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프 말고도 증명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 MovieLAB LAB

빙판에서는 높이 뛰고 정확하게 착지하면 될 줄 알았다. 〈아이, 토냐〉의 토냐 하딩(마고 로비)에게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옷차림과 말투, 가족의 모습까지 평가에 따라붙는다…

점프 말고도 증명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 MovieLAB LAB

빙판에서는 높이 뛰고 정확하게 착지하면 될 줄 알았다. 〈아이, 토냐〉의 토냐 하딩(마고 로비)에게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옷차림과 말투, 가족의 모습까지 평가에 따라붙는다. 누가 더 잘 타는가를 겨루러 왔는데, 누가 더 그럴듯한 피겨 선수처럼 보이는가도 증명해야 한다. 토냐가 심판에게 따지는 모습이 거칠게 느껴지다가도 그 답답함만큼은 이해하게 된다.

이 영화는 토냐를 온순한 피해자로 바꾸어놓고 사랑해달라고 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 이야기에 확신이 있고, 다른 사람은 곧바로 그 말에 반박한다. 인터뷰에 응하는 얼굴들 사이로 과거가 재현되는데, 같은 일을 겪었다는 사람들의 설명이 좀처럼 맞지 않는다. 누구 말을 믿을지 생각하며 웃고 있다가, 어느 순간 이 선수에게 스케이트가 어떤 자리였는지 더 알고 싶어진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때린다

토냐의 어머니 라보나(앨리슨 제니)는 딸의 선수 생활에 돈과 시간을 들였다. 영화 속 그는 그것을 자기가 얼마나 헌신했는지 보여주는 근거로 내세운다. 하지만 딸을 대하는 말과 행동에는 모욕과 폭력이 있다. 지원했다는 사실이 그 폭력을 지워주지는 않는다. 토냐는 자신을 가장 오래 지켜본 사람에게서 가장 잔인한 말을 듣는다.

제니의 무뚝뚝한 표정과 거침없는 말투는 웃음을 끌어내기도 한다. 그런데 그 말을 받아야 하는 딸을 생각하면 곧 웃기가 불편해진다. 라보나는 자기 방식으로 딸을 강하게 만들었다고 여긴다. 관객에게는 그 확신 자체가 두렵다. 토냐의 성공이 어머니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증거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남편 제프 길룰리(세바스찬 스탠)와의 관계에서도 폭력이 반복된다. 영화는 그 상황을 단순히 결혼을 잘못한 한 번의 선택으로 정리하지 않는다. 토냐가 자라온 집과 새로 맺은 관계 사이에서 익숙한 일이 계속된다. 집을 떠난다고 곧바로 안전한 생활이 시작되지는 않는다. 빙판 위에서는 자기 몸을 정확히 움직이는 사람이, 일상에서는 그 몸을 지키기 어렵다.

분장대 거울을 바라보는 경기복 차림 여성의 모습

빙판에서만큼은 해낸 것을 볼 수 있다

스케이트 장면에 들어서면 영화의 감각이 달라진다. 토냐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대신 몸이 하는 일을 보게 된다. 속도를 내고, 뛰어오르고, 착지한다. 그가 고집스럽게 스케이트에 매달리는 이유를 설명으로만 듣지 않아도 된다. 몸에 쌓인 시간이 짧은 동작 안에서 드러난다.

토냐는 1991년 대회에서 미국 여성 선수 최초로 트리플 악셀을 성공했다. 영화에서도 그 기술은 사건 뒤에 가려진 선수의 능력을 보여준다. 이름을 들으면 먼저 떠오르던 스캔들 말고, 그가 실제로 해낸 것이 있다. 뛰어오르는 순간을 보고 있으면 이번에는 주변의 말이 아닌 자기 실력으로 평가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하지만 경기장 밖의 생활을 잠시 잊었다고 사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선수에게 필요한 돈, 의상, 연습 환경이 따라온다. 토냐가 바라는 공정함은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다. 자기가 빙판에서 한 일을 봐달라는 요구에 가깝다. 그 요구가 거친 항의로 나올 때도, 영화는 말투만 듣고 이 사람을 지나치지 못하게 한다.

