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은 떠났는데 두 남자는 아직 싸운다 | MovieLAB LAB

한 여자를 좋아하다 절교한 남자 둘이 28년 만에 만난다. 그쯤 지났으면 웃고 넘길 법한데, 아직 할 말이 남았다. 〈후쿠오카〉의 제문(윤제문)과 해효(권해효) 이야기다. 제문은…

첫사랑은 떠났는데 두 남자는 아직 싸운다 | MovieLAB LAB

한 여자를 좋아하다 절교한 남자 둘이 28년 만에 만난다. 그쯤 지났으면 웃고 넘길 법한데, 아직 할 말이 남았다. 〈후쿠오카〉의 제문(윤제문)과 해효(권해효) 이야기다. 제문은 서울에서 헌책방을 하고, 해효는 후쿠오카에서 작은 술집을 운영한다. 둘이 멀리 떨어져 다른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곳을 택한 이유에는 같은 여자가 있다. 순이가 좋아하던 책방, 순이의 고향인 후쿠오카. 두 남자는 각자의 방식으로 아직 그 근처에 산다.

이 오래된 관계에 책방 단골 소담(박소담)이 끼어든다. 제문을 후쿠오카로 데려온 것도 소담이다. 스물한 살의 소담에게 두 남자가 간직한 사연은 그들만큼 대단하지 않은 듯하다. 옆에서 보면 둘이 비슷해 보이는데, 당사자들은 그 차이를 설명하느라 바쁘다. 〈후쿠오카〉는 이 셋을 함께 걷게 한다. 첫사랑의 진실보다, 이제 와서도 서로에게 할 말이 많은 두 남자의 모습이 먼저 궁금해지는 여행이다.

잊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구경꾼은 필요하다

두 남자의 다툼은 우습지만 오래 품은 마음까지 가짜는 아니다. 누군가를 잊지 못했다는 말에는 애틋함이 있다. 다만 그 세월을 자기 입으로 설명하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사랑했던 사람보다 사랑한 자신이 더 중요해지기도 한다. 제문과 해효가 옛일을 놓고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면 그 차이가 드러난다.

그들 곁에 소담이 있다는 것이 재미를 만든다. 두 사람만 만나면 끝나지 않을 이야기도 다른 세대의 사람이 듣고 있으니 모양이 달라진다. 소담은 누가 더 억울했는지 재판해주러 온 사람이 아니다. 두 남자가 아주 심각하게 여기는 일을 심각하게만 받아주지 않는다. 오래된 감정을 둘만의 방식으로 반복하던 자리에 다른 반응이 들어온다.

영화를 연출한 장률 감독은 세 사람을 새로운 삼각관계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관심은 소담을 두고 두 남자가 다시 경쟁하는 데 있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믿고 다가가는 소담 같은 사람이 두 남자 사이의 묵은 감정을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젊은 여성이 등장했으니 또 연애가 시작되리라는 예상에서 벗어나면 이 동행의 재미가 더 잘 보인다.

박소담의 소담은 두 남자의 상담자처럼 얌전히 머무르지 않는다. 불쑥 사라졌다가 돌아오고, 상대의 눈치를 보며 자기를 설명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제문과 해효가 자기 과거에 붙들려 있는 동안에도 소담의 관심은 다른 곳으로 향한다. 셋이 함께 다녀도 각자가 같은 여행을 하는 것은 아니다.

좁은 실내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두 남성

한국말로 묻고 일본어로 답하는데 대화가 된다

후쿠오카에 도착한 소담은 일본 사람에게 한국말을 한다. 상대는 알아듣고 일본어로 답하며, 일본어를 모른다는 소담도 그 말을 이해한다. 처음에는 대체 어떤 설정인지 확인하고 싶어진다. 영화는 통역이 어디에 있는지 설명하는 대신 그냥 대화를 계속한다.

이상하게도 낯선 언어로 말하는 사람들은 대화를 이어가는데, 같은 한국말을 쓰고 같은 옛일을 기억하는 두 남자는 좀처럼 뜻을 맞추지 못한다. 단어를 알아듣는 능력과 상대의 말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소담의 대화가 비현실적이라고 느낀 뒤에는, 그보다 훨씬 익숙한 두 남자의 대화가 새삼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장면에 소통의 교훈 하나만 붙이고 지나가기에는 묘한 즐거움이 있다. 말이 통하지 않아 생기는 곤란을 잠시 건너뛴 세계다. 낯선 사람과 무슨 말을 나눌지, 그 만남이 어디로 이어질지를 먼저 볼 수 있다. 영화는 여행에서 당연히 부딪힐 것으로 예상한 장벽을 치우고, 그 대신 사람들 사이에 이미 쌓여 있던 감정을 보여준다.

처음 온 책방에서 내 물건을 돌려받는다면

언어만 이상한 것은 아니다. 후쿠오카에 처음 왔다는 소담에게 현지 책방 주인은 전에 두고 가지 않았느냐며 인형을 건넨다. 누구를 착각한 것인지, 소담에게 우리가 모르는 시간이 있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제문과 해효의 옛사랑 이야기를 따라가던 영화에 다른 시간의 흔적이 끼어든다.

