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긴 장면을 버려야 토냐가 보였다 | MovieLAB LAB

감독이 끝까지 지키고 싶어 했던 장면을, 완성 직전에 직접 잘랐다. 〈아이, 토냐〉에는 주변 인물들의 죽음을 차례로 보여주는 어두운 농담이 들어갈 예정이었다. 크레이그 길레스피는…

웃긴 장면을 버려야 토냐가 보였다 | MovieLAB LAB

감독이 끝까지 지키고 싶어 했던 장면을, 완성 직전에 직접 잘랐다. 〈아이, 토냐〉에는 주변 인물들의 죽음을 차례로 보여주는 어두운 농담이 들어갈 예정이었다. 크레이그 길레스피는 그 장면을 좋아했다. 하지만 빼고 나서 영화를 보니 토냐의 이야기가 더 잘 살아났다. 재미있는 장면을 더 모으는 것과 좋은 영화를 만드는 일이 일치하지 않는 순간이었다.

길레스피를 빠른 편집과 엉뚱한 유머가 돋보이는 감독으로 소개할 수 있다. 〈아이, 토냐〉를 보면 그 소개에서 한 걸음 더 가보고 싶어진다. 얼마나 웃길 수 있느냐만큼 누구를 계속 바라보게 할 것인지 고르는 사람이다. 매력적인 조연과 기막힌 사연이 많을수록 그 선택은 어려워진다. 웃다 보면 정작 주인공의 시간이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주인공을 놓치지 않기

토냐 하딩(마고 로비)의 어머니 라보나(앨리슨 제니)는 카메라 앞에 앉아 거침없이 말한다. 자기 이야기에 확신이 있는 얼굴과 딸에게 쏟아내는 가혹한 말이 인물을 선명하게 만든다. 영화가 이 어머니에게 계속 머문다면 흥미로운 말은 더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토냐가 그 말 속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뒤로 밀릴 수 있다.

길레스피는 강렬한 조연들의 분량을 조절하며 토냐와 제프 길룰리(세바스찬 스탠)의 관계를 따라갈 수 있도록 균형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촬영한 장면이 재미있다는 사실만으로 남겨둘 수는 없었다. 그 장면을 보는 동안 다른 인물에게 쌓아온 감정이 끊기지는 않는지도 보아야 했다.

좋아하는 조연의 장면을 덜어낸다는 것은 그 배우가 못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잘해서 이야기의 중심을 가져갈 수 있다. 길레스피가 아쉬워하며 장면을 지운 이유에는 그 즐거움이 담겨 있다. 자신을 웃게 한 순간을 관객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과, 토냐의 삶을 끝까지 따라가야 한다는 판단이 부딪힌 것이다.

한 여성 주위로 취재진과 마이크가 빽빽하게 몰려 있다

두 사람의 기억으로 한 영화를 만든다

각본의 출발점에는 토냐와 제프가 따로 들려준 이야기가 있었다. 같은 사건에 대한 기억이 서로 달랐다. 길레스피는 그 차이를 없애고 하나의 매끈한 연대기로 정리하지 않았다. 관객이 누군가의 설명을 듣고 믿으려는 순간,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 수 있게 했다.

영화 초반에는 누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 비교적 분명하다. 후반으로 가면 그 구분이 느슨해진다. 길레스피는 편집에서 일부러 그런 변화를 주었다고 밝혔다. 누가 말하는지 알려주는 표시가 줄어들면 관객은 화면에서 벌어진 일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러나 재현 장면도 여전히 누군가의 설명에 기대고 있다.

이 방식이 흥미로운 것은 관객이 정보를 놓쳐서만 헷갈리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인물의 이야기를 가까이 따라가면 그 사람의 설명을 받아들이게 된다. 카메라가 보여주기까지 했으니 더 확실하게 느껴진다. 길레스피는 그 확신에 다른 말이 부딪히도록 만든다. 누구에게 마음을 주었는지와 무엇을 사실이라고 믿었는지가 서로 영향을 주게 된다.

그래서 이 영화의 편집은 사건의 순서를 정하는 일을 넘어선다. 어느 목소리와 얼마 동안 함께 있을지를 정한다. 토냐를 이해할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 시간이 곧 모든 판단을 끝내주는 것은 아니다. 감독은 그 사람 곁으로 관객을 데려간 뒤에도 다른 목소리가 들릴 자리를 남긴다.

분장대 거울을 바라보는 경기복 차림 여성의 모습

웃음이 멎는 자리를 남겨두기

영화의 밝은 속도와 폭력적인 생활은 쉽게 어울릴 재료가 아니다. 마고 로비와 길레스피가 처음 나눈 긴 대화에서도 분위기와 폭력을 어떻게 다룰지가 중요한 주제였다. 거친 상황을 유쾌하게만 만들면 토냐가 겪은 일을 축소하게 되고, 고통만 이어가면 이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담긴 기이함을 잃는다.

영화를 보며 웃음이 불편해지는 순간도 있다. 라보나의 거침없는 말에 웃더라도, 토냐에게는 그 말을 듣고 살아야 했던 시간이 있다. 제니의 연기가 흥미롭다는 감상과 이 어머니 곁에서 자라는 일이 어떨지에 대한 생각은 함께 남는다. 감독은 관객이 웃었다는 사실만으로 인물의 고통까지 잘 전달되었다고 안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삭제한 몽타주를 실제로 볼 수는 없어도, 길레스피가 그 선택을 아쉬워했다는 말에서는 작업의 어려움이 느껴진다. 장면 하나를 포기해 이야기를 살린다는 원칙은 간단하다. 자신이 좋아하고 배우들이 잘해낸 장면을 눈앞에 두고도 그렇게 판단하는 일은 다르다. 〈아이, 토냐〉를 보고 나면 감독이 무엇을 잘 찍었는지와 함께, 무엇을 끝내 남기지 않았을지도 궁금해진다.

관련 작품

◆ 〈아이, 토냐〉 (2017, 크레이그 길레스피) — 상반된 기억과 강렬한 인물들을 엮으면서 한 선수의 시간을 따라간다. 편집이 정보를 전달하는 순서뿐 아니라 누구와 가까워질지도 결정한다는 점을 가장 직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 〈공동경비구역 JSA〉 (2000, 박찬욱) — 조사하는 시선과 병사들이 함께 지낸 시간이 번갈아 등장한다. 같은 만남이 어느 순서로 주어지느냐에 따라 사건을 받아들이는 감정도 달라진다. 진상을 좇는 이야기 속에서 인물에게 마음을 주는 과정을 함께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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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