비라 자신에게는 중요한 미래다.

블리치펠트는 촬영 중 배우에게 턱을 만져보는 식의 구체적인 동작을 제안하기도 했다. 자기 외모를 불편하게 의식하는 마음을 표정 하나로 설명하게 하기보다, 손이 몸의 어느 부분으로 가는지부터 찾은 것이다. 이런 작은 행동이 쌓이면 외모를 고치려는 욕망도 갑자기 생긴 사건처럼 보이지 않는다. 엘비라는 이미 자기 몸을 수시로 확인하고 있었다.

특수분장과 의상도 그 연기를 도왔다. 배우의 외모가 바뀌는 동안 관객이 봐야 할 것은 변신의 성과만이 아니다. 달라진 얼굴과 몸으로 엘비라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남의 반응을 얼마나 살피는지가 중요하다. 예뻐지기 위해 들인 노력이 자신감을 줄 수도 있지만, 이제는 그 결과까지 평가받아야 한다는 부담이 따라온다.

미렌의 접근은 영화 제목을 그대로 인물의 평가로 받아들이지 않게 한다. 누군가를 못생겼다고 정해놓은 뒤 그가 예뻐지는 이야기를 기다리면, 관객 역시 엘비라를 괴롭히는 기준에 쉽게 동의하게 된다. 배우가 먼저 발견한 것은 고쳐야 할 외모가 아니라, 인정받고 싶어 하는 어린 사람이었다.

〈어글리 시스터〉 — 창가에 선 엘비라

동화를 점잖게 고칠 생각은 없었다

블리치펠트는 이 작품을 섬세한 심리극으로만 만들 생각이 없었다고 말했다. 누구나 줄거리를 아는 동화이기에 오히려 과장하고 뒤집을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무도회와 왕자라는 익숙한 약속이 있으니, 엘비라가 거기까지 가기 위해 치르는 일들이 더 불편하게 다가온다. 관객은 아름다운 결말을 예상하는 동시에 그 결말의 입장 조건을 보게 된다.

이 세계의 분위기를 만들 때 블리치펠트는 1970년대 동유럽의 동화영화들을 떠올렸다. 실제 장소와 배우의 몸이 분명히 느껴지는데도 마법 같은 기운이 사라지지 않는 영화들이었다. 그가 원한 동화에도 만질 수 있을 듯한 재료와 몸의 무게가 필요했다. 아름다운 옷을 입었다고 몸이 겪는 불편함까지 없어져서는 안 된다.

그런 선택은 엘비라의 꿈과 현실을 한 화면에 놓게 한다. 왕자의 눈에 들고 싶은 상상은 달콤하지만, 그 일을 준비하는 몸은 아프다. 꿈이 황홀할수록 그 아래의 고통을 더 또렷하게 보여주는 것이 이 감독의 동화를 낯설게 만든다. 무도회에 가기 위해 예쁜 옷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이야기가, 엘비라의 입장에서는 전혀 간단하지 않다.

감상 포인트

◆ 외모를 확인하는 손 — 엘비라가 자기 몸을 만지고 살피는 동작에 주목해보자. 외모를 의식하는 습관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감독이 배우에게 제안한 작은 동작들이 인물의 불안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만드는지 볼 수 있다.

◆ 통증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시간 — 불편한 장면이 얼마나 오래 이어지는지 느껴보자. 놀라는 순간과 그 뒤에도 계속 인물을 바라보는 시간은 다르다. 외모가 바뀌었다는 결과만으로는 전해지지 않을 대가가 그 길이 안에 있다.

◆ 소녀가 품은 기대 — 왕자를 향한 엘비라의 꿈을 처음부터 비웃으며 보지 말자. 배우가 남겨둔 어린 몸짓을 따라가면 그 꿈이 소녀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바람을 이해하는 것과 이후의 선택에 동의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 이미 알고 있는 동화 — 익숙한 인물이 등장할 때 자신이 어떤 역할을 기대하는지 돌아보자. 주인공 자리가 바뀌면 같은 인물도 다르게 보인다. 블리치펠트가 동화를 뒤집는 재미는 새로운 사건뿐 아니라 관객의 오래된 편들기를 흔드는 데 있다.

관련 작품

◆ 〈어글리 시스터〉 (2025, 에밀리 블리치펠트) — 신데렐라 이야기의 의붓자매를 중심에 둔 첫 장편이다. 엘비라의 욕망을 따라가면서도 몸이 겪는 고통을 놓치지 않으면, 감독이 공포영화를 통해 인물과 가까워지는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

◆ 〈아멜리에〉 (2001, 장피에르 주네) — 블리치펠트가 십 대 시절 특별하게 받아들였던 영화다. 두 작품의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만, 주변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 주인공이 된다는 점에서 함께 볼 만하다. 감독이 말한 영화 속 친구라는 경험을 생각하며 이어보자.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