헌책방은 그런 일이 일어나기에 어울리는 장소다. 누군가 먼저 읽었던 책이 쌓여 있고, 지금의 손님은 그 책을 다시 만난다. 새 물건만 진열된 가게보다 이전 주인의 시간이 더 쉽게 떠오른다. 서울의 책방에서 만난 제문과 소담이 바다 건너 또 다른 책방에 들어가는 흐름에도 이 반복의 느낌이 있다. 다른 도시로 왔는데 아주 낯설지만은 않다.

장률은 자기 성장기에 책방이 다른 사람과 생각을 나누는 중요한 공간이었다고 설명했다. 그가 이 영화에서 책방을 고른 이유를 듣고 나면, 소담이 나이 많은 책방 주인과 어울리는 일이 조금 덜 의아해진다. 같은 세대라서 가까운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장소가 같아서 말이 통할 수도 있다. 책방은 추억을 보관하는 곳이면서 지금의 두 사람을 만나게 한 곳이다.

인형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다고 해서 그 만남까지 의미를 잃지는 않는다. 오히려 소담을 어떤 사람이라고 다 안다고 생각하기 어려워진다. 소담은 두 남자가 자기 마음을 정리하도록 보내진 인물로만 머물지 않는다. 그에게도 다른 사람과의 만남, 다른 이야기로 이어질 여지가 남는다.

병과 잔이 놓인 술집 안에 앉아 고개를 숙인 남성

술집에 걸린 시가 여행의 지도를 바꾼다

해효의 술집에는 윤동주의 「자화상」이 걸려 있고, 영화에서는 「사랑의 전당」도 낭독된다. 두 남자의 연애담과 책방 구경 사이에 시가 들어오면 후쿠오카가 조금 다르게 보인다. 장률에게 이 도시는 오래 오가며 사람들과 친해진 장소인 동시에, 윤동주가 형무소에서 생을 마친 곳이다.

감독은 중국에서 태어나 한국과 일본을 거쳤던 시인의 삶을 자기 성장의 기억과 가까이 느낀다고 말했다. 영화가 그 역사를 긴 설명으로 앞세우지는 않는다. 한국 사람이 일본에서 운영하는 작은 술집에 시가 걸려 있고 사람들이 그것을 읽는다. 여행자가 스쳐가는 도시 안에 누군가는 자기 말과 기억을 가져와 살고 있다는 사실이 보인다.

제문과 해효에게 후쿠오카는 순이 때문에 이어진 장소다. 장률에게는 오래된 인연과 시인의 기억이 겹친다. 같은 도시가 누구에게나 같은 뜻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여행에는 유명한 풍경보다 책방과 술집, 그 안에서 우연히 이어지는 대화가 잘 어울린다. 무엇을 보러 왔는지만큼 누구와 시간을 보냈는지가 여행을 만든다.

두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한 채 서로를 미워하며 긴 시간을 보냈다. 이제 그들이 함께 보내는 사흘에는 소담이 있다. 그가 이상한 말을 하고 제멋대로 움직이는 덕에 두 사람도 옛날 이야기만 계속할 수는 없다. 〈후쿠오카〉를 보고 나면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보다 셋이 어울려 다니는 모습이 더 오래 남을 수 있다. 오래된 마음을 풀기 위해 꼭 그 마음만 들여다봐야 하는 것은 아닐 테다. 낯선 사람과 다른 골목을 걷는 동안에도 무언가는 달라진다.

감상 포인트

◆ 제문과 해효의 닮은 고집 — 두 사람이 옛일을 설명할 때 무엇을 강조하고 상대의 어느 말에 발끈하는지 따라가보자. 순이를 사랑했다는 마음과 자기 사연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섞여 있다. 소담이 그 이야기를 듣는 태도까지 함께 보면 두 남자의 진지함이 때로는 코미디가 된다.

◆ 설명 없이 이어지는 외국어 대화 — 인물들이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데도 대화가 계속되는 순간을 지켜보자. 설정의 이유를 찾는 데서 잠시 벗어나면, 낯선 사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소담의 태도가 눈에 들어온다. 같은 언어로 다투는 두 남자와도 재미있는 차이를 만든다.

◆ 두 도시의 헌책방 — 서울과 후쿠오카의 책방에서 누가 누구를 만나고 어떤 물건이 건네지는지 살펴보자. 장소가 바뀌어도 비슷한 공간이 다시 나타나 여행이 낯설면서도 익숙하게 느껴진다. 소담에게 인형이 돌아오는 일은 이곳에 우리가 모르는 시간이 있을 가능성을 남긴다.

◆ 술집에 놓인 윤동주의 시 — 시를 해설해야만 장면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술집에서 한국말로 시를 읽는 사람들이 함께 있다는 사실부터 보자. 작은 장소 하나에 개인의 연애와 이주의 생활, 더 오래된 역사가 겹쳐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관련 작품

◆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2018, 장률) — 남녀가 군산으로 여행을 떠나 민박집에 머문다. 사람을 따라가다 장소의 기억이 눈에 들어오고, 처음 알았다고 생각한 관계가 달라 보인다. 박소담이 두 영화에서 어떤 다른 인물로 공간에 머무는지 비교해도 좋다.

◆ 〈경주〉 (2014, 장률) — 오래전 보았던 그림을 다시 찾아 나선 남자가 경주에서 새로운 만남을 겪는다. 과거의 기억 때문에 출발했지만 여행 중에는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 곁에 생긴다. 떠나온 이유와 실제로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조금씩 어긋나는 재미를 이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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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