한 여성 주위로 취재진과 마이크가 빽빽하게 몰려 있다

모두 자기 이야기를 잘한다

인터뷰 장면에서 사람들은 지나간 일을 정리해 들려준다. 말하는 동안에는 누구나 꽤 확실해 보인다. 그런데 다음 사람의 설명을 들으면 방금 그 확신이 흔들린다. 영화가 재현한 장면 역시 누군가의 기억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게 된다. 눈으로 보았다고 객관적인 기록을 본 것은 아니다.

이 방식은 토냐의 말이 전부 옳다는 판결과도 거리가 있다. 그가 겪은 폭력을 이해하는 것과 사건의 책임을 판단하는 것은 각각 살펴야 할 일이다. 크레이그 길레스피는 토냐를 이해하고 싶었지만 학대가 다른 일의 면죄부라는 뜻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영화는 한 사람에게 마음을 쓰는 동안에도 그의 말을 그대로 믿을지 망설이게 한다.

1994년 낸시 케리건 피습 사건을 둘러싼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면 말과 행동의 우스꽝스러움은 더 커진다. 하지만 영화 속 인물들이 어설프다고 사건의 피해까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엉터리 계획과 허세를 보며 웃던 관객에게 그 일이 누군가의 몸과 선수 생활에 실제로 닿았다는 사실이 남는다. 웃기는 사람들이 벌인 일도 끔찍할 수 있다.

이름 하나로 사람을 다 안다고 생각할 때

마고 로비의 토냐를 보고 나면 그가 빙판 위에 있을 때의 집중이 남는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곳은 아니지만, 적어도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아는 장소다. 스캔들의 이름으로만 남은 사람에게 그런 장소가 있었다. 영화는 그가 떠난 빙판을 다시 보게 한다.

감상 포인트

◆ 심판에게 따지는 목소리 — 토냐의 거친 말투와 그가 요구하는 내용을 나누어 들어보자. 불편한 방식으로 말한다고 요구까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선수의 능력과 기대되는 이미지가 충돌하는 지점을 볼 수 있다.

◆ 라보나가 말하는 헌신 — 딸에게 무엇을 해주었다고 주장하는지, 실제로 딸을 어떻게 대하는지 함께 보자. 두 정보가 같은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제니의 연기가 웃음과 두려움을 동시에 만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인터뷰에서 경기장으로 — 말로 과거를 정리하는 장면과 몸으로 기술을 수행하는 장면의 차이를 느껴보자. 누군가가 토냐를 설명할 때와 토냐 자신이 스케이트를 탈 때 마음이 달라질 수 있다. 영화가 선수의 시간을 되찾아주는 방식이다.

◆ 지금 누구의 기억을 보고 있는가 — 서로 모순되는 이야기가 나올 때 방금 본 재현 장면이 누구의 말에 기대고 있었는지 떠올려보자. 말하는 사람이 화면에 없다고 그 시점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확신이 생겼다가 다시 흔들리는 경험 자체가 이 영화의 형식과 연결된다.

관련 작품

◆ 〈버닝〉 (2018, 이창동) — 인물의 말과 관객이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것 사이에 간격이 있다. 상대에게 마음이 가는 것과 그 말의 진위를 판단하는 일이 어떻게 얽히는지 살펴볼 만하다. 다른 형식의 영화지만 확신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주의를 기울이게 한다.

◆ 〈매직 마이크〉 (2012, 스티븐 소더버그) — 몸으로 자기 능력을 증명하는 사람이 원하는 생활을 얻기 위해 다른 기준도 넘어야 한다. 잘하는 일이 있다는 사실과 그 일로 존중받는다는 사실 사이의 차이가 두 영화에서 다르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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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